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4. 그해, 여름-39- >
***
‘미친년, 또 시작했네.’
나는 절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좀 곤란하겠는데요."
"싫다고?"
"보시다시피, 여긴 보는 눈도 많고…."
나는 파도를 맞으며 꺄르르 웃고 있는 미나를 쳐다보았다. 여자 친구 앞에서 다른 여자 등에서 오일을 발라줄 순 없다는 무언의 항의였다.
은지가 실망한 듯 콧방귀를 꼈다.
"흥, 쫄보 같으니."
"제가요?"
"그래. 여자친구에게 아주 쩔쩔 매고 사는 구나. 매력 없어."
"지킬 건 지키는 게 서로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요? 그리고 어제부로 저희 관계는 끝난 것으로 아는데요."
"끝났다고?"
은지가 챙겨 온 오일을 손에 듬뿍 짜더니 자기 배에 펴 바르기 시작했다. 배 주위로 둥그렇게 문지르다 갈비뼈를 건반처럼 두드리며 올라온 손이 어느새 밑 가슴에 이르렀다.
"난 끝낸 적이 없는데?"
"어제 분명히 그러셨잖아요. 만족시키면 된다고. 두 번이나 만족시켜 드렸잖아요."
"했다고 생각해? 난 아직 못 했는걸?"
은지가 갑자기 비키니 브라를 들추더니 가슴 밑으로 손을 불쑥 밀어 넣었다. 오일로 미끌거리는 손이 브라 밑을 해치고 파고들었다. 그렇게 보란 듯 젖가슴을 주무르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선정적이었다.
나는 혹여 다른 사람이 볼까 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파도에 먼저 뛰어든 세 사람은 물놀이에 빠져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생각보다 떨어져 있어 은지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알아챌 수 없는 거리였다.
"하아…."
"뭐 하시는 거예요? 남들 다 보는데?"
""보긴 누가 봐? 그리고 네가 안 만져주니 스스로 위로하는 거잖아? 이것도 네 허락 맡아야 해?"
은지는 아예 노골적으로 브라를 들춰 젖가슴을 주물렀다 끈적거리는 오일이 전면에 발리자 피부가 번들거리며 윤기가 좔좔 흘렀다. 보란 듯 나를 도발하는 모습을 보자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휴, 저 변녀를 진짜!’
[주인님만 보면 돌변하는 군요. 아니, 정확히는 단 둘이 남을 때만요.]
"하아, 하아…. 좋아."
"그만 하세요. 전 이만 물에 들어가 볼게요.‘
은지를 무시하고 돌아서려던 차였다.
"…잠깐."
"왜요. 또?"
"성격 급하긴. 내가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가슴에서 손을 뗀 은지가 베드 우위에 허리를 세우더니 나보고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의도가 불순해 보였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거리를 둔 채 대답했다.
"뭔데요?"
"가까이 와봐, 누가 들으면 곤란하니까."
"……."
계속 버티는데도 은지가 끝까지 나를 재촉했다.
"얼른, 와보래도? 듣고 나면 귀가 번쩍 뜨일걸?"
"대체 뭔데 그래요?"
"귀 가까이."
나는 하는 수 없이 은지의 입술에 귀를 가까이 댔다. 은지가 만족스럽게 웃더니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렸다. 뜨거운 입김이 내 귀를 간지럽힌다. 속삭이는 목소리가 간드러지게 흘러나왔다.
"우리 도련님 여자친구 있잖아."
"민희씨요?"
"맞아. 벌써 통성명도 했니?"
"아까 밥 먹을 때 알려주던데요."
"아무튼 그 애가 말이야. 아까 내가 우연히 통화하는 거 들었거든."
"통화요?"
은지는 손가락을 입술로 가져가더니 "쉿!" 하고 나를 조용히 시켰다.
"말하지 말고 듣기만 해."
"네."
"볼일 보려고 호텔 로비 여자 화장실 안에 앉아있는데 민희가 들어오는 거야. 누구랑 통화하면서, 아마도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 같았어."
"그런데요?"
