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0. 별이 쏟아 지는-80- >
[아영 양에 대한 집념이 무시무시하군요.]
'건방지잖아. 암컷 주제에.'
[암컷이라뇨….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시기 바랍니다. 몸을 허락한다는 것이 자발적 노예 선언은 아니니까요.]
정곡을 찌르는 말에 괜스레 민망해졌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소리지 설마 내가 그렇게까지 생각하겠냐?'
[말이 씨가 되는 법입니다. 가끔 보면 주인님은 공략한 여자들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존중하시고 아껴주셔야 합니다.]
'끄응. 알았다고, 잔소리는.'
하지만 로시의 일침이 마음에 긴 파문을 남겼다.
솔직히 말해 집행부로 끌어들인 8선녀도 그렇고, 이제껏 스쳐간 수많은 인연을 수단으로 여겼던 것은 사실이다. 업적을 위해, 미션을 위해, 때론 쾌락을 위해 그저 먹고 따고 버리고 다시 주워 먹고를 반복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녀들은 나에게 호감을 품고, 사랑한 죄밖에 없다. 대물에 굴복했다고, 그녀들을 함부로 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확실히…. 조금은 경솔한 발언이었던 것 같다. 반성한다.'
[잘못을 뉘우치는 게 시작입니다. 다른 여자들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1년을 함께 갈 집행부 후배들은 아끼고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주인님을 보고 희생을 자처한 것이니까요.]
'오케이. 근데, 아영이는 아직 모르겠어.'
[신경 쓰이십니까?]
'당연히. 나의 비행을 몰래 감시하는 파수꾼이 하나 생긴 느낌이랄까. 지금도 어디선가 훔쳐보고 있을 지도 모르지.'
[설마요. 훔쳐보고 있다면 벌써 어플의 경보가 울렸을 겁니다. 이미 어장 안에 들어온 셈이니까요.]
'그러려나?'
그말에 나는 안심하고 신나게 서현을 따먹었다.
***
'…또 사라졌어.'
도훈과 대화 후 뒤늦게 술자리로 복귀한 아영은 가장 먼저 도훈을 찾았다. 하지만 오늘 밤의 주인공인 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 자러 들어갔을 리는 없을 테고…. 또 어딘가에서 몰래 응큼한 작당을 벌이고 있겠지. 하, 정말 쓰레기 같으니.'
-너는 그냥 너대로 나를 싫어해. 나도 너한테 관심 안 가질 테니까.
도훈의 마지막 선언은 아영으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뻔뻔할 수 있지?'
보통 사람은 자신의 과오를 들켰을 때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잘못을 시인하고 자숙하거나, 아니면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떼며 오리발을 내밀거나.
하지만 도훈은 둘 다 아니었다.
자신의 행동을 인정했으나, 뻔뻔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그래, 사실이다. 근데 어쩌라고?
"하-. 진짜 철면피도 아니고."
아영은 세심하게 정보를 수집했다. 심지어 명백한 바람기의 증거를 확보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도훈도 주지하고 있었다.
-맘대로 하라고. 그걸 가지고 비겁하게 뒤에서 협박하지 말고 어디 하고 싶은대로 해봐.
도훈은 소문이 유포되는 것에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것처럼 자신을 도발했다.
'내가 정말 못 할 줄 알고?'
자존심이 상한 아영은 당장이라도 학과 사람들에게 도훈의 가증스러운 사생활을 폭로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의 뻔뻔하고 위선적인 면모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싶었다.
하지만 아영은 주먹만 부들부들 쥘 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어째서인지 남을 험담하고 뒷소문을 내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사실 그것은 그녀의 소신과 맞지않은 행동이기도 했다.
그녀가 자발적 아싸가 된 배경에는, 남들이야 어쨌건 내 갈길을 간다라는 개인주의적인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막막로 이도훈이 천하의 바람둥이건, 여자를 수십 명을 따먹고 다니는 난봉꾼이건 자신이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자길 건드릴 게 아니라면야.
'잠깐, 뭐야…설마 내가… .'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영은 순간 소름이 끼쳤다.
'내가 왜 이도훈을 의식하는 건데? 내가 왜 그 파렴치한 양아치 새끼를….'
아영은 갑자기 자신이 화간 난 이유가 도훈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에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자기는 안중에도 없이 다른 여자들만 건드리는 것에 대한 질투심 같은.
'내가 질투? 하-. 어이없어. 내가? 내가 왜?'
아영은 속이 바짝 타는 지 테이블 위에 물컵을 들어 벌컥벌컥 삼켰다.
'욱-!'
"어? 그거 벌주하려고 따라놓은 건데?"
놀란 남자 동기 하나가 소주를 글라스 째 원샷하는 아영을 말렸다. 하지만 아영은 이제와 무를 수 없었으므로 끝까지 벌컥벌컥 넘겨버렸다.
"끄으-."
술이 약한 편이 아니었지만, 난데없이 술을 들이 붓자 머리가 띵했다.
"와, 아영이 술 잘 마시네?"
"너도 같이 게임이나 할래?"
