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5. 회장의 자격.-23- >
"왜?"
"어떻게 저한테 그러실 수 있어요?"
이성을 되찾은 아영은 평소처럼 새침한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미친년 널뛰기하듯 변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속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미친년'
[동감합니다.]
'완전 또라이잖아.'
"뭐야? 너도 하고 싶어서 한 거 아니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로 안에 싸버리면 어떻게 하냐고요!"
아영은 섹스한 것을 따지는 게 아니라 질내사정을 질책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할 말은 있다.
"네가 안에 싸라면서?"
"제가요?"
아영이 금시초문이라는 듯 물었다.
이쯤되면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분명 그랬다고, 네 입으로."
"제가 언제요?"
하긴 미친년처럼 머리를 풀어 헤치고 후장을 박아 대던 아영이 제정신일리 만무했다. 지금 아영은 오리발을 내미는 게 아니라 정말 그 순간의 기억을 깡그리 잊어버린 듯했다. 이중인격도 아니고 진짜.
"휴…."
나는 아영의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머리에 열은 없는 것 같은데."
"아, 아니…."
"박아영. 미안하지만 난 분명 안에 싸도 되냐고 물었어. 기억이 안 난다면 나도 할 말 없지만."
"……."
이마에 손을 얹자 이상하게 아영의 얼굴이 불그스름 홍조를 띠었다. 후장을 박을 때도 아무렇지 않던 애가 이마에 손 한번 짚었다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퍽 우스웠다.
"암튼, 너무 불안해 하지마.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다 책임질 테니까."
물론 책임질 일은 없을 것이다.
"거짓말."
"뭐?"
"오빠가 만나는 여자가 한둘이에요? 다른 여자들한테도 맘대로 싸놓고 그렇게 무책임하게 말씀하시는 거 아니냐고요."
"잠깐."
나직하게 목소리를 깔고 아영을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아영아, 내 상식으로는 말이야…."
미션도 완수했겠다, 깔끔하게 아영과의 관계를 매조지 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나에겐 어장 안의 수많은 인원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스킬이 있다.
나는 아영에게 나와의 질사가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내용과 더불어 앞으로의 관계에 대해 입장을 정리했다.
"알겠지? 이건 회장과 부원의 친목 활동 같은 거라고."
"친목 활동…."
눈빛이 탁해진 아영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회장은 모든 부원과 별도로 친목 활도을 가질 수 있는 거거든. 회장에 임명된 자의 자격이랄까?"
"아…."
상식 개변의 힘은 강력하게 작용했다. 특히 나에 대한 호감도가 이미 90을 돌파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영의 상식을 뒤집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렇지. 집행부원이 회장과 친하게 지내야 학과를 잘 이끌어 갈 수 있을 테니까. 너도 알다시피 회장과 부원의 친목 활동은 모두에게 비밀로 하는 게 관례야. 내가 누구랑 언제 친목 활동을 하는지에 대해선 절대 몰라야 해."
"네, 선배."
"말귀를 잘 알아 듣는구나."
세뇌가 끝난 아영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탁해진 눈빛이 총기를 갖자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아영에게 말했다.
"혹시 몰라서 2편 이어서 켜달라고 했는데 아직 한참 남았네. 집에 늦게 들어가도 돼? 부모님 걱정하실 것 같은데."
"전 괜찮아요."
"그렇구나."
의외로 아영의 집은 개방적이었는지 다 큰 딸이 늦게 귀가하는 것에 대해 딱히 문제 삼지 않는 듯했다. 하긴 아영이처럼 평소 똑부러진 스타일이라면 걱정할 일이 거의 없겠지만.
"그래, 그럼 여기서 좀 쉬었다가…."
"저, 선배."
그때 나란히 누워있던 아영이 내 손등위에 손을 얹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세뇌는 끝났으니 딱히 나와의 섹스에 의문을 갖진 않을 것이다.
"응? 무슨 할 말 있어?"
"혹시…. 그 친목 활동 한 번 더 할 수 있을까요?"
"어?"
결국 나는 아영의 그칠 줄 모르는 성욕을 채워주기 위해 남은 영화가 끝날때까지 힘차게 허리를 흔들어야 했다. 이건 세뇌랑 상관없던 모양이다.
