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3. 그해, 여름-8- >
***
"이 집은 야경이 더 멋있을 것 같은데요?"
"아경이요?"
"네. 와서 한번 봐보세요."
창틀은 무척 넓었다. 성인 둘이 기대도 한쪽 창에 나란히 서 있을 너비였다. 선령이 자연스럽게 내 옆으로 밀착했다.
문득 바람이 불어와 선령의 앞머리가 흩날렸다. 그녀가 흘러내리는 머리를 슬쩍 귀 뒤로 넘기는데 나이답지 않게 깜찍했다. 은은한 샴푸 향이 코끝을 스치자 성숙한 여인의 향기 속에 미묘한 땀 냄새가 섞여 있었다.
지금도 훌륭하지만 20대 땐 남자 꽤나 울리고 다녔을 용모다. 왠지 모르게 남심을 자극하는 맛이 있는 여자였다.
선령은 내가 쳐다보는지도 모른 채 바깥의 풍경을 둘러보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오, 정말 그렇네요. 뷰가 이렇게 좋은 줄 몰랐어요!"
그녀의 옆모습을 보며 넌지시 말했다.
"중개사님은 옆에서 보니까 더 미인이시네요."
"…예, 예? 방금 뭐라고?"
나의 칭찬에 선령이 쑥스러운 듯 시선을 피했다.
칭찬은 늘 여자를 기쁘게 한다.
설사 그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 아부더라도.
"…고마워요, 빈말이라도 잘생긴 총각한테 들으니 기분은 좋네요."
"빈말 아닌데요."
"아이참, 왜 그래요. 남사스럽게."
선령은 쑥스러웠는지 영업적인 멘트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다.
"오케이. 알겠어요, 집주인한테 잘 말해서 전세금 좀 깎아달라고 해볼게요. 젊은 학생이 참 수완도 좋지."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그냥 저도 모르게…. 혹시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내가 거듭 진심임을 밝히자 선령도 진지해졌다.
"기분 나쁠 게 뭐 있어요? 그냥 남자한테 그런 말을 들은지 하도 오랜만이라…."
"하긴, 아무래도 결혼을 하셨을테니."
은근슬쩍 기혼 여부를 물었다. 처녀라기엔 나이가 걸렸고, 유부녀라기엔 어딘가 자유분방한 느낌이 들었다. 해서 확인차 물은 질문이었다.
"…저 한번 다녀 왔어요."
"네?"
아, 이혼녀였단 말이야?
선령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돌싱 알죠 돌아온 싱글이라고. 2년 전 이혼했어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걸."
난처해하면서 고개를 푹 숙이자 선령이 괜찮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에이, 뭘 그런 걸 가지고 사과까지 해요. 알고 물어본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요샌 그런 거 흉도 아니래요."
"그죠. 뭐 사람이 살다 보면 헤어 질수도 있는 건데."
"푸훕-."
"왜, 왜요? 제가 또 말실수 했나요?"
"아니에요. 나이랑 어울리지 않게 말하길래. 도훈 학생은 굉장히 성숙한 것 같아요."
"그런가요?"
선령이 점점 나를 남자로 의식하는 게 느껴졌다. 사적의 비밀을 밝히고 난뒤라 그런지 마음이 편해진 느낌이었다.
"도훈 학생 여자한테 인기 많죠?"
"예? 글쎄…. 전역한 지 얼마 안 되서."
"앞으로 많을 거예요. 훤칠하게 잘생겼으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중개사님도 남자들한테 인기 많으실 것 같은데요."
"음…. 어릴 땐 그랬던 것 같아요. 도훈 학생 나이때?"
"아뇨.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워요."
"에이, 너무 띄워준다. 자꾸 왜 이래요? 아줌마 마음 설레게."
"전 사실 처음 봤을 때 아가씨인 줄 알았어요."
[주인님, 그건 선 넘었는데요.]
'왜?'
