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207화 (1,174/2,000)

1190. 2학년2학기-5-

흔히 사채업자를 조폭과 동일시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정통 조폭들이 들으면 곧바로 주먹이 날아올 정도로 모멸적 표현이다.

이쪽 세계에서도 사채업자는 흔히들 ‘독종’이라 불릴 정도로 지독한 사람들의 집합이다. 싸움을 딱히 잘하는 것도 아니고, 뒷배가 든든한 편도 아니다.

다만 빌려줄 때는 친철한 이웃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뜸 큰돈을 꿔주더라도, 이자를 못 내거나 원금 상환이 안 되는 날부터는 악마로 돌변하는 족속들이다.

그들은 온갖 방법으로 행패를 부리거나 협박을 일삼는데 그 수법이 같은 범죄자들이 보기에도 너무나 악랄하고 패악스러워서 다들 학을 떼고 만다.

"박차돈은 20대 초반부터 돈놀이를 시작했습니다요."

"돈놀이?"

"일수말입죠."

"아, 일수."

금전 감각이 밝았던 차돈은 고아로 자란 어린 시절부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리고 인천 변두리의 시장에서 일수로 사채에 발을 들였다.

"그때부터 지랄 맞기로 악명이 높았습니다요. 이자를 밀리거나 돈을 안 갚으면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웃임에도 불구하고 패악질을 일삼았거든요."

"싹수가 노란 놈이네?"

"저···. 현재는 50대 중반입니다만···."

"뭐 어쩌라고? 나이가 벼슬이라도 돼? 까는 소리 하고 있네."

도훈이 버럭 성을 내자 최번개가 재빨리 머리를 조아렸다.

"아, 암튼. 어느 정도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부터는 여자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여자 장사?"

"네. 집창촌에 여자를 댔거든요."

"설마···."

"맞습니다요. 여성 전용 대출로 전환하면서 특히 20대 어린 아가씨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습니다."

"······."

"신용도 변변치않고 직장도 불분명한 아가씨들은 덥석덥석 큰 돈을 빌려주는 박차돈에게서 신나게 돈을 빌렸죠.

명품을 사기 위해서건, 유흥비건, 아니면 외국으로 놀러 갈자금이 필요해서 건···. 좌우지간 겁도 없이 빌려댔죠."

"그래서?"

"차돈은 일부러 돈이 없으면 고리를 떼면서 추가 대출을 실행해줬습니다."

"빌린 돈도 못 갚는데 추가로 대출을 해줬다?"

"일종의 현금 돌려막기랑 비슷하죠. 눈덩이처럼 빚이 불어나 감당 못 할 지경까지 몰아세운 거죠."

"다분히 고의적이군?"

"맞습니다요. 결국은 여자를 창녀촌에 팔아치울 목적이었거든요. 빚을 탕감해 주는 대가로 몸을 팔게 시키는 거죠. 그게 빌려준 돈과 이자를 받는 것보다 더 남는 장사였으니까요."

"이런 천하의 씹새끼가!"

번개는 도훈이 유독 흥분하는 모습에 속으로 적잖이 놀랐다.

‘역시 민수 형님 지인분이라 다르긴 다르구나. 대체로 뼈대있는 조폭들은 돈놀이하는 놈들을 경멸한다더니···.’

"계속해봐."

"그렇게 계속 돈을 벌자 나중엔 여러 가지 이권에 개입했습니다."

"이권이라니?"

"서울에서 한창 재개발이 열풍일 때 철거용역으로 재미좀 봤죠."

"사채업자 새끼가 철거일도 해?"

"박차돈은 돈이 되는 일이면 무슨 짓이든 했습니다. 흔히들 악마와 손을 잡았다고 할 정도로 지독한 사람이었죠.

근본이 사채업자 출신이라 그런지 큰 부자가 된 지금도 무척이나 쩨쩨하게 군다더군요. 밑에 사람들에게 밥 한번을·

··."