***
"어휴, 더워 죽겠네."
방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도훈이 에어콘 리모컨을 찾기 위해 머리맡을 더듬었다. 하지만 늘 미스테리하게 사라져 버리는 리모컨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더위를 못 참고 잠에서 깬 도훈이 땀에 젖은 반 팔을 벗어 던지고 샤워실로 향했다. 찬물에 몸을 식히고 나자 겨우 정신이 들었다.
'로시, 지금 몇시야?'
[방금 막 정오 지났습니다.]
'젠장. 반나절이나 까먹었다니.'
찬물에 머리를 뿌리던 도훈이 새벽녘 일을 떠올렸다.
두 번재 영화가 모두 끝날때 까지 질펀하게 아영과 섹스를 마친 도훈이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었을 때는 이미 아침 해가 떠오르는 시각이었다.
여름이라 해가 일찍 뜨는 걸 고려하더라도, 하룻밤을 꼬박 샌 셈이다. 그 후 원룸으로 기어들어와 쓰러지듯 잠들고 12시가 넘어서 겨우 깨어난 것이었다.
"어휴, 진짜 어젯밤 아영이 엄청났다."
새벽 내내 아영에게 시달린 도훈은 그녀와의 섹스를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그전까지 그렇게 계속 점잔을 빼던 아영은, 정작 개통식이 끝나자마자 본색을 드러냈다. 특히 후장에 노골적으로 집착하여 섹스를 할 때 꼭 뒤를 대주는 습관이 있었다.
"진짜 그렇게 밝히는 앤줄 꿈에도 몰랐는데."
[의외긴 했습니다. 확실히.]
'아, 맞다 어제 보상도 확인 못 했네.'
[그러잖아도 주인님 깨어나시면 아이템 보상현황을 알려드리려고 했습니다. 스크린을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찬물 샤워를 마친 도훈이 에어컨 바람에 몸을 식히며 스마트 워치의 스크린을 확인했다.
=미션보상 (아직 확인하지 않은 알림이 2개 있습니다.)
'2개라고?'
=축하합니다. 청개구리의 신의 미션을 성공하였습니다.
미션 보상으로 5,000 포인트와 츤츤거리지 맛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첫 번째 보상은 도훈도 익히 아는 것이었다.
하지만 밑으로 두 번째가 더 있었다.
=축하합니다. 동정남 미션이 달성되었습니다. 미션 보상으로 동정남의 펜던트가 지급됩니다. 아이템을 수령하시려면….
"끼요오옷!"
도훈이 자기도 모르게 괴성을 질러싿.
깜빡 잊고 있던 동정남 미션이 어느새 해결된 것이었다. 그 말의 의미는 태영이 어젯밤 아다를 뗐다는 것.
깜짝 놀란 도훈이 핸드폰을 집어 드는 데 마침 타이밍 좋게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희주였다.
-오빠?
"어, 희주야."
-깨톡에 답이 없길래 걱정되서 전화했어요?
도훈이 아차싶은 마음에 재빨리 깨톡을 확인하자 아침부터 희주에게서 온 메시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제야 도훈은 아영이 미션을 위해 희주를 모텔에 버려두고 온 사실을 떠올렸다.
'맞다, 희주에게 급한 일이 생겨서 간다고 해놓고 점심때까지 연락이 없으니 걱정했나 보군.'
"어어, 아니야. 아침에 좀 바빠서."
희주를 버려두고 아영이랑 새벽 내 떡을 치다 뻗었다는 얘기를 차마 할 순 없었다.
-그러셨구나. 전 또 무슨 일 난 줄 알았어요. 아침에 깼는데 오빠도 없고 쪽지만 달랑 남아 있어서요. 연락도 안되고.
"아, 미안. 그게 말이지…."
도훈은 능수능란하게 거짓말을 급조했다. 물론 희주로서는 절대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러셨구나. 괜히 오빠 귀찮게 했나 보네요. 전 사정도 모르고
"아니야. 이제 좀 괜찮아졌어."
-아 맞다. 오빠 대박! 혹시 우선 오빠랑 태영이한테 연락 왔어요?
