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2. 남의 떡이 더 맛있어.-2- >
도훈은 차를 몰아 최번개가 있는 흥신소 사무실을 찾았다. 차에서 내리려던 도훈에게 로시가 다급히 말했다.
[주인님! 역용 마스크!]
'아차차!'
도훈은 어린 대학생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나이가 들고 험상궂게 보이는 역용 마스크를 착용했다. 실수를 깨달은 도훈은 차 안에서 곧바로 마스크 팩을 꺼내 얼굴에 붙였다.
역용 마스크는 안면 근육 신경을 조절해 얼굴을 자연스럽게 성형시키는 아이템으로 10분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도훈이 한참 차에 앉아 얼굴을 변신 시키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차 문을 똑똑 두들겼다.
"행님! 벌써 도착하셨습니까요? 긴가민가해서 봤는데 딱 몸집이 행님이시네!"
난데없는 번개의 인사에 도훈이 화들짝 놀라 마스크를 뗐다.
"뭐, 뭐야?"
"아따 우리 행님 피부관리 끝내주게 하시는 구만요."
도훈은 갑자기 방해를 받은 것에 짜증이 나 인상을 확 구겼다.
"아씨, 깜짝 놀랐잖아. 기척이라도 하고 오든가."
도훈이 버럭 성을 내자 최번개가 바짝 움츠러들었다. 그의 싸움 실력을 이미 두 눈으로 목도한 탓이다.
"죄, 죄송합니다요. 저는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 마음에…."
[주, 주인님!}
'왜?'
[얼굴이….]
'엉?'
도훈의 로시의 말에 급히 룸미러로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거울에 정말로 인상 더러운 사내 한 명이 앉아있었다. 특히 미간에 주름이 심하게 패이고, 눈꼬리가 위로 올라가 전형적인 조폭의 모습이었다.
'으헉! 내 얼굴 왜 이래?'
[아아! 성형이 끝나기 전에 얼굴 근육을 당기시는 바람에 안면이 틀어진 것 같습니다.]
'아니, 이런 빌어먹을. 이건 누가봐도 깡패잖아?'
일전에도 한 번 안면이 뒤틀린 적이 있었던 도훈은 그때와 똑같은 부작용에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나마 어느정도 역용술이 완성된 이후에 주름만 틀어졌으므로 일전의 얼굴과는 많은 차이가 나지 않았다.
'아씨, 진짜 내가 봐도 인상 더럽게 생겼네.'
도훈이 차에서 내려 번개를 슬쩍 쳐다만 봤는데도 번개가 쫄아서 바짝 엎드렸다.
"죄, 죄송합니다요, 형님. 다음부터 마스크 팩 하실 때 절대로 방해 않겠습니다요."
"됐고. 용건이나 확인하자."
도훈의 현재 얼굴은 화를 내지 않고 있어도 화를 낸 것처럼 보이는 험악한 인상이었다. 도훈이 2층 건물을 오랒, 번개의 부하들도 그의 성난 모습에 바짝 쫄아 옆으로 비켜섰다.
'와 씨, 저번에 밤에 봐서 몰랐는데 낮에 보니까 인상 존나 더럽네.'
'어디서 사람 하나 담그고 온 거 아니야?'
다들 바짝 쫄아 있는데, 도훈이 사무실 책상에 걸터앉았다. 안 그래도 등빨도 좋은 그가 인상까지 험악하니 다들 긴장한 모습으로 바짝 얼어 붙어 있었다.
"나한테 보여줄 거 있다며?"
"아, 네, 넵."
번개가 별호처럼 빠르게 종이 몇장을 들고 테이블 위에 펼쳤다.
"저번에 말씀하신 김변 스폰에 대한 프로필입니다."
"이 여자애야?"
도훈이 얼굴을 보니 앳된 얼굴의 여대생이었다. 번개는 그 사이 신상을 다 외웠는지 옆에서 술술 읊었다.
"나이 스물. 현재 신상 여대에 재학 중인 대학생입니다."
"스물?"
"네. 조소과 1학년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조소과면 미대생인가?"
