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1. 그해, 여름-36- >
한국에서야 모르는 사람과 식사를 하는 게 어색하지만, 외국에서는 테이블이 부족할 경우 함께 앉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뒤늦게 합석하게 된 상철이 도훈에게 말했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분 아니었으면 기껏 아침 먹으러 왔다가 자리 없다고 쫓겨날 뻔했네요."
상투적인 인사치레였지만 상철은 굳이 감사를 표했다. 나이가 더 많은 자신이 먼저 고마움을 표시함으로써 합석의 불편함을 희석시키는 것이었다.
"아닙니다. 어제 같은 비행기 타고 오셨었죠?"
"저희가 그랬던가요?"
자신과 몇 번이고 마주쳤기 때문에 도훈이 먼저 아는 시늉을 했다. 상대방의 관찰력을 시험하는 것. 하지만 상철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헐, 안중에도 없었다는 소리야?’
왠지 무시당하는 기분에 씁쓸했지만, 생각해보면 30대 중반의 잘나가는 사업가 입장에서 부랄 두 쪽 말곤 가진 게 없는 어린 대학생 따위가 뭐라고 기억할까 생각하자 납득이 되었다.
오히려 상대에게 주목받지 않았다는 데 도훈은 내심 안도했다.
‘다행이군.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었다는 거니까.’
[어떻게 주인님 같은 분을 몰라 볼 수 있죠? 어디서나 눈에 띄는 분인데.]
도훈이 무시당하는 것에 로시가 대신 화를 냈다.
‘충분히 가능하지. 눈 돌아가게 예쁜 여자라면 모를까,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남자를 굳이 마음속에 담아 두진 않을테니. 게다가 스스로를 잘나간다고 생각할수록 더더욱.’
[하지만 주인님이 훨씬 잘생기셨잖습니까? 저들은 밑바닥이고요.]
‘원래 남자라는 종족은 외모에 그닥 신경 안 써. 아이돌 따라다니는 사춘기 시절이면 또 모를까.’
[그런가요?]
‘여자는 나이 들어도 어려보고 예뻐 보이고 싶어 하는 게 본능이지만, 남자에게 능력이란 돈이고 권력이거든. 전에도 한 번 설명한 적 있지 않아?’
[뭘요?]
‘키가 165인 판검사 180넘는 잘생긴 백수에게 티끌만큼도 열등감 안 느낀다고. 오히려 그 반대면 몰라. 그게 남자들의 세계거든.’
[호오.]
‘아마도 저들 형제에게 나는 앞에 있어도 보이지도 않는 지나가는 행인1 정도였을 거야. 비행기 티켓팅할 때 바로 뒤에 있어도, 공항 흡연실 옆에서 같이 담배를 피워도 모를 만큼. 돈 많고 잘나가는 사장님 입장에서 나라는 존재는 월급 200쯤 손에 쥐어주면 허리가 접힐 만큼 폴더 인사를 때리는 좆밥 대학생 나부랭이에 불과 할 테지.’
[왠지 주인님을 업신여기는 것 같아 불쾌하군요. 주인님이 얼마나 대단한 줄도 모르고.]
‘아냐. 차라리 잘 됐어.’
[잘됐다고요?]
‘상대가 나를 대수롭지 않게 봐줄수록 내가 작업하기 수월해 질테니. 얼마든지 좆밥 취급해보라 그래. 누가 더 좆밥인지 깨닫게 해주지.’
도훈의 예상대로 그를 듣보잡 취급하던 상철이었지만, 도훈의 맞은편에서 앉은 미나를 볼 때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형수 은지와 여친 행세를 하는 민희에 비해 조금도 꿀리지 않는 미녀가 떡하니 앉아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도 드문 미인인데, 미나 또한 강렬한 씬 스틸러였다.
특히 순진해 보이는 얼굴과, 압도적인 핫바디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한데 이분은 누구…?"
상철은 내심 미나가 도훈의 친누나거나 사촌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곧 깨졌다.
"제 여자친구에요."
낯을 가리는 미나가 초면에 쑥스럽게 인사했다. 그러나 도훈이 여자친구라고 소개해주는데 무척 행복해하는 표정이었다.
"안녕하세요."
"아…. 여자친구분이 참 미인이시네."
상철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다시 도훈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 본 상철은 그가 꽤 잘생겼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미나를 보기 전까지는 도훈에 대해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무시도 이런 무시가 있을 수 없었다.
‘20대 선남선녀 커플인거군. 하긴 저 나이 때는 잘생긴 게 최고지. 나이가 들면 생각이 현실적으로 바뀌겠지만.’
상철은 곧 미나에 대한 기대를 접고 나머지 일행을 소개했다.
"저흰 부부동반으로 왔어요. 이쪽은 제 친형님하고 형수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은지가 도훈을 향해 목례를 하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리고 여긴 제 여자친구. 아직 결혼은 안 했지만, 다같이 여름 휴가차 놀러 왔어요.‘
"반갑습니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다들 초면이라 조심스럽게 인사 하는데, 유난히 도훈에게 관심을 보이던 민희가 대뜸 나이를 물어왔다. 그녀의 돌발행동에 상철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만 형과 형수가 같이 있는 터라 더 이상 내색할 수 없었다. 민희가 왜 저러는 지 애써 이해를 해 볼 뿐이었다.
