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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027화 (994/2,000)

< 1010. 별이 쏟아 지는-70- >

***

민주와 차를 마시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응? 누구지?'

벨 소리를 듣고 민주가 물었다.

"누구?"

"성수 형인데요?"

"아까 문자하지 않았어?"

"그러게요."

마치 앞날을 예언한 것처럼 진짜 성수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역시 대낮에는 위험하군 아무 때나 불쑥불쑥 사람을 찾아대니.'

"저, 잠시 전화 좀 받을게요."

"응, 편히 받아."

나는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디냐, 너?

"잠깐 바닷가 근처 가게에서 모히또 한 잔 마시고 있어요."

-야씨, 그런 좋은 건 같이 마셔야지. 나도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때려야 되는데.

'뭔 드립이야 이건?'

[글쎄요. 앞뒤가 바뀐 것 아닙니까?]

"근데 왜요? 학회장 얘긴 아까 끝난 거 아니었어요?"

-그게 아니고, 너 애들 한텐 말했냐?

"무슨 애들요?"

-너랑 같이 집단 어쩌고 한다는 후배 말이야.

"네?"

-이취임식 발표할 때 내년 지도부 구상에 대해서 미리 알려줘야 할 거 아니야. 막말로 애들이 그 자리에서 안 한다고 발 빼버리면 어쩌려고? 엄청 난감하다.

"아, 그런가?"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야, 몰디브 그만 마시고 얼른 숙소로 튀어와. 내가 1학년 애들 소집해 줄 테니까.

"소집요?"

-내가 말하는 것보다 니가 직접 설득을 하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겠어? 어쨌든 1년을 함께할 집행부인데.

"아…."

-지금 모은다?

"알았어요."

통화를 마친 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상황을 전달했다. 민주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성수 말이 맞는 거 같아. 나도 학부생 때 집행부 참여해봤지만, 동의를 구하는 게 우선이거든. 애들이 착해서 안 그러겠지만, 선배가 강압적으로 시킨다고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겠네요. 그럼 선생님 먼저 일어나 볼게요."

"응, 그러렴."

민주와 헤어지고 곧바로 숙소로 돌아왔다.

마침 성수가 1학년 여자애들을 한곳에 모으는 중이었다.

"왔냐? 몇 명 아직 씻고 있다니까 5분만 기다리자."

"네."

"오빠, 무슨 일인데요?"

"왜 1학년만 불렀어요?"

몇몇 후배들이 궁금함을 드러냈지만, 성수가 중간에 잘랐다.

"도훈이가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해서 불렀어. 다 오면 조금 있다 한 번에 얘기하자. 도훈이 넌 잠깐 나 좀 보고."

성수가 우악스럽게 어깨를 두르더니 나를 뒤뜰로 끌고 갔다.

"왜요?'

"담배 좀 있냐?"

"담배 빌리려고 불렀어요?"

"아니, 아까 돛대 하나 남은 거 똑 떨어져가지고."

"나참."

성수에게 담배를 주고, 나도 하나 입에 물었다. 그러고 보니 성수가 부회장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임용 공부를 시작하면 새 담배 메이트를 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혼자 피면 심심한데.

성수가 담배를 입에 물며 물었다.

"너 근데 유미 어떻게 생각하냐?'

"네, 유미요?"

뜬금없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담배를 입에서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니, 아까 너 가고 둘우 까페에서 얘기하는데…."

"무슨 얘기요?"

"저번에 너 소개팅 한 거 말이야."

"소개팅?"

"그새 까먹었냐? 내 여친이 아는 후배 소개 시켜 줬잖아. 법학과 다닌다는."

"아아! 설수지요?"

"어. 그래."

"그냥 흐지부지 끝났다고 했잖아요. 밥 한번 먹고."

[밥만 먹고 끝난 것 같진 않은데요?]

'반찬도 먹었겟지.'

[허허.]

"아니, 유미가 엄청 궁금해하더라고."

