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4. 별이 쏟아 지는-44- >
‘뭔데? 설마 문제 생긴 거야?’
[문제까진 아닙니다. 다만 장시간 혈류가 한 곳에 고여있던 문제로 다음 발기까지 충분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휴식이라고?’
[이제 그만 쉬시라는 말입니다.]
‘안 돼. 오늘 3명만 가지곤 내일은···.’
도훈은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30분 넘게 피가 잔뜩 고인 채 묶어 둔 것이 화근이었다. 로시의 말대로 더 이상 무리하지 않고 휴식에 두는 편이 옳았다.
하지만 결국엔 조삼모사다. 오늘 3명으로 넘기면, 내일은 7명을 자빠뜨려야 했다. 그 또한 무리가 될 건 자명했다.
‘하다못해 한 명이라 줄여놔야지, 안 그럼 내일 나 죽어.’
[잘못하면 영구적인 손상을 입을지도 모릅니다.]
‘크흠···.’
대물은 그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었다.
마법사에겐 마나가, 무림 고수들에겐 단전이 제일 중요한다면, 섹서에겐 대물이 그와 같았다.
[미션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늘 성공하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너무 욕심부리지 마시고 부디 옥체를 보전하소서.]
‘옥체 같은 소리하고 있네!’
도훈이 버럭 짜증을 냈지만, 로시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무리를 했다간, 자칫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생길지 몰랐다. 그건 더 최악이었다.
‘아으! 유미 요망한 년, 도움 되는 게 1도 없네.’
[주인님도 한 방 먹이셨으니 서로 비긴 셈이죠.]
‘내가 뭘 먹여? 막말로 마지막 질싸한 거 나보단 걔가 더 좋은 거잖아. 기껏 생각해서 마법의 정액까지 듬뿍 먹여 줬더니···.’
도훈이 가진 마법의 정액은 바르거나 섭취하면 피부가 고와지고 군살이 제거되는 미용 효과가 있었다. 또한 면역력이 증가하는 등 그 자체 효능만으로 뛰어난 영약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지나간 일입니다. 오늘 밤은 이쯤에서 마음을 비우시는 게···.]
‘알았어. 방법을 한 번 찾아볼게.’
이제 네 사람으로 줄어든 일행은 더욱 신이 나서 떠들었다. 만취한 태영이나 그 못지않게 술을 마신 효민이 가장 업되어 있었고, 아영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조용히 대화만 경청하는 편이었다. 도훈은 가끔 대화에 끼어들며 추임새를 넣었다. 지금은 어떻게 해야 오늘밤 한 명이라도 더 자빠뜨릴 수 있을지 그 궁리하는 중이었다.
"아영이가 야구 좋아한다니까 다음에 이 멤버로 야구장이나 한 번 가는 게 어때요?"
"야구장?"
"응. 괜히 또 소문나면 다른 애들 꼽사리 낄 때니까 우리끼리만."
"재밌겠는데?"
태영의 제안에 아영이 솔깃했다. 물론 그녀는 야구에 대해선 무지렁이나 마찬가지였지만, 도훈과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 굉장한 기대감에 들떴다.
‘꺄아. 야구장 데이트라니. 혹시 막 키스타임 이런 거 걸리면 오빠랑 뽀뽀하고 그러는 거 아닐까?’
태영도 셈법이 있었다.
‘아영이가 야구를 무척 좋아하니까, 같이 가면 금방 친해지겠지? 역시 사람은 머리를 써야 한다는 말씀이야.’
시큰둥하던 아영 또한 야구장을 간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녀는 소위 극렬 야빠였기 때문에 중계를 놓치더라도 늘 결과를 챙겨보는 열혈팬이었다. 늘 TV로만 보던 선수들을 직접 현장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형, 어때요?"
"응?"
"아니, 야구장이요. 다음에 한 번 같이 가자고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도훈이 흐름을 놓치고 말았다. 도훈의 밍밍한 반응에 효민도 졸랐다.
"오빠도 같이 가요. 경기 직관하는 거 좋아하지 않으세요?"
"음, 야구라···."
도훈은 딱히 스포츠 경기은 없었지만, 문득 다른 미션이 떠올랐다.
‘로시, 특수 직종이 더 맛있어 중에 치어리더 공략 있지 않았어?’
