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7. 남의 떡이 더 맛있어.-7- >
***
운전을 하던 도훈은 보조석에 놓인 손가방을 힐끔거렸다. 서류가방처럼 생긴 그 속엔 5만원 묶음이 뭉텅이로 담겨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바로 정원에게서 착수금으로 받은 자금이었다.
'2억이라….'
누군가에겐 평생의 재산일수도 있는 금액.
2억을 현찰로 들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도박할 때랑은 또 느낌이 다르네. 그땐 위로지폐로 잔뜩 채웠는데 지금은 진짜 실탄이잖아.'
[전생의 주인님이 훨씬 더 부자였지 않습니까?]
'그건 맞지.'
전생의 이정우는 여자복은 없었지만 재물복은 많았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평생을 돈 걱정 해본 적이 없었고, 똑똑한 머리로 좋은 회사에 취직하여 처음부터 고액 연봉을 받았다. 부동산 투자에도 성공해 10억이 넘는 아파트와 상가 건물까지 등기 쳐둘 정도였다. 40대 초반 나이 치고는 대단한 성취.
'근데 이렇게 현찰로 들고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었거든. 아무리 부자여도 돈은 항상 다른 곳에 묶여 있으니까.'
[왜 그렇죠?]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현금을 들고 있다는 건 멍청한 짓이거든. 은행 이자를 받아도 모자라서 유가증권이니, 채권이니, 부동산, 아님 골드바라도. 뭐든 투자를 해야 하는 시대니까.'
[아하. 그럼 주인님도 이렇게 많은 현금을 쥐어 본적은 많지 않겠군요.]
'그렇지. 지난 번 도박할 때 거의 처음이었어. 너무 큰돈은 사실 통장의 숫자로 찍혀있는 것만 봤었고.'
큰 돈을 막상 눈으로 보게 되자 도훈은 살짝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만약 김변에 대한 응징을 포기한다면 이 돈은 고스란히 자신의 종잣돈으로 쓸 수 있었다. 나중에 받을 잔금까지 모두 3억에 이르는 거금을.
기존에 도박으로 딴 돈과 예림의 쇼핑몰 투자금, 거기에 이번에 착수금까지 얹으면 20대 나이에 어마어마한 현금부자가 되는 셈이었다.
또 이 돈을 자신의 금융지식으로 잘 굴린다면 30대에 접어들기도 전에 전생보다 더 큰 부자가 될 가능성이 컸다. 아니 확실할 것이다. 그가 가진 능력을 적당히 활용한다면.
하지만 도훈은 이내 미련을 버렸다.
'에이, 돈이 다 무슨 소용이야. 아이고, 의미 없다.'
돈은 전생에 개처럼 벌어왔다.
학창시절부터 전국구 수재의 길을 걸으며 공부만 했고, 대학생이 되서는 유학까지 다녀오며 취직준비에 애를 썼다. 그 와중에 전생의 마누라를 만나 상간남에게 칼 맞아 죽는 그날까지 죽어라 일만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돈을 벌어 누구 좋으라고?
돈 버는 사람 따로 있고, 돈 쓰는 사람 따로 있다던가.
그렇게 사치한 적도 없었고, 호사를 누리지도 않았다. 부를 축척한 것은 그였지만, 그것은 향유한 사람은 자신을 남편 취급도 하지 않던 부인의 몫이었다.
두 번 다시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두 번 다시.
"이젠 나를 위해 살겠어."
[왠지 거창한 각오로군요. 사실 뭐 지금의 주인님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부자가 되실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돈은 돌고 돌아야 돈이지. 섹스나 오지게 하고 사는 편이 나아. 적어도 지금의 나에겐.'
[역시 주인님다운 생각입니다. 카사노바 답달까.]
'그나저나 조소연이 근무하는 곳이 어디라고 했지?'
[역삼역 부근 오피스텔입니다.]
'우선 근황부터 살피는 게 좋겠군.'
도훈은 한적한 골목길에 차를 세우고 소연의 예명인 덕자의 행방을 찾았다. 그녀의 집 주소도 알고 있고, 번호도 확보했지만 무턱대고 찾아가는 것은 괜한 의심을 살 수 있었다.
