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208화 (1,175/2,000)

1191. 2학년 2학기-6-

* * *

"아, 진짜 존나 개념 없네. 저따위로 차를 주차하면 어쩌자는 건데?"

[주인님. 오늘따라 너무 예민하신 것 같은데요?]

‘그래?’

[평소라면 이 정도 일에 이렇게 흥분하지 않으셨을 텐데 말이죠.]

‘으음, 역용 마스크의 부작용일까나?’

[역용 마스크가 성격까지 변화시키진 않죠. 어쩌면 주인님이 최번개 앞에서 연기를 하면서 배역에 너무 몰입하신게 아닌가 싶군요.]

‘으음. 그럴지도.’

[이제 보는 사람도 없으니···.]

똑똑.

도훈이 운전석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 차창을 노크했다.

팔이 종아리처럼 두꺼웠는데, 팔꿈치 위로 진한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뭔데 저건?’

도훈이 파워윈도우 버튼으로 창문을 내리자 험상궂게 생긴 거한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거, 잠깐 나와 보쇼."

"예?"

"차 빼달라고 전화한 사람 맞지?"

"그런데요?"

"내가 통화한 사람이니까 잠깐 나와 보라고."

도훈은 어디선가 본 얼굴이라고 생각하다, 흥신소를 나올 때 1층 출입구에서 어깨빵을 했던 인물이라는 걸 깨달았다.

‘뭐지? 건달 새낀가?’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위협감을 느낄 법 하지만, 도훈은 조금도 쫄지 않았다. 상대가 등빨이 좋건, 인상이 험악하건, 혹은 팔에 문신을 했다 한들 그에겐 아무 의미없었다.

"내가 왜요?"

"뭐여?"

"아니. 왔으면 차나 뺄 것이지 왜 사람을 나오라 마라야?"

도훈이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자 상대도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아야, 존말로 할 때 나오랑깨? 확 뒈지기 싫으면."

"···뭐?"

도훈은 다짜고짜 시비를 거는 거한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손등에 핏줄이 돋아날 정도로 주먹이 움켜쥐어졌다.

[주, 주인님. 참으셔야 합니다.]

‘아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가 참긴 뭘 참어? 보아하니 동네 양아치 새끼 같은데 너 잘 걸렸다.’ 도훈은 문을 열고 나가 거한 앞에 섰다.

185인 도훈과, 비슷한 신장을 가진 거한이 서로 마주 서자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단, 도훈에 비해 거한은 덩치가 거의 두 배는 될 정도로 체격이 큰 편이었기 때문에 주는 위압감이 상당했다.

‘근데 뭐지 이 새낀? 성수보다 등빨 좋은 사람은 오랜만에 보는데.’

[아···. 그냥 참으시지.]

‘아니, 저 새끼가 차를 빼줘야 나도 나갈 거 아냐. 말로 안 되면 몸으로 알려주는 수밖에.’

"니 어디 식구여?"

"식구?"

"아따 요 새끼 요거, 족보도 없는 새끼가 겁나게 야부리 털고 다녔는 갑네. 아야, 나는 목포 흑곰이라고 하는디?"

"아까부터 뭐라는 거야? 차 안 뺄 거야?"

"뭐, 뭐시여?"

"당장 차 빼라고. 너야말로 뒤지기 싫으면."

"아따, 요 새끼 좋게 말로 할라 했드만."

흑곰은 덩치와 달리 재빨랐다.

왼발을 한 발자국 내딛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커다란 주먹이 도훈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하지만 빼어난 동체시력과 반사신경을 보유한 도훈에게는 통할리 없었다. 도훈은 아슬아슬 스칠 정도로 고개만 살짝 뒤로 빼 주먹을 피하더니, 곧바로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복부에 한 방.

퍽!

묵직하게 들어간 주먹은 돌덩이를 때린 것마냥 둔탁한 소리가 났다. 뱃가죽에 철갑을 두른 것 같은 단단한 내구성이었다.

