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2. 질투는 나의것-17-
도훈이 이제껏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면서도 용케 숨기고 살아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가 여태껏 솔로로 지내고 있다는 점이 주효했다.
즉, 여자들은 당장 그와 사귀진 않더라도 미래에 혹시나 사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그와의 관계를 유지해 온것. 그 대표적인 예가 이번에 싸이판 여행을 다녀온 송미나 같은 경우였다.
물론 도훈의 난잡한 섹스 라이프를 알고 있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특히 희주의 경우엔 도훈이 학과의 여러여자들을 건드렸다는 사실을 알고도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결국엔 섹파일 뿐이지만.’
현재 어장관리를 하며 유지하는 여자들은 섹파거나, 섹파가 되도록 정신조작을 유도했거나, 또는 도훈의 문란한 여자관계를 전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정음이라는 본처의 존재를 오픈했을 때 그것을 감당할 지 여부는 그 자신도 장담하기 어려웠다.
‘가만, 그럼 정음이는 어떻게 되는 거야?’
[네?]
‘하렘 왕국이라며? 그 안에 정음이도 포함인 거야?’
[아뇨. 하렘 왕국의 구성원은 모두가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는 상태여야 합니다. 쉽게 말해, 일부다처제 시절의 축첩제도를 떠올리시면 이해가 편할 겁니다.]
‘축첩제도?’
[네. 일부다처제하에서도 본처가 있고, 그 아래 첩이 줄줄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리고 그 구성원들이 모두 서로의 존재를 알면서 나름의 서열 정리가 되어있고요.]
‘설마.’
[네, 하렘왕국이란 바로 조선 시대의 왕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현대에서 말이죠.]
‘말도 안 돼!’
막상 조건을 듣고 나니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아무리 누군가를 좋아한다 한들, 첩이 되는 걸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다 알고서 받으신 것 아닙니까? 페널티도 없다고 좋아하셨잖습니까?]
‘아니,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불가능! 호감도 100 찍은 정음이도 받아들이기 힘들걸?’ 이런 조건이라면 정음마저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정음이 순수하게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그가 난잡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비밀이 깨지는 순간, 관계가 엉망이 되어버릴지도 몰랐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아영양이 그러했듯이, 또 누군가는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도전을 단기간에 해결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초월 특전이란 현 등급에서 한 단계를 승급을 의미합니다.
주인님이 중수일 땐 고수로 올라가겠지만, 만약 고수라면요?]
‘아앗!’
[그렇죠. 고수 초입에서 곧바로 랭커까지 한 번에 진급하실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게 가성비가 더 좋지 않겠습니까?]
도훈은 마치 놀라운 사실을 깨달은 사람처럼 이마를 탁쳤다.
‘그렇네? 중수에서 고수되는 것보다 고수에서 랭커되는 것이 필요 업적이 훨씬 많으니까.’
[그렇죠.]
‘내가 너무 마음을 급하게 먹었군. 이 도전은 고수가 되고 나서 완성 시키는 편이 오히려 나에겐 이득이구나.’
[맞습니다. 그러니 천천히 찾아보십시오. 이미 한 명을 확보했고, 기존의 여자들도 눈치 봐서 설득해 낸다면 8명을 모두 채우는 일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 모르니까요.]
‘좋아. 이제 좀 마음이 놓였어. 천천히 해보자.’
로시의 조언을 들은 도훈은 하렘 왕국의 건설을 중장기 목표로 설정하기로 했다. 그때 샤워를 마친 아영이 커다란 타올을 몸에 두르고 밖으로 나왔다.
"오빠도 씻으실래요?"
"아니, 난 아직."
한바탕 호되게 도훈에게 시달린 아영이었지만, 섹스가 끝나자 한층 개운한 표정이었다. 참아왔던 성욕을 모두 풀어내며 스트레스를 해소한 사람같았다.
아영이 머리를 감싼 수건을 풀자 긴 생머리가 찰랑거리며 흘러내렸다. 머리까지 젖게 되면 말리는 데 한참 걸리기 때문에 일부러 머리를 감쌌던 모양이다.
도훈은 찰랑거리는 아영의 긴 머리가 무척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정음이랑은 또 다른 매력이 있네.’
[아영양이요?]
‘응. 정음인 처음에 숏 컷에 가까운 보이쉬한 스타일이었잖아. 지금은 제법 길렀지만.’
[그렇죠.]
‘아영이는 거의 허리 중간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고. 확실히 긴 머리 쪽이 훨씬 여성스러운 것 같아.’
[두 사람은 예쁘다는 공통점만 빼면 완전히 상극이긴 하죠.
성격은 특히.]
도훈이 담배를 다 피우고 침대에 허리를 기대앉아 있는데, 아영이 수건으로 몸을 감싼 채 도훈 옆에 누웠다. 그러더니 도훈의 허리를 팔로 껴안고는 얼굴을 파묻었다.
"···오빠랑 이렇게 같이 있으니까 너무 행복해요."
"그러니?"
"실은 오늘 만나기까지 엄청 고민 했어요."
"무슨 고민?"