"민희는 내가 화장실에 있는지 몰랐나 봐. 아무래도 주변에 외국 사람밖에 안 보이닌 한국말로 통화할 땐 평소보다 방심하게 되잖아. 무슨 소린 줄 알지?"
"그래서요?"
"통화한 사람이랑 되게 재밌는 얘기를 하더라고."
"그게 뭐냐니까요?"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지?"
"예?"
은지가 갑자기 말을 하다말더니 다시 베드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갑자기 베드 위에서 돌아누운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궁금하면 등에 오일 좀 발라줘. 그럼 마저 얘기해 줄게."
"아니! 진짜."
어이가 없어진 나는 드러누운 은지를 향해 소리쳤다.
"됐어요. 안 들으면 그만이지. 누가 궁금할 줄 알고?"
그렇게 휙 돌아서려는 데 은지가 끈질기게 치근거렸다.
"도훈에 네 얘긴데도"
"…뭐라고요?"
은지는 사람을 들었나 놨다 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것이 노회한 중년 여성의 관록이건, 아니면 타고난 여구 같은 천성이건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어때? 갑자기 궁금하지 않아? 왜 도련님 여자 친구가 한구에 있는 친구랑 통화하면서, 오늘 처음 본 네 얘기를 했는지 말이야. 뭐라고 했게?"
"…음."
[넘어가지 마십시오. 정 궁금하시면 마음의 소리로 엿들으면 그만입니다. 어의없는 사람이군요, 정말.]
‘알지. 그건 아는데, 너무 튕기는 건 별로 안 좋을 것 같아.’
[안 좋다니, 무슨 소립니까?]
‘어쨌건 여기에서 당장 업적에 도전할 수 있는 대상은 은지 뿐이잖아. 호감도를 계속 유지하려면 좋든 싫든 적당히 맞춰줘야 한단 말이지.’
[하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허은지 남편이나 상철이 봤다간 주인님과 관계를 의심할지도 보릅니다. 미나 양도 실망할 거고요.]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계속 무시하는 것은 도리어 은지를 자극할 수 있었다.
지금에야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을 걸지만 욕구 불만이 쌓였다간 아무 때나 도발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오히려 그것이 더 위험했다.
‘…남편은 아마 안 올거야. 어젯밤 카지노에서 날 새서 그런진 아침에 엄청 피곤해 보였거든. 그리고 상철이랑 미나는….’
나는 물놀이를 하는 일행들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바닷가에 먼저 뛰어든 세 사람은 따뜻한 수온과 적당한 파도에 신이 난 나머지 해변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있었다.
너무 길어지면 모를까 5분에서 10분 정도라면 안 들키고 오일을 바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거면 충분했다.
이에 생각이 미친 나는 비치 베드 옆에 세워진 파라솔 기둥을 잡아 바닷가 쪽으로 확 기울였다. 그러자 마치 모자를 깊이 눌러쓴 것 마냥 전면에 가림막이 쳐졌다. 이제 가까이 접근하지 않으면 파라솔 아래 두 사람의 다리만 보일 것이다.
"지금 뭐 하는 중?"
"이러면 바닷가 쪽에서 안 보일 것 같아서요."
"참나, 하여간 겁도 많지."
은지가 비웃었지만, 이것으로 잠깐 이목은 피할 수 있게 됐다. 아마도 물 위로 올라와 다가오지 않는 한 나와 은지가 파라솔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엎드려 봐요. 오일 발라 줄 테니."
"그럴까?"
은지는 세베를 올리듯 두 손을 겹치더니 그 위로 턱을 받친 체 완전히 드러누웠다. 곧게 뻗은 다리와 잘록한 허리가 굉장히 자극적이었다. 뒤태만으로 사람을 유혹시키는 여자라니.
30대 중반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잘빠진 몸매다.
‘하여간 요물 같으니.’
나는 두 손에 오일을 묻힌 후 다리부터 오일을 펴 발랐다.
"말해 봐요. 민희씨가 뭐라고 한 거죠, 저에 대해서."
