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3. 남의 떡이 더 맛있어.-23- >
"아차차."
도훈이 깜짝 놀라며 담배를 뽑았다. 놀랍게도 담배가 꺼지지도 않고 끝이 계속 타들어가고 있었던 것. 바짝 쫄아있던 소연이 그제야 의기양양 소리쳐싿.
"봐, 봤죠? 아랫 입으로도 피는 거?"
"대단하다 정말."
"옛헴, 제가 이 정도라고요."
도훈은 여전히 섹스를 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소연의 엉덩이를 찹- 소리나게 두들겼다. 살이 오른 엉덩이가 찰지게 흔들렸다.
"앙, 뭐예요?"
"이만 뒤 돌아봐."
"네?"
"얘기 좀 하게 뒤돌아보라고. 아랫 입으로 담배는 피우더라도 대화를 나눌 수는 없잖아."
잔뜩 기대하고 있던 소연이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앉았다. 커다란 가슴이 출렁출렁하는 게 성욕이 한 줌이라도 남았었다면 또 한 번 덮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도훈이 소연을 향해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
"왜요? 설말 쫄았어요?"
"아니. 깜빡 잊고 있던 약속이 떠올랐어."
"에이, 핑계 같은데? 그냥 한 판 더 하고 가요."
도훈이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한 판 하면 최소 한 시간은 걸릴 걸? 그럼 진짜로 늦어. 설마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하고 싶은 건 아닐 거 아냐? 안 그래? 그렇게는 하나마나 일테고."
"흠…. 조금 실망스러운데…."
"니가 실망하든 말든, 나야 알바 아니지."
"쳇. 남들은 어떻게든 한 번 더 해달라고 조르던데, 오빤 제가 별로였나 봐요?"
"니가 이번 일 제대로 해결해 주면 한 번 쯤은 생각해 볼게."
"김 변호사님요?"
"어. 생각보다 철두철미한 것 같은데 혹시 약점 같은 거 없을까?"
"약점이라뇨?"
도훈이 아차 싶었다. 소연이 생각보다 머리가 딸려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말귀를 알아듣는 걸 깜빡한 것이다.
"아니. 뭔가 불법적인 일을 한다던가, 그런 거 말이야. 단순히 성매매특별법으로 엮어 넣기에는 약해서."
"불법이라면…."
"혹시 약 같은 것도 해?"
"약이요? 무슨 약이요?"
"마약류 같은 향정성 약품."
"노노. 그런 것은 한 번도 못 봤어요. 몸에 좋은 한약은 먹는 걸 봤지만."
"아님 혹시나 자기가 무슨 사건 맡은 얘기도 해? 비리를 감춰준다거나 불법적인 일을 묵인한다거나. 혹여나 자랑 삼아서라도."
"저한테는 일 관련해선 일절 얘기 안 해요."
"흐음. 뭔가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한데…."
그때 소연이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아, 혹시 그것도 되나?"
"뭐? 뭔가 짚이는 게 있어?"
"아니 쩐에 보니까 섹스할 때 어딜 자꾸 쳐다보더라고요."
"어딜 쳐다봐?"
"그래서 저도 뭔가 있나 하고 몰래 보니까, 글쎄 화장에다가 뭘 설치해 놨더라고요. 깜빡깜빡 반짝이는."
"몰카?"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섹스하는 데 동의도 없이 몰카를 찍었단 말이야?"
"근데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전 상관없었는데?"
소연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리고 몰래 촬영한다고 생각하니까 더 흥분되더라고요. 일부러 카메라 있는 쪽에 맞춰서 각도도 맞춰주기도 하고."
도훈은 어이가 없었다. 하긴 소연의 성벽이 정상적인 범주는 아니니 도촬 같은 것을 무시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로시. 이거 잘하면 엮을 수 있을까?'
[상대방과 섹스 비디오를 찍는 게 불법은 아닐 텐데요?]
