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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084화 (1,051/2,000)

< 1067. 회장의 자격-5- >

희주와 아영은 쉽게 말해 상극이었다.

개성이 지나치게 강한 희주는 학과 내에 친한 친구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척을 두거나 한 사람도 없었다.

놀기 좋아하고 외향적인 성격 탓에 누구와도 쉽게 어룰렸고, 특히 남자 동기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둥 두루두루 원만한 타입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영과는 첫인상부터 별로였고, 최근 캠프 때 보인 태도 때문인지 굉장히 껄끄러웠다.

무엇보다 아영의 얼굴이 눈에 띄게 예브다는 게 문제였다.

여적여라 하던가?

최근들어 미모에 물이 오른 희주는 아영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라이벌 의식을 느꼈다.

체육과를 떠나 사범대 원탑이라고 할 수 있는 정음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사뭇 달랐다. 정음은 곱상한 외모와 달리 지나치게 괄괄한 성격 탓에 이성에게 매력을 어필하는 타입이 아니었지만, 아영은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지 남자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감지한 것이다.

당연히 최근들어 주가가 상승중인 희주로서는 아영의 존재가 불편했다. 마치 정음은 논외로 두고 NO.2  정도로 급부상했다 자평하던 자신에게 새로운 도전자가 생긴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싸면 아싸답게 끝까지 아닥하고 지내던가? 느닷없이 갑툭튀 해가지고는 진짜…?.'

1학기 내내 얼굴도 거의 안 비추다가 갑자기 여름캠프부터 등장한 부분도 마음에 안 들었다.

새터, 개강총회, MT등을 거치면서 끈끈하게 쌓아온 동기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열심히 쌓아올린 체육과 1학년 케미에 슬그머니 무임승차하는 기회주의자처럼 느껴졌다.

'어디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외모는 라이벌.

성격도 정반대.

희주의 입장에서 아영은 고까울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오빠 혹시 아영이 맘에 들어요?"

"엉?"

"아영이도 오빠가 부른 거 아니에요?"

희주는 도훈을 의심했다. 그의 바람기를 어렴풋이 알고 있는 희주로선 막각한 뉴 페이스의 등장과, 그로 인해 도훈의 관심이 분산되는 점이 몹시 못마땅했다.

도훈도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딱 잘라 부정했다.

"태영이가 불러 달라더라고."

"태영이가요?"

"어."

"태영이가 왜요? 낼 모레 군대 간다는 녀석이?"

"아니, 둘 사이에 뭔 일이 있었나 보더라고. 군대 가기 전에 얼굴보고 사과할 게 있다나?"

"참나. 그냥 말없이 가도 기억도 못할 것 같구만."

"너 아영이랑 사이 안 좋니?"

"제가 딱히 좋아해야할 이유가 있나요? 이런 말 하면 험담 같아서 좀 그렇지만…."

[험담 맞네요.]

'그러게. 둘이 이렇게 사이가 나쁠줄이야.'

"아영이 걔 솔직히 왕따잖아요. 이번 캠프에서도 정음이랑만 놀고, 다른 여자애들이랑 거의 말도 안 섞었어요. 솔직히 정음이가 쓸데없이 착해서 그런 거고."

도훈이 난처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음, 난 둘이 그렇게 불편한 사인 줄 몰랐네. 알았으면 태영이 부타이라도 안 불렀을 텐데."

"그게 저만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근데 왜 그렇게 다들 아영이를 싫어하는데?"

"걔도 똑같이 저희 무시하거든요. 말 걸면 대답도 잘 안하고. 맨날 새침하게 앉아서 스마트 폰이나 쳐다보고 있고."

"그건 야구 좋아해서 그런거 아냐?"

"오빠. 듣고 있으니까 이상하네? 왜 근데 자꾸 아영이 변호해요? 혹시 오빠 진짜로 아영이한테 마음 있는 거 아니죠?"

희주의 눈꼬리가 가늘어졌다. 평소엔 프리한 성향의 희주였지만, 아영에 대해 보이는 질투만큼은 여느 여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도훈은 슬슬 피곤함을 느꼈다.