"오, 행님 혹시 대학 나오셨습니까? 어떻게 그걸 바로…."
번개는 자기가 말해놓고 도훈이 쓱 한번 쳐다보자 바로 입을 싹 다물었다. 도훈의 인상이 너무 험악해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그대로 한대 칠 것 같은 기세였기 때문이었다.
'뭐야? 왜 저렇게 쫄아?'
[주인님 지금 얼굴이….]
'내가 그렇게 무섭게 변했어?'
[그 정도면 그냥 얼굴로 조폭 두목 해먹을 관상인데요.]
'허-. 젠장.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계속해봐."
"네, 행님. 본명은 조소연, OP에서 쓰는 예명을 덕자라고 합니다."
"가만 오피라고? 김변 스폰이라며?"
"맞습니다. 본래 알바로 오피를 뛰는 여대생이었는데, 손님으로 찾아간 김변이 제안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본래 스폰을 받으면 그만두기로 했는데, 지금도 이따금 대타로 단기 알바를 나가는 모양입니다."
"하-. 세상이 말세네, 이제 스무살 밖에 안 된 계집애가 오피걸이라니."
"나름 잘 나간다고 하빈다. 여기 프로필…."
최번개가 어디서 구했는지 칼라 프린트 된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그것은 소연의 오피 프로필 사진으로 야한 속옷만 걸치고 전신을 찍은 모습이었다. 도훈은 현자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빼어난 몸매에 감탄했다.
'와 씨, 나이도 어린 게 발육이 무슨….'
소연의 몸매는 이미 완성된 것처럼 보였다.
특히 쭉쭉빵빵한 가슴과 골반이 인상적이었는데, 사진 밑에 D컵, 167cm, 47kg 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거 보정이야?"
"예?"
"프로필 사진 뽀샵한 거냐고."
"아, 아닙니다. 저희가 확인차 실물 사진도 찍었는데 프로필 그대로였습니다."
번개가 다음으로 도촬한 사진을 넘겼다. 원거리에서 망원 렌즈로 촬영되었는지, 친구들과 거리를 걷고 있는 여대생 조소연의 전신사진이 찍혀 있었다. 멀리서 찍은 사진임에도 프로필에서 본 우월한 몸매가 여실히 드러났다.
'와, 김변이 갈아탄 것도 이해가 되는데. 객관적으로 홍정원이 이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겠어.'
정원은 바로 김변의 내연녀였다. 조소연의 프로필을 확인한 순간 오랫동안 내연관계를 이어온 정원을 버리고 갈아탄 이유가 곧바로 납득이 갔다.
'정원도 유부녀치곤 봐줄 만 했는데, 소연이라는 애는 얼굴이면 얼굴 몸매면 몸매, 나이까지 하나도 빠지는 게 없네.'
[주인님이 마음에 드신 건 아니고요?]
'야. 나 지금 실질적 고자거든? 여자봐도 안 꼴려. 이건 그냥 객관적으로 팩트를 말한 거야.'
"재산 사항은? 그것도 조사하라고 했잖아."
"네, 알아봤습니다. 이쪽에 보시면…."
이번엔 최번개가 우편물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뭔데?"
"조소연의 카드 명세서입니다. 원룸 우편함에 처박혀 있던 걸 몰래 뽀려 왔습니다."
"걸리면 어쩌려고?"
"이미 2달 지난 겁니다. 딱히 우편물을 신경안쓰는 눈치더라고요."
우편물은 이미 개봉되어 있었다. 도훈이 카드 명세서를 꺼내보자 결제 예정액 500만원이 적혀 있었다.
"오백?"
"네. 보시는 그대롭니다."
"갓 스무살 먹은 대학생이 한달 카드값을 오백을 태워?"
"맞습니다. 그것 말고도 이리저리 확인한 결과 명품 같은 사치를 일삼느라 제2 금융권은 물론 사채까지 끌어쓴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몇천 단위의 빚이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도훈이 어이가 없어 한숨을 내쉬었다.
'와, 씨 답도 없는 년인데?'
