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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057화 (1,024/2,000)

< 1040. 남의 떡이 더 맛있어.-10- >

***

"너, 이 돈 갖고 싶냐?"

돈을 보자 덕자가 눈을 희번덕거렸다. 짐작은 했지만 너무나 쉬운 여자였다. 왠지 이번일은 쉽게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헤헤, 왜요? 저 용돈 주시게요?"

물론 쉽게 내줄 생각은 없다.

보여준 것은 단지 욕망을 유발하기 위한 미끼일 뿐.

나는 쏟아진 돈을 주워 담았다.

"용돈은 무슨. 어차피 돈 내고 떡 치러 온 건데."

돈이 가방에 다시 들어가자 덕자의 눈이 안타까움으로 가득 찼다. 저렇게 많은 돈을 자랑만 하고 도로 집어넣는 모습에 속으로 수전노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잉, 제가 오늘 특별히 서비스 더 해드릴게요."

"웃기고 있네. 야. 이미 기본료에다 오만원 더 박았잖아. 당연히 해야 할 서비스 가지고 생색내기는."

계속 토를 달자 덕자도 발끈했다.

"뭐예요. 그럼! 줄 것도 아니면서 왜 물어보는데요?"

그녀가 토라진 듯 가슴에 팔짱을 끼고 옆으로 돌아앉았다. 일부러 한껏 가슴을 밀어 올리자 패인 원피스 사이로 거대한 가슴골이 쏟아질 것처럼 튀어나왔다.

'약아 빠진 년. 저 와중에도 꼴리게 하려고 별짓을 다하네.'

[직업적 프로의식 같은 게 아닐까요?]

'듣고 보니 그럴싸한데?'

나는 그녀의 교태로운 몸짓에 마음이 동한 것처럼 가슴에 맺힌 깊은 골짜기를 쳐다보며 물었다.

"네가 제대로 대답 안 했잖아."

"예?"

"갖고 싶냐고 물었다, 난."

"당연한 걸 물어보세요. 갖고 싶죠."

"갖고 싶어?"

"네."

"내가 이 돈 다 주면 넌 나한테 뭘 해줄 수 있는데?"

[오오, 슬슬 시작하나요?]

'잘 봐. 협상이란 어떻게 하는 건지 보여줄 테니까.'

"에이, 무슨 농담을 해요."

나는 대꾸 없이 5만원 짜리 묶음에서 한 장을 뽑아 들었다. 영문을 모르는 덕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에요. 다 준다더니 꼴랑 5만원?"

"누가 너 준데?"

"예?"

나는 말 없이 라이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화르륵!

가스 조절기가 고장 난 라이터에서 불길이 치솟자 5만원짜리에 순식간에 불이 옮겨붙었다.

"어, 어머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덕자가 눈이 휘둥그레져 호들갑을 떨었다.

천원도 아니고 오만원 짜릴 눈앞에서 태우는 사람은 처음 봤을 것이다.

나는 태연하게 타고 있는 지폐에 담뱃불을 붙인 뒤 5만원권을 재떨이에 던졌다. 지폐는 새까만 그을음과 함께 반토막만 남았다.

"아니 무슨 돈에다가…."

"왜? 내 돈 가지고 내가 담뱃불 붙인다는데."

나는 태연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곤 어처구니 없어하는 덕자에게 다시 물었다.

"내가 이 돈 주면 넌 뭘 해줄 건데?"

"지금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이쯤 되자 덕자도 뭔가 낌새를 눈치챈 표정이었다.

"엉."

"아저씨, 저 일부러 찾아오신거죠?"

사장님에서 오빠로, 다시 아저씨로 호칭이 격하됐다.

"그걸 이제 알았어, 덕자? 아니 소연이라고 불러야 하나?"

"헙!"

조소연이 처음으로 크게 눈을 부릅떴다.

돈에 불을 붙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너, 너 뭐야!"

덕자가 후다닥 소파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실장과 연결되는 내선 전화기는 정확히 내뒤에 있었다.

"쫄지 마."

"똑바로 말해. 내, 내 이름 어떻게 알았어? 너 스토커야?"

"…너?"

