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6. 남의 떡이 더 맛있어.-6- >
***
-덕자야. 오늘 나 대신 땜빵 한번만 서주라. 응?
"갑자기 이러면 곤란하지. 누군 뭐 스케줄 없니?"
원룸으로 보이는 공간.
빨랫감이 사방에 널려있고, 먹다 남은 치킨이 박스째로 구석에 처박혀 있다. 도저히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지저분한 공간에 젊고 육감적인 여성이 껌을 짝짝 씹으며 발톱에 매니큐어를 칠하고 있었다. 주변이 어지러운 건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느낌이었다.
스피커로 돌려둔 폰에서 다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참, 덕자야. 그러지 말고. 친구 좋은 게 뭐니? 너 말곤 진짜로 부탁할 사람이 없어서 그래. 아무도 시간이 안된데.
'친구'라는 단어에 덕자가 시크하게 웃었다.
고양이 상을 닮은 그녀의 표정은 비웃음이 무척 잘 어울렸다. 평소에도 자주 썩소를 짓는 편인지, 안면 근육이 자연스럽게 따라 올라갔다.
'염병. 보도 뛰면서 만난 친구도 친구야? 동갑이라고 꼴에 어울려 줬더니 이젠 맞먹으려고 드네? 좆이나 까시구요.'
속으로 욕을 퍼부은 덕자였지만, 겉으로는 상냥하게 대응했다. 겉과 속이 완전 다른 져자였다.
"아니, 그니까 그걸 당일에 말하면 어떡하냐고. 내가 도와주기 싫어서 그러니? 홀복은 아이롱 맡겼지, 미용실 가서 드라이도 해야 하고."
-음, 옷은 필요하면 내꺼라도….
"난 남의 옷은 안 입어. 그리고 너랑 나랑 사이즈가 다르잔항."
덕자가 무심결에 가슴을 으쓱했다.
커다란 유방이 출렁이며 슴부먼트를 일으켰다.
확실히 남다른 사이즈였다.
'친구라고 사정하면서 맨입으로 대타 세우려고? 흥, 어림없지.'
-알았어, 내가 그럼 오늘 일당에다가 십 만원 더 보탤게. 오늘 펑크 내면 나 남친한테 의심받는단 말이야. 내 사정 알면서 그래.
덕자가 피식 웃었다. 덕자는 이제 그녀가 다른 비번들에게 모두 연락을 돌리고 실패 한 뒤 최후의 보루로 자신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부르는 게 몸값이라는 의미였다.
"십 만원 가지고 무슨 옷을 사입니? 나 절대 싸구려 안 입는 거 알잖아. 그리고 원장언니가 지난 주부터 세팅비를 올려가지고…."
덕자가 구구절절 사연을 읊어대자 상대방에게서 듣다가 못 참았는지 곧바로 질렀다.
-알았어, 알았어! 묻고 더블로 간다. 이십! 더는 못 줘. 차라리 남친 새끼를 갈아타고 말지. 하루 쉬는 것도 내가 손해가 얼만데….
"이십에 콜. 깨톡으로 보내. 몇 시에 출근하면 되는데?"
통화를 마친 덕자는 마침 매니큐어가 모두 발랐는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발색을 확인했다. 선명한 검은색이 그녀를 더욱 섹시하게 만들었다.
"흐응~ 하루 일당에 플러스 20이면 뭐, 나쁘진 않겠네."
덕자는 갑작스럽게 꽁 돈이 생긴 것을 기뻐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 4시. 7시 출근이니까 아직 여유는 있나? 그나저나 변호사 아저씬 왜 요새 연락이 없담?"
덕자는 그녀가 OP를 뛸 때 쓰던 그녀의 예명.
본명은 조소연이었다. 바로 김변과 스폰서쉽을 체결한 발랑까진 여대생.
그녀는 김변이 연락할 때 쓰라고 준 2g폰의 문자를 확인하다 침대로 던져 버렸다.
"씨뎅, 갑자기 딴 년 생긴 건 아니겠지?"