[아무리 그래도 30대 중반인데 아가씨라는 호칭이 가당키는 합니까? 너무 뻔한 아부잖습니까.]
'아줌마들이 제일 좋아하는 칭찬이 뭔 줄 몰라?'
[뭔데요?]
'아가씨인 줄 알았다는 말.'
[헐.]
'진짜야. 사람이 나이가 들었다고 가장 느낄 때가 젊어 보인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질 때거든.'
"어머, 별말을 다."
"너무 젊어 보이셔서."
"아깐 저보고 결혼 한 줄 알았다지 않았어요?"
선령이 날카롭게 찔러왔다.
물론 받아낼 멘트는 장전된 상태였다.
"당연하죠. 이렇게 예쁘신데, 당연히 임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남자들이 어디 가만 놔두겠어요?"
"아이참, 진짜…. 왜 그렇게 날 띄워요. 자꾸 이러면 나 오해한다니까?"
한 발 빼는 것처럼 말했지만 이미 입은 귓가에 걸려 있었다. 기왕 나간 김에 좀 더 밀어붙였다.
"실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누나들을 좋아했어요."
"난 누나라고 부르기도 민망한데…."
"아니 그러니까 큰 누나 스타일요. 나이 차 많이 나는 누님들이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아이구, 별소릴 다 듣겠네 진짜."
선령이 점점 부담스러워했지만, 기분이 좋아보이는 건 틀림없었다. 그 결과 내 앞에서 자꾸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살랑살랑 몸을 흔드는데 전형적인 암컷의 교태였다.
'로시, 지금이야.'
[정보창 띄울까요?]
'두말하면 입 아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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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차선령 (비처녀, 22세 2개월)
나이 : 35 #공인중개사 #돌싱 #거미줄
호감도 : 69/100
개방성 : B
성감대 : 젖가슴, 목덜미, 회음부
*애무 포인트 : 스킨십과 키스를 좋아합니다.
성욕지수 : 낮음 (임신확률 : 22%)
공략팁
*위 대상은 당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커리어우먼 입니다.
-2년 전 남편과 불화로 이혼한 후 홀로서기에 성공했습니다.
-이혼녀라고 쉽게 보는 시선에 몇 번 데인 적이 있어, 그 뒤론 남자들의 작업에 철벽을 치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성욕이 해소가 안 돼 늘 욕구불만 상태입니다.
-젊고 잘생긴 당신에게 본능적으로 끌리지만, 나이가 어린 당신을 이용한다는 마음 때문에 주저하는 중입니다.
-당신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면, 그녀는 충분히 몸과 마음의 문을 열 것입니다.
-추천멘트 : "누나라고 불러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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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다.
사전 작업을 충분히 해놓았기 때문에 호감도는 어느덧 스킨쉽이 허용되는 70선에 아슬아슬 모자란 수준.
게다가 정보창의 내용으로 보아 이혼 후 남자를 거의 안 만나 욕구가 가득한 상태였다. 쉽게 말해 잔에 물이 흘러넘치기 직전의 아슬아슬한 지경인 것이다. 이 경우 사소한 몇가지 계기만 있으면 한 순간에 흘러 넘치게 만들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자신을 쉽게 본다는 인식을 주어선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이혼녀라는 낙인 때문에 과거 어쭙잖은 수작을 당한 모양인데, 아마도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어 남자와 선을 긋는 것으로 보였다.
[주인님 생각대로군요. 처음 만난 것 치곤 호감도가 상당히 올라 있습니다.]
'원래 공인중개사라는 직업적 환경이 남녀간 긴장이 유발되기 좋은 조건이거든.'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생각해봐. 집 보러 갈 때 공인중개사랑 둘이서 동행하잖아.'
[그렇죠.]
'텅 빈 집안으로 성인 남녀 둘이 들어가는 거라고. 모텔이랑 비슷하지 않아?'
[에이, 그건 너무 나갔는데요? 집에 남녀 둘만 있으면 무조건 사고가 나는 것도 아닌데요.]