'동의 없이 찍거나 유출시키는 건 불법이잖아.'
[아, 그런가요?]
'게다가 놈이 도촬한 게 분명 소연이 처음은 아닐 거 아니야.'
[그럼 정원의 것도 있을지도.]
'어쩌면 더 있을지도 모르지. 잘 됐다. 성매매로만 엮기엔 좀 약했는데, 거기에 불법 도촬까지 얹으면 그림이 좀 나오겠어.'
[으음, 근데 무슨 수로요? 김변의 폰을 훔쳐낼 것도 아니라면야.]
'그거야 경찰에서 조사하게 해야지.'
[경찰요?]
'내가 아는 경찰이 하나 있거든.'
작전 구상을 마친 도훈이 소연에게 말했다.
"알았어. 나머진 이제 내가 다 할 테니, 넌 김변 만날 때까지 계속 연락만 유지하면 돼. 바짝 달아오르게 하고."
도훈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소연이 그의 다리를 붙들었다.
"뭐예요? 진짜로 가게요? 농담아니고?"
"말했잖아. 급한 약속인 생각났다고. 우리끼리 얘기는 이미 끝난 것 같은데?"
소연은 도훈이 자신을 뿌리치고 옷가지를 걸치기 시작하자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간만에 느낌 딱 좋았는데….'
그녀는 직업적으로 섹스를 하고 있지만, 도훈과 할 때처럼 크게 오르가즘을 느낀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합이 잘 맞는 상대였고,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돈을 지불하고서라도 한 더 절정을 느끼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 너무하시네. 거기에 담배 꽂아 불을 붙여도 참았는데."
"왜? 나랑 더 하고 싶어?"
"오빠 점점 마음에 들어서요. 빈말 아니고."
"내 얼굴이 마음에 들진 않았을 것 같은데?"
"얼굴 뜯어 먹고 살 것도 아닌데 뭔 상관? 남자가 좆크도 돈 많으면 장땡이죠."
지극히 현실적인.
풋풋한 소녀 감성이라곤 전혀 없는 소연의 대꾸에 도훈은 살짝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대체 얼마나 닳고 닳아빠진 거야….'
[세상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요. 본인이 좋아서 자초한 일이니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도훈이 한 번 더 당부했다.
"암튼 이번 주 꼭 김변 보는 거야. 시간, 장소만 알려부면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게."
"넹."
"그리고. 약속했던 대로 일이 잘 되면 성공보수 1억은 무조건 챙겨준다."
"보너스는요?"
"무슨 보너스?"
소연이 여전히 만족을 못 했는지 혀로 입술을 핥았다.
"오빠 한 번 따먹는 거."
"……."
도훈은 노골적인 소연의 태도에 살짝 현기증을 느꼈다. 아무리 섹스를 해도 채워지지 않은 끝없는 구렁텅이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것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지."
"푸훕-. 말투 완전 아재같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지."
소연이 도훈의 끝말을 돌림노래처럼 따라하며 비웃었다.
도훈은 확 열이 받쳤지만, 더 말을 섞었다간 말려드는 느낌이라 문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소연이 그의 뒤통수에 대고 큰 소리로 소리쳤다.
"실장님, 손님 나가요~!"
***
차로 돌아온 도훈은 소연의 마지막 태도가 계속 떠올라 부들부들 손을 떨었다.
'와, 진짜 살다살다 저런 여자를 다 겪어보네.'
[고생하셨습니다. 주인님마저 버거운 상대라니…. 놀랍네요.]
'성욕이 아무리 강해도 정도가 있어야지. 대관절 만족이란 걸 모르잖아? 텅 빈 대가리에 섹스밖에 안 든 여자도 아니고.'
[에이,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소연 양은 주인님이 마음에 든 눈치던데요.]
'간만에 적수를 만났다 그거지. 자길 감당할 사내는 자주 못 봤을 테니까.'
[근데 소연 양이 잘 해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아까 경찰 이야기는 뭡니까?]
