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148화 (1,115/2,000)

1131. 그해, 여름. -46-

도훈이 속으로 현자 타임의 남은 시간을 헤아렸다.

‘로시, 남은 시간이 어떻게 되지?’

[현재 8분가량입니다.]

‘으음, 동정남의 팬던트 강화효과가 스킬사용 시간 3분 증가였어?’

[맞습니다. 근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니까.’

도훈의 인지능력은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

초 단위가 아닌 0 .1초 단위까지 미세하게 세상이 분절되고 있었다. 마치 고도로 집중한 상태에서 시간이 느려보이는 것과 비슷했다.

[한데 8분 정도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시간이 너무 촉박한데요.]

현자 타임은 평소의 암기력, 집중력, 분석력, 관찰력, 논리력 오감 등 인지와 관련된 모든 기능이 10분 동안 폭주한다. 팬던트 강화 효과로 3분이 연장된 13분이 가용 시간인 셈.

하지만 도훈은 카드패를 카운팅하며 벌써 5분이란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날려버린 것이었다. 로시의 우려에 도훈이 씩 웃었다.

‘내가 그냥 시간만 날렸다고 생각해?’

[그럼요?]

‘포커 카드 한 벌의 총수는 52장이야. 현재 딜러는 총 4벌의 카드를 섞어 블랙잭에 활용하고 있어. 그럼 모든 카드의 개수는 208장. 다시 셔플이 되기 전까지 도합 208장안에서 패가 돌아간다는 소리야.’

[오···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두께만 봐도 바로 알겠는데?’

[아, 대현자님.]

‘그리고 앞선 5분 동안 등장한 카드는 싹다 머릿속에 입력해뒀어.’

[그 많은 카드를 말입니까? 전부 다요?]

‘응. 그래서 지금부터는 나오는 모든 패의 확률을 계산할 수 있어. 근거가 쌓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8분 만에 주인님이 돈을 딸 수 있을까요? 주인님 말대로 한 게임에서 이겨봐야 자신이 건 돈 밖에 못 따지 않습니까? 초기자본이 겨우 200달러 뿐이신데···.

]

로시의 말뜻은 이런 것이었다.

도훈이 형철이나 상철이었다면 이길 확률이 높은 게임에 큰 돈을 걸어 한방을 노려볼수 있을 것이다.

100% 이긴다는 보장이 있다면 만 달러칩을 박아서 단 한 게임으로 만 달러를 버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 달라면 한국 돈으로 1200여만원에 이르는 거금.

하지만 도훈은 도박에서 총탄이라고 할 수 있는 판 돈 자체가 극히 적은 상황이었다. 제아무리 현자 상태에 이른 도훈이라도 짧은 시간동안 큰 돈을 버는 것은 힘들게 자명했다.

딜러가 카드 패를 돌리는 사이 도훈이 로시에게 말했다.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군.’

[뭐가 말입니까?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네 말은 세 가지 이유에서 틀렸어. 첫째.

나는 특정 상대와 끝장 대결을 펼치는 게 아니야. 지난 번 섰다처럼 누구 하나 올인 나야 이기는 게임이 아니란 소리지. 이건 카지노딜러와 나와의 1:1 승부니까.’

[그건 그렇죠.]

‘둘째. 이번 블랙잭의 목표는 큰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노답 형제 앞에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데 있어. 그것을 달성하는 정도면 5분이라도 충분하다는 소리지.’

[그것도 뭐 그렇지만···. 나머지 하나는 뭡니까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 놓친 건, 200달러로 시작해도 충분히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거야.’

[정말요? 어떻게 말입니까?]

‘혹시 마틴 게일 배팅이라고 들어봤어?’

[마틴 게일 배팅요?]

‘무한대에 이르는 자본이 존재한다며 확률게임에서 결코 지지 않는 법칙을 말해.’

[그게 가능하단 말씀입니까?]

‘예를 들어 이런 거야. 50%의 확률이 걸린 게임이라고 쳐. 가령 주사위의 홀수 짝수같은.’

[네.]

‘처음 100달러를 걸었는데 게임을 졌어.

그럼 100달러를 잃은 셈이지.’

[당연하죠.]

‘그럼 두 번째 판에는 200달러를 걸어. 이 기면 200달러를 따게 되니, 처음 잃은 100달러의 손실을 만회하고도 결국엔 100달러를 벌게 되는거지.’

[하지만 또 진다면요?]

‘상관없어. 세 번째는 다시 400달러를 걸 거거든. 이기면 400달러를 따게 되니 앞서 손해 본 100달러와 200달러를 만회하고 또 100달러를 벌게 되지.’

[잠깐만 이건 그럼···.]

‘그래서 말했잖아. 무한한 자금만 있으면 결국 무조건 이길 수 있는 필승의 법칙이라고. 10번을 연속으로 져도 11번째를 이기기만 하면 결국 그때까지 모든 손실을 회복하고 돈을 딸 수 있거든. 100번을 져도 마찬가지야. 마지막 한 번만 이기면 되니까.’