'중요한 건 빈집이 일종의 밀실처럼 작용한다는 거지. 아무도 없는 집. 단 둘 밖에 모르는 비밀스러운 공간.'
[아….]
'여기서 둘이서 섹스를 해도 누구도 모를 거라는 해방감을 준달까?'
[하지만 그게 가능했으면 이미 사고가 나도 진작에 낫겠죠.]
'아니. 쉽지 않을 걸?'
[주인님은 되고 다른 남자들은 안된다고요?]
'일단 아파트를 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나이가 많지. 최소 신혼부부거나 아니면 40대 이상이란 말이야. 대부분 결혼을 했을테니 남의 여자를 건드리기 쉽지 않지.'
[주인님처럼 젊은 남자가 원룸을 구할수도 있는 거잖습니까. 지금처럼요.]
'보통의 대학생들은 서른 다섯을 여자로 안 느끼거든. 하지만 나는 업적만 걸려있으면 40대도 상관없으니까. 그게 바로 차이야.'
[아!]
'정보창으로 선령의 속내도 알았으니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 보자고.'
"아니에요. 저한테 충분히 매력적이세요."
"어머어머, 왜 이래 진짜. 자꾸 이러면 나 곤란해."
"누나."
"어, 어?"
"일을 떠나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싶은데, 혹시 누나라고 불러도 돼요?"
"…아."
"선령이 누나."
"아이참…."
정보창의 멘트대로 했더니 선령이 몸 둘 바를 모르며 얼굴이 새빨개졌다. 연유는 모르지만 "누나" 라는 단어가 그녀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키웠던 모양이다.
선령은 한참을 어쩔줄 몰라하다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나를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좋게 봐줘서 너무 고마워 도훈 학생. 하지만 갑자기 이러는 건 좀 성급한 거 같아."
"왜요?"
"그냥… 음. 솔직히 말해서 남자들은 군대에 갇혀 있다보면 그럴 수 있거든. 괜히 치마 입은 여자만 봐도 두근거리고, 여자랑 대화만 나눠도 설레고. 충분히 그 심정 이해해. 하지만…."
나는 중간에 말을 끊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저 전역한 지 벌써 5달 넘었어요. 다른 여자들한테 그런 말 꺼낸 적도 없고요."
"…음, 이를 어쩌지."
"그냥 저도 모르게 호감이 가서 그랬어요. 누나랑 친해지고 싶어서요."
"아니면 그런거 아닐까?"
"뭐요?"
"도훈 학생이 계속 군대 있다가 전역해서, 여자친구도 안 사귀다보니…."
선령이 말을 완성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내가 대뜸 대답했다.
"제가 욕구불만이라는 말씀이세요?"
"아, 아니…. 그런 건…."
"누님은요?"
불쑥 선령의 손을 잡았다.
선령이 화들짝 놀라 손을 빼려고 했으나, 꽉 잡은 손을 벗어나지 못했다.
"도, 도훈학생."
"헤어진 지 오래 되셨다면서요. 그렇게 치면 누님도 똑같은 거 아니에요?"
"아, 아니야. 나는…."
"제가 너무 어려서 그래요?"
"아니야. 하나도 안 어려. 다 컸지, 그 정도면…."
손을 붙잡힌 선령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떨궈지며 사타구니로 향했다. 차안에서 한 번 과시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다 컸다는 말에 자연스럽게 연상이 되었을 것이다.
"아까 제가 그랬잖아요. 여기서 보는 야경이 멋있을 것 같다고."
"으, 응."
"누나랑 여기서 야경 보고 가면 안 돼요? 그럼 확실하게 계약서 찍을 것 같은데."
"야, 야경을? 그치만 아직 시간이…."
"같이 기다리면 되죠."
"기다리면…."
