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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161화 (1,128/2,000)

1144. 그해, 여름. -59-

[주인님, 갑자기 무슨 말씀입니까? 이 얘기는 전혀 없던 내용 인데요?]

‘일부러 상황을 꼬이게 만들려는 거야.’

[상황을 꼬다뇨?]

‘상철이 저 변태 자식은 형수인 허은지를 좋아한 나머지 병신같은 음모를 꾸몄어. 김민희를 이용해 이른바 스와핑을 시도 하겠다는.’

[그렇죠. 그건 김민희가 이미 다 불었던 내용이잖습니까?]

‘하지만 내심 속으론 형수가 자신을 좋아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 거야.’

[허은지가요?]

‘원래 사람이란 게 그래. 자신의 왜곡된 욕망을 상대에게 투영시키다 보면 저 사람도 은근 그걸 바라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심리가 생겨버린단 말이지. 마치 짝사랑을 하다 보면 상대 방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착각처럼. 일종의 투사랄까.’

[허!]

‘이로써 상철은 은지가 형철보다 사실 자신을 더 좋아한다고 오해하게 되겠지.’

[하지만 아까의 반응으로 봐선 절대 그럴 리가···.]

‘맞어. 그게 포인트야.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상철을 부추겨 자기들끼리 치고받게 만드는 거야. 이제 착각에 빠진 상철은 허은지를 노골적으로 노릴 거고, 은지는 그런 상철을 함정에 빠뜨린 뒤 경찰을 부르겠지. 부모님의 유산을 독차지하려는 형철은 그런 난장판 싸움을 보고 기뻐할 테고.’

[결국엔 형철만 어부지리하는 셈인가요?]

‘아니, 그 꼴은 절대 못 보지.’

[못 보다뇨?]

‘어차피 그놈도 뭔가 꿍꿍이를 숨기고 있어. 아마도 그것이 자신의 목을 옥죄게 되겠지만.’

[정말이지 진흙탕 싸움이 따로 없군요. 괜히 주인님이 중간에 끼어들어 흙탕물 뒤집어쓰는 일은 없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러기 전에 손절해야지. 어쨌든 난 미션도 끝낸 마당이니.’ 도훈은 상철을 오해하게 만들고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두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사이 술이 몇 차례 더 돌았는지 다들 얼굴이 뻘게져 있었다.

"담배 피우러 간다더니 뭐하고 이제 와?"

"전 둘이서 데이트라도 하시는 줄?"

"어머, 도련님 그쪽 취향이었어요?"

한참 만에 돌아온 두 사람을 향해 사람들이 놀렸다. 상철이 고개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나는 당연히 여자 좋아하지."

"하긴, 상철이가 여자를 많이 밝히긴 해···. 아차차. 미안 제 수씨 앞인 걸 깜빡했네. 농담인 거 알지?"

술에 취한 형철이 말실수를 하고는 사과했다. 술김에 동생의 바람기를 언급해 버린 것.

어차피 민희는 상철에게 애정이 없었기 때문에 무던히 넘어갔다. 그러나 허은지 앞에서 모욕을 당했다고 느낀 상철은 형철의 말실수에 크게 흥분했다.

"뭔 소리야 뜬금없이? 자기야 말로 뻔질나게 룸싸롱이나 드나드는 주제에."

"뭐, 인마?"

상철이 받아치자 형철이 대노했다.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것보다, 동생이 감히 형을 들이받았다는 사실에 더 분노한 모습이었다. 평소라면 이 성이 자제시켰겠지만, 술에 취한 나머지 감정을 주체 못 했다.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가 감히 누구 앞에서!"

하지만 상철도 마찬가지로 취한 상태라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은지 앞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밀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기가 죽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왜? 내가 못 할 말 했어? 형이면 다야?"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

결국 크게 흥분한 형철이 빈 술병을 집어 들어 상철에게 던졌다. 그러나 빗나간 술병은 상철을 지나 나무 기둥을 때리더니 퍽- 하고 깨졌다. 병이 깨지며 튄 파편이 날아오자 여자들이 비명을 질렀고, 분위기는 삽시간에 엉망이 되어 버렸다.

"꺄아!"