'성매매는 현장 적발해야 걸리는 거야. 그러니 경찰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혹시 아시는 경찰이라도….]
도훈이 씩 웃었다.
'있잖아. 가슴 큰.'
[와, 왕빛나 순경 말입니까?]
'어. 그때 차에서 진압봉으로 가버린 애. 뜬금없이 연락하는 데 얘기가 잘 통할런지 모르겠군.'
[근데 지금 모습으로 다시보면 못 알아 보시지 않을까요?]
'그런가?'
도훈이 룸미러로 얼굴을 체크했다. 시간이 갈수록 마취된 근육이 풀리는 역용술 특성상 평소 얼굴이 절반 정도 이미 회복된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낯설었다.
'으음, 아무래도 오늘은 안 되겠군. 시간도 늦었고. 집에 가는 길에 미리 약속이나 잡아 둬야겠다.'
도훈이 차를 돌려 집으로 가는 길에 블루투스로 전화를 시도했다. 전화벨이 울리고 한참 뒤 빛나가 전화를 받았다.
"근무 중입니다. 제가 다시 연락드릴게요."
빠르게 할 말만 마친 빛나가 빠르게 전화를 끊었다. 오랜만이라 걱정했던 도훈은 빛나의 쌀쌀맞은 태도에 살짝 불안해졌다.
'뭐야? 내 번호 삭제해 버렸나?'
[설마 그랬을까요?]
'그냥 한 번 스쳐가는 남자라고 생각했으면 그냥 지워버렸을지도.'
[하긴 그날 이후 다시 본 적이 없군요.]
빛나와 만난 것도 거의 2달 전의 일이었다.
그 뒤로 별도로 관리를 안 했고, 빛나도 연락이 없었으므로 서로 데면데면 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하아. 여자가 너무 많아서 탈이야. 필요할 때 적재적소에 써먹고 싶어도 매번 관리를 해줄수도 없고.'
[어장관리 어플을 업그레이드 하셔야 할 것 같군요.]
'업그레이드가 가능해?'
'네. 현재 관리인원이 5명인데 유료 업그레이드 버전을 이용하면 관리 대상을 늘릴 수 있습니다.]
'그걸 왜 지금 얘기해?'
[아, 유료버전 나온 지 얼마 안 됐거든요. 주인님이 딱히 궁금해 하시지도 않았고요.]
'얼만데?'
[달에 1000포인트 씩입니다.]
'와, 천상계 날강도 새끼들! 배보다 배꼽이 더 큰거 잖아?'
도훈이 혹독한 과금정책에 분노했다.
마치 쓸만한 어플을 무료로 배포한 뒤, 정작 활용을 위해선 포인트를 계속 납부해야 하게끔 만들어 놓은 게 악덕 상술의 재현같았다.
[유명한 어플 개발자들이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을까요?]
'설마….'
[네, 모든 것의 시작이고 끝이기도 합니다.]
'지독하네 지독해. 그럼 월에 천포인트씩 내면 몇 명까지 관리가 되는데?'
[유료 멤버쉽은 최대 20명까지 관리 가능합니다. 또한 기념일이나 이벤트도 알아서 챙겨주는 등 특별한 부가기능이 늘었습니다.]
'헐. 진짜 무슨 분신술 20개 쓰는 것도 아니고.'
[딱 그겁니다. 주인님을 위한 맟춤 어플이랄까요?]
'과금유도하지말라고. 포인트 벌기가 빡센데.'
[중수 이후로 주인님의 잔고는 넉넉합니다. 하수일 때야 포인트가 빡빡했지 솔직히 지금은 미션 하나만 해치워도 몇천 포인트씩 버시는데요. ]
도훈은 로시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더니 수지타산을 따졌다. 하긴 과거라면 모를까 지금에 와서 월 1,000포인트는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이었다.
