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2. 남의 떡이 더 맛있어.-32- >
도훈은 소연에게 작전 설명을 할 때 크게 두 가지 부분을 강조했다.
첫째, 돈을 받은 물증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직장인과 20살 대학생이라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사귀는 사이라고 둘러대면 성매매로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둘째, 예로부터 성매매 단속은 현장 적발의 경우만 인정받는다는 것. 정황 증거니, 통화내역이니 하는 것은 간접 증거일 뿐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을 줄 여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소연은 김변에게 의심을 사면서까지 일부러 돈 봉투부터 먼저 받았다. 비록 현금이라고 해도 자금 출처를 따지다 보면 김변에게서 소연에게 흘러 들어간 정황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두 번째 증거의 확보. 소연은 김변을 유혹해 곧바로 섹스에 들어갔다. 이제 신고를 받은 경찰이 적절한 타이밍에 현장을 덮치기만 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렇게 소연이 억지로 몸을 대주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한참 흥분해 박음질을 이어가던 김변이 깜짝 놀라 동작을 멈추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김변이 소연을 향해 속삭였다.
"누구지?"
"문을 잘못 노크한 게 아닐까요?"
그때 밖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한데, 2435 차주분 아니세요? 잠깐 나와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2435는 김변의 차였다.
그는 뭔가 일이 났음을 직감하고 섹스를 중단했다.
"아이씨, 대체 뭔 일이야. 한참 분위기 좋았는데."
정황으로 볼 때 누군가 주차 중에 차를 긁거나 경미한 접촉사고를 일으킨 모양이었다. 김변은 소연에게 양해를 구한 뒤 모텔에서 제곡되는 가운을 대충 걸치고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누구요?"
김변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하자 문밖의 사내가 답했다.
"저 여기 모텔 직원인데요, 다른 손님이 차를 빼다가 2435 차주분 차를 부딪힌 것 같더라고요."
예측이 현실이 되는 순간, 김변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는 익명의 공간에서, 너무도 귀찮은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씨발, 좆됐네 진짜. 눈치도 더럽게 없나. 불륜 커플이 득시글거리는 이곳에서 자기 실수로 사고 냈으면 적당히 명함 남기고 나중에 따로 얘기하던가 할 것이지….'
김변이 투덜거리며 대꾸했다.
"그냥 연락처만 받고 보내세요. 나중에 따로 연락드린다고."
김변은 더 이상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았으므로 종업원을 그대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종업원은 의외로 완강했다.
"아, 저기…. 가해측 차주분이 바로 보험처리 해야겠다고…."
"보험처리? 씨발, 진짜 눈치 좆나게 없네. 무슨 보험 같은 소릴하고 있어!"
누군지는 몰라도 이는 전혀 상식밖에 행동이었다. 대낮부터 모텔에 들락일 정도면 어차피 서로 뻔한 사정일텐데 이걸 굳이 공식적으로 기록에 남기는 미친 짓을 벌이다니.
김변은 똑바로 주차를 한 잘못밖에 없는데, 가해 차량이 일방적으로 차를 받고 보험처리를 하겠다는 말에 발끈하며 문을 열었다.
"아니 그게 무슨…."
화가 난 김변이 가운만 걸치고 문을 연 순간 익숙한 복장이 눈에 들어왔다. 가끔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경찰청에 들렀을 때 자주 보던 유니폼이었다.
"니, 니들 뭐야!"
"왕순경, 밀어!
빛나와 함께 출동한 서른여섯의 노총각 이필순 경장은 문이 열리는 순간 어깨로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그는 이 기회에 평소 흠모해 왔던 빛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과격한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김변의 대응은 보통이 넘었다.
"에이, 씨발!"
경찰복 입은 두 명의 경관들을 보는 순간 김변은 일이 완전히 꼬였음을 직감했다. 그는 밀고 들어오는 경찰들에 맞서 버티기 시작한 것이었다.
"뭐하는 겁니까? 얼른 문 여세요!"
"지금 이게 무슨 개수작이야!"