그녀는 김변과 주 2회를 기준으로 월 400을 받는 스폰서 계약을 맺고 있었다. 사실 예전처럼 OP를 월 천만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매일 출근하면서 대학 생활을 병행하는데 피로감을 느낀 그녀는 김변의 스폰 제안을 받아들였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내 돈줄인데 말이지."
물론 사치스러운 성격의 소연에겐 월 400도 부족했다. 천만원씩 벌 때도 수중에 남은 돈 하나 없었는데 그 절반도 안 되는 돈으론 그녀의 허영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주로 주말에 보는 김변 몰래 평일 OP알바를 뛰고 있는 것이었다. 오피가 기본적으로 프리랜서라곤 하나, 아무래도 싸이트 광고도 때리고 단골손님을 붙잡기 위해선 일정한 출근 횟수가 정해진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을 때 펑크를 막기 위해 소연과 같은 전직 오피녀에게 호출하는 것이다.
이번 주만 해도 벌써 두 번째 대타 투입.
소연은 벌써부터 용돈을 벌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400으로 나를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웃기고 있네. 내가 대학생만 아니었어도 그딴 푼돈에 스스로 목 줄을 채웠을 까봐서?'
김변은 스폰 계약을 하면서 몇 가지 약속을 했다.
첫째, 스폰을 받는 순간 오피를 관둘 것.
자긴 남이랑 돌려 먹는 거 질색이라던가?
둘째, 일주일에 두 번 갖는 잠자리에 이유없이 거부하지 말 것 등이었다.
물론 소연은 콧등으로 듣고 흘렸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소연의 입장에선 꼬박꼬박 월 400을 받으면서도 필요하면 오피를 뛸 얄팍한 생각이 있었던 거싱다. 얼추 계산을 때려보니 크게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소연은 침대에 내 던진 휴대폰을 보며 생각했다.
'평일이니까 갑자기 연락 올 일은 없겠지? 보통 하루 전에 연락하는 편이니까.'
김변은 굉장히 치밀한 성격이었다.
스폰 비용을 줄때도 꼭 현금으로 계산했고, 자신이 안심할 수 없는 모텔이나 자취방에선 절대 관계를 갖지 않았다.
심지어 통화기록이 남는 것을 우려해 어디선가 대포폰을 구해오더닌 자신에게 선물로 줬다. 연락은 앞으로 그것으로만 한다면서. 물론 자신의 폰도 역시 대포폰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미리 말 안 한 자기 잘못이지.'
소연은 김변에 생각을 금방 잊어버리고는 곧 오늘 입고갈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행거에 주루륵 걸린 옷들은 죄다 명품, 혹은 준명품에 준하는 비싼 옷들 뿐이었다.
친구에겐 세탁소에 다 맡겼다고 했지만, 사실 너무 많아서 세탁소에 맡기고도 남은 옷이 한가득이었다. 방은 어지러운데 옷까지 많으니 안그래도 좁은 원룸은 돼지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음, 오늘은 좀 도발적으로 나가볼까?"
그녀가 가슴이 푹 패인 흰색 원피스를 골랐다.
가슴골이 훤히 보이는 스타일로 그녀가 입으면 베트남 아오자이를 입은 것처럼 몸에 착 달라붙어 우월한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사실 오피걸들은 유흥주점에서 일하는 텐프로처럼 옷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 옷을 입고 술을 마시고 노는 것도 아닐뿐더러, 옷을 입고 있는 시간보다 벗고 있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옷 입는 걸 좋아하는 소연은 예외였다.
그녀는 손님을 맞을 때에도 대화를 통해 시간을 끄는 편이었다. 그걸 위해선 손님이 쉽게 벗길 수 없도록 고급진 이미지를 줘야했다. 돈 주고 몸을 샀다고 멋대로 할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는 속셈이었다.
맘에 드는 옷을 고른 그녀는 에코백에 곱게 접어 챙긴 뒤 집을 나섰다. 집구석은 늘 엉망이었지만, 밖에 나갈 때면 정 반대로 맵시 있고 깔끔하게 꾸미고 나가는 소연이었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은 집안 꼴도 비슷했다.
