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206화 (1,173/2,000)

1189. 2학년 2학기-4-

학과사무실 방문을 마친 도훈은 개강총회 준비를 대강마무리했다.

회장 취임 후 첫 행사다 보니 신경 쓰이긴 했지만, 막상 내용을 확인해보니 교수와 일정을 맞추고 연락을 돌리는 것 외에는 딱히 당장 해야할 일은 없었다.

오히려 중간 고리인 민주의 일이 많았는데, 그녀는 도훈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태세였기 때문에 도훈도 안심하고 믿고 맡길 수 있었다.

"그나저나 벌써 방학도 다 끝나버렸네."

도훈은 구석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며 지난 방학을 돌이 켜 보았다. 두어 달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방학 시작부터 민주를 공사치려는 그녀의 외삼촌을 도박으로 담근적도 있었고, 중간에 여름 캠프 때는 대학교 내에 인연들과 한 번씩 돌아가며 도둑 섹스를 벌인 적도 있었다.

김변의 스폰녀인 조소연을 매수해 그를 성매매로 입건시킨 일은 무척이나 통쾌한 일이었다.

여름 캠프의 인연으로 8선녀의 마지막 멤버인 아영을 하렘에 합류시켰으며, 싸이판 여행 때는 형철 상철 형제에게 한 방 먹이고 업적을 완수했다. 그리고 방학 막바지에 이르러선 예비 복학생 영철과 더불어 치어리더 공략까지 성공했다.

지나고 보니 쉼 없이 업적만을 향해 달려온 나날들이었다.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날이 없었다. 오히려 대학에 얽매여 있을 때보다 훨씬 바빴다고 볼 수 있었다.

"후아-. 생각해보니 정말 긴 여름이었다."

도훈이 방학 동안 해치운 업적에 만족해하며 로시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꽤 선방했다고 봐야겠지?’

[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무래도 수업에 얽매일 수 밖에 없는 학기 중 보다, 일정이 없는 방학이 업적을 해치우는 데는 더 효율적이니까요.]

‘2학기 되면 또 발이 묶이겠구만. 이제 밀린 업적은 거의 해치운 건가?’

[아직 장기 미해결 업적이 몇 개 남아있긴 합니다만···, 그 보다는 복수의 신에게 받은 미션은 수행 안 하십니까?]

‘응? 복수의 신? 그런게 있었어?’

[에효, 벌써 까먹으셨군요. 타짜 행세를 하면서 민주의 외삼촌에게 한 방 먹일 때 말입니다. 그때 일을 도와준 미쓰리를 통해 받으셨잖습니까?]

‘응? 마지막에 돈 주고 치운 거 아니었···. 아차!’

도훈은 그제야 해당 일을 마무리했을 때 미쓰리와 관련해 미션을 받은 일이 떠올랐다. 워낙 정신없이 지낸 나머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기억이 안 나시는 것 같으니 다시 상기시켜 드리죠. 미쓰리는 주인님을 도운 대가로 추가로 돈을 더 받기보다 자신의 복수를 대신 해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자신을 사창가에 팔아넘긴 사채업자에 대한 복수요. 그리고 주인님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려는 순간, 복수의 신께서 보상으로 미션을 제시했고요.]

‘맞아. 이제 기억난다. 미션 내용이 정확히 뭐였지?’

[미쓰리의 대리 복수를 성공할 경우 스킬 강화 특전을 제공하는 내용입니다.]

‘스킬 강화?’

[말 그대로 기존 스킬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주는 특전이죠. 포인트를 써서 강화 시키는 것과 비슷합니다.]

‘설마 올 스킬?’

[에이, 그 정도는 아니고요. 지정한 스킬 3개를 대폭 강화 시킬 수 있습니다.]

‘잠깐만. 3개라고? 보상이 너무 짠 거 아니야? 그 정도면 나도 포인트로 얼마든지 올릴 수 있는데?’

[그런게 아닙니다. 신들의 보상으로 주어지는 스킬 강화는 포인트 강화보다 한 차원 높은 레벨입니다. 스킬 강화도 스킬레벨이 5레벨을 넘어서면 실패할 수 있다는 걸 아십니까?]