흥분한 김변이 노발대발하며 문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빛나가 엄포를 놓듯 소리쳤다.
"제보받고 현장 단속 나왔습니다. 지금 공무집행 방해인 거 아시죠?"
"무슨 제보?"
"그건 들어가서 얘기하시고요, 얼른 문부터 여시죠."
김변이 짧은 순간 빠르게 머릴 굴렸다.
제보라 함은 누군가 이곳에서 소연을 만나는 것을 경찰에 신고했다는 뜻이다. 둘밖에 모르는 약속이니 자신이 아니면 신고자는 누군지는 뻔했다.
김변이 온몸으로 문을 막으며 소연 쪽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야이 씨발년이 진짜! 지금 누굴 엿 맥이려고!"
이미 사달이 난 것을 예감한 소연은 침대에서 벗어나 샤워실 문을 잠그고 숨은 상태였다. 그제야 김변은 오늘따라 소연의 행동이 평소와 달랐던 점을 떠올렸다.
-근데 우리 오늘 어디로 가?
-검색하고 있지.
-스폰비 지금 주면 안 돼?
돌이켜 보면 모든 정황들이 소연이 바로 경찰에 신고한 제보자임을 알리고 있었다. 다시 한번 김변이 분노로 포효했다.
"아오! 씨발 미친 창녀 같은년! 넌 나중에 두고 보자."
"얼른 문 여시라고요!"
"계속 이런 식으로 비협조적으로 나오시면 공무집행방해죄 추가됩니다."
"좆까 씨발. 공무 집행은 지랄!"
김변은 급박한 상황에서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살길을 찾았다.
'여기서 성매매 단속에 걸리면 변호사고 뭐고 끝장이야. 무조건 도망쳐야 해.'
김변은 평소에도 강박적일 정도로 성매매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주의였다. 특히 증거로 남게 되는 CCTV의 위치라든가 동선은 미리 파악하여 조금의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오늘만 해도 모텔에 입장할 때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4층이나 되는 높이를 계단으로 굳이 걸어 올라왔다. 차량 안에 블박 역시 전원선을 미리 뽑아두었다. 김변은 모텔에 주차된 차량 번호 말고는 이곳에 왔다는 직접 증거가 남아있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차는 누가 훔쳤다고 우기면 그만이야. 음주 단속 시에도 차 버리고 튀면 음주로는 절대 못 넣거든.'
정황 증거보다는 직접 증거가 훨씬 더 중요했다. 말도 안 되지만, 누군가 자신의 차를 훔쳐 타고 달아나 이곳 모텔로 끌고 왔다고 우기면 그만이었다. 이밖에는 자신이 성매매를 했다는 증거는 제보자인 소연의 증언밖에 없었다.
OP까지 뛰었던 20살 짜리 창녀의 증언.
그럼 이제 남은 결론은 하나.
저 경찰 두 명을 따돌리면 김변은 살아날 각이 보였다.
"이래선 안 되겠어. 왕순경, 계속 잡고 있어봐 내가 뒤로 달려가서 몸으로 부딪혀 볼 테니까."
끝없는 대치에 이필수 경장이 몸통 박치기로 뚫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러나 그의 패착은 상대편에게도 들리게끔 작전을 다 입으로 나불댄 것이었다.
"하나, 두울!!"
왕순경이 문이 완전히 닫히지 못하게 버티는 사이, 거리를 벌린 이필순 경장이 도움닫기를 통해 어깨로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우아아아아!"
그러나 그 순간 거짓말처럼 반대편에서 저항하는 힘이 쓱 사라져버렸다. 각을 보고 있던 김변이 타이밍 맞춰 몸을 뒤로 빼버린 것이었다.
쿠웅!
잔뜩 힘을 주고 달려왔던 경장은 저 혼자 문에 어깨를 부딪히고 나동그라졌다. 덩달아 빛나 역시 휘말리며 같이 쓰러졌다.
"어이쿠!"
"꺄악."