[씀씀이가 과하긴 하군요. 다른 것도 아니고 명품을 사느라 빚을 지다니….]
'딱 보니 골이 텅텅 비었네. 얼굴은 반반하지, 몸매도 축복받았지, 대학 보니 딱봐도 3류 꼴통인데 잘나가는 척 허세 부리고 싶으니 사채까지 땡겨 향락을 즐기다가 자진해서 OP까지 진출한 유망한 룸망주였구만?'
[주인님은 어떻게 그렇게 단박에 파악하셨습니까?]
'딱 보면 사이즈 나오잖아. 이런 애들이 한 둘도 아니고.'
[그게 아니라 확실히 성욕이 감소된 주인님은 머리 회전이 더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뭐야. 그럼 평소엔 좆 때문에 디버프 받고 있단 소리야?'
[어쩌면 그럴지도….]
최번개는 도훈이 예측했던 그대로를 다시 들려주었다.
"…그래서 거액의 빚까지 짊어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김변하고의 관계는?"
"오피에서 단골로 만난 뒤 스폰까지 발전한 케이습니다. 근데 김변도 깍쟁이다 보니 스폰 비용은 그리 많이 챙겨주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한달 카드값도 못 막을 정도랄까요?"
"그래서 부족분을 메꾸기 위해 스폰 몰래 단기 알바를 뛴다?"
"네. 정확합니다."
"흠."
도훈이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담배를 입에 무는데 번개가 잽싸게 라이터를 대령했다.
"행님, 여기 불."
"어. 그래."
도훈은 조폭 두목같은 포스로 천천히 펼쳐진 서류들을 훑어보았다. 워낙에 인상이 험악하게 바뀌어 있다 보니, 그저 담배만 물고 있는데도, 번개를 비롯한 쫄따구들이 바짝 얼어 붙었다.
'와 씨발, 진짜 인상 개 더럽네.'
'수 틀리면 사람하나 묻어버릴 것 같으니 조심해야.'
"음…. 암튼 수고했다. 3일만에 이만큼 알아오다니 제법 능력있구나 너."
"아닙니다, 행님. 행님을 도울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제가 더 도와드릴 일이라도."
"조소연, 아니 덕자 일하는 가게가 어디야?"
"지금은 고정이 아니다보니 보도처럼 프리로 뛰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어느정도 구역이 있을 거 아냐?"
"역삼입니다요."
"역삼쪽?"
"네. 인근 오피스텔 서너 군데 땜빵을 나가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주로 언제?"
"주말엔 김변이 자주 불럿, 주로 평일에 뛰고 있습니다요."
"그렇단 말이지?"
"직접 만나서 볼 생각입니까?"
"김변 이새끼 족치려면 그래야지. 일단 알았어."
도훈은 수고했다며 최번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다음에 또 부탁할 일 있으면 연락할게."
"네."
용무를 마친 도훈이 사무실을 나가자 최번개를 비롯한 부하들이 그제야 참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
"후하! 개쫄았네요. 형님."
"저 형님 원래 저렇게 인상이 먹어줬습니까?"
"몰라 인마. 나도 첨 보고 얼굴이 바뀐 줄 알았잖아. 낮에 보니까 더 후덜덜하네. 하기야 민수 행님이랑 막역한 사인데 오죽하겠냐."
"저런 분은 사람도 몇 번 죽여 봤겠죠?"
"당연하지. 우너래 저런 사람들은 우리같은 부류랑 달라. 우린 칼만 들어도 손이 벌벌 떨리잖아? 저런 사람들은 아주 냉정해. 눈 앞에서 배때지를 찢어서 내장이 줄줄 흘러나와도 눈 하나 깜짝 안할 걸?"
"와…. 형님, 너무 가까이 하면 위험할 것 같은데요."
"그래요. 괜히 우리한테 불똥 튀는 건 아니겠죠?"
"괜찮을 거야. 석산파라는 뒷배도 있고, 민수행님이 보증한 사람이니까."
세 사람은 한참을 도훈이 떠나고 난 뒤 그의 험악한 인상을 주제로 떠들었다.
