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029화 (996/2,000)

< 1012. 별이 쏟아 지는-72- >

***

"오빠가 그렇게 섹스를 잘해요?"

"…뭐?"

"오빡 그렇게 대단하냐고요."

말문이 막혔다.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혹시 잘못 들은 건 아닌지 귀를 의심할수 밖에 없었다.

'방금 질문 실화냐?'

[네. 주인님의 섹스킬에 대해 묻는 것 같은데요?]

'아니 이게 무슨….'

선을 넘는 질문이었다. 어떤 논리 과정을 거치면 저런 질문이 튀어나올 수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마음의 소리를 쓴다는 것도 잊고 다시 또박또박 물었다.

"지금 나한테 질문한 거야?"

"네."

"왜?"

"궁금해서요. 대체 얼마나 섹스를 잘하면 우리과 여자애들이 오빠 말에 껌뻑 죽는지. 여러 명을 노리개처럼 데리고 노는 데도 이제껏 입막음을 할 수 있었는지가."

[진짜로 궁금한 것 같은데요?]

'그러게. 근데 아영이 쟤도 정상은 아닌 것 같네.'

"내가 왜 너한테 그걸 일일이 설명해야 하지?"

"안 하면 내가 후회하게 해 줄 테니까요."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 같은데…."

"나를 다른 여자애들이랑 같은 취급하지 말아 줄래요? 난 오빠한테 조금도 감정 없으니까."

[진심일까요?]

'감정이 없다는 사람 행동치곤 이상하지 않아? 오히려 저 말을 굳이 하는 게 더 의심스러운데.'

[아영양이 근데 왜 저러는 걸까요? 주인님께 억하심정이라도 있는 것처럼.]

'혹시….'

[혹시?]

'설마 질투하는 건가?'

[질투라뇨?]

'생각해봐. 아영이가 어떻게 알아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자신을 제외한 7선녀를 따먹은 사실을 알게 돼었잖아.'

[일부는 추정이겠죠.]

'어쨌든. 근데 자기만 안 건드렸다는 사실에 자존심을 상한 게 아닐까?'

[그건 너무 유치한데요? 오히려 파렴치한인 주인님을 보고 고발해야겠다는 정의감에 불타는 게 아닐까요?

'아니. 그럴 목적이었다면 어제 효민이 빤스 발견했을 때 이미 사달이 났을 거야. 아영이는 그걸 의도적으로 숨겼어. 그것만 봐도 다른 목적이 있다고 봐야겠지.'

[흐음. 과연….]

"개인적인 감정이 없다면서 왜 나를 곤란하게 만들려고 하는 건데?"

"감정은 없지만 궁금증은 있거든요."

"궁금증?"

아영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차분하게 설명했다.

"태영이가 그러더라고요. 오빠가 군대 다녀온 뒤에 사람이 180도 달라졌다고."

"내영이가 그런 얘기까지 했어?"

"녀석은 입이 싸요. 친하게 지내면 좋을 게 없을 듯."

'끄응. 이 새끼는 대체 어디까지 입을 털고 다닌 거냐.'

[태영군이 좀 촉새같은 성격이긴 하죠.]

"그게 사실이라고 치자. 그게 어때서?"

"이상하지 않아요? 군대를 다녀왔다고 사람이 그렇게까지 바뀔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요. 대한민국 남자들은 열에 아홉이 군대를 다녀와요. 사실 따지고 보면 대단한 것도 아니죠. 누구나 가는 군대,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다녀오는 건 똑같으니까요. 근데 유독 오빠만 군대다녀와서 달라졌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그게 잘못됐다는 거야? 내가 변한게?"

"제가 볼 땐 오빠는 다른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거죠. 군대는 핑계고요."

[오! 예리한데요? 어떻게 저런 추리를.]

'살짝 소름 돋긴 하네. 고작 이틀 만에 나를 간파했다는 말이잖아? 약간의 관찰과 주변탐문만으로?'