"뭐하는 거예요 두 사람! 도훈 학생, 좀 말려!"

도훈 역시 갑작스럽게 난장판으로 변한 상황에 당황하며 두 사람을 뜯어말렸다.

"에이, 형님들 왜 그러세요. 기분 좋은 술자리에서."

"이거 놔! 저 새끼 형한테 말하는 싸가지 봤지? 좆만한 새끼 오냐오냐해줬더니 아주 기어오르는 거 봐?"

도훈이 형철을 말리자 이번엔 상철이 더 설쳤다.

"좆만한 새끼? 니 좆이다 새끼야! 좆도 작은 새끼가 지랄 하고 자빠졌네!"

"뭐, 이 새끼야? 진짜 뒤질라고!"

"아니 형님들 좀!"

[이게 대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갑자기 술 잘 먹다가 싸움질이라니!]

‘결국, 터질 게 터진 거야.’

[터질 게 터져요?]

‘화목해 보이는 모습은 어차피 연기였어. 돈 때문에 여친 행세를 하며 따라나선 김민희나, 남편 몰래 외간 남자나 끌어들이는 허은지나, 자기 형수를 흠모해 덮칠 생각뿐인 상철이나, 그런 동생을 제치고 유산을 독차지하려는 형철이나. 하나 같이 이리나 승냥이 같은 작자들이니 지금껏 터지지 않고 버틴 게 용한 거지. 애초부터 욕망이 충돌하는 아귀다툼의 장이었으니까.’

[근데 이러면 상철의 계획이고 자시고 완전 나가리 아닙니까? 허은지의 되치기도 불가능 할거고요.]

‘모르지, 아직. 밤이 기니까.’

형제의 싸움이 그치지 않자 상철의 허리를 끌어안고 말리던 은지가 도훈에게 소리쳤다.

"도훈 학생. 일단 그이 집안으로 데려가요. 이 사람들 지금 취해서 제정신 아니야."

"데려가라고요?"

"일단 떼어 놔야 할 거 아니에요!"

"아, 넵."

여자 둘이서 상철을 말리는 한편 형철은 도훈 혼자 커버하는 중이었다. 덩치가 원체 크고 힘이 좋다 보니 도훈이 본격적으로 가로막자 형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불혹에 이른 배 나온 아저씨가 피지컬에서 도훈의 상대가 될 리 만무했다.

"놔! 저 새끼 죽여버릴테니까."

"형님, 제발 진정하세요."

"놓으라고! 확 씨발, 진짜 동생이고 뭐고!"

"도훈씨! 얼른 데려가라고요!"

결국 도훈은 형철을 강제로 집안으로 끌고 갔다. 형철이 저항하려고 했으나 완력에서 감히 상대되질 못 했다.

"아니, 뭔 놈의 힘이!"

"형님. 죄송합니다."

빌라 안으로 끌려온 형철은 상철과 떨어진 상태에서도 쉽사리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상철이 저 싸가지 없는 놈의 새끼, 형한테 하는 꼬라지 봤지?"

"진정하세요, 형님."

"너라면 진정하겠냐? 저 새끼가 평소 나를 형으로 대접했으면 저딴 식으로 덤볐을 거 같아?"

"······."

"좆 같은 새끼. 내가 가만두나 보자."

형철의 얼굴이 분노와 치욕감으로 일그러졌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네 살 터울 나는 친동생이 쌍욕을 받았다는 사실에 몹시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그는 평소에도 위신을 중시하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다친 자존심을 어떻게든 회복하고 싶어 했다.

이성을 잃은 그가 불쑥 도훈에게 물었다.

"야, 너 앞으로 내 동생 한댔지."

"네."

"상철이 저 새끼 당장 죽여버려. 돈이면 내가 얼마든지 줄 테니까."

"형님, 진짜 왜 그러세요? 제발 흥분 좀 가라앉히세요."

"나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다."

형철은 계속 씩씩거렸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사람을 사 살인 청부라도 맡기고 싶었다. 그는 계속 씩씩거리다 갑자기 뭔가를 떠올렸는지 도훈을 향해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좀 흥분해 가지고."

