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162화 (1,129/2,000)

1145. 그해, 여름. -60-

* * *

"도련님답지 않게 왜 그렇게 흥분하셨어요?"

도훈이 형철을 집으로 끌고 간 시각.

야외 바비큐 장에서는 은지가 상철을 달래는 중이었다. 상철은 형철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분을 못 참고 씩씩거렸다.

"어후, 내가 진짜!"

아직까지 손을 부들부들 떠는 모습에, 은지가 그의 곁에 앉아 다정하게 손을 맞잡았다.

"화 좀 풀어요, 네?"

좀처럼 분을 식히지 못하던 상철은 은지의 위로에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경솔한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형수님. 제가 못난 모습을 보여드렸네요."

"아니에요. 그이가 먼저 잘 못 한걸요. 옆에서 다 봤잖아요."

상철은 자신을 편들어주는 은지가 너무 고마웠다. 갑자기 도훈이 담배 피울 때 하던 얘기가 떠오르며, 그도 점점 은지가 어쩌면 자신을 좋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 시작했다.

‘뭐야? 설마 진짜로 형수님이 나를?’

상철은 오랜 시절 허은지를 갈망해 왔기 때문에, 지금의 변화가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만약 은지가 정말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민희를 굳이 고용할 필요도 없었던 셈이다.

"그 상황은 도련님이 충분히 화낼 만하셨어요. 아무리 취했어도 사람한테 빈 병을 집어 던지다니··· 얼굴이라도 맞았으면 어떡할 뻔했어요?"

은지는 계속 상철 옆에 꼭 붙어 그를 달랬다.

그러면서 동시에 민희에게는 몰래 톡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서 눈치껏 빠져. 그리고 내가 신호하면 남자들 모두 데려오면 돼. 그게 네가 할 일이야.

은지의 지령을 받은 민희가 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빛 교환을 마친 은지가 상철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이러지 말고 우리 뒤뜰로 가요. 괜히 여기 있으면 또 싸움나겠어요."

"왜요? 전 형이 하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흥분한 상태에서 마주쳐 봐야 좋을 게 없잖아요. 그리고 또 무서워서 피하는 것도 아니고요."

은지가 끈질지게 설득하며 억지로 상철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팔꿈치에 눌리자, 상철은 자기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촉감이 너무 부드럽고 좋았다.

‘아, 아니! 형수님이 정말 나를···.’

앞선 도훈의 제보, 그리고 작금의 태도로 보아 은지가 자기 쪽에 더 마음을 쓰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결국 상철은 은지의 조언에 따라 뒤뜰로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은지가 민희를 향해 말했다.

"미안한데, 민희씨는 여기 있다 그이랑 도훈 학생 혹시 다시 나오면 뒤뜰로 못 오게 말려줘요. 서로 화 좀 식히고 나면 곧 괜찮아질 거예요."

"네."

단둘이 있겠다는 사인을 이해한 민희가 고분고분 대답했다.

본래는 여자친구인 민희가 상철을 챙겼어야 했으나 왠지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상철은 민희를 실제 여자친구라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어색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저택을 빙 둘러 뒤뜰로 돌아온 두 사람은 야외 테이블에 나란히 마주 앉았다. 낮의 왁자지껄했던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고요한 풍경. 조명 꺼진 풀장 위로 달빛이 반사되어 일렁이는 모습이 그윽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상철은 은지와 단둘이 남게 된 상황에 살짝 긴장했다.

‘젠장.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난 정말로 도련님 좋아요."

"예, 예?"

"그이랑은 다르게 자상하잖아요. 사람들한테 친절하고 늘 솔선수범해서 움직이고요."

"아···."

"오늘만 봐도 그래요. 그이는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서 잠만 퍼 자고, 도련님이 애써 만든 식사를 먹고 고맙다고 못 할망정 술주정이나 부리고. 어쩔 때 보면 제가 다 부끄럽다니까요."

오늘따라 조곤조곤 말하는 은지의 모습에 상철은 미칠 것 같았다.

‘형수가 오늘 왜 이러지? 나한테선 늘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는데···.’

은지는 평소에도 상철이 다가서려고 하면 선을 딱 지키는 절 제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둘만 있는 상황을 최대한 피했기 때문에, 상철은 그녀를 짝사랑하고도 먼발치서 혼자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자기 남편에게 쌍욕을 퍼부은 자신을 오히려 편들고 평소에는 않던 칭찬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저는 다 안 다고요. 도련님이 얼마나 속 깊은 사람인지."

"아, 아···. 형수님."

은지의 다정한 모습에 상철은 완벽히 착각했다.

‘그래. 바로 그거였어. 평소에 형을 싫어하던 형수가, 내가 형한테 덤비는 모습을 보고 그제야 진심을 열어 보이는 거야.

그전까지는 내가 형편이라고 여겼을 테니까.’

가족이란 늘 치고받고 싸우면서도, 결정적일 때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존재.

피 한 방울 안 섞인 은지의 입장에선 당연히 상철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어쨌든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이니까.