"유미가요?"

"어. 이건 내 촉인데…. 어쩌면 유미가 너한테 관심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유미가요?"

성수가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이래 보여도 연애는 너보다 오래 했잖아."

"……"

'누가 누구에게 조언하는 건지.'

[성수 군이 보기엔 주인님은 첫사랑에게 버림받고, 그 충격으로 군입대했다가 제대 후에 아직까지 여자를 못 사귀고 있는 모쏠아다새끼 정도로 인식되지 않겠습니까?]

'아다 같은 소리하네! 아다 폭격기면 모를까.'

[어쨌든 성수군은 주인님의 비밀을 아직 모르니까요.]

"거의 확실해. 너랑 소개팅 한 애가 누군지, 얼굴은 예쁜지, 잘 됐는지 꼬치꼬치 캐묻더라니까? 관심이 없으면 그러겠냐고."

"별일 없다 했잖아요."

"그래! 그러니까 눈에 듸게 안도하더라니까? 그 철벽의 유미가.'

"음…."

'이걸 이제야 눈친챘단 말이야?'

[성수 군이 의외로 이런 쪽으론 둔감한 거닞도 모르겠습니다.]

'저 곰탱이도 학창 시절 내내 유도만 하던 놈인데 뭘 알 턱이 있나. 지금 여친은 어찌 사겼는지 몰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아니 혹시 너도 괜찮으면 내가 도와주려고 그렇지."

"저랑 유미를요?"

왜? 아까 배구 할 때 보니까 둘이 잘 어울리더만."

"배구 할 때 유미가 멋있긴 하죠. 그리고 둘이 같은 팀인데 호흡 맞추는 거야 당연하고."

"야. 너 진짜 몰라서 그런데 유미 만한 애도 없다? 배구 때문에 학교에 잘 안보여서 그렇지, 걔가 1학년 때부터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데."

"저야 잘 모르죠. 저 입대하고 들어왔으니."

"그러니까. 나는 걔랑 오래 알고 지냈잖아. 같이 집행부도 1년 같이 했고."

"인기 많았는데 왜 남자친구가 없었데요?"

"음…. 내가 알기론 없진 않았을 건데…. 아무튼 지금은 없잖아."

"유미가 괜찮긴 한데, 솔직히…."

"솔직히 뭐?"

"키가 너무 크지 낳아요? 저랑 거의 비슷할 것 같은데."

"에이, 그건 오버지 걔 180 안 돼."

"형, 여자 키는 170만 넘어도 오번데요."

"너도 작은 편은 아니잖아."

"암튼 좀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에요. 형도 그랫짢아요. 인긴는 많았는데 남자친구는 별로 없었다고. 그 이유가 뭐겠어요."

"하긴 남자들한테 좀 부담스러운 키긴 하지."

"그러니까요. 물론 꼭 키 때문에 싫다는 건 아니고요. 학교 대표로 계속 리그 경기 출장하고 평소엔 훈련하느라 바쁘잖아요. 얼굴 볼 시간이나 있겠어요?"

"그런가? …쩝. 유미가 너 괜찮아하는 것 같길래 한 번 말해 본 거야. 네 생각은 어떤 지."

"암튼 말해줘서 고마워요. 내 생각 해주는 건 형밖에 없네."

"짜식아. 내가 너 어떻게든 엮어 준다니까?"

"안 그래도 괜찮아요."

성수가 문든 뭔가 생각났는지 말했다.

"야, 그럼 1학년 애들은 어때?"

"1학년요?"

"어. 이번에 같이 집행부 한다는 8선녀들 있잖아."

"근데 그 별명 너무 오그라드는데. 걔들이 8선녀면 저는 뭐예요?"

"선녀를 거느리닌 옥황상제 아닐까?"

"하하! 괜찮네요, 그거."

"말 돌리지 말고. 집행부같이 하다 보면 얼굴이 볼일이 많아서 정분나는 경우가 많아."