단골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세팅하자 미모가 살아났다. 원장은 소연의 직업을 대강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말없이 머리 예쁘게 잘 됐다며 남친과 데이트 잘하고 오라고 했다. 물론 소연 역시 뻔히 알면서도 자신에게 캐묻지 않는 원장 언니를 좋아했다.
"잔돈은 챙겨두세요."
세팅비로 3만원이 나왔지만, 소연은 5만원 짜릴 건네고 그냥 가게를 나왔다. 자기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원장이 고맙다면서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는 모습에 자신감이 한껏 살아났다.
'하여간 돈이면 껌뻑 죽는다니까? 결국 모든 게 다 돈이지.'
비록 평상복이지만 소연이 입고 있는 청바지며 티 모두가 값비싼 외국 브랜드 제품이었다. 신발은 매니아들도 구하기 힘들다는 한정판이었고, 그녀가 찬 팔찌며 귀걸이, 목걸이, 반지 등 장신구만 해도 천 단위가 넘는 금액이었다.
그녀는 무척 사치스러웠으며 그 생활을 늘 유지하고 싶어했다.
대학 동기들이 매일같이 바뀌는 자신의 명품 가방을 질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게 너무 좋았다.
'어리다고 짝퉁 가방 매고 다니면, 평생 짝퉁같은 인생 사는 거야. 한 번 사는 거 명품처럼 뽀대나게 살아야지. 안 그래?'
역삼역 근방으로 출근하는 소연은 가게가 지하철 입구에서 바로 연결되는데도 굳이 택시를 잡아 탔다. 퇴근길에 정체된 구간에서 미터기가 하염없이 올라갔지만, 소연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녀는 없어 보이는 티를 내는 게 세상에서 가장 싫었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느니 그 시간에 손님 한명 더 받고 말지. 내가 뚜벅이라도 평생 대중교통 쓰나봐라.'
오피스텔에 도착하자 실장이 그녀를 반겼다. 30대 중반정도의 말끔한 사내였다.
"네가 오늘 미향이 대타지?"
"네, 안녕하세요."
"예쁘네?"
"저번에도 그 얘기 하셨잖아요."
"아, 그랬어? 미안. 여기 아가씨들이 워낙에 많아서 말이지."
보통 OP는 점조직으로 움직인다.
사무용도로 쓰이는 오피스텔에 방 몇 개를 잡아놓고, 실장이라 불리는 사람의 검증을 통과한 안전한 손님만 지명을 잡아 입장시키는 식이다.
성매매 단속으로 하도 여러 번 철퇴를 맞는 바람에, 핸드폰 인증에서부터 심하면 명함이나 주민등록 일부까지 검증할 정도였다.
오늘 소연이 대리 출근한 곳은 나름 사이즈가 큰 편이었는데, 실장 한 명이 룸 10개를 관리하고 있었다.
"1102호 가서 쉬고 있으면 돼. 갑자기 바뀌어서 지명 손님 없을 테니, 뜨내기 손님들 오면 최대한 네쪽으로 몰아줄게."
"네, 오빠."
"귀엽다, 너. 웃는 게."
"고마워요."
"대타 같은 거 하지 말고 정식으로 일해보는 건 어때? 플러스 5까지도 가능할 것 같은데."
실장은 예쁘께 차려입은 소연이 마음에 쏙 들었다.
플러스라는 것은 기본 외에 서비스에 대한 인센티브로 오피녀들의 급과 서비스 수준에 따라 차등이 있었다.
+2, 3이 보통이고 5까지 붙는 경우는, 아주 하드하게 플레이를 한다거나 아니면 텐프로 급으로 와꾸가 나오는 경우에 가능했다.
실장은 소연을 그 정도 급으로 본 것이다.
"죄송해요. 제가 아직 대학생이라서…."
"푸핫, 여기 애들 절반은 대학생일걸? 학생이 뭐라고."
학교를 핑계로 정식 출근을 사양하는 소연을 보고 실장이 어이없어 웃었다. 오피녀들은 대부분 2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걸쳐 있는데, 20대 초반의 상당수는 현역 대학생들이었다.
"저 공부하거든요."
"공부?"
"네. 졸업하고 시험 볼 게 있어서."