"왜 나를 엮어"

"오빠 여자 밝히시잖아요. 내가 그걸 모를까?."

"그건 그렇지만…."

"아영이도 따먹으실거죠?"

도훈은 계속 몰아붙이는 희주의 태도에 염증이 일었다. 이렇게 추궁 당할 거면 희주를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야, 양희주."

도훈이 목소리를 깔고 사납게 쳐다보자 희주가 움찔 놀랐다.

"예?"

"너 지금 선 넘는다?"

"아, 아…. 죄송해요.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적당히 좀 하지? 내가 너 예쁘게 봐준다고 아주 막 던지네? 이젠 내가 편해?"

"아니, 저 그게…."

희주가 뒤늦게 후회했다. 도훈에게 잘 보여도 모자랄 판에 그의 심기를 건드리고 만 것이다.

"나 진짜 귀찮은 거 딱 질색이거든?"

"아, 아니 오빠. 제가 실수를…. 죄송해요, 오빠. 다신 그런 말 안 할게요."

희주가 바짝 엎드렸음에도 도훈은 쉽게 인상을 풀지 않았다.

[적당히 봐주시죠. 희주양도 주인님을 좋아하는 마음에 질투한 것 같은데.]

'내가 왜 희주를 좋게 보는지 알아?'

[왜요?]

'쿨하니까.'

[쿨해서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한 여자라서.'

[그건 대체 무슨 드립입니까?]

'딱히 걸리적거리지 않고 필요할 때 대주니 섹파로 두기 편해서 그런 거라고. 근데 저렇게 본처 노릇 하면 나도 계속 못 참지. 정음이도 나한테 안 저래.'

[아….]

'좆집이면 좆집답게 처신을 하란 말이야. 얼굴 좀 예뻐졌다고 기고만장해져서는.'

[그래도 좆집은 좀….]

"다신 그러지 마."

"네, 오빠."

"나 그런 거 보면 진짜 정이 뚝 떨어지니까."

"아앙, 오빠앙. 자꾸 민망하게 왜그래요…. 미안하다는데."

희주가 전략을 바꿔 도훈에게 팔짱을 끼우더니 앙탈을 부렸다. 새끈한 몸매로 가슴을 문질러대자 도훈의 기분이 살짝 풀어졌다. 실은 정색할 필요까진 없었는데, 희주를 떼놓기 위해 미리 수를 쓴것도 있었다.

"암튼 친구들 불러 줄거지?"

"네. 공짜 술 사준다면 언제든 콜 할 애들이에요."

"애들 상태는 어때?"

"무슨 상태요?"

"봐줄 만은 해? 아무리 우선이랑 태영이가 모쏠에 진상이지만 그래도 상대측 와꾸가 너무 떨어지면 좀 그러니까."

도훈의 기분이 풀린 것을 본 희주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오빠, 내가 어디 그런 애들하고 어울리겠어요? 저도 나름 잘나가거든요?"

"어쭈, 자신있나보네?"

"진짜로 잘 노는 애들이에요. 폭탄 처리도 서슴없이 하고. 사실 취하면 뭐 얼굴도 안보고 바로 원나잇…."

"원나잇?"

희주는 말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급히 입을 다물었지만 기왕 터진 거 기탄없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도훈이 자신의 비밀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에게까지 내숭을 떨 필요는 없었다.

"맞아요. 막 노는 애들이라고요. 걍 적당히 맘에 들면 하룻밤 자는 건 예사로 생각하는."

"근데 그 정도까지 바라는 건 아니었는데…."

"뭐 어때요? 어차피 군대 갈 사람들인데 재미나 보라고 하지."

"니 친구들인데도 상관없어?"

"왜요? 섹스하면 큰 일나나요?"

도훈이 이제야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깃, 펀쿡섹좌.

희주는 여전히 거침이 없었다.

"암튼 제가 친구 둘만 불러주면 되죠?"

"일단 장소부터 옮기고. 족발집은 아까 파장됐거든."

"그래요?"