"거기서 꼬시라고요? 집행부하면서?"

'이미 다 꼬셨다 이놈아.'

[성수 군은 정말로 눈치가 없는 편인지도.]

'다른 건 모르겠는데, 남녀 관계 쪽은 좀 꽝이네.'

"그렇지 자연스럽고 좋잔항. 도훈아, 내 경험상 뭐든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야."

"형이 제일 인위적이예요. 소개팅 시켜 주고, 맨날 엮으려고만 드록."

"그러니까! 이번엔 니가 직접 해보라고. 나는 판만 깔아 줄테니까. 가자. 애들 다 모였겠다."

우린 담배를 비벼끄고 다시 마당으로 나왔다. 어느새 여학생들이 모두 모여있었다. 영문을 모른 체 모여든 8선녀가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다들 모였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잠깐 장소 좀 이동하자."

성수는 모여서 얘기할 곳을 찾다가 남자 방에서 쉬고 있는 애들을 향해 소리쳤다.

"애들아. 잠깐만 방 좀 빌리자."

"엇, 부회장님."

"방을 빌리다뇨?"

"애들하고 회의할 게 있어서."

물놀이를 끝내고 방에서 쉬고 있던 남학생들은 난데없이 밀고 들어오는 여학생 무리에 당황하며 서둘러 복장을 갖추었다.

"어엇, 뭐야."

"잠깐, 실례할게."

"와, 남자방이 훨씬 넓네."

"남자들이 숫자가 두배는 많잖아."

"근데 여기 무슨 쾌쾌한 냄새 나는 것 같지 않아?"

몇몇 여학생들은 캠프와서 처음 구경하는 남자방에 강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정갈하게 짐이 정돈된 여자방에 비해 남자방은 1년째 치우지 않은 게으른 자취방처럼 난장판이었다.

여기저기 가방과 옷가지가 흩어져있고, 어제 잘 때 펴둔 이부자리가 그대로 깔려 있기도 했다. 편히 쉬고 있더 남학생들은 난데없는 축객령에 불만을 표하며 밖으로 빠져나갔다.

"야, 이렇게 된 거 족구나 하러 가자 그냥."

"오케이 콜!"

누군자 족구를 제안하자, 갑자기 신이 난 남학생들이 우르르 나갔다. 방이 비워지자 1학년 여학생 여덟 명과 성수, 그리고 내가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그때 희주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뭔데요, 부회장님? 할 얘기라는 게."

그녀는 갑작스레 호출된 연유가 몹시 궁금한 것 같았다. 1학년을 다 모은 것도 아니고, 1학년 여학생만 모은 것도 아니고, 1학년 여학생 중에서도 몇 명만 선발해서 모았다는 데서 의문을 표하는 것이었다.

"흠흠, 내가 얘기하는 것보다 도훈이가 직접 얘히하는 게 좋겠다. 도훈아 준비 됐지?"

"네."

그 말이 끝나자 1학년 8선녀 여덟 명이 동시에 나를 반짝거리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왼쪽부터 노란 머리 희주, 단발의 정음, 시크한 아영이, 안경녀 서현, 그리고 언제나 붙어 다니는 나연과 연두, 그리고 소심한 효민과, 건강미인 경희였다.

'좀 부담스럽네, 다 한곳에 모아 놓으니.'

[주인님에게 아직 터럭의 양심이라도 남아 있다는 증거겠지요.]

'인마, 내가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후배 위하는 선배일 뿐인데.'

"저, 그러니까. 내년도 집행부 구성과 관련해서 말인데…."

나는 비교적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

"저, 그러니까. 내년도 집행부 구성과 관련해서 말인데…."

도훈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집중하면서 그의 얘기에 경청했다.

하지만 아영만은 유일하게 예외였다. 그녀는 도훈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다른 여학생들의 태도를 훔쳐보고 있었다.

'효민이 쟤는 어제 오빠 앞에서 빤쓰까지 벗어놓고 태연한 것 좀 봐. 뻔뻔하긴.'