"맞아. 우리 지금 술 게임 중인데."
주변에 있던 동기들이 화끈하게 술을 원샷 때린 아영을 보고 참여를 권유했다. 평소의 아영이라면 대놓고 무시했을 테지만, 도훈에게 따돌림 당했다는 생각에 우울해진 아영은 친구들의 권유가 반가웠다.
"그, 그럴까? 근데 무슨 게임?"
"어. 지금 당근 게임 하는 중이야."
동기들은 유치한 손동작과 함께 "당근, 당근"을 외치며 시범을 보였다. 유치한 건 딱 질색인 아영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었던 아영이 군말없이 동작을 따라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아영은 계속 도훈이 언제 돌아오나 감시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상해. 왜 내가 전전긍긍 기다리는 느낌이 나지? 정말 재수없는 사람인데.'
아영은 급격히 흔들리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기분이었기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알 수 없었다.
***
"끄윽!"
도훈이 힘차게 사정했다.
축사 안에서 짐승처럼 진행된 섹스는 순식간에 끝이 낫다.
도훈이 민망해하며 말했다.
"미안. 애들이 올까봐 얼른 끝냈어."
"허억, 허억, 괘, 괜찮아요. 좋았어요,오빠."
서현이 부끄러워하며 잠옷을 끌어 올렸다. 정액이 주륵 허벅지를 타고 흘렀지만 닦을 겨를도 없었다. 도훈이 기특한지 서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음번엔 좀 편안한 곳에서 다시 보자."
다음이라는 말에 서현이 감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빠."
"샤워라도 한 번 하고 와. 찝찝하겠다."
"오빠는요?"
"너무 자리를 오래 비우면 애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거야. 난 일단…."
그때 서현이 갑자기 쪼그려 앉더니 더러워진 도훈의 대물을 입에 물었다.
"뭐, 뭐하는거야?"
"씻을 시간 없으실까 봐서. 제가 씻겨 드릴게요."
"안 그래도 되는데 참…."
서현은 입으로 도훈의 대물을 깨끗하게 씻겨주었다. 도훈은 갑자기 순종적으로 변한 서현이 쏙 마음에 들었다.
'저 질투의 화신이 이렇게 변할 줄이야.'
[그러게요. 사람일은 알다가도 모르겠군요. 서현양은 주인님의 바람기를 누구보다 했던 사람인데요.]
'어쩌면 조금은 체념했으려나?'
[체념이라뇨?]
'나란 존재를 절대 독점할 수 없다고 판단했겠지. 그렇다면 공공재로 여기는 수밖에.'
[오호. 그게 가능한가요?]
'마음을 바꾸면야.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결국 욕정이 감정을 억누른 거군요. 그렇게라도 해야 주인님이 자신을 상대해 줄 테니까.]
'그렇다고 봐야지. 아니면 속으로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고.'
[다른 꿍꿍이라뇨?]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공유하지만, 언젠가 자신의 매력을 발산해 독차지 하겠다는 심산일지도 모른다는 소리야. 8선녀 중에 한명이 최후엔 간택을 받을 거라고.'
[근데 주인님께서 8선녀는 극히 일부 아닙니까? 학교 밖은 더 많은데.]
'서현이는 그걸 모르니까.'
[와…. 나빴다.]
'어쨋든 집착을 조금 내려놓은 것 같아서 다행이야. 아영이만 해도 버거운데 서현이까지 피곤하게 하면 상당히 골치 아팠을 테니까.'
[이제 아영양만 거두면 하렘의 완성이겠군요.]
'아영이는….'
도훈은 도도한 아영을 떠올렸다.
최소한 외모와 달리 한기를 품은 미인이었다.
'아영이도 뭐…. 언젠간 이렇게 되겠지.'
도훈이 열심히 좆을 씻겨주는 서현을 보고 생각했다.
***
"바니바니, 바니바니~"
"당근, 당근!"
두 팔을 좌우로 우스꽝스럽게 꺾는 동작을 하던 아영은 문득 자괴감을 느꼈다.
'이, 이게 대체 뭐하는 거지.'
아영은 본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혼자일 때가 편했고, 사람이 많아질수록 피곤함을 느끼는 타입이었다.
홀로 있어도 외로움을 거의 느끼지 않았다.
당연히 남자란 있으나 마나한 존재였다.
"태영이 걸렸다."
"엎드려, 자슥아!"
"인디아안~ 밥!!!"
"윽, 팔꿈치 누구야!"
벌칙에 걸린 태영을 동기들이 마구 구타하는데도 아영은 소심하게 때리는 시늉만 할 뿐이었다.
'하아-. 내가 남자 때문에 신경 쓰게 되다니.'
아영은 고등학교 시절 넘치는 성욕 때문에 남자와 만난 적이 있었다. 자위와 비교해 얼마나 다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감정이 없는 섹스는 조금도 좋지 않았다.
자위보다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때 부터였나?'
하지만 아영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의 성감대가 다른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게 아영은 아다를 뗀지 얼마 안 돼 후장까지 개통하기에 이른다.
처음엔 너무 아프기만 했다.