***
다시 차량에 오른 도훈은 룸미러를 통해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와 씨, 무슨 이런 면상이…."
거울로 보는 자신의 모습은 스스로도 섬뜩한 정도였다.
일전에 호빠 알바를 할 때 일부러 빻은 얼굴을 했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땐 그냥 어딘가 비대칭적으로 삐뚤어져 못생긴 얼굴이었다면, 지금은 살기를 뿜는 야차를 연상시키는 얼굴이었다. 게다가 하필 태안 해변에 다녀온 뒤로 얼굴이 까무잡잡 타는 바람에 안그래도 더러운 인상이 더욱 무서워 보였다. 정장을 걸치고 서잇기만 해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겁을 먹고 슬슬 피해갈 정도였다.
[제가 봐도 좀 살벌하네요.]
'이거 원래대로 못 돌리지?'
[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이미 보톡스 효과처럼 근육이 굳었기 때문에 한동안은 이대로 지내셔야 합니다.]
'아 놔 진짜. 그래도 나름 잘생긴 교회 오빠 스타일이었는데….'
도훈은 한순간에 180도 바뀐 얼굴에 실망했다가 문득 생각난 듯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누구한테 거시는 겁니까?]
'소연이 작업 칠려면 착수금부터 땡겨야지.'
[착수금이요? 아아, 홍정원양 말씀이군요.]
'응.'
도훈은 여름 캠프를 출발하기 전에 정원과 비밀 계약을 맺었다. 김변을 물먹이는 댓가로 3억의 현찰을 받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현금 3억은 부잣집 유부녀인 정원에게도 쉽게 마련하기 힘든 돈이었으므로 일주일 가량의 말미를 주었다.
도훈의 전화를 받은 정원이 반갑게 말했다.
-어머 이게 누구야? 한동안 연락도 없어서 무슨 일 난 줄 알았네?
"잘 사슈, 누님?"
-나야 그냥저냥 지내지.
"다른게 아니고 얼마나 준비 됐는지 물어보려고 전화했수."
-아 그거? 미안한데 이틀만 더 주면 안 될까? 아직 현금이 좀 모자라서.
"일부라도 괜찮소. 지금 바로 필요해서."
-지금 2억 좀 넘게 있어.
"그럼 그거라도 먼저 땡겨줄 수 있소?"
-그래? 돈을 주려면 만나서 얼굴을 봐야 할 텐데….
정원의 목소리에서 은근한 찰기가 느껴졌다.
도훈은 단박에 그녀가 자신을 원한다는 것을 감지했다.
'3일 전에 좆맛 좀 보여줬다고 완전히 중독되버린 거 같은데?'
[어떡하빈까? 지금 주인님은 서지도 못하는데요.]
'회복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적어도 이틀입니다.]
하지만 이틀 뒤면 주말이 시작되었다.
주말이 되면 소연은 오피를 나오지 않을 것이고, 그럼 또 다시 일이 지체되게 된다.
'안 돼. 어떻게든 평일에 접선을 해야해. 일단 2억이라도 먼저 받아야 겠어.'
[어떻게 하시려고요?]
'방법이 있겠지.'
"그럼 누님 지금 볼까? 나 한가한데."
-지금? 응 좋아. 오늘 남편 출장 갔거든. 어디서 만날까?
"지난 번 거기 어때요?"
-오케이. 나 그럼 준비 좀 하고 한 시간 뒤에. 괜찮아?
"그렇게 합시다."
통화를 끊은 도훈은 곧바로 처음 정원과 만났던 모텔로 차를 몰고 이동했다. 하지만 여러 문제가 있었다.
얼굴이 처음 정원을 봤을 때보다 무섭게(?) 변했다는 점과, 새벽에 무리하게 정력을 당겨 쓰면서 발기 부전 상태라는 점이었다.
'허참, 맨입으로 2억을 어떻게 받아낸다?'
도훈이 고민하는 사이 정원을 만나기 위한 모텔에 도착했다.
약속 시간까지 30분가량 남은 시각이었다.
< 1032. 남의 떡이 더 맛있어.-2-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