"쓸데없는 소린 됐고. 그래서 지금 주 수입은 뭔데? 그렇게 개같이 번 돈으로 뭘하고 있어?"

"건물줍니다."

"······."

"물론 자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사채업도 여전히 놓지 않는 걸로 압니다. 사업규모는 대폭 줄였지만요. 또 예전처럼 대놓고 여자 장사를 하는 건 아니지만, 한번 뚫어 놓은 루트가 있어서인지 지금도 암암리에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더라고요."

"아니 잠깐. 듣고 보니 황당하네. 그딴 짓을 하는데 여태 빵에 한 번을 안 갔어? 경찰은 뭐하고 있는 데?"

"하하, 행님, 아실만한 분이 순진한 소릴···."

번개가 자기도 모르게 긴장을 놓는 순간 눈앞에서 불빛이 번쩍 튀었다.

빡!

도훈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번개의 뒤통수를 후려친 것이었다.

감히 보고도 믿기지 않는 출수에 번개의 부하들은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최번개는 뒤통수를 감싸쥐고 바닥을 대굴대굴 굴렀다.

"끄허억!"

"좆만한 새끼가 오냐오냐 해주니까 어디서 말대꾸야? 뒤지고 싶냐? 내가 편하지?"

도훈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윽박지르자 최번개가 고통을 참고 벌떡 일어섰다.

"죄, 죄송합니다 행님! 제가 죽을 죄를 졌습니다요!"

도훈이 눈을 부라리며 번개와 그의 부하들을 보며 말했다.

"니들도 똑바로 들어. 난 기어오르는 새낀 그대로 조져 버린다. 성질 건들지 마라."

"네, 형님!"

"잘하겠습니다!"

도훈의 폭력적인 행동에 삽시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주인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뭐?’

[별 것도 아닌데 불같이 화를 내시고···. 주인님 답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잖아. 이런 놈들에겐 조금이라도 얕보이면 바로 발톱을 세우고 기어 오른단 말이지. 한동안 잘해줬더니 나를 겁내지 않는 눈치길래 일부러 무력시위 한 번 해 준 거야.’

[쯧쯧. 최번개만 불쌍하게 됐군요.]

‘그러게 누가 까불래?’ 뒤통수 한 방에 정신을 잃을뻔한 최번개는 아까보다 훨씬 경직된 자세로 박차돈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바, 박차돈은 그, 그러니까···."

"야."

"넵!"

"사내새끼가 고거 한 대 맞았다고 불알이 쪼그라들었냐?

뭘 그렇게 쫄아 있어? 평소처럼 해. 평소처럼."

"넵!"

"박차돈은 위험한 일엔 늘 바지를 세웠습니다."

"대타 말이지?"

"넵. 그래서 몇 번 단속에 걸리거나 신고가 들어온 적도 있었지만, 엄한 놈만 잡혀 들어갔습죠. 유능한 변호사도 옆에 두고 있고, 공권력과 연줄이 닿고 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용의주도한 놈이군."

"넵. 이쪽 세계에선 입지전적인 인물이면서도 상당한 거물임은 틀림없습니다."

"싸움은 못 할 거 아냐?"

"네."

"근데 뭔 거물이래?"

"그게···. 주먹 쓰시는 분들도 가끔 사업 자금이 필요할 때가 있다 보니···."

도훈은 대번에 번개가 말한 요지를 알아들었다.

‘그렇구나. 돈을 번 차돈은 그 돈을 이용해 주먹패들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거군.’

[흐음. 미쓰리의 복수 대상이 생각보다 막강하군요. 주인님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상대일지 모릅니다.]

‘내가 평범한 대학생이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플레이어잖아.’

도훈은 박차돈의 상세 프로필을 듣고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

대충 요약하면 온갖 나쁜 짓을 일삼고도 지금도 떵떵거리며 살고있는 개새끼인 모양인데, 그런 놈을 보자 도훈은 없던 정의감까지 생겨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아까 들었지? 멀쩡한 여자들을 일부러 빚지게 만들어서 사창가에 팔아넘겼다는 거?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댄데 그런 거지같은 짓을 해?’