[어쩌시려고요? 계획에 있으십니까?]
'일단 손님으로 위장해서 접근하려고.'
[김변처럼요?]
'김변도 처음에 손님으로 만나다고 했나?'
[네. 그러다 스폰으로 발전했다고.]
'일단 만나서 의향을 떠봐야 겠어. 아직은 프로필 말고 정보가 너무 부족하니까.'
도훈은 어둠의 경로를 통해 유흥업소를 홍보하는 싸이트에 접속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성매매 단속을 한다더니 버젓이 광고를 내고 성행 중이었다. 이쯤되면 사법당국의 단속의지 자체가 없어 보였다.
'역삼역 부근이라고?'
싸이트는 지역별로 권역이 구분되어 있었는데 마침 역삼역 부근의 가게들이 따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더 깊은 정보를 들여다보려고 하자 싸이트에서 곧바로 회원가입을 요구했다.
'회원가입?'
가입신청서를 채워가던 도훈은 마지막 남은 폰 인증에서 중단했다.
'이거 실명 인증해야 하는 거였어?'
[왜 그러십니까?]
'이건 위험하잖아. 만약 업소가 단속에 걸리면 내가 방문했던 기록까지 싹 다 털릴 거 아냐.'
[당연히 그렇겠죠?]
'이도훈의 유일한 소원이 교사가 되는 건데, 성매매 특별법에 걸리면 공무원 결격사유란 말이지. 현행법에서 성매매는 어쨌든 위법이니까.'
[아…. 그럼 어떻게 합니까?]
'일단 전화부터 해보자.'
도훈은 역삼역 부근 오피 실장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사장님. 말씀하세요.
"혹시 예약되나요"
-네, 누구로 지명하시게요?
도훈은 해당 점포의 아가씨들을 뒤져보다 아무이름이나 말했다.
"선경이요."
-선경이는 오늘 8시 선약 잡혀 있네요. 10시로 해드릴까요?
"네. 그럼 10시에 가면 되나요?"
-근데 아이디가 어떻게 되세요?
"아이디요?"
-네. 싸이트보고 전화 주신 거 아니예요? 인증 받은 아이디로만 예약을 받고 있습니다.
"아…. 저 오늘 가입했는데…."
-그럼 저희 가게는 힘드세요.
"네?"
-저흰 다른 업소에서 1차로 인증 받은 손님만 받습니다. 요새 위장 단속이 심해가지고요. 죄송합니다.
"아, 그럼 여긴 아이디 있어도 예약도 안 되나요?"
-네. 받아주시는 곳에서 인증 한 번 하고 오세요.
뚝-
전화가 매정하게 끊겼다. 가서 돈을 쓰겠다는데도 인증 받은 아이디 없이는 절대 받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사표현이었다. 시험 삼아 전화를 걸어 본 도훈은 곧바로 시스템을 이해했다.
'야, 요새 오피들 엄청 몸 사리는 구나. 손님이 가서 돈을 쓴다고 해도 마다하네.'
[단속이 무섭긴 무섭나 봅니다.]
'그렇지. 서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거지만 한번 쯤 실적 때문에라도 단속을 나설 테니까. 특히 방금 전화 받은 실장같은 애들은 대부분 바지거든.'
[바지요?]
'바지사장. 쩐주는 따로 있고 그냥 월급사장이라고. 단속에 걸리면 누군가는 쇠고랑을 차야 하는데 옴팡 뒤집어 쓸 사람이 필요하니까.'
[주인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십니까?]
'이정도야 뭐 나이 좀 있는 남자들 사이에선 상식인데 뭘.'
아무튼 인증이 생각보다 빡샜기 때문에 도훈은 머리를 굴렸다.
'단순히 통화기록이 남은 정도로는 문제가 안 돼. 하지만 싸이트에 가입하고 핸드폰 인증까지 받고 또 가게 방문이력까지 남겼다간 차후에 문제가 될 가능성이 커. 막말로 내가 자영업자나 자기 사업을 할 거면 몰라도 공무원이 되려면 알아서 몸 사리는 편이 좋지.'
