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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088화 (1,055/2,000)

< 1071. 회장의 자격-9- >

"누가 온다고?"

성수가 뜬금없다는 듯 물었다. 그러자 소연과 현아가 서로를 쳐다보더니 희주를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희주, 너 설마 우리한테 거짓말한 거야?"

"이건 얘기가 다르잖아?"

"아, 아니 그게…."

태영의 깽판으로 시작된 불똥은 이제 희주에게 번지고 있었다. 희주는 다 된 밥에 재를 빠뜨린 태영을 속으로 원망했다.

'어휴, 저 병신 새끼 진짜. 다들 취해서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였는데 하필 오빠를 들먹이는 바람에….'

물론 태영은 분했을 것이다.

곧 군대 가는 그를 송별하고자 모인 자리.

선배와 동기들에게 축하도 받았고, 잘 논다는 희주 친구들까지 소개받아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던 그였다.

하지만 애석하게 희주의 친구들은 태영에게 무관심했다. 의외로 숫총각 우선과, 근육떡대 성수에게만 호기심을 드러내며 그를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취급했다.

하지만 이는 태영의 섣부른 투정이었다.

'그냥 닥치고 있으면 어련히 떠먹여 줄 건데 무슨 억하심정으로 어깃장을 놓냐고, 병신새끼가!'

어차피 성수는 금방 떠날 사람.

여친과 사이가 돈독한 그는 바람기라곤 전무한 지고지순한 사내로 알려져 있었다. 그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면, 희주의 친구들도 꿩 대신 닭이라고 아쉬운 대로 태영과 다시 어울릴 것이다.

어차피 두 사람이 술자리에 끝까지 남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을 염두한 포석.

하지만 희주에 배려에도 태영은 스스로 초를 치고 말았다.

'줘도 못 먹는 새끼, 니가 그러니까 평생 그 모양인 거야.'

희주는 태영이 밉살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도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도 모르고, 우걱우걱 안주나 처먹고 있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자 그나마 눈치가 빠른 성수가 상황을 파악하고 재빨리 수습에 나섰다.

"아아, 잘생기인? 하핫, 난 또 누구라고?"

"예?"

"설마 도훈이 말하는 거였어? 잘생겼다니까 순간적으로 착각했잖아."

"그 오빠 이름이 도훈이에요?"

"희주가 엄청 잘생겼다던데? 아니였어요?"

성수가 일부러 과장되게 너스레를 떨었다.

"아니 뭐, 잘 생기긴 했지. 아니 근데 나는 걔랑 입학 동기거든. 어쩌다 보니 지금은 한 학년 위지만. 신입생 코찔찔이 시절부터 봐와서 그런지 잘생겼다고 하니까 순간적으로 헛갈렸잖아."

"아…."

"근데 그 오빠는 언제 와요? 오긴 와요?"

"도훈이? 아까 후배 바래다준다고 잠깐 나갔어. 언제 갔지, 우선아?"

성수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우선까지 끌어들였다.

우선이 곧바로 대답했다.

"대충 1시간쯤 됐을걸요?"

"그럼 돌아올 때 대충 된 것 같은데? 너희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희주가 거짓말한 건 아니야."

"아…. 미안 희주야."

"우린 그것도 모르고."

두 사람이 곧바로 희주에게 사과했으나, 희주의 굳은 표정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태영의 한 마디에 지금까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건시 너무나 원통하고 분했다.

'정태영 진따 두고 봐. 그래도 동기랍시고 진상부려도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이건 진짜 아니지.'

희주가 친구들의 사과를 받으며 이를 부득 갈았다. 성수가 까딱했다간 일이 복잡해질 것 같은 생각에 서둘러 도훈을 부르기 위해 움직였다.

"나 잠깐 담배 좀 피우러 나갔다 올게."

성수는 가게를 나가면서 일을 그르친 태영의 발등을 일부러 콱- 밟았다.

"악!"

"어, 미안. 발이 있는지 못봤다야."

