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6. 그해, 여름-1- >
하지만 도훈이 가진 스킬은 여성을 상대로 발휘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즉,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 이상 펜던트의 위력을 확인하는 게 쉽지 않았다.
'젠장. 그냥 희주랑 같이 점심이나 먹을 걸 그랬나. 펜던트 능력이나 시험하게.'
[희주양은 미션이나 업적 대상도 아니지 않습니까? 굳이 확인을 하신다면 보상이 있는 곳에 쓰는 편이 좋죠.]
'그것도 맞는 말이군. 근데 이번에 남은 미션 거의 다 털어낸 거 아니야?'
[근황을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어.'
도훈은 달성된 업적 밑으로 촤르륵 펼쳐지는 미션을 확인했다.
[새벽 간 두 개의 미션을 동시 달성하였고, 저번 캠프 미션도 완수하셨고…. 생각보다 남은 미션이 많지는 않군요.]
'가만, 이건 뭐지?'
도훈은 중간쯤 실패라고 표시된 미션을 가리켰다.
붉은색으로 음영처리되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내가 실패한 미션이 있었다고.'
미션 명 : 내 여친 쩔지?
*자신을 좋아하는 여성을 의도적으로 다른 남자에게 제공하는 미션입니다.
*해당 미션은 실패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도훈이 기억을 떠올렸다.
위 미션은 조소연을 김변에게 넘기는 방생 플레이로 달성디는 미션이었다. 김변은 성매매 현장 적발과 공무집행 방해 및 경관 폭행으로 구속되었으므로, 조소연은 분명 임무를 완수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 증거로 그녀 또한 경찰에 아직 붙잡혀 있지 않는가?
그런데 결과는 실패였다.
도훈이 흥분해 이유를 따지자 로시가 설명했다.
[아, 미처 말씀을 못 드렸군요.]
'무슨?'
[미션이 활성화된 후 주인님이 업적과 미션에 대한 기본 룰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조소연 양의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미션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가만, 내가 룰을 어기다니? 그게 뭔 소리야?'
[조소연 양에게 성공보수로 현금을 주셨잖습니까? 모든 업적과 미션에 금전거래가 포함되는 순간 자동 무효화 되거든요.]
'아니 그런!'
도훈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떠올렸다.
의식불명, 약물, 강간 또는 금전 등의 매수로 달성된 경우엔 업적과 미션이 인정되지 않는 규칙이 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조소연을 설득하기 위해 도훈은 그녀에게 거액의 현금 일시금을 지불했고, 차후 보너스까지 약속했던 것이다.
[조건은 모두 충족되었습니다. 조소연 양은 주인님께 호감이 있는 상태로 주인님의 ㅁ여령에 따라 김변과 관계를 가졌죠. 하지만 금전이 매개되면서 자동으로 미션이 소멸되어 버린 것입니다.]
'아니! 그럼 그때 바로 말 해줬어야지!'
[미션 활성화 이후 주인님이 소연양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저로서는 주인님이 미션보다 김변에 대한 응징을 더 우선한다고 생각했고요.]
'하…. 이게 무슨.'
도훈이 뒤늦게 후회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돈으로 매수하지 않는 이상 그때 소연을 설득할 방법 또한 없었을 것은 자명했다. 그녀가 처음 본 자신을 좋아하면 얼마나 좋아한다고 성매매를 자수했겠는가?
[…죄송합니다. 미리 알려드리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
'아니야. 따지고 보면 창녀를 NTR 시키는 미션이 어떻게 성립될 수 있겠어? 돈만 많으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소린데 애초부터 말이 안 되지. 결과적으로는 내가 양자택일을 한 셈이야. 소연이도 계약대로 최선을 다한 거고. 미안, 괜히 화냈네. '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주인님이 미션을 실패한 것은 처음이군요.]
'그러게. 동시에 여러 미션을 진행하니 너무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 앞으로는 미션도 신중하게 받아야지.'
[그래도 다행인 건 업적이나 미션의 경우 실패 페널티가 없다는 점입니다.]
'네. 그리고 또 업적과 미션의 차이점은 미션은 실패하면 그대로 소멸되지만, 업적은 계속해서 도전할 수 있다는 점이고요.]
'그렇구만. 그럼 아직 남아있는 과제는 뭐지?'
목록을 위로 올리자 백마 타고 흑마 타기 및 특수 직종이 더 맛있어 등의 업적이 진행중인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둘 다 당장 해결하기는 만만치 않은 내용이었다.
[저번 여름 캠프에서 흑마 업적은 가능했을지도.]
'그때 그 여자배구선수? 오우, 노. 걔는 줘도 안 먹어.'
아무리 도훈이 비위가 좋아도 그런 흑누나는 별로였다.
모델같이 예쁜 흑인도 많은데, 하필 그 여자는 남자를 압살해 버릴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인종에 대해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생긴 것에서 이미 탈락이었다.
[특수 직종 업적은 현재 2개 직종만 남은 상태입니다.]
'여의사랑 치어리더? 치어리더는 조만간 야구장 가기로 했으니 그때 착수하면 될 것 같고, 여의사가 그나마 지금 도전 해볼만 하군.'