"아니에요. 이해합니다. 저라도 친동생이 사람들 앞에서 버릇없이 굴었으면 화가 많이 났을 거 같아요."

도훈은 형철을 위로하는 것처럼 은근슬쩍 그에게 동조했다.

이미 도훈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 상태였기 때문에 형철은 그런 도훈에게 강한 신뢰를 느꼈다.

‘안 되겠어. 작전을 바꿔야겠어. 도훈이 이놈을 이용하면 뭔가 수가 생길지도.’

어느 정도 화를 삭힌 형철이 도훈에게 물었다.

"아까 죽이겠다는 건 그냥 홧김에 나온 말이야. 내 심정 이해 하지?"

"백번 천번이고요. 당연히 홧김에 하신 말인 거 알죠."

"그래. 상철이 그 새끼보다 니가 훨 낫다."

"별말씀을."

형철이 갑자기 도훈을 보더니 물었다.

"야, 너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부탁요?"

"뭐 내가 동생을 진짜로 죽일 것도 아니고···. 그냥 나중에 상철이랑 가서 술이나 한 잔 하라고. 저 새낀 꼴 받으면 술을 더 처먹는 새끼거든"

"그게 무슨···."

그때 형철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조그만 비닐봉지에 든 가루약이었다. 호텔 카지노에서 몰래 구입한 메스 암페타민을 술에 타 넣기 위해 미리 가루로 빻아 놓은.

"그때 몰래 술에 이것만 타줘."

[설마 독입니까?]

‘이런 미친 새끼, 대체 뭘 준비한 거야?’

"오해 마. 위험한 물건 아니니까."

"이게 뭔데요?"

"그냥 술잔에 몰래 타기만 하면 돼. 그럼 내가 너 진짜 평생 친동생처럼 데리고 간다."

‘로시, 마음의 소리.’

[넵.]

도훈은 곧바로 형철의 속마음을 읽었다.

{원래 술자리에서 몰래 타려고 했는데 한바탕 싸우고 나서 기회가 사라졌어. 하지만 도훈이 저 얼빵한 놈을 이용한다면 여전히 방법은 있어. 마약을 먹여 몸에 성분이 남게 하면 귀국할 때 분명 단속에 걸리겠지. 마약 복용으로 깜빵에 처넣어버리면 아버지도 뽕쟁이 자식놈에게 유산을 물려주진 않을 테니까 말이야.}

형철의 속마음을 읽은 도훈은 크게 놀랐다.

‘마약? 이 새끼 이런 건 대체 어디서 구한 거야?’

[이게 형철이 준비한 계획이었군요. 동생보다 더 미친 작자였는데요?]

‘유산을 혼자 독차지하려고 친동생에게 몰래 마약을 먹일 생각이나 하다니. 정말이지 제정신이 아니구나.’

[어쩌시렵니까? 범죄 모의에 동참할 계획은 아니시죠?]

‘그럴 필요가 있나? 자승자박하게 만들어야지.’

[어떻게요?]

"펴, 평생요?"

"그래. 너 대학생이랬냐?"

"네."

"아직 졸업도 안 했으면 학비도 계속 들고, 용돈도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너 후원해 줄게."

"후, 후원을···."

"형 돈 많은 거 알지?"

"알죠."

"눈 딱 감고 한 번만 형이 시킨 대로만 해주라. 그럼 내가 너 책임 진다."

"자, 잠시만요."

도훈은 일부러 긴장한 것처럼 손발을 덜덜 떨었다.

그 모습을 본 형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덩치도 큰 자식이 쫄기는 뭘 쫄아? 겁 먹지 마. 이거 좀 먹는다고 어디 잘못되거나 그런 거 아니니까."

"저, 정말 독약 같은 거 아니죠?"

"내가 아무리 화가 났다고 설마 친동생을 독살하겠냐? 그리고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면 누구보다 내가 제일 먼저 의심받을 텐데?"

"아···."

형철은 끈질기게 도훈을 설득했다.

"쓸데없는 걱정마. 그냥 너는 전달만 하는 거야. 그것만 도와주면 내가 너 평생 친동생처럼 챙겨줄테니까."

"잠시만요 형님. 너무 긴장되서···.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올게요."