‘강화 실패? 무슨 가챠게임이야?’

[비슷합니다. 스킬 레벨 6부터는 강화 실패 가능성이 올라가고, 최종 단계 10레벨부터는 스킬이 아예 소멸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뭐라고? 아이템도 아니고 무슨 스킬 강화를 실패했다고 스킬이 날아가는데?’

[어쩔 수 없습니다. 애초부터 그렇게 짜인 시스템이니까요. 만약 포인트만으로 계속 강화를 해 나가는 게 가능하다면,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모든 플레이어가 신에 근접한 능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니까요.]

‘신께선 플레이어가 신에 다가가는 걸 싫어하시나?’

[그건 허용되지 않은 질문입니다.]

‘아니 알려줄 순 있잖아. 저번에 PK단 기원도 그렇고 어째서 신은 플레이어가 성장하는 걸 제한··· 으앗!’ 도훈은 간만에 손목에 전기가 통하는 느낌에 화들짝 놀랐다.

[방금 그 말은 신성 모독입니다.]

‘아니 씨, 무슨 말도 못 하나.’

[아무튼 시스템이 그렇습니다. 이부분에 대한 질문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도훈은 시큰 거리는 손목을 만지막 거리며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젠장. 무슨 조금만 대들면 무조건 전기충격부터 주고 보는 쪼잔한 신이 다있담?’

[설마 방금도 신을 모독하신 건 아니겠죠?]

‘아니 전혀! 신께선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분이라는 생각을 했어. 사실 그게 맞지. 플레이어는 신의 대리인일 뿐 신은 아니니까. 스킬 레벨을 올리는 데 제한을 두는 게 맞겠지.’

[흐음···. 왠지 의심스러운데요.]

‘에이, 기분 탓일 거야.’

[아무튼 스킬 강화 특전은 지정된 3개의 스킬의 강화를 마지막 단계까지 실패없이 강화해 주는 조건입니다. 잘만 활용하시면 무척 쓸모 있을 겁니다. 특히 자주 쓰는 스킬의 경우에는 말이죠.]

‘그렇겠네. 들어보니 최종레벨까지 올리는 건 포인트만으로 어림없어 보이는데 실패확률이 제로인 강화 성공 보상이라면.’

[그렇죠.]

개강까진 대략 3일 정도 남은 상황.

외부로 움직여야 한다면 지금밖에 시간이 없다고 도훈이 생각했다.

‘안 되겠다. 말 나온 김에 미쓰리한테 연락해봐야겠어.’

[신들의 미션에 도전해 보시려는 거군요.]

‘되든 안 되든 일단 들이대 봐야지. 포기한다고 페널티가 있는 것도 아닌데.’

도훈은 핸드폰 연락처를 뒤져 미쓰리의 번호를 찾았다.

다행히 저장해 둔 번호가 있어 전화를 걸자 바로 연결이 되었다.

"여보세요. 혹시···."

-하읏···. 흣, 내가 지금 일하는 중이라···. 흑, 아뇨, 손님이에요. 남자친구 아니라고요.

뚝전화는 잠깐 연결되더니 이내 끊어졌다.

들리는 내용으로 봐선, 미쓰리가 대낮부터 한창 티켓(?)

끊은 손님을 상대하는 중으로 보였다.

‘나참, 이럴 거면 전화를 받지나 말지.’

도훈은 어쩔 수 없이 몸을 팔아야 하는 미쓰리의 딱한 처지에 연민을 느끼면서도, 다른 남자 밑에 깔린 그녀를 떠올리자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도훈이 차에 앉아 에어컨을 틀어놓고 잠깐 기다리는데 다시 미쓰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미안! 정우 오빠, 전화 받을 상황이 아니었는데.

‘정우라고? 아차. 그때 나이 들어 보이기 위해서 위장했었지?’

도훈은 당시 서른 살의 이정우로 변신했던 것을 떠올렸다. 얼굴도 서른 즈음으로 위장한 모습으로 미쓰리를 만났던 것. 너무 어려보이면 타짜 행세를 하기가 곤란할 것 같아서였다.