안 그래도 험악한 얼굴에 웃음기를 싹 거두었다. 그 표정을 보는 덕자가 순식간에 겁에 질려 호칭을 다시 정정했다.

"아, 아니 사, 사장님"

"너야, 사장이야, 오빠야? 하나로 불러."

"오, 오빠. 제 이름은 어떻게…."

"그게 중요해? 넌 아직도 내 질문에 대답을 안 한 것 같은데?"

"뭐, 뭔데요?"

겁에 질린 덕자가 눈알을 좌우로 빠르게 굴렸다. 내선 전화를 못 쓰는 이상 핸드폰을 찾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폰은 테이블 위에, 정확히는 내 손에서 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저 가방에 든 돈 가지고 싶냐고 물었어. 아마 2억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 이억이요?"

"어."

"잠시만요. 갑자기 그렇게 물어보시면 제가 어떻게 해요? 저한테 무슨 짓을 시킬지도 모르는데."

"음, 그럼 들어보고 생각할래?"

"네."

밖으로 연락을 취하긴 쉽지 않은 상황. 덕자는 이내 전략을 바꿔 나와 대화를 해보기로 마음 먹은 눈치였다.

"좋아. 짧게 말할게. 사람 하나 패가망신 시킬 계획이야."

"누, 누굴요?"

"네가 아는 사람."

"아니 누군지는 알려줘야 저도…."

"김 변호사."

"기, 김 변호사요?"

"그래. 니 스폰서."

덕자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했다. 본명도 알고 있는데다 심지어 몰래 맺은 스폰서 계약까지 알고 온 정체불명이 사내. 아무리 대가 센 덕자라도 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 잠시만요. 그 전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말해."

"오빠 뭐하는 사람이에요?"

"니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

"……."

덕자가 생각에 잠긴 듯 머리를 굴렸다.

그러더니 뭔가를 깨달은 것처럼 소리쳤다.

"기, 김 변호사 애인이 사주한 거죠? 맞죠?"

"함부로 넘겨짚지 마."

"저도 들었어요. 돈 많은 유부녀랑 몰래 만나고 있다고."

"김변이 그런 소리까지 했어?"

"아, 아니 누구랑 자꾸 톡 하길래 제가 몰래 폰을 봤어요."

"그래서?"

"정리하는 중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더라고요. 변호사님 말로는 자긴 헤어지고 싶은데 집착이 너무 심해서 아직 말을 못 꺼내고 있다고…."

"별 애길 다했구만. 둘이서."

"맞죠?"

"조소연. 중요한 건 넌 지금부터 선택해야 한다는 거야."

"무슨 선택요?"

나는 물끄러미 다시 돈 가방을 가리켰다.

"저 돈을 갖던가. 아니면 없던 일로 하던가."

"……."

"좋아. 생각할 시간을 좀 더 주지. 이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만."

내가 다시 5만원 짜리 한 장을 꺼내 들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소연이 앞으로 다가오더니 나를 저지했다.

"잠깐만요. 멀쩡한 돈에 불붙이지 말고 제가 붙여드릴게요."

"왜 이래? 내 돈 내가 태운다는데."

"저게 제 돈이 될 수도 있는 거라면서요?"

덕자가 눈알을 부라리며 대들었다.

확실히 돈에 대한 집착이 남다른 아이였다.

'어휴, 무서워라.'

[그러게 왜 멀쩡한 화폐를 훼손하고 그러십니까?]

'충격요법 같은 거야.'

[충격요법요?]

'얼마나 돈을 좋아하는지 보려고. 지금 봐선 돈에 껌뻑 죽는 타입으로 보이는군.'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다.

돈을 물 쓰듯 쓰고, 스폰까지 받으면서 마통까지 끌어쓰는 아가씨라면 얼마나 돈에 대한 집착이 심할지.

덕자가 조심스레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리곤 담배가 절반도 타기 전에 덕자가 대답했다.

"할게요."

"뭐?"

"저한테 그러셨잖아요. 저 돈 받고 싶냐고. 저한테 시키시고 싶은 거 있으신 거죠? 뭐든 하겠다고요."

뭐든 한다는 말에 절로 입가 씰룩거렸다. 아마도 조커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진심이지?"