"그냥 다요···. 저번에 DVD방에서 일도 생각나고, 아니 그 전에 해변에서의 일도 떠오르고. 오빠가 미우면서 또 막 좋으니까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고."
"······."
도훈은 대답하지 않고 아영의 생머리를 어루만져주었다. 차가운 촉감이 손가락 사이를 스치니 너무 느낌이 좋았다.
"오늘 정음이를 부른 건 확인하고 싶어서였어요."
"뭘?"
"오빠가 나보다 정음이를 좋아하는 게 확실하면, 그냥 다 포기하려고요."
도훈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잠깐, 근데 어떻게 정음인 걸 알았어?"
"네?"
"아니, 이상하잖아. 여름 캠프에서 본 건 효민이랑 4학년 수정이었는데."
도훈은 여름 캠프에 가서 여러 여자를 건드렸지만, 아영에게 딱 두 번 들켰다. 간접적으론 버려진 팬티를 걸림으로써 효민과의 관계를, 그리고 직접적으론 카섹스를 하면서 수정과의 관계를.
"근데 어떻게 정음이를?"
"효민이는 처음부터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술김에 불장난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그럼 수정이는?"
"오수정 선배랑은 제가 직접 봤잖아요. 도저히 연인들 사이의 대화는 아니었죠. 파트너끼리나 할 법한 얘기였지."
"흐음. 그렇군. 근데 그건 두 명을 배제할 근거가 될 수 있어도 내가 정음이를 좋아한다는 이유가 될 순 없지 않아?"
"···눈빛이요."
"눈빛?"
아영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자기 스스로 정음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듯했다.
"오빠가 우리과 여자애들 여럿 건드린 건 알고 있었어요. 오빠도 말했으니까요. 근데 오빠가 정음이를 보는 눈빛이 다른 여자들과는 많이 달랐어요."
"내가 달랐다고?"
"몰랐어요?"
도훈도 속으로 약간 놀랐다.
‘헐, 그렇게 티가 났단 말이야? 최대한 감춘다고 감췄는데, 바로 들통나 버렸네.’
[아영양이 유독 감이 좋은 걸 수도 있죠.]
‘제발 그래야 할 텐데. 아영이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이미 눈치챘으면 큰일이니까.’
"음."
"암튼, 오늘 야구장에서 보니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바람둥이인 오빠도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구나, 하고요."
"그랬구나."
"그치만 아까도 말했듯 괜찮아요, 전. 정음이는 정음이대로 오빠 좋아하고, 나는 나대로 오빠 좋아하면 되는 거니까. 이제 신경쓰지 않기로 했어요."
그러면서 아영의 손이 슬그머니 이불 속 노팬티로 있던 도훈의 허벅지를 더듬거렸다. 도훈이 잠자코 있자, 아영은 기운이 빠져 축 처져있는 도훈의 잦이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어쨌든, 지금 오빠는 나랑 같이 있잖아요."
"잠깐, 나 아직 안 씻었는데···."
"괜찮아요. 난 오빠 다 좋아요."
"아니, 그래도."
"괜찮다니까, 그래요."
아영은 그 말을 스스로 증명이라도 하듯 갑자기 이불속으로 머리를 집어넣더니 발기가 풀린 도훈의 대물을 입으로 빨기 시작했다.
"아, 아앗. 아영아."
쪼그라들었던 대물은 아영의 뜨거운 입속에서 또 다시 부풀었다.
"더럽다니까···."
도훈이 말리려 했지만 아영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오히려 입으로 씻겨주는 것처럼 정성껏 침을 묻혀가며 싹싹 핥아마셨다.
다시 입으로 깨끗이 씻긴 대물을 보며 아영이 말했다.
"깨끗하게 해주려고 했는데 또 커져버렸네요?"
"거짓말. 일부러 빨았지?"
"아니에요. 진짜 씻겨주고 싶어서 그랬어요."
"나참."
그때 아영이 몸을 두르고 있던 타올을 스르륵 벗었다.
또 다시 알몸이 된 아영이 도훈을 와락 껴안으며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어떡해요 저. 오빠가 더 좋아져 버렸는데···."
"아영아."
"나 이제부터 말 잘 들을게요. 오빠 귀찮게 하지도 않고, 오빠한테 조르지도 않고, 오빠가 시키는 건 다 할 거예요."
"내가 그렇게 좋아?"
"네."
"휴-."
도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더니 두 번째로 아영을 덮쳤다. 그날 밤 도훈은 새벽 4시가 되어 모텔을 나설 때까지 아영을 3번이나 더 따먹었다.
* * *
영철에게 답장이 온 것은 일요일 정오가 지나서였다.
어젯밤부터 초조하게 기다리던 답장이 마침내 도착했을 때 영철은 날 듯이 기뻐했다.
"왔다, 왔어!"
-박아영 : 어제 일찍 자서 톡 못 봤어요.
-박아영 : 15,000원 보내주시면 돼요. 계좌번호는···.