"음,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그래, 한국에 있는 친구랑 통화하면서 네 얘기를 하더라고. 싸이판 와서 완전 잘 생긴 남자를 봤다면서."
"그게 꼭 제가 아닐 수도 있지 않아요?"
은지는 피부가 부드러운 편이었기 때문에 오일을 묻혀 문지르자 손이 쭉쭉 미끄러졌다. 물렁살이 아니라 탄력도 좋아서, 제법 탄탄한 맛이 있었다.
"아닐걸? 분명 아침에 같이 식사했다고 했거든. 그게 과연 누굴 거 같아? 우리 남편이겠어? 아니면 도련님?"
"……."
"솔직히 우리 집안 남자들 키 작고 못 생긴 건 누가 봐도 팩트 잖아. 안 그래?"
대놓고 가족을 무시하는 은지의 발언에 나도 모르게 두 형제를 두둔했다. 감싸주고 싶은 마음보다, 내가 그들을 무시하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그거야…. 뭐 젊었을 때랑은 다르니까요. 그리고 두 분 다 굉장히 성공하셨고."
"풉. 도훈이 네 나이라고 과연 멋졌을까? 어려봤자 못생긴 두 형제인 건 변함없지. 암튼, 그 뒤 말이 더 중요해."
"뭔데요?"
"글쎄, 내가 있는지도 몰랐는지 자기 속마음을 싹 다 까발리는 거 있지? …아, 엉덩이도 좀 발라줄래? 거긴 왜 건너 뛰는데?"
"수영복 묻을 까봐서요."
"참나. 이러면 되잖아."
은지가 손을 뒤로 하더니 비키니 팬티 양 끝을 잡고 가운데로 훅 잡아당겼다. 그러자 엉덩이 골짜기가 팬티를 먹으며, 티 팬티처럼 둔부 전체가 노출되었다.
"아, 아니!"
"얼른 발라. 여기만 발색이 다르면 그게 더 웃기니까. 사람 우습게 만들 거야?"
"…흠."
나는 어쩔 수 없이 오일을 발라 엉덩이 전체를 문질렀다. 티 팬티가 좁혀진 곳을 보자 지나치게 당겼는지 음부가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 걸쳐져 있었다. 도끼 자국이 선명했다.
‘어후, 진짜 사람 간 보는 것도 정도 것 해야지.’
[주인님을 보란 듯 놀리는 군요.]
‘가만 있자, 어차피 호감도 유지하려고 하는 거면 어디 제대로 주물러 볼까?’
[어쩌시려고요?]
‘제 까짓게 감히 나를 골렸단 말이지? 아주 해변 한 복판에서 떡실신하게 만들어야 겠어. 로시, 준비해. 특급 마사지 크림.’
[설마!]
여전히 은지는 엎드려 누운 채였으므로 나는 몰래 오일을 바르는 척 아이템을 꺼냈다. 몸에 좋은 크림이었다.
[주인님, 이걸 대놓고 발랐다간 은지가 못 버틸 텐데요?]
‘그러니까 감히 누굴 도발해? 깜냥도 안 되면서.’
[아니, 그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봤다간 정말로 큰일입니다. 오일을 바르는 것하곤 비교가 안 될 텐데요….]
‘적당히 자극만 할거야. 함부로 까불지 못 하게.’
내가 양손 가득 크림을 듬뿍 묻히는 줄도 모른 채 은지가 계속 떠들었다.
"아무튼 민희 걔가 이렇게 말하는 거야. 진짜 자빠뜨리고 싶은 남자를 만났… 하핫!"
크림이 닿는 순간 은지가 몸에 전기가 통한 것처럼 움찔 몸을 떨었다.
"뭐, 뭐야? 방금 전에?"
"엉덩이 발라달라면서요? 이쪽만 색이 다르면 곤란하다고."
내가 아무것도 모른 척 뻔뻔하게 대꾸하자 은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 답지 않게 굉장히 놀란 얼굴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느낌이 무슨."
"느낌이 왜요?"