"네. 저 약속 잘 지켜요. 그 사람이랑 헤어지면 되는 거죠? 어차피 저 그 사람한테 미련도 없어요. 제가 먼저 스폰서 제안한 것도 아니고 김 변호사님이 절 좋아해서 시작한거예요."

"엉?"

"진짜예요. 그게 아니면 변호사님 몰래 여기서 알바하고 있겠어요? 전 그냥 저 돈 먹고 떨어질 테니까, 둘이서 지지고 복고 하든 알아서 하시라고 전해주세요."

혼자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 덕자가 돈 가방으로 대뜸 손을 뻗었다. 나는 그녀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밀어내며 저지했다.

"워-. 잠깐."

"뭐, 뭐에요?"

힘에 밀려 뒤로 벌러덩 나가떨어진 덕자가 볼멘소리로 물었다.

"왜 멋대로 떠들고 판단하는 건데? 난 아직 제안도 안 했는데."

"아, 아니었어요?"

"너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군."

나는 다시 무게를 잡으며 덕자를 향해 또박또박 말했다.

"아까 분명 사람 하나 패가망신 시킬거라고 말했다."

"설마 김변호사님을…."

"변호사님 같은 소리 좋아하네. 양아치 쓰레기 새끼지."

"……."

"어때?"

"제가 뭘 해야 하는데요?"

"이제야 제대로 된 질문을 하는군."

나는 가방을 열어 다시 돈을 테이블 위에 쏟아부었다. 아까 퀵서비스 직원에게 500만원을 줬으니 일억 구천 오백. 아니, 거기서 5만원을 태웠으니 일억 구천 사백 구십 오만원이다.

근 2억이 다 되는 현금은 시각적인 충격을 선사했다.

나보다는 덕자에게.

"허, 허헛 이게 진짜 이억이에요?"

"이억 언저리쯤은 되겠지."

"화, 확인해봐도 돼요? 위조 지폐같은 건 아니죠?"

"속고만 살았나."

나는 지폐 한 뭉치를 들어 덕자에게 던졌다.

그녀는 빠르게 지폐 하나를 랜덤으로 꺼내더니 빛에 비추어 홀로그램 등을 확인했다. 몇 장을 그렇게 확인하더니 침을 꼴깍 삼키고 나에게 물었다.

"이, 이걸 저한테 진짜 다 준다고요?"

"그렇다니까?"

"제가 할 일을 알려주세요."

나는 다시 덕자에게 준 돈을 빼 테이블 위에 놓았다. 500만원 짜리 묶음이 39개. 그야말로 돈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참고로 말하지만 이건 너도 다칠 거야."

"제가요?"

"김 변호사를 성매매 특별법 위반 현행범으로 걸리게 할 작정이거든."

"자, 잠시만요. 그럼 저도…."

"맞아. 너도 같이 체포되는 거지."

"미쳤어요?"

고분고분하던 덕자가 빼액 소릴 질렀다.

"제가 왜요? 오피일 한다고 손가락질 받으라고요? 주변 사람들한테 다 소문나고?"

흥분하는 덕자를 차분하게 노려보았다.

"저희과 애들은 저 졸부집 딸인 줄 안다고요. 돈 펑펑 쓴다고 그런데…."

"생각보다 말이 많군."

"예?"

나는 말없이 행동으로 보였다. 쏟아져 있던 돈 묶음을 집어 빈 가방에 다시 채웠다.

한 개, 두 개, 세 개….

덕자가 나의 행동에 놀라 소리쳤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왜? 안 한다는 소리 아니었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나 이미 10덩이를 집어 넣은 이후였다.

덕자가 테이블 위에 흩어진 돈과 가방에 들어간 돈을 번갈아 쳐다보며 가늠했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넌 지금 말 한마디로 오천만원 날린 거야."

"아니, 오빠!"

"왜? 그걸로 부족해?"

다시 한 덩이를 집어 들자 덕자가 필사적으로 나를 막았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제발!"

돈을 사랑하는 여자.

돈에 미친 여자.

그녀에겐 눈앞의 돈 무덤이 허물어져 가는 모습이 피와 살이 뜯겨 나가는 기분이었을거다. 나는 다시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30초 준다. 30초 뒤엔 다시 1억으로 줄 거야."