[네, 맞습니다. 해당 업적은 현재 여의사와 치어리더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의사는 그때 박지애가 근무하는 병원 의사로 점찍었으니 됐고, 치어리더를 어떻게 만나나 했는데 잘하면 이게 기회가 될 수도 있겠군.’
계산을 마친 도훈이 긍정적인 사인을 보냈다.
"괜찮겠네. 야구 경기도. 근데 다들 야구 좋아해?"
"당연하죠. 저 선수별 응원가도 다 외우는 걸요! 롯데의 간민호~"
"간민호 선수 이적하지 않았어?"
"아, 그, 그랬나?"
태영이 머쓱해 하는데 아영이 도훈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오빠도 야구 좋아해요?"
"응, 뭐 보는 건 좋아해."
"그럼, 야동요?"
아영의 입에서 튀어나온 단어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저 청순한 얼굴에서 야동이라니.
태영은 마시고 있던 술을 뿜었고, 효민은 뜨악하고 입을 벌렸으며 도훈 또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방금 야동이랬냐?’
[네. 그렇게 말했는데요.]
분위기가 이상한 걸 느꼈는지 아영이 설명을 덧붙였다.
"야구동영상 말인데요."
"아, 아··· 그, 그거?"
"네. 줄여서 다들 야동이라지 않나요?"
도훈은 금시초문이었지만, 아영이 너무도 당당히 야동을 입에 올리자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 그렇지."
"제가 가는 커뮤니티에선 다 그렇게 말하던데···."
[이상한 커뮤니티군요.]
‘남자들이 많은 싸이트라 언어 유희 삼아 부르는 걸 아영이가 아무 생각 없이 따라하는 게 아닐까?’
"야구 사진은 야사, 야구 선수 썰은 야설···. 다 이렇게 부르는 줄 알았어요."
"어, 어 그래."
"좋은 커뮤니티다."
"음···."
다들 말을 아꼈지만, 아영이 의외로 그런 쪽으로 둔감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야동이니 야설이니 야사니 하는 단어들은 대체로 19금과 관련된 은어였던 것.
"암튼, 오빠는 어디 팀 좋아해요?"
"나? 그냥 연고팀이지. 서울."
"서울에만 3팀있는데···."
도훈은 눈치를 보다 아무거나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당연히 두산."
"아···. 저는 LG인데···."
아영의 표정에 실망하는 모습이 살짝 드리웠다.
도훈은 아차 싶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제와 말을 뒤집자니 그게 더 진정성이 없어 보였다.
"엘지도 훌륭한 팀이지."
"두산 팬에게 그런 위로 듣고 싶지 않아서···."
[뭔가 분위기 쌔해졌는데요?]
‘그러게. 그냥 닥치고 있어야 겠다.’
태영이 갑자기 껴들었다.
"어, 나도 쌍둥이 팬인데!"
"어, 그래."
아영이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난 그냥 응원하는 팀 따로 없이 아무 경기나 잘 봐."
"그럼 우리 두산 vs LG 붙는 잠실 경기로 표 끊으면 되는 거야?"
"지금 바로?"
"말 나온 김에 예약까지 해버려야지. 방학중이라 괜히 또 시간 지나면 흐지부지해 지니까."
태영이 스마트 폰을 꺼내놓고 예약에 들어가자 효민이 달라붙어 서로 날짜니 좌석이니 맘대로 정하기 시작했다. 도훈은 토라져있는 아영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응원하는 팀 좀 다를 수도 있지 이게 서운할 일인가?’
[그야 뭐 사람에 따라 다르지 않겠습니까?]
도훈 일행이 한참 야구 경기 예매를 하던 중이었다. 누군가 그런 도훈을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
서현은 회식이 시작할 때부터 도훈을 주시했다.
비록 그와 다른 조에 배속되었지만, 시시때때로 그의 움직임을 눈여겨보며 누구와 대화를 나누는지 한명 씩 기억했다. 그녀가 잠깐 한눈을 팔았을 때 도훈이 처음 사라졌다.
사라졌다는 말은 최소 20분 이상은 자취를 감춘 경우로서, 화장실을 다녀온다기엔 살짝 긴 시간이었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도훈은 살짝 들떠 보였으며, 뭔가 감추는 듯한 표정이었다. 의심이 든 서현은 도훈을 직접 조사하는 것보다 그를 만난 여자를 찾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방구석에 제일 먼저 쓰러진 희주를 발견했다.