[머리가 상당히 비상한 편인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 주인님의 비밀에 대해 이렇게까지 파고든 사람은 처읍봅니다.]

'동감이다.'

"그러니 말해봐요. 대체 오빠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진실을 알고 싶어?"

"네. 사실 오빠한테 악감정은 별로 없어요. 어차피 나랑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근데 그걸 왜 그렇게 궁금해 하는데?"

"이건 마치 그러니까…, 혹시 야구 좋아하세요?"

"갑자기 왠 뜬금없이 야구 얘기야?"

"야구 선수들 중에 보면 어느 시즌부터 갑자기 포텐이 터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전년도까진 분명 그런저런 선수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리그 에이스급으로 성장한다던가, 홈런왕이든 타격왕이든 타이틀을 거머쥔다던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개인적으로 궁금해졌어요. 오빠가 어떻게 해서 2년 만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는지. 무슨 수로 여자를 홀리는 용빼는 재주를 갖추게 되었는지요. 그게 이상한가요?"

나는 팔짱을 끼며 방어적인 자세로 아영을 흘겨보았다.

대관절 속내를 짐작하기 힘든 여자애다.

하지만 바로 그런 면에서 남과 다른 매력이 있었다.

'…독특해. 확실히 전에 없던 캐릭터야. 머리도 굉장히 비상한 것 같고.'

[말수가 없어서 잘 몰랐는데 똑똑해 보이긴 하네요.]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야. 사실 8선녀 애들이 얼굴이 예쁘장 하긴 한데 브레인이라고 부를 인물이 없었잖아. 정음이만 해도….'

정음인 가끔 백치미를 느낄 정도로 청순한 아이다.

뇌까지 청순하다는 말이 맞겠다.

운동파인 경희는 말할 것도 없고, 외모에만 신경 쓰는 희주나 연두, 나연 역시 머리를 쓰는 쪽과는 거리가 멀다. 효민이는 아이처럼 소심하고, 그나마 머리를 굴릴만한 인물은 서현이 하나 뿐.

[서현양도 제법 똑똑하지 않습니까?]

'아니야. 살짝 결이 달라.'

[결이 다르나뇨?]

'서현이는 쉽게 말해 범생이 과야.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내신관리를 해온 노력형 수재. 과 수석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지 머리가 딱히 뛰어나다고 보긴 힘들거든. 정말 뛰어났으면 나한테 열등감을 느끼지도 않았을 걸.'

[오호.]

'아영이는 한마디로 천재과 같아.'

[천재요?]

'타고난 머리가 좋은 거지. 예리한 관찰력, 대범한 추리력, 그리고 숫자같은 것에 집착하는 집요한 성격까지. 지금가지 이런 타입은 없었어.'

[확실히 그렇군요. 보기 드문 타입인 건 확실합니다.]

'8선녀 중에 집행부로 꼭 영입해야 할 멤버가 있다면 바로 아영이야.'

[예? 지금 주인님을 협박하고 있는데도요?]

'협박이 아냐.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협상용이지. 아영이는 진짜로 궁금한거야.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나를 겁주려는 것 뿐.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자 않는 애야.'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플레이어의 비밀은 절대로 발설 금지인 거 아시죠?]

'딱 보니까 사이즈 나오는데 뭘. 머리가 똑똑하다고 본는이 없는 건 아니거든.'

[네?]

'보면 모르겠어? 자바꼼이면 끝이라는 소리야.'

나는 확신을 가졌다.

아영이은 나에 대해 궁금해 한다.

내가 지닌 섹스 스킬의 위력과, 그 근원을.

따라서 아영이는 절대 나를 겁박하지 못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나도 한때 천재소릴 듣던 사람이거든.

"대답해 줄 수 있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야."

"어째서죠?"

"다른 애들은 모두 3분도 안 걸려서 면담이 끝났어. 너만 10분이 넘어가면 의심하지 않을까?"

"음…. 저도 같은 취급을 받고 싶진 않은데요."