도훈이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다시 말했다.

"음, 요즘 바쁜가 봐?"

-아니에요. 이제 끝났어요. 영감탱이 쌀 것 같으니까 일부러 안 움직이고 버티길래 확 쪼여버렸죠.

"구체적으로 얘기할 필요는 없고. 암튼, 저번에 부탁한일 말인데···."

-응, 오빠. 드디어 할 마음이 생겼어?

"그냥 시간이 비어서 한 번 알아나 볼까 하고. 그 사채업자 이름이 뭐라고 했지?"

-본명은 나도 잘 몰라.

"본명을 몰라?"

-이름을 밝히지 않으니까. 다만 그쪽 업계에서 박회장이라고 통해.

"사채업자 박회장. 그게 단서의 전부야?"

-응. 미안해 오빠. 나로선 알아낼 방법이 없었거든. 여자들 관리하는 부하들은 따로 있었으니까.

"알았어. 일단 거기서부터 시작해 볼게."

-고마워 오빠. 난 오빠가 연락 없길래 그냥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미쓰리가 살짝 울먹거렸다.

도훈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실제로 잊어버리긴 했지. 워낙에 바빠서.’

[지금이라도 떠올리신 게 어딥니까?]

"요새 좀 바쁜 일이 있었거든. 언제까지 가능하다곤 장담은 못 할 것 같아. 다만 약속을 했으니 착수는 해 봐야지."

-정말 고마워요···. 난 더 이상 줄게 없는데···.

"그때 충분히 받았어. 됐어."

-혹시 심심하면 여기 놀러 올래? 나 오늘 저녁 한가한데.

도훈이 피식 웃었다. 몸으로 그를 유혹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었다.

"괜찮아. 무리말고 몸조리 잘하고 있어. 내가 필요하면 또 연락할테니."

-으응, 오빠. 나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 오빠한테 무제한 티켓 제공이니까.

전화를 끊은 도훈은 절래절래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참. 처음 몸 팔게 된 계기가 박회장이라는 사채업자 때문이라더니 이제는 본인 스스로 몸 파는 여자가 다 됐구나.

[미쓰리를 비난하시는 겁니까?]

‘아냐. 그건 그거고 복수는 복수지. 어쨌든 멀쩡한 여자 인생을 망쳐놓았다는 사실은 변함 없으니까.’

도훈은 잠시 생각하다, 간만에 최번개를 콜했다.

번개는 이름처럼 빠르게 신호음이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행님, 어쩐일이 십니까요?

"잘 있었냐?"

-네, 행님. 요새 통 연락 없으셔서 걱정했습니다요.

"웃기고 있네. 됐고, 너 사람 하나만 찾아주라."

-이름만 불러 주시면 됩니다요, 행님. 강원도 오지 산골에 숨어 있어도 일주일이면 찾아냅니다요.

"혹시 박회장이라고 알려나?"

-박회장이요? 어느 박회장이요?

"서울에서 사채업 한다는 박회장."

-···자, 잠시만요 행님. 지금 용봉로타리 클럽, 박차돈회장 말씀하십니까요?

"알아? 그 양반 이름이 박차돈이야?"

-아유, 사채업하는 박회장이면 그 양반이 제일 유명하죠. 근데 그런 거물은 왜···.

"가만. 혹시 그 박차돈이란 사람 도박 좋아해?"

-네, 아주 사족을 못 씁니다요.

"맞네 그럼. 내가 좀 개인적으로 알아볼 일이 있어서 그런데 신상 좀 따줄 수 있어?"

-음···. 그 정도 거물급이면 저도 좀 조심스러워서···.

"100만원."

-아뇨, 아뇨. 행님 돈이 문제가 아니라 혹시나 뒤탈이···

.

"300 ."

-······.

"혹시 부족해?"

-충분합니다요, 행님.

"내가 알아보라고 했단 건 밝히지 말고 대충 이력이랑 현재 어디서 뭘하는 지 정도만. 시간은 얼마나 필요해?"

-어차피 우리쪽 사람이라 그 정도면 2시간이면 충분합니다요.