"아흑, 혀, 형!"

"어두워서 말이야."

태영을 응징(?)한 성수는 밖으로 나가자마자 핸드폰을 들었다. 일이 꼬이는 바람에 도훈이 다시 등장하지 않으면 자칫 희주가 곤란할 처지였다.

하지만 담배를 물고 통화를 한참 기다리는데 도훈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체 이 자식은 어디서 뭐하고 있는 거야? 진짜로 아영이랑 눈 맞은 건 아니겠지?'

-연결이 되지 않아 삐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통화가 걸리지 않았지만, 성수는 재차 연결을 시도했다.

'제발 좀 받아라! 지금 너 안돌아오면 여기 나가리다.'

성수가 전전긍긍한 마음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는데 그제서 통화가 연결되었다. 성수가 다짜고짜 수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도훈아! 큰일 났다."

***

"저는…."

아영이 마침내 입을 여는 순간.

갑자기 테이블 위에 놓인 도훈의 휴대폰이 부르르 울리기 시작했다. 겨우 말문이 트였던 아영이 그 모습에 도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우시, 타이밍하고는! 대체 누구야?'

[아쉽군요. 거의 다 넘어간 분위기였는데.]

도훈이 힐끔 보니 발신인이 성수였다.

"이건 신경 쓰지 마. 하던 얘기나 마저 하자."

"……."

도훈은 아영의 부담을 덜기 위해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꾸었다. 계속 걸리던 전화가 부재중으로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영은 계속 침묵했다.

"괜찮다니까. 별일 아닐 거야."

그 순간 또 다시 성수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받으세요. 급한 전화 같은데."

"성수형이 그냥 잘 들어갔나 안부 전화 한 걸거야."

"제가 불편해서요."

"음."

도훈이 씁쓸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받았다. 성수가 알고선 방해한 건 아닐테지만, 여로모로 아쉬운 타이밍이었다.

-도훈아! 큰일 났다.

"예?"

-아니 태영이 이 새끼가 눈치도 없이…. 좌우간 얼른 다시 돌아와야겠다.

"지금요? 아깐 오지 말라면서요?"

-사정이 그렇게 됐어. 너 안 오면 희주가 입장 난처해질 것 같은 상황이야. 아영이는 잘 돌려 보냈어?

성수는 목청이 워낙에 큰 편이라 수화기 바깥으로 아영까지 통화 내용을 엿듣고 말았다. 도훈은 아차하는 마음에 고개를 돌리며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네, 곧…."

-암튼 얼른 튀어 와. 근데 태영이 그 새끼는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돌아버리겠다 진짜.

도훈이 급히 통화를 마치는데 아영이 물끄러미 도훈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가보셔야 해요?"

"아니 그게…."

뜬금없는 태영의 급발진이 부른 나비효과가 이젠 도훈의 계획마저 망가뜨리고 있었다. 도훈은 설명을 낟 릉어도 대충 알 것 같은 분위기에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오! 태영이 이 새끼 진짜 끝까지 말썽이네!'

[대충 보니 태영 군이 또 한 건 터뜨렸나 보군요.]

'이 새끼는 대체 뭐가 잘못된 거야? 왜 하는 일마다 엉망진창으로 만드는데?'

[그걸 고치러 군대를 가기로 한 것인데, 아직은 민간인이니까요.]

아영은 짐짓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며 말했다.

"알겠어요. 이만 일어나죠."

"잠깐. 우리끼리 하던 얘기는 마저 하고 가지?"

"전 별로…."

아영이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갑자기 말하고 싶은 기분이 사라졌어요."

"아, 아영아."

"그리고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뭐?"

"다음부턴 스케줄 바쁠 것 같으면 연락 자제해 주세요. 저 그렇게 쉬운 여자 아니니까."

"아영아. 그게 아니라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됐어요. 어차피 시킨 술은 다 비운 것 같으니까."

아영이 잔뜩 토라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그 순간 몸을 휘청거렸다.