"모, 모르겠어. 어제 너랑 해서 그런가? 왜 이렇게 예민해 진거지?"
"암튼 계속 얘기 해봐요."
"그러니까 민희가 너랑 자고 싶어한다… 하, 하학! 뭐, 뭔데 이건?"
은지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꿈틀거렸다.
온 몸을 성감대로 만들어 버리는 몸에 좋은 크림에 완전히 자극을 받는 것이었다. 실제론 엉덩이를 만지고 있지만, 오일바른 손으로 음부를 문지르는 이상의 충격일 것이다.
"왜 그래요 자꾸? 이러면 못 발라요."
"뭐지? 니가 그냥 만지기만 해도 막…."
"막?"
"…젖어 버릴 것 같은데."
은지가 흥분했는지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러더니 갑자기 앞으로 돌아 눕더니 브라를 풀어버렸다. 모양이 잡혀 있던 커다란 가슴이 출렁 흐트러지며 완연한 자태를 드러냈다. 유륜부가 닭살처럼 솟아오르고, 가운데 유두는 바딱 곤두서 있었다.
"뭐하시는 거예요? 왜 옷을 벗고…."
"보라고. 너가 만졌다고 이렇게 발딱 선 거."
"아니 진짜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요."
나는 얼른 주변에 비치타올을 들고 그녀의 상체를 덮었다.
그러나 은지는 막무가내로 타올을 치워버렸다.
"만져줘.‘
"안돼요. 분명 오일만 발라달라고 했잖아요."
"그래. 가슴에 발라줘."
"아니… 앞에는…."
계속된 거절에 은지가 욕망이 들 끓는 눈으로 변하더니 나를 협박했다.
"계속 이럴 거야?"
"뭘요?"
"자꾸 거부하면 나 여기서 뛰쳐나간다?"
"네?"
"내가 파라솔 밑에서 울면서 뛰쳐나가며 도련님한테 소리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아? 도훈이 네가 날 추행했다고 말이야."
"아니!"
‘이런 썅년이 진짜!’
[못 되 처먹었군요 정말. 허구헌날 협박질이라니.]
‘진짜 가만 두면 안되겠네.’
[주인님 본때를 보여야 합니다. 다시 저런 저질스러운 협박을 못 하게 말입니다.]
화를 겨우 감추고 쩔쩔매는 표정으로 은지에게 사정했다.
"왜, 왜 그래요 진짜. 어제부로 끝난 일이잖아요."
"내가 안 끝냈다고 했잖아. 어서 결정해. 발라 줄 거야, 아니면 이대로 추할 꼴 볼 거야? 내가 진짜 못 할 것 같아?‘
"……."
"그러니까 도훈아. 이번 한 번만 만져주면 되잖아. 어젠 잘도 나를 따먹더니, 오늘은 가슴에 오일도 안 발라주는 게 어딨어? 설마 한 번 먹고 나니까 흥미가 식은 거야? 아줌마라?"
"아, 아니에요 그런건…."
"근데 왜?‘
"그게… 여긴 너무 공개된 곳이고…."
"그럼 이렇게 해."
은지가 가슴을 가리고 있던 타올을 평평하게 펴더니 상반신 전체를 뒤덮었다.
"이렇게 덮고 있을테니 니가 손을 넣어서 만져. 그럼 누가 봐도 정확히 뭐하는 지는 모를 거 아니야. 어차피 물놀이 하던 사람들은 볼 수도 없을 테고."
은지의 계속된 강요와 협박에 나 역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마지 못한 척 그녀의 요구를 승낙했다.
"…알겠어요. 정말 이번 한 번만이에요."
"당연하지. 나 그렇게 나쁜 여자 아니야. 그냥 네가 맘에 들어서 그렇지."
‘진짜 개소리 오지게 하고 있네.’
[정말이지 시한폭탄 같은 여잡니다. 주인님이 어서 기강을 잡아줘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다신 까불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
나는 양손 가득 몸에 좋은 크림을 펴 바른 채 타올 밑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 1124. 그해, 여름-39-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