"기왕 옮기는 거 성수형 보고 애들 데리고 나오라고 하자."

"아…. 부회장님도 계세요?"

"성수형이나 나나 금방 빠질 거야. 네 친구들 오면. 어차피 쪽수도 안 맞으니까."

희주는 도훈의 말을 오해하며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했다.

'친구들하고 짝 맞추고 나면 성수 오빠 보내고 나랑 단둘이 있겠다는 소리겠지? 히히. 잘됐다.'

물론 도훈의 계획은 전혀 달랐다.

'희주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오늘은 아영이부터 해결해야 하니 몰래 도망쳐야 겠어.'

[와, 나쁜…. 이용만 해 먹고 팽한다고요? 희주양이 너무 섭섭해할 것 같은데요.]

'어떡해 그럼? 희주가 아영이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데, 둘이 한 군데 모아두면 될 것도 안된다고.'

[어차피 같은 1학년 동기들이고 집행부 일원 아닙니까? 친해지게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요?]

'둘은 애초에 결이 다른 스타일이야. 강제로 붙인다고 붙는 성향이 아니라고.'

[그럼 계속 저대로 둔다고요?]

'아니지. 둘만 있을 땐 서로 으르렁거려도 사이에 누군가 끼게 되면 적당히 넘어갈 수도 있거든. 가령 양쪽 다 친한 정음이라던가.'

[아!]

'집행부는 8명이 다 같이 하는 거니 서로 성격이 좀 안맞아도 어떻게든 끌고 갈 수 있어. 다만, 오늘 같은 애매한 술자리에 둘을 붙여두었다간 서로에게 치명타를 날릴 수 있거든. 나도 나름 고심해서 내린 결론이야.'

[하아, 어쩐지 희주양만 죽써서 개준 꼴이군요.]

'아니야. 희주는 또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미미 업그레이드 시켜줘야 하니까.'

도훈이 희주와 함께 성수와 후배들을 불렀다.

"안녕하세요!"

성수를 본 희주가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선배 앞이라고 허리를 바짝 숙이는데 가슴이 패인 크롭 블라우스 사이로 골짜기가 내비치자 태영과 우선이 헛숨을 들이켰다.

'헉, 몸매 어쩔.'

'희주는 진짜 몸매 하나는 진퉁인데. 아니지, 요샌 얼굴도 예쁜데….'

두 사람은 희주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그림의 떡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잘될 거였으면 이미 한 학기동안 썸이 있었을 것이다. 군대 가기 며칠전에 잘 될리는 만무했다.

그림의 떡을 쳐다보던 두사람에게 도훈이 좋은 소식을 전했다.

"방금 희주랑 얘기했는데 친구 두명이 심심하다고 나오기로 했데."

"엇, 진짜요?"

"희주 친구라면…."

희주가 도훈의 의도를 알아채고 맞장구를 쳤다.

"저보다 훨씬 예뻐요. 다들 잘 놀고."

"와, 지, 진짜?"

"네. 근데 우선 오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응큼한 짓 하면 안돼요?"

"다, 당연하지. 그냥 같이 술이나 먹자는 의미로…."

"호호. 암튼 좀 있음 온다니까 다 같이 재밌게 놀아봐요. 혹시 알아요? 이번 기회에 친해지면 군대가 있을 때 위문편지라도 써줄지?"

"으으! 편지라니!"

"아니면 면회를 갈지도 모르고요."

"크헉!"

두 사람은 벌써 뭐라도 성사 된 것 마냥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희주가 워낙에 바람을 잡은 탓이었다. 작전 수행을 완벽히 해내는 희주를 보며 몰래 ok 사인을 보냈고, 성수 역시 도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훈아. 니가 해냈구나. 희주 친구를 섭외할 줄이야. 나보다 낫다.'

"저 근데 우리 어디로 가요?"

"어. 근처에 맥주집 가기로 했어."

"좋네요. 가게 이름 알려줘봐요. 친구들한테 거기로 오라고 할게요."