그래서 두 번 다신 남자와 섹스를 하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신기한 것은 한 번 그렇게 후장을 개통하고 난 뒤 자꾸 생각난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꼭 남자의 성기일 필요가 없었던 아영은 자위를 할 때 그곳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성감대를 흥분시켰다. 뒤로 뭔가 들어올 때면 질과는 다른 느낌이 있었다.
해서는 안 되는 짓.
넣어서는 안 되는 곳.
금기를 깨는 기분이 어쩌면 더 자극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던 아영은 난데없이 도훈이 자신의 후장을 뚫는 모습을 상상했다. 상상만으로 짜릿해진 아영은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고 말았다.
"아… 후장하고 싶다."
"어, 어?"
순간 아영의 말을 캐치한 동기가 뜨악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뭐라고?"
아영은 실수를 깨닫고 당황했지만, 특유의 포커페이스로 태연하게 넘겼다.
"아니 해장하고 싶다고."
"아…. 와 순간 잘못 들은줄."
"뭐라고 들었는데?"
아영이 뻔뻔하게 되묻자 동기가 머쓱해 하면서 뒤통수를 긁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그때 어딘가에서 도훈이 나타났다.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아영은 도훈이 모습을 드러내자 마자 곧바로 그의 존재를 알아챘다.
'나타났군.'
아영은 도훈을 보자마자 심장이 쿵쾅거렸다. 도훈은 게임을 하는 이곳과 다른 자리에 합석했다. 보아하니 1학년 집행부 여학생들을 찾아 술을 따라주고 다니는 걸로 보였다.
게임이 다시 재개되었지만, 아영은 도훈의 일거수일투족만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가 누구에게 술을 따르고, 누구와 대화를 나누며, 어떤 행동을 하는지에 모든 관심이 쏠렸다.
"당근당근!"
"어? 아영이 걸렸다."
"오오! 드디어!"
"아영이 벌칙 받자."
잠시 정신이 팔린 사이 아영이 벌칙에 걸리고 말았다. 명석한 두뇌 탓에 게임을 거의 지지 않던 아영으로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아, 아니 나는…."
"에이~ 빼지 말고."
"인디안 밥 시원하게 한 번 가자."
"맞기 싫으면 술 마시던가."
게임에서 처음 걸린 아영을 벼르고 있었는지 다들 한 마디씩 거들었다. 아영은 아까 태영이 맞는 모습을 보고 난 터라, 벌칙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술 마실래."
"오오!"
"역시 아영이다."
"아영이 술 쎈데?"
아영이 글라스로 있던 벌주를 집어 들었다.
그때.
"이건 내가 실례?"
어느샌가 다가온 도훈이 아영의 술잔을 뺏어 들어니 한방에 원샷을 때렸다.
"우앗! 도훈 선배!"
"아니 형, 이런 법이!"
"이거 벌준데?"
한방에 소주를 털어넣은 도훈이 후배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게임이니까 흑기사 할 수 있는 거 아냐?"
"그, 그건 그렇지만."
아영은 난데없이 나타난 도훈이 자신의 벌주를 대신 마신것에 당황했다.
'뭐, 뭔데 갑자기? 왜 내 술을….'
"오케이. 그럼 흑기사 하셨으니까 소원 빌어요."
"맞아요."
후배들의 요구에 도훈이 아영을 보며 말했다.
"내 소원은, 후배 아영이가 1년간 열심히 집행부 활동을 도와주는 거야."
"에이~ 약하다!"
"그건 아니죠!"
"뭐야, 멋있는 척."
다들 불만을 토로했지만, 아영은 어찔할 바를 모르고 당황했다. 도훈이 자신에게 왜 이러는 지 알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훈이 그때 이유를 부연했다.
"실은 내년 집행부 할 후배님들 찾아다니면서 술 한잔 씩 따르고 있었거든. 근데 아영이가 벌주에 걸려서 마시기 직전이더라고. 그래서 내가 대신 마신거야. 술 돌려 받은 셈 치고."
"아하!"
"어쩐지."
도훈의 설명에 후배들도 대부분 납득했다.
하지만 아영은 설명을 듣고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나랑 쌩 까고 지내자더니 이제와서? 애들 앞에서만 착한 선배인 척? 흥. 재수 없어. 신세지고 싶지 않아.'
아영이 갑자기 도훈이 들고 있던 술잔을 뺐었다.
"저도 따라 주세요, 그럼."
"어?"
"술 한 잔씩 돌리신다면서요? 저도 따라 주시라고요."
"아…. 그럴래?"
도훈이 들고 있던 맥주병을 들이밀자 아영이 잔을 높이 들며 거부했다.
"아뇨. 소주로."
"소주로? 글라스 잔인데?"
"어차피 제 벌주였잖아요. 그대로 채워 주세요."
아영의 당당한 태도에 지켜보던 후배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아! 멋지다 박아영!"
"박아영! 박아영!"
도훈은 마치 그 응원이 자신에게 외치는 명령처럼 들렸다.
'박으라고?'
< 1020. 별이 쏟아지는-80-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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