"좋아. 이렇게 하자. 내 비밀을 알려줄게. 하지만 너도 그때까진 절대 외부로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언제요? 전 말뿐인 사람을 가장 싫어해요."

"오늘 중. 기회를 봐서."

"조항요. 오빠가 기한을 정했으니, 나도 끄때까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오늘 자정이 넘어가면…. 각오 하셔야 할 거예요."

"너 무서운 애구나."

"제가 무섭게 생겼어요?"

"아니. 예쁜데. 그래서 더 무섭네."

"저한테 아부하셔도 소용없어요. 난 그런 감언이설에 넘어가는 타입 아니거든요."

아영이는 굉장히 자존심이 센 것 같았다.

특히 외모에 관한 부분을 칭찬하는 것에 반응이 까칠했다.

'외모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평가 절하당하는 걸 몹시 싫어하는 군.'

[그게 무슨 소립니까?]

'왜 가수들 중에도 있잖아. 외모가 너무 수려해서 가창력을 인정 못 받는 경우. 배우 중에도 가끔 있지. 연기를 잘하는데도 얼굴로 떴다고 폄훼 당하는 거.'

[아아,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해가 됩니다.]

'아영이는 스스로를 굉장히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타입이야. 남과는 다르다는 자아가 무척 강하지. 그런 아영이를 외모로 칭찬해 봐야, 소용없어. 껍데기만 본다고 무시당하는 기분일테니.'

[아영양이 왜 지금껏 솔로인지 알 것도 같군요. 대부분은 겉으로 보이는 청순한 외모를 추켜세웠을 테니까요.]

'그러니 태영이가 까였겠지.'

"아무튼 이따가 다시 얘기해 그럼 집행부는 어떻게 할 거야?"

"지금 대답해야 하나요?"

"이따 저녁 식사 때 성수가 집행부에 대해 발표를 할 테니까."

"아직 결정 못 했어요. 오빠가 왜 저를 선택했는지 그 이유를 못 들었으니까요."

"유보적이라는 거군. 그럼 이렇게 하자."

"어떻게요?"

"일단은 받아들인다고 해. 그 다음에 나가는 건 네 자유로 하고."

"중간에 그만둬도 상관없단 말씀이세요?"

"얼마든지."

"좋아요."

아영이 겨우 승낙하고 방을 나섰다.

잠시 후 성수가 들어왔다.

"애들 다 돌려보냈다. 면담 결과는?"

"일단은 모두 오케이예요."

"마지막에 아영인가? 걔는 왜 그렇게 오래 걸린거야?"

"궁금한 게 많더라고요."

"흐음. 근데 쟤 1학기 때 새터 한 번 나오고 학과 행사엔 코빼기도 안 비친 거 같은데, 집행부 되면 좀 달라지려나?"

성수의 우려에 나는 씩 웃었다.

"…아마도요?"

"새끼, 쪼개긴. 암튼 그럼 모두 동의한 걸로 알고 저녁 식사때 발표한다?"

"네."

***

캠프의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내일은 오전 일찍 학교로 귀가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오늘이 캠프의 마지막 밤이었다.

남은 식재료는 모두 투입되었고, 사온 술도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현직 학회장인 유미가 반주와 함께 시작되는 저녁식사에 건배사를 올렸다.

"오늘 모두 고생하셨어요!"

"회장님, 배구 너무 잘하셨어요!"

"언니 짱!"

"마유미! 마유미!"

유미가 열광하는 학과 후배들을 자제시켰다.

"자, 거두절미하고 땀방울로 하나되는 체육교육과 구호로 시작하겠습니다. 먹고!"

"죽자!"

"와아아아아!"

학생들은 시원하게 원샷을 때린 뒤 식사를 시작했다. 유미가 건배사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가는데 상석에 민주 혼자 앉아있었다.

"어? 교수님은요?"

"응, 점심때 먹은 게 체하셨나봐. 저녁은 못 드시겠다면서…."

"저런. 나중에 죽이라도 가져다 드려야 할까봐요."

"신경써줘서 고맙구나."

"암튼 조교선생님 맛있게 드세요."