도훈은 왕가슴 간호사 박지애 병원에 근무하던 여의사를 떠올렸다. 당시 업무 중이라 얼굴만 익히고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도훈은 지애에게 전화를 걸려다 순간 멈칫했다.
'가만, 근데 지애한테 연락하면 괜히 또 눈치 보이는 거 아니야?'
지애는 먼저 연락하는 경우는 잘 없었지만, 어쨌든 연락이 닿고 나면 자신의 뜻을 오해할 가능성이 컸다. 또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걸 뻔히 아는 마당에 대놓고 여의사를 노리고 있다고 광고할 수도 없었다.
'안 되겠다. 지애한테는 말 안하고 병원에 직접 연락해서 예약 잡아야지.'
도훈이 병원에 전화를 걸어 여의사를 찾았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해당 의사는 마침 휴진이었다.
"선생님은 외국으로 세미나를 가셔서 다음주까지 휴진이세요. 혹시 다른 의사분으로…."
뚝-
도훈이 허탈하게 전화를 끊었다.
'이건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는데.'
[그럼 어쩌시려고요?]
'그냥 새로 도전해볼 만한 업적 같은 거 없을까? 생각해 보니 최근 계속 돌발 미션만 해치우느라 레벨업이 더딘 거 같아서 말이야.'
[좋은 생각입니다. 하루빨리 고수에 도전하셔야죠.]
'이제 중수 찌끄레긴데 무슨.'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입니다만.]
도훈은 다시 업적창을 열어 업적 목록을 확인했다. 한동안 업적에 도전하지 않았던 터라 미완료된 업적이 잔뜩 쌓여 있었다.
'후아. 무슨 업적이 아직도 이렇게 많아?
도훈은 한참 스크롤을 내리다 결국 끝까지 다 내리지도 못하고 포기했다.
[108개의 업적 중 주인님은 고작 30% 남짓 달성했을 뿐입니다. 당연히 70%가 남아있겠죠.]
'일단 눈에 띄는 거 몇 개 골라봤는데 조폭 저건 목숨을 내놓고 하는 업적이냐?'
[어떤 거 말입니까?]
도훈이 스크린에 목록 하나를 가리켰다.
업적명 : 아임 아이언맨
달성조건 : 조폭 두목 애인과 떡치기
[아, 아이언맨 업적 말이군요. 말 그대로 철의 심장을 가져야만 가능한 업적입니다. 참, 주인님 조폭하고도 커넥션이 있지 않습니까? 어찌어찌 시도는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글쎄? 성공하든 실패하든 나중에 드럼통에 시멘트랑 같이 묻혀 바닷가 밑바닥에서 발견될 것 같지 않냐?'
[크흠, 확실히 위험하긴 하군요. 그럼 그 아래 업적은 어떻습니까?]
'뭐, 대중교통 매니아?'
업적명 : 대중교통 매니아
달성조건 : 지하철, 버스, 택시 등에서 이성과 세 가지의 체위를 이용하여 관계시 달성(단, 서로 다른 사람이어야 하며 타인에게 발각시 실패. 또 반드시 질내사정 해야 함.)
'로시야."
[넵.]
'히토미 꺼라.'
[네?]
'인새잉 야동이냐? 저게 안 들킬 거라고 생각하는 게 더 웃기지 않아. 다른 사람들은 눈이 삐꾸야? 아니, 막말로 버스나 지하철은 사람 없을 때 한다고 쳐. 택시기사가 무슨 심봉사도 아니고. 아니 그건 더 위험하잖아? 봉사가 택시드라이버면.'
'흐음…. 그렇다면…. 현식적으로 가능한 미션이라면….'
[뭔데?]
도훈은 로시가 고르는 또 다른 업적을 살폈다.
업적명 : 태양의 후예
달성조건 : 여군부사관이나 여군장교를 부대 내에서 공략에 성공.
도훈이 잠시 턱을 짚고 생각에 잠겼다.
'여군 간부를 꼬신다고? 이건 도전해보고 싶긴 한데 부대 내에서 어떻게 가능하지?'
도훈이 목에 걸린 군번줄을 쓰다듬었다.
'태영이 이 새끼 군대 갔으니, 면회가는 셈 치고?'
하지만 이제 막 입대한 태영이 신병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아 면회까지 가능하려면 최소 석달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또한 면회를 가 해당 부대의 여성 간부를 꼬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었다.
'아니야.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아! 혹시 야비군?'
[야비군이라뇨?]
'아니 에비군 훈련 말이야. 생각해보니 아직 민방위 전환 안 됐을 것 같은데?'
이도훈의 전역은 올 2월.
그렇다면 아직 예비군 기간이 길게 남아있었다.
'근데 나 예비군 소집이 언제지?'
이정우로는 전역한 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도훈은 잠시 검색을 통해 예비군 기간을 살폈다.
'아…. 전역한 첫해에는 예비군 소집이 면제구나. 그럼 내년부터 가능하다는 소린데….'