"알았어. 2시간 후 사무실에서 보자고."

-네, 행님.

최번개와 통화를 마친 도훈은 차량에 숨겨둔 현금을 찾았다.

그는 콘솔 박스 밑에 현금을 숨겨 두었는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늘 1,000만원 가량은 지니고 다녔다.

[박회장이란 사람의 실명이 박차돈인가 보군요. 사채업계에서는 꽤 이름이 있는 모양이고요.]

‘그러게. 최번개가 듣자 마자 알 정도면.’

[괜히 위험한 일이 휘말리는 거 아닐까요?]

‘일단 사이즈보고 판단해 보자고. 미쓰리한테 내뱉은 말이 있는데 바로 꼬리내릴 순 없잖아. 게다가 신들의 미션까지 걸린 마당에.’

[아···. 하긴 그렇군요.]

도훈은 정확히 2시간 뒤 최번개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물론 그의 사무실을 방문할 땐 역용마스크로 얼굴을 험상궂게 변형한 채였다.

"준비됐냐?"

도훈이 다짜고짜 사무실 문을 박 차고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얼굴만 무섭게 바꿨을 뿐인데 제2의 인격이 튀어나온 것처럼 말과 행동도 거칠어 졌다.

"오셨습니까, 행님!"

최번개와 그의 수하들은 도훈을 보자 깎듯이 인사했다.

[오, 이제 조폭들도 주인님을 알아서 모시는 군요.]

‘조폭은 무슨. 그냥 흥신소 직원들이지.’

[아무튼요. 어두운 쪽 세계 사람들이잖습니까.]

‘돈으로 입을 틀어막아 주는데 싫어할 리 있나.’

[아···.]

도훈은 현직 조폭인 민수와의 인연으로 최번개와 연을 맺었다. 그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움직이는 데는 결국 현금이 최고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사소한 일을 시킬 때도 늘 돈을 두둑히 주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까운 돈이었지만, 때론 돈으로 충성을 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도훈이 어슬렁거리며 걸어가자 최번개가 널름 의자를 빼도훈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도훈은 사양하지 않고 사장님 의자에 깊숙이 누워 앉은 뒤 책상 위에 다릴 꼬아 올리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번개가 잽싸게 불을 대령했다.

"불붙여드리겠습니다, 행님."

"그래."

도훈은 최대한 거만한 표정으로 담배를 꼬나물더니 번개에게 말했다.

"알아보라는 건."

"여깄습니다요."

번개가 도훈에게 준비된 서류를 넙죽 내밀었다. 도훈은 두툼한 서류를 대충 훑어보다가 근황 쪽에서 시선을 멈췄다.

"지금 마카오라고?"

"네, 지인들과 골프 여행을 떠났다는데 분명 카지노에 처박혀 있을 겁니다."

"음···. 국내가 아니란 소리네?"

"아무래도 도박을 좋아하다 보니 한 달 중 보름은 외국에 나가있는 것 같습니다요."

"언제쯤 한국 들어오는데?"

"정확한 시일은 모르지만, 평소 패턴으로 보아선 이번 주중 입국할겁니다."

도훈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에이씨,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남은 방학 동안 털어버리려고 했더니 하필 외국에 있담.’

[안타깝군요. 싸이판이라면 주인님이 제집 드나들 듯 넘나들 수 있을 텐데요.]

인상이 험악하게 변한 도훈이 오만상을 찌푸리자 번개와 그 휘하의 부하들이 움찔 놀라서 주춤 물러섰다.

‘으으, 씨발. 언제봐도 좆같은 인상이다.’

‘사람하나 죽이고 왔을 것 같아.’

‘근데 저 양반이 박회장은 왜 찾는 거지? 박회장은 쉽게 건드릴 사람이 아닌데···.’

도훈이 잠시 서류를 던져두고 최번개에게 물었다.

"이 사채업자 새끼, 구체적으로 하는 일이 뭐야?"

"네?"

"아니. 뭘로 돈 벌길래 저렇게 한량처럼 외국으로 싸돌아 다니면서 도박이나 해대냐고."

번개가 질문을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니까 박회장, 박차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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