‘하여간 촐싹거리지 말라니까 말도 더럽게 안 듣네. 비슷한 또래 만나니까 신났나? 일행들이 원체 나이차이가 많이 나니까.’
형철은 마흔.
은지는 올해 서른 다섯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은지와 동갑.
세 사람 나이가 30대 중반을 훌쩍 넘는데 비해, 이번 작전을 위해 포섭된 민희의 나이는 고작 스물다섯. 최소 열 살 넘게 차이가 나다 보니 일부러 나이 들어 보이게끔 화장을 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 민희에게 또래로 보이는 도훈과 미나의 등장은 당연히 반가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도훈과 민희가 서로 얘기를 나누는 동안 상철은 형님네 부부와 함께 접시에 음식을 담으러 움직였다. 곧 조식 뷔페를 마감할 시간이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일단 음식부터 담아와야 겠군. 다 치워버릴라."
세 사람이 분주히 움직이는 데도 도훈과 안면을 트게 된 민희는 계속 도훈 옆에서 알짱거렸다.
"전 스물 셋이요."
"어머, 정말요? 난 스물 다섯인데."
"제 여친이랑 동갑이네요. 두 분 친구시네.‘
도훈은 미나가 지켜본다는 생각에 서둘러 미나를 소개했다. 이는 부쩍 관심을 보이는 민희를 경계하는 동시에, 여자친구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함이었다.
임자 있는 사람이니 관심끄라는.
불편한 시선으로 민희를 보고 있던 미나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민희는 미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무시해버리고 다시 도훈에게 알짱댔다.
"그럼 내가 누나니까 말 편하게 할게? 여긴 뭐가 맛있어?"
"네?"
"아니 아직 음식을 안 가져와서 추천 받으려고."
민희의 당돌한 태도에 도훈의 입장이 굉장히 난처했다.
처음 본 사람에게 나이를 물어보더니 대뜸 반말을 지껄이는 것도 그렇고, 느닷없이 음식을 추천해 달라는 모습은 드러내놓고 관심을 보이는 행동이었다.
심기가 불편해진 미나가 포크를 내려놓고 "흠흠." 헛기침을 했다. 도훈이 한마디 하려는데 멀리서 음식을 담고 있던 허은지가 민희를 불렀다.
"민희씨, 뭐해? 얼른 안 받아가면 음식 치운데. 얼른 와요."
"아…. 네."
잠시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고 있던 민희가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뷔페로 음식을 담으러 갔다. 민희가 자리를 뜨자 미나가 눈을 치켜뜨며 흥분했다.
"뭐야, 쟤? 도훈이 너 아는 사람이야?"
"아니?‘
"와, 깜짝이야. 난 또 아는 사람인 줄? 별 희한한 여자가 다 있네."
미나가 성격이 드센 타입이었다면 도훈 앞에서 끼 부리는 민희를 향해 욕을 한바가지 퍼부었겠지만, 성정이 착한 그녀에게선 ‘희한한 여자’ 라는 표현이 최고로 심한 수위였다.
도훈은 미나의 심정을 깨닫고 그녀를 안심시켰다.
"반가워서 그랬나 봐. 외국에서 한국사람 봐서."
"흥, 싸이판에 널린 게 한국사람이던데? 그리고 뭐 한국 떠난 지 한 달 쯤 됐나? 어제 같은 비행기로 와놓고는 유난은."
미나가 화가 안 풀리는 지 계속 툴툴거렸다.
도훈이 그녀를 위로했다.
"같은 일행들이 좀 세대차이가 나서 그런 게 아닐까?"
"세대차이?"
"대충 보니 형님이라는 분 부부도 그렇고, 나랑 얘기 했던 분도 그렇고 다들 서른이 훌쩍 넘어 보이더라고."
"그러고 보니 그렇네? 그럼 여친이 띠동갑이란 뜻인가? 헐."
보기 드문 나이 차에 미나도 조금은 의아한 눈치였다.
특히나 상철에 비해 민희가 월등히 예쁘다는 것도 곱게 보이지 않았다.
키 작고 배나온 중년의 남성과 어리고 예쁜 20대 여성의 조화는 누가 봐도 어색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원조교재라고 느꼈을 정도였다.
"둘이 사랑하나 보지. 하하."
도훈은 겉으로 웃어 넘겼지만 계속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쟤는 또 뭐지? 너무 노골적으로 들이대는데?’
[주인님께 호감이 있어 보이더군요.]
‘호감이고 뭐고, 사람이 예의가 있어야지. 여자 친구라고 소개한 미나가 떡하니 면전에 있는데 사람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긴 하네요.]
‘식사하는 데 계속 미나 심기를 건드리면 좀 귀찮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시려고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항상 위태롭지 않지.’
[정!보!창!]
‘가만, 스킬 쓰려면 근처로 이동해야 하지?’
[아뇨. 이제 너무 붙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응? 그게 뭔 소리야?’