도훈은 고심 끝에 최번개에 전화했다.
이런 일을 맡기는 데는 심부름꾼이 최고였다.
-예, 행님. 최번갭니다.
"번개야. 혹시 대포폰 하나 구해다 줄 수 있냐?"
-대포폰이요?
"어."
-혹시 무슨… 아닙니다. 30분 내로 구해드리겠습니다. 어디로 가져다 드릴까요?
도훈이 위치를 설명하고는 번개에게 말했다.
"얼마야?"
-예?
"대포폰 비용 말이야."
-아이고, 무슨 제가 행님께 돈을 받습니까. 괜찮습니다.
"받어 새끼야. 신세지기 싫으니까."
도훈이 곧바로 쏘아붙였기 때문에 번개가 움찔 놀라더니 다시 대답했다.
-그, 그럼 적당히 챙겨 주십시오.
"알았어. 최대한 빨리 움직여봐, 이름처럼."
-네, 행님!
전화가 끊겼다. 도훈은 잠시 차량에서 쉬면서 번개를 기다렸다.
'가만. 근데 본래 덕자는 프리라고 했지?'
[네.]
'그럼 현재 고정된 가게는 없는 거 아니야?'
[그렇겠죠. 오늘 일을 할지 안할지도 모르고요.]
'하-. 이거 큰일이네.'
도훈은 번개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행님,지금 준비 중입니다요.
"아니 뭐 물어볼 거 있어서."
-네, 말씀하십쇼 생님.
"지난번에 덕자가 출근하는 없소가 어디어디랬지?"
도훈은 메모장에 펜을 들고 번개가 불러주는 가게 이름들을 모두 받아 적었다.
"오케이, 수고."
-네 행님, 준비 되는 데로 튀어가겠습니다요.
모두 5곳의 가게. 번개는 친절하게도 상호와 함께 관리하는 실장의 번호까지 넘겼다.
'이 다섯 곳 중에 한군데 덕자가 있길 바래야 겠군.'
[까딱하면 오늘 허탕 칠 수도 있겠는데요?]
'어쨌든 주말이 되기 전에 한 번은 오지 않겠어? 김변을 만나는 게 주말이라고 했으니 몰래 알바를 뛰려면 평인 밖에 없잖아.'
[그렇겠죠?]
도훈이 30분쯤 차에서 기다리는데 골목길로 오토바이가 쌔앵 하고 달려왔다. 도훈이 차에서 내려 오토바이 운전자를 멈춰 세웠다.
"여어, 여기."
오토바이 운전자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번개가 빠른 배송을 위해 퀵기사를 섭외한것 같았다.
"이도훈님 맞으신가요?"
"어."
상대가 어려보여서 도훈이 자연스럽게 하대를 했다.
지금의 험악한 인상에는 반말이 더 어울렸다.
"저, 여기…."
물건을 전달한 기사가 싸인을 받고 가려고 하자 도훈이 잠깐 그를 불렀다.
"잠깐. 수고스럽더라도 이거 다시 발송인한테 전달해줘."
도훈이 꺼낸 것은 돈 가방에서 꺼낸 500만원 한 뭉치였다.
오토바이 퀵 기사는 두툼한 현금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훈은 그가 딴 마음을 못 품게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경고했다.
"나 뭐하는 사람인지 알지? 괜히 딴 생각 말고 잘 전달해. 수고비는 그쪽에서 받고."
"아, 네, 넵!"
도훈은 딱 봐도 힘 꽤나 쓰는 건달처럼 보였다. 특히 흥신소에서 발송한 물건이기 때문에 퀵 기사는 당연히 도훈도 험한일을 하는 사람이겠거니 짐작했다.
"똑바로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퀵 기사가 사라지자 도훈은 서류봉투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신분증이 복사된 종이도 함께였다.
[이게 대포폰인가요?]
'어. 이제 이폰으로 인증받아야 겠다.'
도훈은 대포폰을 통해 싸이트 가입을 완료했다.
아이디는 지난번 나이트 원정에서 써먹었던 불기둥이었다.