다만 유료 멤버쉽을 계속 유지할 만큼 문어다리를 펼쳐 놓는 게 과연 현명한가에 대해선 고민할 여지가 있었다. 가끔 써먹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위해 인맥 관리에 많은 투자를 하는 셈이기 때문이었다.
'일단 유료 멤버쉽은 좀 더 생각해보자,'
도훈이 집으로 돌아와 씻고 나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왕빛나였다. 도훈은 아까 빛나가 퉁명스럽게 끊었던 사실이 떠올라 본인도 성의없이 받았다.
"네, 전화받았습니다."
-아, 미안. 음주단속 지원 나왔어가지고. 오랜만이다? 도훈이 맞지?
빛나의 목소리는 아까의 사무적인 말투와 180도 달라져 있었다. 조금 긴장을 한 듯 목소리가 살짝 떨려 나왔는데, 아까의 통화에 대한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도훈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하고 오해를 풀었다.
'아-. 순경이라 그런지 밤 늦게도 일하는 구나. 설마 진짜로 일하고 있을거라곤 생각 못했네.'
"아, 음주단속 나가셨어요?"
-어어, 갑자기 서장이 예고도 없이 지원 나가래서. 다른 관할서에서 현장 출동하느라 빵구가 났나 보더라고. 대신 그래서 내일 오전은 반차 쓰기로 했어.
빛나는 도훈이 묻지도 않았는데 술술 자신의 스케줄을 읊었다. 도훈은 그녀의 태도를 보며 아직 호감도가 크게 하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인데. 빛나는 태도를 보니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은 듯.'
[그러게 말입니다.]
-근데 무슨 일로 전화했어? 도통 연락도 없더니.
"아…. 저 부탁 드릴게 있어서요."
-에이, 말 편하게 해. 갑자기 왜 존댓말?
"그래도 누나시잖아요."
-언제는 무슨 누나 취급이나 해줬나 뭐. 암튼 뭔 부탁인데? 설마 단속 걸린 거 빼달라는거 아니지? 나 그런 빽은 없다.
"아뇨. 일단 만나서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
-그래? 그럼 내일 오전에 한 번 봐. 반차라서 오후출근이야.
"언제 볼까요 그럼?"
-음, 1시에는 나가야 하니까, 아침 9시 어때? 너 어차피 방학이지?
잠깐 얘기나 하자는데 출근 4시간 전에 약속을 잡는 빛나의 태도에 도훈이 꿍꿍이를 읽었다.
'풉-. 너무 속이 뻔히 보이는데?'
"그래요. 방학이니까 일찍 봐요. 어디서요?"
-음, 우리 집 근처까페도 괜찮고.
"알았어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근데 무슨 부탁인데? 혹시 돈 바꿔달라는 거나 그런 건 아니지? 미리 말해두는 데 나 가진 돈 얼마 없어. 그래도 필요하면 통장 챙겨나갈게.
빛나는 도훈이 원체 저자세로 나오자 괜히 오해를 한 눈치였다. 도훈은 그 와중에도 통장 챙겨나온다는 소리에 피식 웃었다.
'얼씨구, 아주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내세네.'
[주인님에 대한 좋은 감정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이러면 일처리 하긴 편하겠군.'
"그런거 아니니까 걱정 마시고 내일 아침에 봐요."
-응. 그래. 간만이라 괜히 설렌다. 근데 어떻게 연락 한 번이 없니?
"좀 바빴어요. 학교 일 때문에."
-암튼 나 다시 단속나가니까 내일 얘기해.
"네."
통화를 마친 도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별도의 관리를 안 했음에도 빛나의 태도가 여전히 호의적인데 안도하는 듯 했다.
'유료 멤버쉽까진 필요 없겠는데?'
[그거야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요? 아무튼 왕빛나양이 잘 설득 되었으면 좋겠군요.]
'지금 같은 반응이라면 충분하지. 수사 청탁엔 현질보다 좆질이란 걸 보여주지.'
< 1053. 남의 떡이 더 맛있어.-23-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