"어, 어?"

"조심해"

도훈이 잽싸게 아영을 부축했다. 아영은 스스로 생각해도 겸연쩍었는지 부축하는 도훈의 손길을 뿌리쳤다.

"괘, 괜찮아요."

"취한 거 아냐?"

"이 정도론 어림없어요."

"아니 너무 빨리 마셨잖아. 소주 반병 가까이 한 번에 들이켰는데 당연히 취하지."

"……."

도훈의 말처럼 아영은 살짝 알딸딸한 상태였다. 평소 술이 센 편이긴 하지만, 홧김에 폭탄주를 들이킨 게 화근이었다.

"나 참. 이래서 어떻게 집엘 가? 내가 바래다줄게."

"가보셔야 한다면서요?"

"늦으면 좀 어때?"

"전 신경 쓰지 말고, 볼일 보세요. 혼자 택시 타고 가면 되니까."

자존심 강한 아영이 한사코 도훈의 배웅을 거절했다.

'치…. 원하는 걸 말하라고 할 땐 언제고.'

실은 아영은 거의 도훈의 설득에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특히 모든 것을 비밀로 해준다는 소리에 혹해, 자기도 모르게 숨겨왔던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낼 뻔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성수의 전화로 흐름이 끊어졌고,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도훈의 말빨에 농락당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도훈이 처음부터 그 대답을 유도한 것처럼.

'아냐. 차라리 잘 됐을지도 몰라. 괜히 도훈 오빠같은 사람이랑 엮였다간 나만 괴로워질 테니까. 저 사람은 천하의 바람둥이란 걸 잊어선 안 돼.'

하지만 내심 속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공존했다.

딱 한 마디.

거기서 한 마디만 더 내뱉었다면, 어쩌면 도훈과 오늘 밤 무슨 일이든 벌어졌을게 분명했다.

가게 밖으로 나온 아영은 복잡한 감정을 애써 숨긴 채 택시를 잡기 위해 손을 흔들었다. 그때 도훈이 아영에게 말했다.

"아영아, 잠깐 내 말 좀 들어봐."

"왜요?"

"이대로 그냥 보내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상관없어요. 오빠가 언제부터 그렇게 저를 생각했다고요?"

송곳처럼 쿡쿡 찌르는 말투였다. 이점에선 도훈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니가 뭘 하든 전혀 신경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아니 그래도…. 늦은 시간에 불러놓고 그냥 보내면 내가 너무 면목이 없는데."

"그럼요?"

도훈이 아이디어를 쥐어짰다.

'어떡하지? 어떻게 하면 양쪽에서 벌어진 일을 모두 수습할 수 있지?'

[계란을 양손에 쥐려다간 둘 다 놓치고 말걸요?]

'그래도 쥐고 싶다고.'

[흐음…. 정 그러면 스킬이라도 쓰시겠습니까?]

'무슨 스킬?'

[떠나려는 아영양을 붙잡으려면 상식개변 밖에 없지 않을까요?]

'세뇌라도 걸란 말이야?'

[달리 방도가 없었으니까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은데.'

카사노바의 후예를 자처하는 도훈에게도 나름의 철칙이 있었다. 처음 관계하는 여자를 최면으로 따먹지 않는다는 것.

어차피 최면이 통할만큼 호감도가 올라간 상대라면, 그의 능력으로 능히 해치울 수 있다는 소리였다. 뜸만 들이면 끝나는 상황에서 굳이 밥솥을 강제로 열고 싶진 않았다.

이는 자존심의 문제였다.

하지만 이대로 아영을 돌려보낸다면 앞으로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걸릴지도 몰랐다. 겨우 그녀의 마음을 열었는데, 다시 닫혀버리면 모든 것이 초기화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군. 근데 상식개변이 통할만큼 호감도가 올라있는 상태일지 아직 확신할 수 없는데.'