두 사람이 쓰러지는 틈을 타 모자를 깊게 눌러쓴 김변이 몰카로 촬영하던 핸드폰을 챙겨 들고 모텔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굳게 닫힌 샤워실 문을 마지막으로 노려보면서 소연에게 경고했다.
"두고 보자. 넌 내가 절대 가만 안 둬."
쓰러진 경관들을 넘어 달아나던 김변의 발목을 왕빛나가 손으로 붙잡았다.
"어딜 도명쳐!"
긴박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붙잡으려 한 것이었지만, 발목이 잡힌 김변은 반댓발로 빛나의 배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퍼억!
"컥!"
싸커킥을 맞은 빛나가 등 굽은 새우처럼 몸을 마는 모습에 김변이 시니컬하게 웃었다.
"쯧쯧, 여자따위가 무슨 경찰을 한다고?"
"야이 개새끼야, 너 거기 안 서!"
제 풀에 나동그라진 이필순은 빛나의 배를 걷어차는 김변을 향해 대노했지만, 김변은 그 마저도 비웃으며 도망칠 뿐이었다.
"너라면 서겟냐?"
김변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샤워실에 숨어있던 소연은 일이 단단히 어긋남을 깨닫고 도훈에게 급히 전화했다. 다행히 도훈이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오, 오빠! 크, 큰일 났어요! 김 변호사가 출동 나온 경찰을 쓰러뜨리고 도망쳤어요!"
-뭐라고?
***
"뭐라고?"
일이 완전히 꼬였다. 혹시나 해서 모텔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도훈이 급히 차 밖으로 뛰쳐나갔다.
[주, 주인님!]
'이 새끼 진짜 끝까지 사람 귀찮게 만드네.'
도훈이 모텔 앞에서 대기하는데 모텔 가운을 입은 남자가 미친 듯이 달려 나왔다. 꼴에 얼굴을 가린다고 모자까지 눌러쓴 모습이 가관이었다. 헐렁한 허리끈에 사타구니가 다 노출될 정도로 정신없이 달려가는 김변을 향해 도훈이 소리쳤다.
"어딜 그렇게 급히 도망가시나?"
"너, 넌 또 뭐야?"
커다란 덩치의 도훈이 막아서자 김변도 주춤했다. 도훈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잘 보라고. 나 전혀 기억 안나?"
당연히 잠깐 스쳐갔던 도훈을 기억할리 만무했다. 도훈은 하는 수없이 거짓말을 햇다.
"사복경찰이다 새끼야!"
"좆까!"
김변이 먼저 움직였다. 이미 경찰 두 명을 따돌린 김변에게 뒷일 같은 건 없었다. 여기서 체포되면 빼박 현행범으로 몰려 나락으로 떨어질 운명이었다.
그가 매섭게 날린 주먹을 보고 도훈이 살짝 고개만 까딱거리며 피했다.
"어쭈. 변호사가 주먹질도 하네?"
"뭐, 뭐라고?"
김변은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자 놀라 되물었다.
"너, 너 뭐하는 새끼야?"
"아까, 말했잖아. 우리 구면이라고. 아니 구멍동서라고 해야 하나?"
"무, 무슨 미친 소리야!"
도훈이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니 애인 쩔더라?"
"뭐라는 거야 미친 새끼가!'
김변이 재차 주먹을 휘둘렀으나 일반인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난 도훈의 운동신경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도훈은 가벼운 스텝만으로 주먹을 피하다 복부에 한 방 얻어맞았다.
"억!"
[주,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나 한 대 맞았으니까 이제부터 정당방위 맞지?'
[예?]
'이제부터 저 새끼 좀 족쳐도 되겠냐고.'
[아, 아니 그런….]
사실 도훈은 일부러 맞은 것이었다. 그것을 모르는 김변은 도훈이 배를 얻어맞고 비명을 토하자 신이나 다시 주먹을 날렸다.
"뒤져 새끼야!"
주먹이 날아오는 순간, 도훈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재능약탈자로 빼앗은 한지연의 유도 재능!