장소를 옮긴 일행들은 2차로 잡은 술집으로 들어갔다. 우선에게 술과 안주를 시키라고 전한 성수가 도훈을 붙잡았다.

"야, 들어가기 전에 한 대만 더 피우자."

"아까 폈잖아요?"

"에이, 아까는 아까고. 둘이 얘기할 것도 있고."

"무슨 얘기요?"

성수가 담배를 피우며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했다.

"희주 친구들 오면 쪽수가 안맞잖아. 나는 빠질게 재밌게들 놀아보라고."

"아니에요. 네명 맞아요. 아영이도 온다고 했잖아요."

"아, 맞다. 아영이도 불렀었지?"

성수가 난처함에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씹, 희주가 이렇게 친구들 부를 줄 알았으면 아영이는 안 불렀어야 했는데…. 뭔가 꼬인 것 같은데?"

"하긴 좀 그렇죠? 전화해서 다시 오지 말라고 할까요?"

"아니 그건 좀…. 그럼 완전 똥개 훈련 시키는 꼴이잖아. 그래도 나름 회장이 부른다고 준비해서 나오는 걸텐데."

"그럼 어떻게 할까요?"

성수가 고민 끝에 의견을 제시했다.

"어차피 우리 둘 다 오늘 밤 주인공은 아니잖아."

"그쵸. 우선이랑 태영이죠."

"게다가 난 솔직히 희주 친구들이 도훈이 너를 안 마주치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건 왜요?"

"나는 그렇다 쳐도, 도훈이 네가 같은 자리에 있으면 희주 친구들이 우선이나 태영이가 성에나 차겠냐?"

"아니, 무슨 그런…."

도훈이 말귀를 알아듣고 겸손한 척 했지만, 결국엔 그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

성수가 아이디어를 짜냈다. 희주 친구들이 도착하기 전에 도훈이 먼저 핑계를 대고 떠나라는 것이었다.

"저보고 먼저 가라고요?"

"아니, 가서 아영이한테 미안하다고 커피라도 한 잔 사라고."

"아…."

"불러놓고 그냥 돌려보내면 섭섭해 할 거 아냐. 니가 상황이 중간에 꼬였다고 사정 좀 잘 말해주고."

"그럼 형은요?"

"나도 봐서 여친이 부른다고 빠질라고. 그럼 희주도 눈치가 있으니까 쪽수 맞춰서 빠지겠지."

"결국엔 우선이랑 태영이가 알아서 하는 거에요?"

"그건 당연한 거야. 이 정도로 밥상 차려줬으면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길줄 알아야지. 우린 할만큼 했다고 본다."

"으음…."

도훈은 안그래도 먼저 제안을 꺼내려던 차였는데 성수가 먼저 교통정리를 해주자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스스로 먼저 제안을 한 것보다 오히려 모양새가 좋게 되었다. 나중에 누가 물어보면 성수가 시켰다고 핑계 댈 수 있으니.

'원참,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네.'

[그 비유가 거기에 쓰는 게 맞습니까?]

'그럼 바꾸지 뭐. 싸고 싶은데 대딸 쳐주네.'

[…저질.]

그때 성수가 뭔가 생각난 듯 도훈의 팔을 툭 쳤다.

가볍게 친 것 같은데도 헤비급의 체구에서 나온 잽이라 도훈의 팔이 얼얼했다.

"야, 근데 이도훈 너 건방지더라?"

"앗, 왜 때려요 갑자기?"

"새꺄. 아까 몰래 돈 계산해놓고 갔더만? 너 이 새끼 회장 됐다고 형 무시하냐?"

"아니 형, 그게 아니고…."

성수가 갑자기 훤히 웟더니 도훈을 세게 껴안았다.

난데없는 포옹에 도훈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고맙다, 도훈아. 안그래도 지갑 얇아서 걱정했는데…. 크으, 대신 2차는 내가 쏠게."

"…나참. 형도."

도훈이 피식 웃었다. 그때 스마트폰으로 문자가 하나 날아왔다. 수신인을 확인하니 박아영이었다.

< 1067. 회장의 자격-5-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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