상식 개변은 정신을 직접 조작하는 스킬인 만큼 전제조건이 복잡했다. 그래서 도훈은 관계를 맺고 난 후 섹파로 돌리는데 주로 이 스킬을 활용했다.

[정보창을 개방해 드리겠습니다.]

'오케이. 박아영 정보창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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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박아영 (비처녀, 18세 8개월)

나이 : 20 #아웃사이더 #염세적 #과묵

호감도 : 85?100

개방성 : A

성감대 : 클리토리스, 애널, 엉덩이

*애무 포인트 : 후장을 좋아해, 애널 주변 마사지를 즐깁니다.

성욕지수 : 높음 (임신확률 :89%)

공략팁

*위 대상은 당신에게 굉장한 호감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위 대상을 공략하면 청개구리신의 미션을 달성하게 됩니다.

-전형적인 아싸 스타일 여대생이비낟.

-무척 과묵한 편이며 주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성욕이 왕성한 편이라, 이미 고등학교 때 후장을 뗐을 만큼 성적으로 과감한 시도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수컷에게 굴종하기 싫은 고고한 성격 때문에 결코 인정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한 번 마음을 열게 되면 겉잡을 수없이 빠져들 겁니다.

-그녀는 최근 당신에게 거의 마음을 내줄뻔했지만, 주변의 방해로 무산되면서 살짝 가라앉았습니다.

-추천멘트 : "기다릴래? 꼭 다시 돌아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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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창 화면을 보는 순간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는 있겠네. 호감도 80이상이면.'

[자, 잠시만요!]

'왜?'

[주인님. 아영양에게 청개구리신의 미션이 걸려있습니다.]

'어, 맞어. 그때 캠프 두 번째 날 밤에 천상의 메시지가 왔었잖아.'

[잊으셨습니까? 때문에 아영양에겐 정신조작류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뭐라고?''

[조건을 까먹으셨나 본데 해당 미션의 제약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달성 조건 : 호감도를 90까지 끌어 올린 후 상대를 공략. 단 정신 조작류 스킬 일체 허용 불가.

문구를 보는 순간 도훈도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다.

[미션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패널티 역시 남아있습니다.]

'패털티가 뭐였지?'

[조건을 위배하면 어장 안의 모든 여성들의 호감도 -10만큼 일제히 하락하게 됩니다.]

'이런 제길!'

[상식 개변마저 쓸 수 없다면 오늘은 아영양을 순순히 보내주는 게 맞을것 같습니다.]

'아니 그래도 이렇게 호감도가 높은데….'

현재 아영의 호감도는 85.

80이 넘어서면 섹슈얼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잇다고 볼 때 태영의 진상짓만 아니었다면 오늘 밤 아영을 공략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하지만 미션 제약까지 발동된 가운데 도훈은 방도를 찾을 수 없었다.

"흐음, 택시가 잘 안 잡히네…."

아영은 굳이 도훈보고 들으라는 듯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연신 도롯가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에 도훈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안 돼! 이대로 보낼 순 없어.'

[어떡하시려고요?]

'추천 멘트가 있잖아. 분명 방법이 있을 거란 말이야!'

[주인님,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자칫 호감도를 채우지 못한 상태로 공략을 하게 되면 미션에 실패한 패널티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말겁니다. 아쉽더라도 후일을 도모하시는 게….]

'아니, 나란 남자, 포기를 모르는 승부사지.'

도훈이 도박을 걸었다.

양손의 꽃을 모두 쥐겠다는 욕심쟁이같은 발상이었다.

"박아영. 집에 가지 마."

"…?"

도훈이 아영을 돌려세우더니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줘. 꼭 다시 들어올게."

"저보고 기다리라고요"

아영이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 1071. 회장의 자격-9- > 끝.

ⓒ 성난불기둥

작가의 말

연재분을 한 번 날리는 바람에 기억을 복기하느라 좀 늦었습니다.

흐름이 끊기니 평소보다 더 속도가 안나내요.

다음편은 지각하지 않고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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