"아따, 요놈 봐야? 주먹 좀 쓰는 놈인 갑네?"

자칭 목포 흑곰이라던 녀석이 피식 웃더니 대번에 거리를 좁혀 도훈의 멱살을 잡아챘다.

‘유도?’

도훈은 흑곰의 동작이 유도 기술과 흡사하다는 걸 깨달았다. 직접 배우진 않았지만, 고은성의 경호원 한지연에게 습득한 유도 재능 때문이었다.

흑곰은 멱살을 잡아채는 순간 오른발로 바닥을 쓸 듯이 도훈의 발목 안쪽을 노리고 들어왔다. 동시에 상체를 왼쪽으로 잡아당기며 도훈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호미걸이? 유도 맞구나.’

상대를 순식간에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는 기술. 하지만 유도 베이스의 기술은 재능 모방자 스킬을 통해 도훈의 몸에도 각인되어 있었다.

몸이 기우뚱 옆으로 무너진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 도훈이 오른발 하이킥으로 흑곰의 관자놀이를 노렸다. 그러자 흑곰의 호미걸이가 되려 도훈의 발차기를 도와주는 것처럼 되었다.

아차 싶은 생각에 흑곰이 기술걸기를 포기하고 팔을 들어 도훈의 킥을 막아냈다.

퍼억!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둔탁한 소리가 났다. 팔로 막아낸 흑곰이 두 세 걸음 옆으로 밀려날 만큼 강력한 한 방이었다.

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더니 도훈과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너 뭐여, 정체가?"

"니가 알아 뭐하게?"

"태권도 배웠냐?"

"하, 거 새끼 참 말 많네."

도훈이 먼저 움직일 태세를 보이자 흑곰이 두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며 휴전을 제안했다.

"잠깐만 있어 봐야. 내가 쪼까 실수했을 수도 있응께

"뭐라고?"

흑곰은 불과 1~2초 사이에 이루어진 경합으로 곧바로 도훈의 놀라운 싸움 실력을 간파했다. 처음엔 그가 멍청한 최번개 일당을 속여 민수의 이름을 판 양아치라고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수와 같이 조직의 수뇌부 급과 안면이 있는 사람이면 대부분 전국구였고, 그가 아는 전국구 건달중 도훈과 같은 사람은 듣도보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목포 흑곰이라고 성명을 밝혔을 때 보여준 도훈의 행동이 그의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었다. 자신 또한 전국구로 이름을 날리는 조폭이었기 때문에 얼굴은 모르더라도 이름은 알았어야 했다. 건달은 결국 자신의 명성만큼 실력을 인정받으므로.

"너 진짜 민수 형님이랑 아는 사이 맞어?"

"민수?"

"······."

"아아, 그 민수. 알지. 기생 오래비처럼 잘생긴 건달 말이지?"

"뭐, 뭐시여?"

흑곰은 순간 흥분하여 달려들 뻔하다 가까스로 멈추었다. 그가 화가 난 이유는 자신의 직속 선배인 민수를 기생오라비라고 모욕했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제한 이유는 만에 하나 눈앞의 사내가 민수와 동급의 항렬이면 어찌됐건 자신보다 위라는 소리였다.

정통파 건달은 서열정리가 확실했고, 형님의 친구도 마찬가지로 형님이었다. 혹여라도 상대가 못 나간다고 얕잡아 보는 행동은, 자기 형님의 얼굴에 먹칠을 한 것으로 취급받았다. 그건 정말 족보도 없는 행동이었다.

‘으메, 씨벌. 민수 형님한테 전화해서 물어볼 수도 없고.’

흑곰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도훈은 맥이 풀리는지 쥐었던 주먹을 거두며 말했다.

"뭐야? 너 민수 동생이었어?"

"···실례지만 어디 식구십니까?"

"아까부터 왜 자꾸 남의 식구를 찾아? 없어 그런 거."

"네? 혹시 생활 그만 두셨습니까?"