지난밤 도훈과 밀회를 즐긴 효민이 시치미를 뚝 떼고 이?ㅆ는 모습에 아영이 속으로 콧방귀를 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가만. 효민이만 그랬으리란 법은 없잖아? 설마 다른 애들도?'

의심이 든 아영은 나머지 여학생들도 하나하나 꼼꼼히 살폈다.

'오빠 옆에 딱 붙어 있는 쟤가 희주였지? 맨날 노출 심한 옷 입고 다니는.'

희주는 수영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는데도 굉장히 옷이 야했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시스루 셔츠 안에 일부터 검은색 브라를 배색해 속옷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게다가 밑에는 똥꼬까지 끼는 핫팬츠를 입어, 허벅지 깊숙한 곳까지 훤히 드러났다. 이쯤 되면 입은 건지 벗은 건지 분간이 안 갔다.

'쯧쯧, 저렇게 헤픈 애가 오빠한테 안 줬을 리 없지. 딱 봐도 했네 했어.'

이번에는 서로 장난을 치고 있는 연두와 나연을 보았다. 두 사람은 도훈의 말을 듣는 중에도 서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몰래 딴짓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연이 갑자기 이상한 손짓을 했다. 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들어 그 구멍 속으로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 하는 것이었다. 연두를 보라며 한 동작이었지만, 너무나도 적나라한 모습에 훔쳐보던 아영이 화들짝 놀랐다.

'저, 저게 뭐야?'

나연이 중지 손가락을 넣었다 빼고 있는데, 연두가 코웃음을 치더니 갑자기 자기 엄지 손가락을 구멍속으로 끼워 넣는 것이었다. 동시에 턱짓으로 도훈을 가리키는데 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누군가 자신들을 지켜볼 줄 모르고 무심결에 한 행동이었지만, 아영은 곧바로 그것이 도훈과 관계된 음란한 행위의 묘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맙소사. 설마 저 둘 다 동시에 도훈 오빠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두 사람은 동시에 도훈과 연관이 되어있는 것 같았다.

벌써 4명.

아영은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저 난봉꾼 새끼, 대체 몇 명을 건드린 거야?'

한번 의심하는 마음을 품게 되자 모든 게 이상해 보였다. 도훈을 바라보는 서현의 집착어린 눈빛도, 도훈 앞에서 유독 여성스러워진 경희의 태도까지. 특히 옆에 있는 정음은 자세까지 바로 하고 도훈의 얘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어찌나 집중하는 지 자신이 옆에서 쳐다보는 줄도 모를 지경이었다.

'…설마 나 빼고 다? 저 난봉꾼 새기가 이곳에 모인 여자애들을 다 따먹었다고?'

아영은 서서히 분노가 끌어 올랐다. 물론 아직까진 근거가 부족했고, 일종의 확증편향이 섞인 억측일 수도 있지만, 왠지 자신만 소외받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에서 제일 흉악한 사람은, 절대로 안주는 사람이 아니라 나빼고 다 주는 사람이니까.

"그럼 저희 모두를 집행부에 넣으시겠다는 말씀인가요?"

"응. 결론적으로는 그래. 지금 부회장님이 하는 일을 너희들 여덟명이 나누어 하는 거지."

듣고 있던 경희가 물었다.

"저, 선배. 질문 하나 해도 돼요?"

"어. 그래."

"부회장 맡길 사람이 없어서 일을 나누는 건 이해했는데요, 왜 하필 저희들인지 이유를 모르겠어서요."

"으음. 그건…."

경희의 질문은 핵심을 찌르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은 모두 여자였다.

그것도 1학년 여학생 전부도 아니고, 딱 여덟명.

다들 본인들이 선발된 이유를 궁금해했지만, 조용이 듣고 있던 아영은 소름 끼치는 시나리오를 그렸다.

'…설마 이도훈 좆집 모임?'

< 1010. 별이 쏟아지는-70-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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