[오! 하지만 주인님은 현재 마틴게일 배팅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돈이 무한대로 있는 게 아니라 고작 200달러 뿐이니까요.]

‘후후. 그게 왜 필요해? 나에겐 지금 무조건 이길 수 있는 카드 카운팅 기술이 있는데.

내가 지금 하려는 건 절대로 잃지 않는 도박이 아니야. 반대로 무조건 이기는 기술이지.’

[무조건 이기는 기술? 잠시만요, 설마 그 럼···.]

‘그래. 기하급수 전략이야. 무조건 두 배씩 튕기는.’

도훈의 전략은 간단했다.

모든 승부를 예측할 수 있는 사기적 두뇌를 이용해 남은 시간동안 열리는 모든 승부에서 두 배로 튕기겠다는 소리였다.

‘200달러가 400달러. 그리고 400달러가 800달러. 1분에 한 판씩 진행된다고 계산해서 연속으로 승리하면 마지막 8번째에는 얼마를 딸 수 있을 것 같아?’

[400, 800, 1600, 3200, 6400, 12800, 25600, 51200···. 오, 오만 달러?]

‘그렇지. 성경에 그런 말이 있지. 네 시작은 미미하지만, 그 끝은 창대 하리라. 기대하라고,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 겜블러가 카지노를 어떻게 털어먹는지.’

당연히 도훈은 모든 자금을 올인한 첫 번째 게임을 이겼다.

상철이 도훈의 소소한 성공을 축하했다.

"오, 초심자의 행운인건가?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도훈은 운으로 이겼다는 연기를 하기 위해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처음 그가 100달러짜리 칩을 4개 받을 때만 해도 자리에 있는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기본 판돈의 두배를 걸어 딴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또 화투나 포커와 달리 블랙잭 승부는 다른 플레이어의 승리가 나머지 플레이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점도 한 몫했다. 이는 제로섬 게임이 아닌, 거대 자본과 플레이 어의 1:1 대결로 간주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오히려 다른 플레이어의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카드 패를 모두 외우고 있던 도훈이 상철의 대리 배팅으로 내리 3연승을 하자 점차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도훈의 승리가 곧 상철의 승리였으므로 상철 또한 연속된 승리를 기뻐하면서도 도훈에게 우려를 표했다.

"잠깐, 지금 3연속 올인한 거야? 그러다 한 번이라도 잃으면 모든 걸 잃게 될 텐데 괜찮겠어?"

All or Nothing.

전부 잃거나 혹은 따거나.

도훈의 전략은 도박계에서는 금기로 통하는 극단적인 전략.

하지만 무모하고 불가능한 도전에 열광하는 것이 보통 사람의 심리였다. 도훈의 과감한 배팅에 형철과 상철은 물론 블랙잭 판에 앉아있던 모두가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100달러짜리 칩이 16개가 된 도훈은 빈자리에 앉으며 게임 참가를 신청했다.

"저도 이제 따로 패 받아도 되죠?"

"물론입니다, 손님."

딜러도 도훈의 연속된 승리에 흐뭇해하며 자리를 내주었다.

그 정도의 행운은 가끔 볼 수 있는 것이고, 칩 16개라고 해봐야 이 테이블에선 큰 돈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여유가 있는 표정이었다.

"이야, 대단한데 저 젊은이?"

"봤어? 저 사람 3번 연속 올인 성공했어!"

도훈은 점점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사실 200달러를 가지고 1600달러까지 벌어들인 자체만해도 대단한 성공이었다. 카지노에선 의외로 높은 수준의 승률이 필요하지 않다. 딜러도 겨우 51%의 승률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49%와 51%라는 차이가 어마어마한 이윤을 만들어 낸다. 총액이 커질수록 소소한 차이가 억만금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도훈은 이미 8배에 가까운 금액을 먹었기 때문에 이제 올인을 중단하고 안전배팅으로 갈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테이블의 한 자리를 차지한 도훈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4번째 판에서도 또 올인을 한 것이었다.

사실 시간이 갈수록 덱의 카드 총량은 줄어들었고, 모든 것을 기억해 버리는 도훈에게는 보다 높은 정확도를 안겨줄 뿐이었다.

"블랙 잭!"

"우아!"

"방금 또 이겼어?"

"지금 4연승인거지?"

"뭐야, 대체 저 사람?"

도훈의 연승 소식에 다들 눈이 휘둥그래졌다.

특히 같은 테이블에서 게임하던 형철과 상철 형제는 별 볼일 없던 도훈이 내리 올인 전략으로 3200달러 가량의 칩을 일구자 대단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뭐야, 저 새끼? 오늘 운빨 대폭발 하는 날인가?’

‘아주 우주의 기운을 끌어다 쓰는구만. 하지만 그 운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승률이 설사 50%라고 해도 연속으로 이길 확률은 극히 줄어든다. 결국 한 판이라도 지면 도훈은 이제껏 딴 돈을 모두 잃을 수 있었다.