하지만 오늘 두 사람이 극명하게 대립하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상철을 신뢰하게 된 것이다.

"아까 상처 안 났어요?"

"예?"

"병 깨질 때요. 파편 막 튀던데."

은지가 일부러 상철의 이마를 손으로 어루만졌다. 곱디고운 손길이 얼굴을 스치는데, 진한 향수 냄새가 상철의 코를 찔렀다. 남성의 음욕을 자극하는 도발적인 향기에, 상철은 자기도 모르게 가녀린 은지의 팔목을 움켜쥐고 말았다.

"형수."

"왜 그러세요, 도련님?"

"형수님!"

"아, 아···. 너무 세게 잡으셨어요. 팔이 좀···."

"좋아합니다!"

"네, 네?"

은지가 눈을 치켜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조차 너무 사랑스러웠기 때문에 상철은 감정을 주체 할 수 없었다.

"저도 좋아한다고요, 형수님!"

"무, 무슨 말씀을 갑자기···."

"형수님도 저 좋아하신다면서요?"

"아니 그건···."

"형수님!"

"아, 아!"

흥분한 상철이 급기야 은지를 와락 껴안았다. 은지는 갑작스럽게 덤벼드는 상철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저항이 너무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되려 상철에게 그릇된 사인을 주고 말았다.

"안고 싶어요, 형수님!"

"도련님, 이러면 안 돼요. 그이가 알면···. 아, 아!"

은지가 일부러 교태로운 신음을 내며 상철의 품 안에서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스킨십이 진해지며 상철의 음욕을 자극할 뿐이었다.

"도련님. 제발 진정을···."

"못 참겠어요. 이젠 더 이상 못 참겠다고요!"

"누가 보면 어쩌려고요?"

"아무도 없어요. 여긴 우리 둘뿐이에요."

끝내 상철이 은지를 자빠뜨렸다.

* * *

도훈이 건넨 물을 마시고 밖으로 나온 형철은 급격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뭐, 뭐야?"

눈앞이 새하얘지더니 세상이 뒤집힌 것처럼 지면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도저히 균형을 잡을 수 없어, 걸음을 멈춘그는 두 손으로 무릎을 잡고 숨을 고를 수 밖에 없었다.

‘왜 이러지?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아. 술을 너무 마셨나?’

마치 필름이 끊길 때의 느낌처럼 삐- 하는 이명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속은 매스껍고 점점 공간감이 사라졌다.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왜, 왜 이러지? 내 몸이?"

형철은 급격한 이상 증상에 당황했다. 그러나 약간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흥분되기 시작했다.

‘오오옷, 뭐, 뭐야 이건?’

술에 잔뜩 취해 시끄러운 클럽에서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는 사람처럼, 형철은 급격하게 끌어 오르는 흥분에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오!"

몸속의 에너지가 미친 듯이 꿈틀거렸다.

마흔이 넘고선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격한 고양감이었다.

어마어한 흥분감에 형철이 미친 듯 달려나갔다.

"오오오오! 오오오오! 신난다!"

형철은 미칠 것 같았다. 이성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머릿속에 누군가 폭탄을 터뜨린 것처럼 불쑥불쑥 충동이 밀려왔다.

지금이라면 원수도 용서할 수 있을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으하하핫! 하하하하하하!"

기쁨을 주체 못 한 형철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자 밖에서 혼자 서 있던 민희가 놀라서 물었다.

"아주버님, 괜찮으세요?"

"응? 넌 뭐야?"

형철이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민희를 응시했다.

점점 이성이 마비된 형철에게는 그녀가 누군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형철은 이제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여기가 한국인지, 싸이판인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헛갈렸다.

"이번에 새로 온 아가씨인가?"

"예, 예?"

"이얼, 몸매 죽이는데? 젊을 때 마누라를 닮았구나, 너."

"혀, 형부 왜 그러세요?"

형철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눈치챈 민희가 겁을 먹고는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 되었다는 걸 느꼈다.

‘이, 이상해. 눈빛이 정상이 아니야. 약이라도 한 사람처럼!’

형철은 젊고 예쁜 민희를 보는 순간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본능에 지배당한 형철이 민희를 덮쳤다.

"일루와, 내가 너 오늘 머리 올려주마."

"꺄, 꺄아! 왜, 왜 이러세요!"

놀란 민희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형철이 짐승처럼 그녀를 뒤쫓았다.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형철이 흥분했다.

"일루와! 일루와 이년아! 나랑 한 번 놀아보자는 거지?"

"미, 미쳤어! 사, 사람 살려. 살려주세요!!"

형철이 희번덕 거리는 눈빛으로 민희를 추격했다. 거대한 빌라는 어느새 형철의 사냥터처럼 변해버렸다. 그는 석쇠 그릴을 넘어 뜨리고 테이블 위로 뛰어 오르는 등 미친 사람처럼 그녀를 몰아 세웠다.

"흐흐, 고년 아주 맛나게 생겼구나!"