선령이 자꾸 나의 말을 곱씹었다. 갑작스러운 대쉬에 혼란에 빠진 것으로 보였다. 하긴, 고민도 없이 금방 넘어갈 여자였다면 이혼 후 지금껏 독수공방을 하지도 않았으리라.
"이를 어쩐다…."
"왜요? 오후에 스케줄 있으세요?"
"아, 아니 딱히 임장 계획은 없는데…."
만약 정말로 내가 싫었다면 곧바로 거절했을 것이다. 이를 암묵적 동의라고 믿고 계속 그녀를 몰아세웠다.
"그럼 야경 보고 가요. 오늘 계약서 쓸게요."
"아…. 아직 해지려면 시간이…."
"같이 있어요.'
"여기서?"
"네, 누나랑 저랑 같이."
"둘이서 뭐를…."
"글쎄요? 누님이 하고 싶은 거?"
"내가…. 하고 싶은."
"가령 이런."
손을 풀어주는 동시에 그녀의 가냘픈 허리를 잡아끌었다. 배와 배가 맞닿고, 얼굴이 바짝 가까워졌다. 선령이 긴장하며 눈을 감자 천천히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아, 아…."
그녀는 좋다는 표현도, 싫다는 몸짓도 없이 나에게 입술을 허락했다. 이미 호감도가 70이 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한 행동이었다. 적어도 이런 호감에서 스킨십이 거부되는 걸 본적이 없었다.
입술끼리만 맞대는 버드 키스를 끝내고 다시 물러섰다.
성감대를 건드렸으니 분명 반응이 올것이다.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아니. 죄송하지마."
키스로 불을 붙은 선령이 이번엔 자기가 먼저 달려들었다. 꾹꾹 눌려져 있던 그녀의 욕망에 제대로 불을 붙인 것이었다.
"우웁-!"
돌싱녀의 키스는 과격했다.
그녀는 간만에 남자의 입술을 빨아보는 것처럼 허겁지겁 나에게 달려들었다. 고개를 옆으로 젖히고 혀를 집어넣고 난리도 아니었다. 타액이 교환되면서 더욱 뜨거워진 선령이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도훈 학생. 오늘 일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알았지?"
"네."
"잠깐만 기다려봐."
선령은 그제야 문단속이 생각났는지 바깥 출입문을 시건하고 돌아왔다.
그사이 나는 옵션으로 부착된 에어컨을 가동시켰다.
***
"하아, 하아, 너, 너무 커!"
가구라곤 거의 없는 텅 빈 집. 거실로 추정되는 공간에서 두 남녀가 알몸으로 뒤섞여 질퍽한 섹스를 즐기고 있었다.
"많이 큰가요?"
"으, 으응! 엄청. 어떻게 이렇게 큰 게…."
도훈의 기습 키스로 봇물이 터진 선령은 더는 욕구를 참지 못하고 그를 덮치고 말았다. 실은, 마지막에 이르러선 도훈이 자신을 강제로라도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
그녀는 너무 오래 참아왔고, 도훈의 젊은 몸을 보는 순간 밑이 저릿저릿 저릴 만큼 충동이 불같이 들끓었기 때문이었다.
그 상태에서 도훈이 '누나' 라고 부르는 순간 그녀의 뇌리에서 이성의 끈이 툭- 끊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과거부터 연하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첫 연애에서 연하를 만나서 그런지, 결혼도 4살 어린 남자와 했다.
연상보다 연하를 좋아하는 그녀의 취향 상 도훈에겐 최적의 상대였다. 잘생기고 건장한 몸뚱이가 욕망을 자극했고, 본인이 먼저 호감을 표현하는 순간 더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이미 그녀는 그런 것들을 따지기엔 전혀 순진하지 않았다. 이미 유부녀도 아닌 마당에, 호감가는 남자에게 몸을 한번 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아, 깊이 넣어줘! 더 깊이!"
맨바닥에 드러누운 선령이 온힘을 다해 도훈을 껴안았다.
< 1093. 그해, 여름-8-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