"응, 민주야."

사실 지도교수는 낮에 민주와의 일 대문에 면목이 없어 얼굴을 못 비치는 실정이었다. 그는 혼자 방에 틀어박혀 컵라면을 끓여 먹으며 주린 배를 달랬다.

식사를 들던 민주가 유미에게 물었다.

"이번 캠프가 현 집행부 마지막 행사지?"

"네. 이제 2학기 행사부터는 새로운 집행부가 이어받을 거예요. 이제 뒷방 늙은이지요."

"어머, 한참 팔팔하면서 무슨. 아무튼 1년간 고생했어. 선수 생활이랑 병행하기 힘들었을텐데."

민주가 위로를 건네자 유미가 옆에 있던 성수를 끌어들였다.

"제가 무슨요. 얼굴마담이었지. 성수오빠가 실질적으로 회장 역할 다했죠."

"그래. 성수도 고생많았어."

"고맙습니다, 조교 선생님. 어쨌든 후임자들 정해놓고 나니 홀가분 하네요."

민주가 멀리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도훈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내년 집행부는 도훈이가 회장을 맡기로 했다고?"

"네. 딱히 시킬 사람도 없었어요. 하지만 저보다 훨씬 잘할거예요."

"아니야. 성수 너만큼만 해도 잘하는 걸 거야."

"하핫, 감사합니다."

유미가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키더니 말했다.

"그나저나 오빠. 인수인계식은 언제 하실 거예요?"

"밥좀 들어가고 하지. 애들도 배고플텐데."

"1학년 애들은 다 하기로 했데요?"

"어. 아까 개인적으로 한명씩 다 동의 구했어. 그나저나 내년 집행부는 시끌벅적하겠구나. 회장 한명에 부회장이 여덟명이면."

"엄밀히 말하면 부회장은 아니죠. 간부급이 8명인 거지."

"그게 그거지. 도훈이도 참 복 받았어. 완전 꽃밭에 둘러싸이는 거잖아. 하하하!"

성수가 생각없이 뱉은 말에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안 그래도 여자후배를 신경쓰고 있던 유미가 표정을 딱딱히 굳혔고, 조교인 강민주 역시 씁쓸한 표정이었다. 성수는 냉랭해진 분위기에 속으로 생각했다.

'으으, 괜한 말을 꺼냈나. 반응이 왜 이러지.'

"…그래, 도훈오빠는 좋겠네요. 꽃밭이라."

"아, 아니야. 유미야. 나도 행복햇어. 회장이 너라서."

"됐거든요?"

"나도 미안하구나. 파릇파릇하지 못해서."

"조, 조교선생님까지 왜 그러세요."

"후훗. 농담이야 농담."

민주가 가까스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괜히 의식하는 모습을 보이면 도훈의 입장이 난처해 질 것 같았다.

'그래. 어쨌든 도훈이가 회장이 되면 나랑 학과 행사로 이것저것 상의할 일이 많아지는 거잖아. 2학기 부턴 올해보다 훨씬 자주 볼 수 있을 거야. 나는 그것으로 충분해.'

"근데 2학기 행사가 뭐뭐 남았죠? 우리 작년에 뭐부터 했더라?"

"제일 먼저 2학기 개강총회, 그리고 가을 축제 때 주점이 있지."

"아. 그때부터 본격적인 임기 시작이군요."

"도훈이는 잘 해낼거야. 성실한 녀석이니까."

"그래야죠. 저희도 임용공부만 신경쓸 수 있게요."

유미의 말에 민주가 물었다.

"유미 너도 공부 시작하게?"

"네. 아직까지 프로구단에 콜이 없네요. 혹시 모르니 대비는 해놔야 할 것 같아서요."

"운동도 하랴 공부도 하랴 힘들겠구나."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 뭘."

식사가 적당히 들어가자 성수가 벌떡 일어섰다.

"자, 그럼 슬슬 인수인계 시작해 볼까?"

< 1012. 별이 쏟아지는-72-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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