"잠깐만요! 어떻게 그런 결정을 30초만에 해요!"

덕자가 빼액 소리치더니 머리를 감싸 쥐었다.

성매매 특별법 위반과 1억 오천이라는 거금. 젊은 나이에 범법자가 되는 것과 돈의 무게를 저울질 하고 있을 것이다.

"시간 잘 가네."

"아악!"

"10초 남았어."

"그러니까 제가 김변호사랑 같이 잇는 현장을 적발 당해야 한다는…."

"시간 다 됐어."

나는 다시 무표정하게 돈을 가방에 쓸어 담았다.

한 덩이, 두 덩이….

"하, 할게요! 그만!"

"응?"

나는 세 덩이까지 밀어 넣고 동작을 멈추었다.

"한다고요. 하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그 돈 다 주세요. 끽해야 집행유예나 더 받겠어요? 초범에 나이도 어린데."

"하면 하는 거지 왜 갑자기 줄 긋는 건데 이억 정도는…."

덕자는 끝까지 돈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의 패착이었다.

"너 사람 잘못 봤어."

나는 미련 없이 가방으로 돈을 쓸어 담았다.

"아아아악! 뭐하시는 거예요!"

"니가 감히 나를 두고 협상을 해?"

"아니, 한다잖아요! 한다고요! 왜 돈을 도로 놓는 건데!"

"말했어. 결정 못하면 오천 더 날아간다고."

"아니 제가 한다고 했잖아요! 그럼 거기까진 줘야지요!"

"이억을 배팅을 하더라고. 그냥 순순히 받을 것이지."

이미 가방에 1억이 도로 담겼다.

이제 테이블에 깔린 건 1억 남짓.

덕자는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제 남은 건 1억.

[와, 주인님은 정말…]

'말했지. 내가 협상은 어떻게 하는 지 보여주겠다고.'

[세상에 돈을 얹는 게 아니라 줬다 뺏는 협상은 처음 봅니다.]

'원래 사람은 불안전한 이익보다, 손실 회피 경향이 더 큰 편이거든.'

[그게 무슨 소립니까?]

'가령 어떤 사람이 이런 제안을 한다고 쳐. 백원 짜리 동전을 던져서 앞이 나오면 1억을. 뒤가 나오면 그냥 백원을 준다는 거야.'

[그리고요?]

'그리고 동전 던지기를 안 하면 그냥 천만원을 주는 거지.'

[아….]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더 좋아할 것 같아?'

[설마 아무것도 안 하고 천 만원인가요?]

'맞아. 동전 던지기는 모아니면 도거든. 1억을 받을 수도 있지만, 백원만 받을 수도 있는 거지. 후자는 무조건 천만원을 받고.'

[아아, 그게 손실 회피경향이라는 거군요.]

'그렇지. 불확실한 1억보다, 확실한 천만원. 덕자는 눈 앞의 이억을 보고 눈이 돌아갔어. 그리고 그것이 점점 깎여 나가는 모습은 자신의 손실처럼 여기게 됐지.'

[덕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한 겁니까?]

'그렇지. 계속 튕겨? 그럼 돈이 줄어. 배짱을 부려? 그래도 돈이 줄어. 덕자는 결국 선택할 수 밖에 없을 거야.'

[아니 그럼 처음부터 1억을 제안했으면….]

'처음부터 1억을 줬으면 덕자는 돈을 올렸을 거야. 하지만 2억을 주고 1억을 빼면 남은 1억도 감지덕지 하는 거지.'

[하지만 주인님은 이번 일의 착수금으로 3억을 받기로 한 것 아닙니까?]

'어. 1억은 덕자 몫. 그리고 2억은 내 수고비.'

[이야! 이런 날강도 같은!]

'크크. 누가 이 큰돈을 홀랑 다 준데? 1억으로 시킬 수 있으면 1억으로 떼워야지.'

"…할게요. 1억에 할테니까 제발 그만 해주세요."

결국 덕자가 울먹이는 얼굴로 말했다.

후후. 이제 그럼 자지장 찍을 시간인가?

< 1040. 남의 떡이 더 맛있어.-10-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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