좀 더 알아보자 대학교 재학 중일 때는 3박4일짜리 동원 예비군이 면제되고 당일치기 학생예비군만 출석하면 그만이었다. 그것도 내년부터.
'아니야. 여자 군인은 만나기도 힘들겠어. 이것도 패스. 로시, 이런거 말고 기존에 있는 여자들과 달성가능한 업적은 없을까?'
[그렇다면…. 잠시만요.]
업적명 : 피부에 양보하세요
달성조건 : 10명의 여성의 온 몸을 마법의 정액으로 펴 바르기.
[주인님이 좋아하시는 얼싸 배싸 등싸 모두 가능한 업적입니다.]
'다 좋은데 10명은 좀 오버다. 거기다 온 몸에 펴바르라니…. 내 정액이 무슨 콸콸 뿜어져 나오는 용천수도 아니고….'
[지난번 받은 마법의 팬티를 활용하면 정액양을 늘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입고 정액을 늘린 뒤 10명의 여자들을 만나 온 몸에 펴발라야 가능한 업적이라는 거잖아?'
[네.]
'패스.'
[그럼….]
업적명 : 그대 이름은 바람바람바람.
달성조건 : 바람피는 여자를 후리고, 박고, 뚫고, 싸고, 호감도 100으로 만들어 노예로 만들자.
[이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호오. 가만, 바람바람바람?'
[마침 홍정원이 주인님과 불륜중이니 충분히 시도해 볼만합니다.]
'이거네. 이건 가능.'
도훈은 생각난 김에 곧바로 홍정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 평소보다 목소리를 깔며 껄렁껄렁하게 말했다.
"여어, 누님. 잘 계셨지?"
-어머 이게 누구야? 마침 연락하려던 참인데.
간만에 통화가 된 정원이 반가운 목소리로 도훈을 반겼다.
"저번에 맡긴 의뢰 때문에 말이요."
-맞다. 그건 어떻게 됐어?
"잘 됐지. 그 변호사 새끼 지금 유치장 들어가 있거든."
-진짜? 어쩐지 요새 연락도 안 오더라니.
"연락?"
-지난 주에 몇 번 연락이 왔는데 내가 일부러 전화를 피했거든. 그러니까 아예 뚝 끊기더라고. 그게 감옥에 가서 그랬구나?
"아직 형이 확정된 건 아니고 현장에서 붙잡혔는데 구속수사 중일 거요. 그나저나 이 정도면 충분히 패가망신은 시킨 거 같은데, 이제 슬슬 잔금정리해야지 않겄소?"
-응, 응. 준비해 놨어. 오늘 시간 돼?
"누님 만날 시간이야 늘 되지."
-아니…. 그 시간 말고….
정원이 야릇한 목소리로 도훈을 유혹했다. 도훈은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단박에 알아챘다. 하지만 전혀 모르겠다는 듯 딴청을 피웠다. 정원을 더욱 애닳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뭔 시간 그럼?"
-아니….
"그나저나 어디서 볼까?
-현금을 건네줘야 하니까 사람들 눈에 안 띄는 곳이 좋겠어.
"그럼 저번에 만난 모텔밖에 없네."
-응, 응. 거기서 1시간 뒤에 보자.
통화를 끝낸 도훈이 잔금을 받을 생각에 들떴다.
'키야. 돈 벌기 쉽네. 여자도 먹고, 돈도 벌고. 기둥서방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말이지.'
[주인님 능력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겠죠. 하지만 꼭 교사가 되셔야 합니다.]
'알고 있다고. 그놈의 제약이 뭔지.'
[주인님. 잊으셨나 본데, 주인님의 몸은 온전히 주인님의 것만은 아닙니다. 전 주인의 평생의 한을….]
'알았다니까. 나도 염치를 아는 사람이야. 무조건 교사는 될 거니까 걱정하지마.'
[넵.]
도훈도 답답함을 느꼈지만, 빙의의 조건 중 하나였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원주인에게서 받은 훌륭한 몸이 아니었으면 기둥서방이고 뭐고 꿈도 꾸지 못했을 테니, 보답의 의미로 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당연했다.
'하긴 뭐 기둥서방 정도로 만족할 몸이 아니기도 하고.'
도훈은 역용마스크로 얼굴을 바꾸며 생각했다. 일부러 나이가 들어 보이게 만들자, 30대에 가까운 외형이 만들어졌다.
"음, 됐어."
준비를 마친 도훈은 차를 타고 일전에 정원을 만났던 모텔로 이동했다. 중간에 통화를 해보니 정원은 마음이 급했는지 벌써 모텔에 도착해 방을 잡고 있었다.
도훈은 정원을 만나기 전에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그녀에게서 잔금을 받아 남은 채무관계를 정리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바람바람바람 업적에 도전하며 새로운 아이템의 위력을 시험해 보는 일이었다.
정원이 기다리는 방에 들어가자 그녀가 얌전한 차림으로 앉아있었다.
"어, 왔어?"
확실히 애 딸린 유부녀라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젊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성숙한 여성 특유의 색기가 온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 1086. 그해, 여름-1- > 끝.
ⓒ 성난불기둥
작가의 말
주말 양일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