[하지만 그건 여자들이 자초한 부분도 있습니다. 애초에 감당도 못 할 빚을 제2금융권도 아닌 사채업자에게 빌리다니요.]

‘미쓰리는? 미쓰리는 본인 잘못도 아니었잖아? 아버지의 빚이었다며? 병원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거고.’

[사정은 딱하지만 돈은 본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지 않습니까?]

‘어쨌든 난 놈이 무슨 짓을 했건 나와 관련이 없으면 신경 안 썼을 거야. 100명을 팔아 넘겼건, 1000명을 팔아 넘겼건 알 게 뭐람? 세상에 나쁜 놈을 내가 다 단죄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 말씀은···.]

‘근데, 말했듯이 나랑 관계된 경우는 얘기가 전혀 다르지.’

[관계된 경우라뇨?]

‘미쓰리랑 약속했잖아. 부탁을 들어주기로.’

[그땐 이런 상대인지도 미처 모르시고···.]

‘이제 사정을 알았으니, 더 멈출 수 없지.’

[왠지 핑계같이 들립니다만···.]

‘뭐, 멋대로 생각하라고.’

박차돈에 대해 대강 정보를 파악한 도훈은 최번개에게 당부했다.

"박회장인지 해장국인지 그 새끼 감시하고 있다가 한국들어오는 대로 나한테 콜 때려."

"어쩌시려고요?"

"그냥 그렇게만 해. 그리고···."

도훈은 품안에서 오만원짜리 뭉텅이를 꺼내 테이블 위에 던졌다.

"알아보느라 수고했어. 이걸로 애들하고 배에 기름칠이라도 해."

"가, 감사합니다!"

최번개는 방금 전 뒤통수를 맞은 것도 까맣게 잊고, 허리를 굽신거렸다.

"나간다. 연락해라."

"넵, 행님!"

도훈이 흥신소를 나가자 그때까지 바짝 쫄아있던 최번개와 그 부하들이 긴장이 풀리는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푸하-. 개 쫄았네.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저 형님은 대체 사람 몇이나 죽여봤을까?"

"적어도 다섯은 넘을걸?"

"다섯 같은 소리하네. 두 손가락으로 못 셀 거다 분명.

방금도 봐. 번개 형님 뒷다마까는 데 손이 보이지도 않더라."

"야이 개새끼들아. 말 한 번 잘했다. 니들은 내가 처맞고 있는데 보고만 있냐?"

번개가 뒤늦게 씩씩거렸지만, 그의 부하들은 일전에도 도훈의 실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터였기 때문에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다.

"아유, 번개 형님도···. 아시잖아요. 거기서 덤볐다간 우리 다 개죽음 당했을 걸요."

"맞아요 형님.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목숨까지 걸 필요 있습니까? 그리고 저 형님, 성격은 드러워도 이건 확실히 챙겨 주잖습니까?"

번개의 부하가 묵직하게 쌓인 5만원권 뭉치를 들어 보였다.

번개는 도훈이 물러난 의자에 앉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네?"

"왜 그러십니까 형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

"뭘요?"

"저 형님은 왜 갑자기 박회장 뒤를 캐는 거지?"

"그야···. 뭐 사연이 있겠죠."

"저희가 언제 그런 거 따지고 일했습니까?"

"맞아요. 돈만 주면 마누라랑 바람난 놈한테도 정보를 물어다 주는 거죠."

"넌 여자친구도 없는 새끼가 벌써 결혼까지 했냐?"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조용!"

번개가 시끄럽게 떠드는 부하들을 조용히 시켰다.

식성이 대단한 것 빼고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부하들이었다.