아영의 답장을 읽은 영철은 몹시 실망했다. 무척이나 사무적인 말투였고, 만나서 주겠다는 말에는 대꾸조차 없었던 것이다. 영철은 지칠 법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아영이 매력적인 존재라서 그런것도 있지만, 왠지 오기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자꾸 나를 이렇게 괄시한다 이거지?’
-김영철 : 아, 송금을 해주려고 했는데 내가 군인 신분이라 계좌이체가 어려워서 말이야. 은행 가서 보안카드랑 뭐랑 갱신 해야 되나 보더라고. 시간 되면 만나서 줘도 될까?
답장은 곧바로 읽었지만, 아영은 한참 대답이 없었다.
참다 못 한 영철이 다시 톡을 보내려고 하는데 답장이 왔다.
-박아영 : 그러시면 나중에 학교에서 주셔도 돼요.
"뭐?"
영철은 제 눈을 의심했다. 아무리 봐도 이건 만나기 귀찮다는 의사표시였다.
"이게 진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영철은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방을 나섰다. 주방에 있던 그의 어머니가 다급히 나가는 영철을 불렀다.
"영철아! 어디가니? 점심은?"
"됐어요. 나가서 친구들하고 먹을게요."
"어제도 늦게 들어왔···."
쾅-!
"아니 저놈의 시끼가!"
그의 어머니가 국자를 들고 버럭 소리쳤다.
영철의 집은 아파트 8층이었는데, 마침 엘리베이터가 7층에서 내려가는 중이었다. 다시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시간조차 아까웠던 영철은 그대로 비상계단으로 뛰기 시작했다.
-김영철 : 아영아, 내가 지금 밖에 나와 있거든? 괜히 빚진 것 같아서 미안하니까 그냥 오늘 만나서 줄게. 집이 어느 쪽이야? 근처일 것 같은데.
허겁지겁 뛰어간 영철은 아파트를 빠져나가 길가에서 택시를 잡았다. 그때 아영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박아영 : 굳이 안 그러셔도 돼요.
-김영철 : 아니야. 내가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 주소만 불러 줘.
겨우 택시를 잡은 영철이 차에 올랐다.
"어디로 갈까요?"
"기사님, 잠시만요."
영철은 답장이 바로 오지 않자 한참 기다렸다.
기사는 정차하기가 불편했는지 영철을 재촉했다.
"일단 출발해야하는데요 손님."
"어, 그럼 국성대. 국성대 캠퍼스 가주세요."
"넵."
영철이 차를 타고 국성대 쪽으로 가고 있는데 다시 답장이 왔다.
-박아영 : 알았어요. 불러드릴게요. 주소는···.
"기사님! 여기로 행선지 바꿔 주세요!"
영철이 핸드폰에 적힌 주소를 들이밀자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들을 틀었다.
-박아영 : 105동 앞 놀이터 오시면 연락주세요.
-김영철 : 어, 10분 안에 갈 거야.
영철은 일단 대답하고 기사에게 부탁했다.
"아저씨 좀만 빠르게요."
"급한일이신가 봐요?"
"네, 엄청요."
기사는 칼치기로 차선을 바꿔가며 빠르게 목적지로 안내했다. 핸드폰을 손에 꽉 쥔 영철은 간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젠장, 내가 이런 여자애 하나에 왜 이렇게 쩔쩔매야 하는 거야?’
영철은 스스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곧 전역하는 그에게 관심을 보이며 SNS로 DM을 보내는 수많은 여자들이 있었다. 그런 여자들 중에는 아영만큼 예쁜 여자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영철은 이상할 정도로 아영에게 집착했다.
‘자존심. 그래, 날 열 받게 했어 박아영. 나를 이렇게까지 매달리게 만들다니.’
그는 어떻게 해서든 아영이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나중에 뻥 차버릴 거야. 너만 꼬시면 사범대 투어도 끝이니까.’
아영의 아파트에 도착한 영철이 놀이터로 뛰어가며 깨톡을 날렸다.
-김영철 : 다행히 너희 동네 근처네. 다 왔어. 내려와.
-박아영 : 네.
놀이터에서 아영을 기다리던 영철은, 뒤늦게 자신이 꾸미지도 않고 허겁지겁 집밖으로 뛰쳐나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뿔싸."
그는 급히 핸드폰을 셀카모드로 바꾼 뒤 얼굴을 살폈다.
"음 이 정도면, 뭐."
원체 잘생긴 그의 얼굴은 다듬지 않은 상태에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스스로의 잘생긴 얼굴에 감탄하며 여유를 되찾은 그는 평범한 흰색 반 팔에 돌핀 팬츠를 입고 나온 아영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와···, 다리가 무슨.’
아영이 입은 돌핀 팬츠는 유난히 짧은 편이라 늘씬한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게다가 위에 입은 반 팔티는 살짝 타이트 해 옷 위로 브래지어 자국이 드러났다.
‘낮에 보니까 더 이쁜 것 같네.’
영철은 아영이 굉장한 미인이라는 사실을 또 다시 인정해야 했다. 어쩌면 자신이 사귀었던 모든 여자들을 통틀어도 그녀에겐 안될 것 같았다.
"오셨어요."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아영이 피곤한 얼굴로 영철에게 꾸벅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