"아니? 왜?"
-친구들이랑 아까 통화했거든요. 둘 다 어제 총각 딱지 떼줬다던데요?
"헐! 진짜?"
-네. 근데 진짜 웃겼데요.
희주가 두 사람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은 핟 긴장한 나머지 상대에게 완전히 리드 당했다고 한다. 경험이 없는 남자들이 으레 그러하듯, 첫 섹스는 5분도 안 돼 끝나버렸다고.
-푸흡. 현아가 완전 토낀 줄 알았다잖아요.
"우선이가 긴장 많이 했나 보네."
-그러니까요. 암튼 그 뒤로 다시 세워서 한 번 더 했데요. 두 번재는 좀 괜찮게 하더라나? 아아, 그리고 태영이가 더 대박이에요.
"태영이?"
도훈도 어찌된 일인지 궁금했기 때문에 희주가 전해준 후일담에 귀를 기울였다.
라면 먹고 가라는 말에 태영은 소연의 자취방으로 입성했다. 태영은 하도 긴장한 나머지 소연이 끓여준 라면을 몇 젓가락 입에 대지도 못했다고 한다.
"정말로 태영이가?"
-네. 그 식탐 쩌는 애가 완전 얼어가지고 눈만 껌뻑거렸다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 모습을 본 소연이가 갑자기 골려주고 싶어서 태영이보고 라면 다 먹었으면 집에 가라고 했나보더라고요.
***
"라면 다 먹었으면 이제 집에 가."
"가, 가라고? 집에?"
소연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 너 혹시 응큼한 생각으로 우리집에 따라온 거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태영은 완전히 낙담하여 어깨를 떨구었다.
분명 자취방까지 따라가면 거사를 치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라면만 먹여 돌려보내는 소연이 야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까지 돟누의 조언을 잘 따르고 있던 태영은 마지막에 이르러 뜻이 좌절되자 완전히 멘탈이 나가버렸다.
"어, 어떻게 안 될까?"
태영이 갑자기 비굴하게 나오자 장난으로 시작한 소연도 불쑥 그가 어디까지 나오는지 보고 싶어졌다.
"뭘?"
"아, 아니 나 이제 군대 가는데…."
"군대? 어. 잘다녀와. 몸 조심하고."
소연의 짖궂은 장난에 태영은 결국 바닥까지 내보이고 말았다. 현관 앞까지 그를 배웅하는 소연을 향해 불쑥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하, 한번 만!"
"어? 왜 갑자기 무릎을 꿇는데? 사람 부담스럽게."
"제발 한 번만 주라 소연아. 진짜 나 딱 한 번만."
"아니 그러니까 뭘 주냐고? 라면 잘 먹어놓고 왜 갑자기 딴소린데?"
소연이 점점 비굴해지는 태영의 태도가 어의가 없어 팔짱을 끼고 따졌다. 그깟 섹스가 뭐라고 처음 본 여자 앞에서 무릎까지 꿇는다는 말인가?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한 번만!"
소연이 매몰차게 나올수록 태영은 더욱 더 비굴하게 소연에게 매달렸다. 오늘을 놓치면 전역 전까지는 절대 여자를 못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를 절박하게 만들었다.
"내가 너 진짜 시키는 대로 다 할게. 한 번만…. 한 번만 주면 안 되겠니?"
소연은 어이가 없었지만 계속 딴청을 피웠다.
"그니까 대체 뭘 주냐니까?"
그러자 태영이 두고두고 흑역사로 남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나, 나 딱 한 번만 너 따먹으면 안 될까?"
이야기를 듣던 도훈이 자기도 모르게 실소했다.
미션이 클리어된 것에 그런 사정이 숨겨져 있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푸핫-. 진짜로 태영이가 그런 말을 했다고?"
-그렇다니까요? 소연이도 그 말하곤 빵 터지더라고요. 그렇게 간절한 눈빛은 처음 봤다면서.
"세상에…. 그래서 결국 둘이 한 거야?"
-불쌍해서 줬데요, 진짜로 불쌍해서.
"아…."