흑곰은 간혹 있는 은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들었다. 조폭은 정년이 존재하는 직업이 아니며, 때론 개인 사정이나 불가피한 이유로 젊은 나이에 조폭을 관두는 경우도 있었다.

만약 도훈이 한때 민수와 친구처럼 지내며 조직 생활을 하다 지금은 은퇴한 사람이라면 흑곰도 더이상 예를 차릴 필요는 없었다.

"알 필요 없고. 민수 동생이라니까 한 번 봐줄테니. 차나 빼라."

"아따 성님, 그래도 존함은 알려주셔야지 않겄습니까?"

어찌 됐건 흑곰은 자신의 신분을 밝힌 만큼, 상대도 이름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은퇴했어도 한때 생활을 했던 사람이라면 한 다리만 건너도 곧바로 견적이 나올 테니까.

"궁금하면 민수한테 직접 물어봐. 아, 그리고 내가 요새 힘든 일이 있어서 얼굴이 좀 상했으니 이해하라고."

"······."

"에이씨, 도훈이다. 됐냐?"

"네 알겠습니다. 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실례는 그만하고 차부터 좀 빼. 나 지금 가 봐야 하니까."

상대가 이름까지 알려준 이상 흑곰도 더 시비를 다툴 수 없었다. 혹시라도 정말 민수와 막역한 사이라면, 자신이 큰 결례를 범한 셈이었다. 쉽게 말해 나중에 민수의 귀에 오늘 일이 들어갔다간 엎드려 빠따를 맞을 수도 있는 중대 사안이었다.

"저, 도훈 형님. 오늘 일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제가 흥분해서 실수한 것 같습니다."

"됐고. 차나 빼."

도훈은 그 말을 마치더니 다시 차로 돌아가 버렸다. 흑곰이 재빨리 주차했던 차를 이동시키자 도훈이 쌩하고 사라졌다.

차에 혼자 앉은 흑곰은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저 사람? 말하는 것만 보면 조폭 사칭하는 사기꾼같았는데, 실력은 분명 진짜였단 말이지?’

흑곰은 아까 도훈의 하이킥을 막아낸 팔뚝을 어루만졌다.

긴장해서 몰랐는데, 팔이 퉁퉁 부어 있었다.

‘그거 정통으로 맞았으면 기절했을지도···.’

흑곰은 오랜만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의 본명은 최만식.

깡촌에서 자라서 그런지 얼굴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씨름선수처럼 우람한 체구 덕분에 ‘흑곰’이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했다.

목포를 주름잡던 그는 후에 서울로 올라와 민수를 만났다. 그리곤 태어나 처음으로 맨 주먹싸움에서 처절하게 얻어맞았다. 타고난 맷집과 힘, 그리고 학창시절 배웠던 유도 기술로 맨손 싸움으론 상대가 없을 줄 알았는데, 민수는 자신보다 더 괴물이었다.

그리고 당시 민수를 만났던 기시감을 방금 전 도훈에게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워메 씨발. 진짜로 실수한 거 아닌가 모르겄는디?’

흑곰은 쪽팔림을 무릅쓰고 바로 민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괜히 감추다가 일을 키우는 것 보다 드러내 놓고 먼저 맞는게 나았다.

"형님, 만식입니다."

-응 그래, 어쩐 일이야? 니가 전화를 다 하고. 요새 바쁜일 있다지 않았어?

민수와 호형호제하는 사이지만, 최근 흑곰은 조직을 떠나 잠시 파견을 나간 상태였다. 석산파 내에서 서열도 NO.

2인 민수에 비하면 흑곰 만식은 조직내 서열 7위. 나이는 비슷하지만 한참 위라고 할 수 있었다.

"이리저리 알아보는 중입니다. 저 근데···."

-너 답지 않게 뭘 그렇게 뜸들여? 본론부터 말해.

"혹시 도훈이 형님이라고 아십니까?"

"누구?"