"그래. 뭐 네 뜻이 그렇다면야. 아무튼 오늘 잘 해봐. 내가 최대한 밀어줄테니. 비율은 알고 있지? 돈 받으면 알아서 빼놔."
"네."
그러면서 실장은 소연에게 은근히 추파를 던졌다.
"손님 몰아주면 나한테 떨어지는 것 좀 있나?"
"어떤 거요?"
"혹시 모르잖아. 나도 퇴근하면 네 손님으로 갈 수도 있고."
"후훗-. 오빠 하는 거 봐서요."
소연이 여우처럼 튕겼다.
과거 사창가 포주들은 '면접'이니 뭐니 하면서 아가씨들을 건드리는 경우도 잦았지만, 최근의 오피 시스템에서 실장은 과거의 포주와는 전혀 입장이 달랐다.
정확히 말하면 실장이란 온라인 도박 싸이트의 총판과도 비슷한 존재. 경찰 닫ㄴ속에 걸렸을 때 대신 실형을 사는 바지사장이었다. 실세는 따로 있고 그들은 대체로 조폭이거나 조폭과 끈이 닿아 있었다.
가게의 상품이나 마찬가지인 아가씨들을 함부로 건드렸다 진자 '사장' 귀에 들어가는 날엔 무슨 보복을 당할지 몰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으로 올라가는 소연을 배웅하며 실장이 입맛을 다셨다.
"거 씨발, 존자 꼴리게도 생겼네. 아오. 한 번 봐버려야 하는데."
혈기 넘치는 실장이 정장 바지 위로 껄떡거리는 잦이를 움켜쥐었다.
***
방으로 들어온 소연은 환복부터 했다.
평상복을 벗고 섹시한 홀복으로 갈아입자 전혀 다른 분위기의 미인으로 변신했다.
거울을 쳐다보는데 색기 어린 눈빛과 더불어 온 몸에 교태가 흘렀다. 자신이 스스로 봐도 매혹적인 외모였다.
'하여간 사내 새끼들이란….'
소연은 자신을 음흉하게 쳐다보던 실장의 눈빛에서 강력한 욕정을 읽었다. 풍만한 가슴과 빵빵한 엉덩이를 바라보던 시선에서 정념이 이글거렸다.
마지막 엘리베이터까지 배웅을 나와 입맛을 다시던 그를 생각하자 소연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조르면 누가 공짜로 대줄 줄 알고? 웃기고 있네."
OP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소연은 남자가 우스워졌다.
사내들은 어리고 탱탱한 자신의 앞에선 잦이를 껄떡대며 환심을 사려고 애썼다. 정의를 외치는 검사도, 환자의 존경을 받는 의사도, 잘나가는 벤쳐 사업가도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보빨을 해댔다.
'남자 새끼들은 좆에 뇌가 달렸나 봐. 하여간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남자들의 실체를 깨닫고 나면서부터 소연은 남자에게 어떤 감정도 생기지 않았다.
물론 세상 모든 남자가 다 돈을 주고 유흥을 즐길 리 만무하지만, 어쨌든 이곳에 발을 들인 남자들을 보면서 정나미가 떨어진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리 착한 척하는 사내라도 몰래 딴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것이 소연의 남성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결국엔 다 똑같은 새끼들이야, 사내 놈들은.'
소연이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내선으로 연결된 전화기의 벨이 울렸다.
"네 실장님."
-덕자. 손님 받을 준비 해라.
"벌써요? 저 지명 없다면서요?"
-몰라. 어떻게 알았는지 널 딱 찍고 연락했더라?
소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도 일전에 홈페이지에 올린 프로필이 아직도 갱신되지 않고 남아있겠거니 생각했다. 가끔 홈페이지 관리자들이 깜빡하고 놓치는 실수였다.
"알았어요. 언제 오는데요?"
-도착 10분 전이야.
"아니 무슨 예약을 급작스럽게…."
-그래서 미안하다면서 +5 부르더라.
인센을 더 준다는 소리에 덕자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 1036. 남의 떡이 더 맛있어.-6- > 끝.
ⓒ 성난불기둥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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