"어딜 나가려고?"

도훈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형철이 그를 말렸다. 자신의 패를 모두 꺼내든 이상 도훈이 돌아서면 그도 끝장이었다.

"나가지 말고 여기서 펴."

"여긴 집안인데요?"

"뭔 상관이야? 그냥 내 앞에서 펴. 딴생각 말고."

"아, 네 형님. 죄송해요. 제가 너무 긴장해 가지고."

도훈이 속으로 씩 웃으며 지포 라이터를 꺼냈다. 내부의 기름이 떨어지면 폐기되는 소모성 아이템이긴 하지만, 그전까지는 쿨타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활용 가능하다는 것이 해당아이템의 장점이었다.

"형님. 잠깐 여기 좀 봐주실래요?"

"어?"

"잠깐이면 돼요."

도훈이 라이터 뚜껑을 열더니 불을 붙였다.

형철은 난데없는 도훈의 제안에 멍하니 불길을 쳐다보았다.

3, 2, 1 .

"···엉?"

도훈은 형철이 기억을 소거 당하고 멍해지는 찰나의 순간 그가 꺼내놓았던 가루 봉지를 재빨리 손아귀에 챙겼다. 형철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도훈에게 물었다.

"뭐, 뭐야 씨발?"

형철의 기억은 도훈이 강제로 집안으로 연행한 직후부터 이어졌다. 그는 눈앞에 도훈을 보더니 흥분해 씩씩거렸다.

"상철이 저 싸가지 없는 놈의 새끼, 감히 형한테!"

"진정하세요, 형님."

"너라면 진정하겠냐? 저 새끼가 평소 나를 형으로 대접했으면 저딴 식으로 덤볐을 거 같아?"

시간을 되감은 것처럼 형철은 똑같은 대사를 반복했다.

인간의 반응이란 대체로 전형적이라 과거 특정 시점으로 되돌아간다 한들 일전에 했던 말을 그대로 내뱉는 경우가 많다.

거의 비슷한 흐름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더니 마침내 형철이 10분 전과 똑같이 도훈에게 제안을 걸어왔다.

"야, 너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부탁요?"

형철은 아까처럼 주머니에서 약봉지를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몰래 빻아 챙겨 놓았던 봉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라, 이게 어디 갔지?"

"네? 뭐 잊어버리셨어요?"

"아니 씨발, 잠깐. 설마 떨어뜨린 건가?"

형철은 중요한 걸 실수로 잃어버렸다는 착각에 혼비백산했다. 그것이 없으면 계획이고 뭐고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젠장!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진정하세요. 뭘 말씀하시는 건데요? 제가 찾아 드려요?"

형철은 되지도 않은 실수에 몹시 당황했다. 분명 주머니에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 이 병신같은!"

형철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

만약 흘렸다면 아까 실갱이를 벌이던 중 빠졌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도훈이 형철을 만류했다.

"형님, 잠시만요. 진정하세요. 지금 나가시면 또 싸움 나요."

"이거 놔!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고!"

도훈의 완력에 밀린 형철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도훈이 작정하고 막아서자 도저히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중요한 걸 잃어버리신 것 같은데, 일단 차근하게 생각해 보세요. 혹시 아까 낮잠 주무실 때 방에 흘린 거 아니에요?"

"방에다?"

기억이 뒤엉킨 형철은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었다. 몰래 방에서 약을 빻아 놓고 그대로 두고 내려왔을지도 모른다는 착각.

"잠깐 내 방에 좀 다녀올게."

형철이 급하게 방으로 뛰어갔다 잠시 후 다시 1층으로 달려 왔다.

"없어. 밖에 흘렸나봐."

"지금 상철이 형님 밖에 계셔서 가면 또 싸움 난다니까요?"

"상관없어. 이거 놔."

"형님!"

"알았어. 이제 안 싸울 테니까. 이거 놔."

"그럼 심호흡 한 번만 하세요. 시원한 물도 한잔 드시고요."

도훈이 계속 막아대는 통에 형철도 답답해졌다. 그는 도훈을 얼른 떨쳐내야겠다는 생각에 그가 내미는 물컵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제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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