‘···이상해. 내가 알기론 박회장은 석산파랑도 줄이 대져 있을 건데 말이야. 민수 행님도 안면이 있을 거고. 근데 민수행님과 절친인 행님이 다른 사람 몰래 박회장을 담그려고 한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번개는 계속 혼자 고민해 봤지만, 뾰족한 답이 보이지 않았다.

‘에이, 내가 알게 뭐야. 입국하면 전화 한 통 넣어주면 그만이지.’

최번개는 복잡한 생각을 지우고 그냥 잊기로 했다.

* * *

도훈은 흥신소 밖을 나오는 길에 들어오려던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쿵-!

도훈도 제법 덩치가 있었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았기에 두 사람은 좁은 길목에서 마주서고 말았다.

"아, 죄송합니다. 사람 오는 줄 모르고."

"아 씨, 눈 좀 똑바로···."

상대는 험상궂은 표정을 짓다가 도훈의 얼굴을 보고 살짝 쫄았다.

‘뭐, 뭐야 이새끼는? 좆같이도 생겼네.’

범상치 않은 도훈의 외모에 경계심을 갖던 덩치가 말했다.

"거, 조심 좀 합시다잉."

도훈은 더 말해봐야 괜히 시비가 붙을 것 같아 자릴 피했다.

덩치는 흥신소 계단을 올라가며 부딪친 어깨를 주물렀다.

‘거 몸땡이 한 번 더럽게 딴딴하네. 무슨 미식축구 선수도 아니고.’

덩치는 계단을 올라 최번개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에 있던 번개와 부하들이 화들짝놀라며 후다닥 자세를 바로 잡았다.

"오셨습니까, 행님!"

"느그들은 뭐하고 있었길래 난리 부르스여?"

최번개가 테이블 밑으로 도훈이 준 현금 다발을 발로 슬쩍 밀어 넣으며 대답했다.

"별일 없었습니다."

덩치는 불쑥 이곳 건물에 최번개의 흥신소 외에 다른 가게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가만, 3층 당구장 폐업했다지 않았냐, 저번에?"

"네. 한 달 전에요. 가게세도 밀리고 야반 도주 했다던가? 건물주가 아주 노발대발 하던데요?"

"응? 그럼 뭐여?"

덩치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들어왔던 문을 다시 돌아보았다.

"야. 너네 방금 손님 받았었냐?"

"무슨 손님이요?"

"아니 인상 더럽게 생긴···."

"아, 그 행님이요?"

"행님이라고?"

"민수 행님 지인입니다요."

"형님의 지인?"

덩치는 민수의 직속 부하기도 했기 때문에 방금의 대답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디 식군디?"

"네?"

"아니. 족보가 있을 거 아니야?"

"어···. 저도 민수 행님 소개로 알게 된 분이라···."

"뭐? 어디 식군지도 모르고 형님이라고 불렀어? 하여간 양아치 새끼들. 족보 없는 티내나."

덩치가 혀를 쯧쯧 차는 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쇼."

-아, 차 좀 빼주세요. 나가는 출구를 막아 놓으면 어떡합니까?

"아따, 금방 나갈라고 했는···."

덩치는 통화 중인 상대의 목소리가 방금 전 1층에서 어깨를 부딪힌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최번개에 따르면 민수의 지인이라고 했다는.

생각을 바꾼 덩치가 말을 바꿨다.

"네, 지금 나갈랍니다."

통화를 끊은 덩치가 말도 없이 흥신소를 빠져나갔다.

"아니 행님, 받을 거 있어서 들르신 거 아닙니까요?"

"후딱 댕겨올랑께 기다려라잉."

번개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잽싸게 빠져나가는 덩치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네? 차 빼주러 가신 거 아니에요?"

"아니. 흑곰 행님은 흥분할 때만 사투리 튀어나오거든.

주차장에서 뭔 일 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는데."

"에이, 별일이야 있겠어요. 민간인은 절대 안 건드리는 분인데."

번개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예감이 틀리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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