본능에 각인된 스킬이 발동되며 날아오는 주먹을 그대로 휘감은 도훈이 김변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어, 어?"
정말로 어어 하는 찰나. 주먹이 휘둘러지는 힘을 이용한 도훈의 업어치기가 들어갔다. 팔목과 목덜미를 잡아 상체를 낮추자 김변의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가 싶더니 상하가 뒤집어졌다.
쿵!
아스팔트에 매다 꽂히는 충격은 상상 이상!
숨이 턱 막힌 김변이 "커헉-" 하는 신음과 함께 고통스러워 했다.
업어치기 한방에 김변을 제압한 도훈이 그를 내려다 보며 놀렸다.
"아, 니 스폰도 쩔더라. 잘 먹었다."
"크헉, 너, 너 대체 뭐하는 색…. 컥."
"그건 알 거 없고. 한가지만 기억하라고 젊은 친구."
김변이 충격으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데 도훈이 쉴새없이 떠들었다. 모텔 입구 에서 뛰쳐나오는 왕빛나를 확인한 것이었다.
"다시는 남의 여자 건드리지마."
도훈은 그 말만 마치고 쏜살같이 모습을 감췄다. 그사이 모텔에서 나온 빛나와 이필순 경장이 땅바닥에 패대기쳐진 김변을 발견했다.
"경장님 저 쪽에!"
"옳거니!"
죄의 여부와 상관없이 단속을 나온 경찰에게 위력을 가했기 때문에, 이미 김변은 현장 체포 대상이었다. 빛나는 망설이지 않고 쓰러진 김변의 몸을 뒤집더니 팔을 뒤로 꺾어 수갑을 채웠다.
"당신을 공무집행 방해로 현장 체포합니다."
그쯤 호흡이 돌아온 김변이 온 몸으로 저항했다.
"이, 이거 안 풀어? 니들 씨발, 지금 좆나게 실수하는 거야. 내구 누군줄 알고 하는 거야?"
상투적인 멘트에 빛나가 가소롭다는 듯 받아쳤다.
"니가 뭐하는 새낀줄은 알거 없구요, 경찰을 때리면 구속까지 될 수 있다는 건 알라나 모르겠네? 경장님. 이 새끼 몸 뒤져보세요. 핸드폰 기록 지우지 못하게 압수해야 돼요."
"어, 어!"
이필순은 빛나의 명령에 자기도 모르게 움직였다. 김변이 걸친 가운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 두개를 확보한 필순이 빛나에게 제압된 김변을 향해 뒤늦게 미란다 원칙을 읊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멀찍이서 김변의 체포과정을 눈으로 확인한 도훈이 흡족한 표정으로 웃었다.
[기쁘십니까?]
'왜? 정의구현 했잖아.'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지막 대사는 납득이 안되던데요.]
'뭐?'
[여자란 여자는 닥치는 대로 건드리고 다니느 분이 남의 여자를 건드리지 말라니…. 뭔가 아이러니한 것 같아서요.]
도훈도 뜨끔했는지 머쓱하게 변명했다.
'아니 내 여자 건들지 말라는 소리였지. 나도 염치가 있는데 그런 말을 뻔뻔하게 하겠냐.'
[어쨌든 사건은 일단락이 된 건 같군요.]
'그러게. 김변 저 새끼가 멍청하게 체포 불응하고 도주하는 바람에 일이 더 커지게 됐어.'
이제 변호사 할아버지라도 빠져나올 구멍은 없을 거야.'
[소연양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녀도 함께 체포되나요]
'일단 동행해서 경찰 조사받겠지. 그래도 제보 자체가 자수나 마찬가지라 구속되진 않을 거야. 나중에 따로 불러 잔금 치러 줘야지.'
도훈은 순찰차로 연행되는 김변을 끝까지 지켜보다 다시 차에 올랐다.
< 1062. 남의 떡이 더 맛있어.-32- > 끝.
ⓒ 성난불기둥
작가의 말
하루 쉬고 토요일 저녁에 뵙겠습니다.
이번주 연재 시간이 들쑥날쑥한 점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