-본인이 도훈이 형님이라던 데요.

"도훈이? 아아아, 그 대학생?"

-대학생이라고요?

흑곰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도훈의 면상은 도저히 대학생으로 보기엔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대학원생도 모자라 교수라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늦깎이 대학생인가 설마?’

한때 조폭 조직이 체질 개선을 위해 합법적 테두리로 사업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몇몇 조직원들을 대학에 입학 시킨 적이 있었다. 중퇴나 고졸이 즐비한 조폭계에서 ‘대졸’이라는 타이틀은 간판에 상관없이 값어치가 있었던 것이다.

그때 대학에 들어간 조폭들을 떠올리자 도훈이 대학을 늦게 들어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예, 뭐 학생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뭔 소리야? 딱 봐도 어려 보이는데. 생긴 것도 훤칠하게 잘생겼지?

"예, 예?"

흑곰은 민수가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다고 오해했다.

하지만 조직내 서열 NO.2에게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암튼, 왜?"

-제가 우연히 만났는데 형님 이름을 대길래요. 어디 식구냐고 물어봤는데 대답을 안 해서 사칭하는 줄 오해하고 결례를 범한 것 같습니다.

"하하. 뭐래냐. 식구는 왜 물어? 생활하는 사람도 아닌데."

-아, 아니라고요?

"대학생이라니까 진짜? 근데 싸움을 워낙 잘해서 큰형님이 영입하고 싶어하셔."

-크, 큰형님이요?

"어. 나도 한 번 붙어 봤거든. 장난 아니더라고."

-미, 민수 형님이요?

"인마.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은 거야. 까불지 말고 다녀라. 사과는 했냐?"

-네, 바로 사과했습니다.

"그래. 그럼 됐지 뭐. 내가 나중에 한 번 따로 전화 한 번 넣을게. 안 그래도 요새 바빠서 통 연락을 못 했는데, 니 핑계 대고 연락하면 되겠네."

-아무튼 죄송합니다. 형님 지인이신데···.

"그 얘긴 됐고. 근데 대체 어느 조직 소행이래? 아직도 못 찾았어?"

-네. 이리저리 수소문해보고 있지만, 원한 관계나 금전을 노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치정쪽은?"

-그걸 알아보려고 아는 흥신소 애들한테 죄다 부탁해 놨습니다.

"거참 별일이네. 대체 어떤 새끼가 감히 백주 대낮에···.

암튼 니가 고생 많다. 더 밑에 애들 시켰어야 하는 일인데, 큰 형님이 너를 제일 믿으시니까."

-감사합니다 형님.

"알았어. 나 일하는 중이니까 다음에 또 연락해라. 뭔일있으면 바로 보고 하고."

-넵.

전화를 끊은 만식은 아직도 믿기지 않은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씨벌, 대학생이라고? 그 얼굴에? 존나 세월의 풍파를 얼굴로 맞은 겨?’

만식은 믿기지 않았지만, 싸움 실력 하나만큼은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민수 형님도 타고난 싸움꾼인데 한 수 접는거 봐선 내 감이 맞았구나. 정말 형님 말대로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구만. 늘 겸손해야 겠어.’

차를 똑바로 주차 시킨 만식은 다시 최번개의 사무실로 올랐다.

* * *

[근데 어딜 그리 급히 가시는 겁니까?]

‘여기.’ 운전 중이던 도훈이 최번개가 전해준 서류에 나온 지번을 가리켰다.

[박회장의 사업장인가요? 하지만 지금 그는 외국에 있다지 않았습니까?]

‘서류만 보고 어떻게 알겠어. 직접 발로 현장을 뛰어봐야지.’

[주인님이 그런말 하니 무슨 형사처럼 보이는 군요.]

도훈이 피식 웃으며 룸미러로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형사 같긴 하네. 험악하게 생긴 강력계 형사.’

아무리 적응하려고 해도 지금의 변형된 얼굴은 쉽게 적응이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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