"꺄악!!!"

젊은 여자를 보고 흥분한 형철이 지퍼를 내리더니 잦이를 밖으로 꺼냈다.

입에 침을 흘리고 다가서는 형철은 실성한 변태나 다를 것 없었다.

구조물에 걸려 넘어진 민희를 향해 잦이를 제손으로 주물럭거리며 다가서는 형철.

민희는 강간은 물론이거나와, 잘못하면 오늘 큰 일 나겠다는 생각에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도, 도훈아! 도훈아 살려줘!"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도훈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민희를 덮친 형철이 그녀의 블라우스를 양손으로 벌려 찢었다.

"어서 벌리지 못해?"

"꺄악! 야이, 미친 새끼야!"

단추가 잔디로 튀어나가며 우드득 소리와 함께 옷이 찢어졌다. 형철은 우악스럽게 브래지어까지 잡아 뜯었다.

"오! 이년 빨통보소!"

흥분한 형철이 대뜸 젖가슴을 깨물었다.

"꺄악!"

놀란 민희가 손에 잡히는 데로 뭔가를 집어 형철의 뒤통수를 갈겼다.

빡!

그것은 형철이 테이블 위에 뛰어올라 난동을 피울 때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놋쇠 그릇이었다. 머리를 맞고 옆으로 쓰러진 형철을 피해 민희가 풀어 헤쳐진 옷섬을 여미지도 못하고 달려 갔다.

"이년이 감히!"

그러나 형철은 머리를 호되게 얻어맞고도 멀쩡했다.

오히려 힘이 더 나는 지 민희의 발목을 잡고 놔주질 않았다.

"놔! 놓으라고 미친 새끼야!"

민희가 형철의 얼굴을 마구 짓밟았다.

퍽퍽퍽!

형철은 얼굴을 걷어 차이면서도 웃었다. 입가에 피가 터져 질질 옆으로 흘리면서도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 민희가 경악했다.

‘돌았어! 이 새끼 완전 싸이코였어!’

가까스로 빠져나온 민희는 은지와 상철이 있는 뒤뜰로 정신없이 달렸다. 어쩌면 도훈이 이미 그곳으로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니면 적어도 두 사람이 그곳에 있으니 형철을 말려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민희가 뒤뜰에 도착하자 풀장 타일 바닥에서 뒤엉켜 있던 은지가 꺄악 비명을 질렀다.

"민희씨! 살려줘요!"

"아, 아니 형수님?"

민희가 도착하기 전까지 멀쩡히 애무를 받아주던 은지가 갑자기 돌변하여 비명을 지르자 상철도 당황해 물었다.

"왜, 왜 그러세요"

"민희씨, 얼른 경찰에 신고를! 다른 남자들 좀 불러줘요!"

그때 상철은 은지가 다른 사람에게 비행을 걸리자 겁을 먹은 것이라고 여기고 그녀를 설득했다.

"걱정마세요, 형수님. 민희는 저희 편이에요."

"놔! 미친 새끼야! 아무리 취해도 자기 형수를 덮쳐? 이 짐승같은 새끼!"

"아니 갑자기 왜 이러세요!"

그때 진짜 짐승이 등장했다.

민희를 뒤따라온 형철이었다.

"흐흐흐흐흐!"

그때 형철은 완전히 약에 취해 이미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바지를 풀어 내려 발기된 물건을 훤히 드러낸 천둥벌거숭이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자 민희는 물론 은지와 상철마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뭐, 뭐야?"

"아니 왜 저래 저사람?"

"흐흐흐 여자가 하나 더 있었구나. 너는 다음 순번이야."

"꺄아아!!!"

민희가 다시 풀장을 돌며 뛰기 시작했고, 반나체가 된 형철이 불알을 덜렁거리며 민희를 추격했다. 그 와중에 은지와 상철은 서로 책임을 미루며 옥신각신 다투었다.

총제척 난국.

완전한 난장판으로 변한 풀장을 2층 방에서 내려다 보던 도훈이 조용히 전화를 걸었다.

"네, 거기 경찰서죠?"

대충 상황을 설명한 도훈이 전화를 뚝 끊었다.

침대에선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미나가 눈에 들어왔다.

도훈은 밖의 난장판을 즐기듯 음미하며 미나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아…. 결국엔 일이 이렇게 되는 군요.]

‘다 자기 업보지. 다른 사람에 마약을 타 먹이려고 했던 형철은 제 손으로 마약을 들이켰고, 은지를 덮치던 상철은 결국 뒤통수 맞은 거고. 돈을 위해 남의 가정을 파탄내려 한 민희는 열심히 도망치는 거지.’

[안도와 주셔도 괜찮겠습니까?]

‘신고 전화 했으니 금방 경찰 올거야. 나는 알리바이를 위해 미나랑 같이 자고 있었다고 해야 하니 그냥 손놓고 구경하는 수밖에.’ 도훈이 자고 있는 미나를 뒤에서 껴안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