[스킬 강화로 사정거리가 증가했거든요. 아, 오해 마십시오. 그 사정이 그 사정이 아닙니다.]
‘알아.’
[아무튼 지금 정도면 충분히 닿을 겁니다.]
‘범위 증가? 어쩐지 다른 스킬들은 다 강화됐는데 정보창만 아무 변화가 없다 싶더니.’
도훈이 가진 정보창 스킬은 대상이 근거리에 있을 때만 발동되는 특성이 있었다. 즉, TV에 나오는 연예인을 보고 성벽을 알아 낸다거나 호구조사 등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소리였다.
초기에는 3m이내까지 접근해야 정보창 스킬은 몇 번의 강화를 거쳐 현재 10m까지 확장되었다. 도훈을 중심으로 반경 10m이기 때문에 건물 내 같은 공간에 있으면 누구라도 정보창을 들여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견적 한 번 따봐.’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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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김민희 (비처녀, 14세 6개월)
나이 : 25 #나가요 #백치미 #금사빠
호감도 : 70/100
개방성 : S
성감대 : 등허리, 허벅지, 클리토리스
*애무 포인트 : 잘생긴 남자와 할 때 가장 만족해 합니다.
성욕지수 : 보통 (임신확률 : 53%)
공략팁
*위 대상은 당신에게 상당한 호감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금방 사랑에 빠지는 타입입니다.
-그녀는 당신을 공항에서 처음보자 마자 이상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빠인 그녀는 잘생긴 남자만 보면 금세 정신 줄을 놓아 버립니다.
-어려서부터 룸망주였던 그녀는 불과 3개월 전까지 현직에 종사하였습니다.
-그녀는 도덕적 감수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남의 남자를 뺏는 행위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녀는 아주 헤픈 여잡니다.
-살짝만 찔러도 오늘밤 씹가능.
-추천멘트 : "여친 몰래, 한 번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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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훈은 룸망주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뭐야? 나가요 걸이었어?’
[의외군요. 어째서 저런 여자가….]
‘아까 분명 결혼할 사이라고 소개하지 않았나?’
[그렇죠.]
‘돈 많은 중소기업 사장님이 뭐가 아쉽다고 룸싸롱 출신 나가요를 만나? 2차 뛰다 사고라도 쳤을까?’
[아닐 겁니다. 만약 임신 중이라면 임신확률에 ‘불가능’ 이라고 표시되었을 테니까요.]
‘맞다. 그거 궁금했는데 임신 확률은 피임까지 포함하는 거야? 허은지의 경우엔 피임약을 먹는데도 임신 확률이 높게 나왔잖아.’
[아뇨. 순수한 호르몬 주기에 따른 겁니다. 주인님이 콘돔을 쓸 경우를 가정해 임신확률을 낮추지 않는 것처럼, 피임약 등의 변수로 확률이 변동되진 않습니다. 일정 주기로 먹는 피임약도 약을 중단하면 다시 임신이 가능해 지니까요.]
‘아하, 그런 뜻이군. 아무튼 사고를 친것도 아닌데 왜 저런 여자랑 어울리지?’
[예뻐서?]
‘룸 안 뛰어도 어리고 예쁜여자들 지천에 깔렸거든? 우리과만 봐도 그렇잖아.’
[하긴 또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하네요.]
‘혹시 공사?’
[공사요?]
‘아니. 유흥업소 여자들이 호구 물어서 꽃뱀 짓 하는 것을 공사 친다고 하거든. 출신을 속이고 위장결혼을 하기도 하고.’
[아…. 그런건가요?]
‘나이도 스물 다섯이면 업소에서 은퇴할 시기긴 하네. 저기서 더 먹으면 보도로 빠질수도 있거든. 아직 한창일 때 호구 하나 물어 취집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고.’
[호오. 그럼 남편 몰래 바람피는 불륜녀에 꽃뱀까지 얹어진 조합인건가요?]
‘게다가 형제 둘은 서로 짝을 스와핑하려는 변태들이고.’
[졸지에 막장 가족 사이에 끼어든 느낌이군요. 주인님은 그렇다 치고 미나양에게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요.]
‘미나 건드리면 죽여버릴 거야.’
도훈이 갑자기 흥분하더니 포크를 꽉 움켜쥐었다.
정말로 열 받으면 눈알이라도 후벼팔 기세였다.
[주인님. 플레이어에겐 살생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정당방위가 아니면요.]
‘뭐가 됐건 죽여 버린다. 어디서 씹돼지 새끼들이 감히!’
도훈이 포크를 꽉 쥐고 부들부들 거리자 미나가 놀라서 물었다.
"도훈아, 왜 그래? 기분 안 좋아?"
"어? 아, 아냐. 모래 씹은 것 같아서."
"아…. 난 또. 기분 나쁜 일 있나 했어. 표정이 너무 심각해 보여서. 괜찮아?"
"응. 괜찮아."
그때 그릇에 음식을 한 가득 채운 형철, 상철 커플이 도훈의 테이블에 돌아왔다.
"그럼 잠시 실례."
상철이 넉살 좋게 끼어들어 앉았다.
6인용 테이블이 가득 차자 비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 1121. 그해, 여름-36-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