-소연이 걔가 은근 마음이 약하거든요. 겉으론 맨날 툴툴거리는데 막상 남자들한테 퍼주는 호구에요. 그래서 게임 아이템 사기도 만힝 당하기도 했고.
"그랬구나…."
뒷이야기는 별 내용 없었다.
역시 총각들의 첫경험이란 별 볼일 없듯. 기껏 마음먹고 소연이 한 번 대줬더니, 제대로 구멍도 못찾고 허둥대더란 얘기가 전부였다.
"그래도 하긴 했네. 태영이 자식."
-그니까요. 어제 모인 사람은 결국 다 했네요.
[주인님은 한 명 더 있는데 말이죠.]
'쉿-. 아무리 희주라도 이건 비밀로 해야지. 그러면 희주 상처 받아.'
[주인님이 언제부터 다른 여자들 눈치를 봤다고요?]
'그래도 희주가 날 너무 좋아하니까 괜히 미안하잖아. 알릴 필요가 없는 일은 모른 척 해야지. 모르는 게 약이야.'
"그래, 암튼 새벽에 먼저 가서 미안."
-아니에요. 바쁜일 있으셨다면서요. 전 괜찮아요.
"그래. 나 이제 밥 먹을 준비해야겠다. 희주 너도 점심 맛있게 먹어."
-아… 네, 오빠도요.
희주는 뭔가 더 할말이 있는 듯 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는지 전화를 끊었다. 도훈은 아마도 희주가 점ㅅ미을 같이 먹자는 말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애써 모른 척 했다.
희주도 희주지만 우선 새로운 아이템부터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새로 얻게 된 아이템이 모두 두 개인가?'
[네. 츤츤거지지 맛과, 동정남의 펜던트입니다.]
츤츤거리지맛은 특정한 상대에게만 쓰는 아이템이므로 바로 집어넣고 도훈은 전송되어 온 펜던트에 더 눈길을 주었다. 말이 펜던트지 군번줄로 오해할 정도로 투박한 디자인이었다.
'아니, 이건 근데 디자인이 왜 군번줄이야?'
[아무래도 군대가는 태영군의 마지막 선물이라 그렇게 디자인 된 것 같습니다. 외형을 바꾸시겠습니까?]
생각해 보니 군번줄 디자인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아직 예비군이 끝나지 않아 군번줄을 기념으로 가지고 있다고 하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본래는 군번이 새겨진 쇠판 위로 오늘 날짜와 알수 없는 언어가 적혀 있었다. 얼핏 보면 라틴어를 닮아 있었지만, 막상 또 자세히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이게 뭐라고 써진 거야? 날짜는 오늘 날짜가 맞는 것 같은데.'
[고대어입니다. 현재 지구상에선 사멸된 언어죠. 위대한 마법사의 자질을 보였던 김태영의 동정을 기리며. 라고 씌여 있습니다.]
'헐! 아니 왜 내 목걸이에 태영이 이름을 적어놔?'
[결국 태영군 때문에 마력 증폭 목걸이를 얻은 셈이니까요. 주인님이 아니었다면 태영군은 정말로 대마법사가 되었을지도 모르거든요. 결국 동정을 희생하며 마력을 포기한 셈이랄까?]
'근데 그게 정말이었어? 스물 다섯까지 동정이면 마법사가 된다는?'
[지구가 아닌 일부 시스템에선 사실입니다. 거기에서 마법사가 되려는 사람들이 절대 섹스를 하지 않거든요. 정확히는 정액을 배출하는 행위를 일체 삼가죠.]
'딸딸이도 못쳐? 무슨 동자공도 아니고.'
[네?]
'아니야. 혼잣말. 근데 이건 어떻게 쓰는 거지?'
[딱히 사용법이 없습니다. 목에 걸어 착용하고 다니면 주인님의 마력이 증폭되어 각종 스킬이 훨씬 강해집니다. 지속시간 증가 및 위력까지도요.]
'정말 이건 한 번 시험해 봐야겠는데.'
목걸이를 착용한 도훈이 기대감에 사용할 스킬을 떠올렸다.
< 1085. 회장의 자격.-23- > 끝.
ⓒ 성난불기둥
작가의 말
이 회장은 나쁜 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