다시 다섯 번째 판.

현자 타임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첫 패를 받은 도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제길. 이 번 판은 버려야 겠어.’

[버린다고요?]

‘첫 패가 개패야. 딜러는 원아이드 잭이고. 이 판은 절대 못 이겨.’

[아아, 그렇군요. 주인님은 카드 카운팅을 한 것이지 승부 조작을 한 것은 아니니까요.]

‘차라리 잘 됐어. 난데없이 연승으로 5만 달러를 따가면 카지노에서도 의심할 테니.

적당히 이판은 죽어야 겠다.’

도훈은 칩 2개만 걸고 예상대로 게임에 졌다. 도훈의 연승이 끊기자 사람들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아아, 안타깝고만. 난생 처음 5연속 올인 판을 보나 했더니."

"그러게. 계속되는 행운은 없지."

"근데, 오히려 질 것 같은 판에 손해를 최소화 한 거 아니야?"

도훈이 일군 최소한의 패배한 것이 더 대단하다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로시 남은 시간은?’

[대략 4분입니다.]

‘이제 4판 밖에 안 남았구나.’

400달러를 잃고 도훈에게 남은 것은 3000달러.

도훈은 다음 판 연속으로 또 다시 3000달러를 올인해 결국 12,000달러까지 자금을 늘렸다. 그의 앞에 100달러 칩이 수북히 쌓이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앗, 뭐야 저 사람 진짜?"

"또 올인 했지?"

"아주 이기는 판에만 올인하는데?"

"타짜네 타짜! 타짜가 왔어!"

도훈의 과감한 배팅과 연승에 카드패를 나눠주던 딜러도 점점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최소 배팅이 100$인 고액 게임판이라고는 하지만 만 달러 짜리 배팅은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어지는 7번째 판.

이번에도 도훈은 게임을 포기했다. 하지만 딜러에게 의심받는 느낌을 받자 일부러 칩 20개를 모두 잃어주었다.

"아! 이번건 좀 타격 큰데."

"결국 운이 다한 모양이야."

"그래도 잘 했지. 10분도 안되서 만 달러나 벌었잖아."

"맞아. 대단해."

[아쉽군요. 충분한 시간만 있었다면 정말 5만달러를 벌 수 있었을 텐데요. 아니, 그 이상도.]

‘아니 이 정도면 딱 적당해. 괜히 카지노에 의심을 사는 것 보다 말이야.’

[하지만 아쉽습니다. 만 달러면 한국 돈으로 1200만원가량인데, 형철이나 상철 형제도 운 좋으면 따는 수준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최소 금액이 100$달러 일뿐, 플레이 중에는 한번에 1000$ 이상 거는 사람도 많았다.

그럼 사람들에게 도훈이 획득한 만달러는 대단하긴 하지만 아주 크지는 않은 금액이었다.

이제 현자타임의 시간 종료 1분.

도훈에게 오늘의 마지막 카드패가 날아들었다.

‘느낌 좋아. 최후의 올인이다.’

도훈이 오늘 번 만 달러를 모두 밀어넣자 사람들이 다시 열광에 휩싸였다. 제 아무리 부자라 할지라도 단판에 만 달러는 선을 넘는 수준이었다.

"정말 그걸 다 밀어 넣으신다고요?"

"네."

"아···. 그게 최대 배팅액인 건 아시죠?"

"최대요?"

"네."

알고 보니 카지노에서도 당연히 마틴게일배팅법을 방지하기 위해 총액 제한을 걸어둔 것이었다. 무제한으로 배팅액을 늘리면 주최측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1회 배팅 상한을 정해 그 방법을 못 쓰게 막은 것이었다.

‘아차. 이건 내 실수군. 당연히 배팅 상한을 생각했어야 하는데. 어차피 5만 달러는 무리였겠어.’

[그렇네요. 결국 주인님이 딸 수 있는 돈은 최대 2만달러였군요.]

‘아니.’

[아니라고요? 만달러를 걸어 2만을 따는 것이 최대 아닙니까?]

‘잘 봐. 왠지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으니까.’

딜러가 긴장된 표정으로 패를 돌리는데 갑자기 도훈의 카드패가 똑같은 숫자가 지어졌다. 포커에서 가장 낮은 메이드인 원패어가 된 것이다.

딜러의 표정이 일그러지는데 도훈이 과감하게 소리쳤다.

"스플릿."

"여기서 스플릿요?"

"네."

"나뉜 쪽에도 배팅을 하셔야 하는데···."

올 인을 거듭했기 때문에 도훈의 총액은 모두가 아는 상황.

그런 그가 스플릿으로 추가로 돈을 밀어 넣으려고 하자 딜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손님, 죄송하지만 외상은 불가능합니다만."

그때 도훈이 형철 상철 형제를 보며 물었다.

"형님들. 저 믿고 투자 한 번 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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