'자, 가입은 완료했는데 인증이 문제네. 오피들은 뜨내기들은 대부분 안 받는단 말이지.'
도훈은 싸이트를 계속 검색하며 정보를 구했다.
그러다 1차 인증을 받기 위해선 오피보다 건마라고 불리는 곳을 먼저 뚫는 것이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말만 건마지, 대부분 퇴폐업소였다.
'마사지부터 뚫어야 겠군.'
[마사지요?]
'방문기록을 업체끼리 공유하는 거 같아. 우선 진입장벽이 낮은 마사지를 뚫고 거기 인증을 바탕으로 더 빡센 곳을 통과할 수 있도록.'
[엄청 복잡하군요.]
'단속 뜨면 그냥 쇠고랑이니까 몸사리는 거지.'
도훈은 가까운 건마업체 한 곳을 섭외했다.
예상대로 그곳은 초짜라고 해도 신경쓰지 않고 아이디 인증만 확인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주차시킨 도훈은 마사지 업소를 먼저 방문했다. 일전에 미션 때문에 마사지를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어차피 지금은 고자니까 상관없지.'
1차 인증을 위해 도훈은 관리사를 소개받고 마사지를 받았다. 처음엔 이름처럼 건전하게 시작한다 싶더니 등판을 끝내고 앞으로 돌릴 때 마사지사의 손이 교묘하게 중요부위를 터치했다.
"하지마세요."
"예, 예?"
"건들지 말라고요."
험악한 인상의 도훈이 대번에 경고를 날리자 젊은 마사지사가 움찔했다.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들 대부분이 특별한 '서비스'를 바라고 오기 때문에 터치도 못하게 하는 도훈이 이상했던 것이다.
'씨발, 고자 새낀가?'
관리사는 팁을 못 챙기게 된 것을 아쉬워하며 속으로 짜증을 냈다. 도훈 역시 마사지사의 눈빛을 읽고 속으로 한탄했다.
'젠장, 몸뚱이만 멀쩡해서 고자 취급이나 받다니.'
[어쩔 수 없지요. 지금은 회복기니까요.]
'근데 이거 왜 안 서지? 충분히 쉰 거 같은데?'
도훈의 의식적으로 양물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이제껏 미동도 없던 대물이 살짝 꿈틀거렸다.
"오오!"
"예? 너무 아프게 주물렀나요?"
"아니, 선다고!"
도훈의 말에 관리사가 물끄러미 도훈의 팬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1회용 팬티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뭐야? 꼴렸잖아? 좆병신인 줄 알았더니….'
관리사는 그제야 마음이 풀렸다. 도훈이 자신의 외모가 마음에 안 들어 서비스를 거부하는 지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해드려요?"
"아, 예 부탁드립니다."
도훈이 급 공손해져 관리사에게 부탁했다. 어쨌든 발기가 다시 된다는 것은 희소식이었다.
"핸드는 3만, 섹스는 5만이예요."
도훈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대딸요."
"아…. 네. 뭐."
도훈은 괜히 막 기운이 차오르는데 곧바로 무리하고 싶지 않아 대딸을 선택했다. 하지만 관리사는 속으로 쯧쯧 혀를 찼다.
'얼굴은 무슨 조폭같이 생겨가지고는…. 혹시 성기능에 문제 있나?'
그녀는 도훈이 느닷없이 섰다고 소리를 지른 데서 오해를 하고 말았다. 도훈이 평소 발기부전 증세가 있어 물건을 잘 못 세우는 남자라고 추측한 것이다.
'몸은 쓸데없이 건장해가지고 불쌍해라….'
관리사는 동정심을 가지고 도훈에게 말했다.
"팬티 내리세요."
"네."
도훈이 일회용 팬티를 벗다가 귀찮았는지 그대로 힘으로 찢어 버렸다. 얇은 천소재의 팬티가 좌우로 갈라지자 두둥하고 대물이 튀어나왔다.
관리사의 눈도 덩달아 튀어나왔다.
'이, 이게 뭐야?'
< 1037. 남의 떡이 더 맛있어.-7- > 끝.
ⓒ 성난불기둥
작가의 말
뭐긴 뭐야. 몽둥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