식사부터 달리기 시작한 희주는 과음의 피로 때문인지 누구보다 먼저 잠자리에 들어있었다. 하지만 서현은 희주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한다는 걸 깨달았다.
‘왜 저렇게 끙끙대지? 평상시 모습하고 다른데···.’
희주는 자꾸 뒤척이는 게 한참 시달리다 온 사람 같았다. 그녀는 희주와 도훈의 밀회를 의심했다.
‘했네, 했어. 저년 옛날에도 한 번 꼬리치더니···. 하여간 제 버릇 개못준다고.’
서현은 희주를 처음부터 싫어했다.
학기 초엔 얼굴도 못 생긴게 몸을 함부로 굴려가며 남자들을 꼬시고 다닌다며 싫어했고?물론 그 남자중에 도훈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지만-, 제법 미모에 물이 오른 이후로는 괜히 성형의혹을 제기하며 그녀를 시기했다.
‘하여간 걸레 같은 계집애, 칫.’
비록 현장을 발각하진 못했지만 분명 희주가 도훈과 한 판 했을 거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예전부터 그녀가 도훈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서현은 얼마 안 있어 또 도훈이 자리를 뜨는 것을 보았다. 이번엔 경희가 뒤따라 일어서자 서현은 두 눈을 의심했다.
‘뭐야? 설마 경희랑도 그렇고 그런 사이였어?’
서현은 도훈이 난봉꾼이라는 사실을 학과 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몇 번은 직접 목격하기도 했고, 간접적으로 알게 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경희마저 도훈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이번에야 깨달았다.
‘말도 안 돼. 경희랑 정음이는 서로 라이벌 아니었나?’
서현은 도훈의 여자를 희주와 조교, 그리고 육정음 정도로 특정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정음이 가장 밀접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정음과 평소 가장 대립각을 세우는 경희가 도훈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인간 대체 몇 명이나 후리고 다니는 거야?’
서현이 재빨리 자리를 일어서 도훈을 뒤 쫓았다.
그러나 도훈과 경희는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민박 집 건물 안이면 모를까 마을 전체를 뒤지기엔 범위가 너무 넓었다.
‘하-. 대체 어디로 사라진거야? 분명히 둘이 나가는 걸 봤는데···.’
서현이 마을 어귀에서 서성이는데 한참 뒤 경희가 절뚝거리며 숙소 쪽으로 걸어갔다. 서현이 다짜고짜 쫓아가 경희를 붙들어 세웠다.
"경희!"
"어, 어 서현아? 여긴 어쩐일이야?"
경희는 기가 쪽 빨린 듯 초췌한 모습이었다. 특히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땀에 젖은 채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얘도 했네, 했어.’
서현이 확신을 가지고 물었다.
"어디 갔다 온 거야? 옷은 또 왜그렇고?"
서현이 경희의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지적했다.
경희가 당황하면서 대답했다.
"어, 저기···. 잠깐 바람 쐬러 갔다가 발을 헛딛어서 굴렀어."
"굴러?"
"어···. 미안한데 나 좀 씻어야 할 것 같아서."
경희가 회피하려고 하자 서현이 그녀를 붙잡았다.
"잠깐. 사람 얘기하고 있잖아."
"왜 그러는데?"
"이 밤에 혼자 산책이라도 하러 간 거야?"
서현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경희도 슬슬 짜증이 났다.
안 그래도 유미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훼방을 받아 속상하던 차에 난데없이 서현이까지 나타나 성가시게 굴자 열이 확 뻗친 것이었다.
"내가 왜 내 일거수일투족을 너한테 일일이 보고해야 해야 하는데? 주제 넘는 짓 하지말지?"
"···뭐라고?"
경희는 여자들 중에서도 터프한 축에 속했다.
피지컬도 제일 뛰어났고, 오랜 운동으로 다저져 범생인 서현과는 거리가 있는 타입이었다.
"할 말 없으며 나 간다."
경희가 훽 돌아서더니 다시 어기적 거리며 숙소로 걸어갔다. 서현은 주먹을 불끈쥐며 그녀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저게 감히···.’
하지만 서현은 꾹 화를 눌렀다. 지금 경희와 언쟁을 벌이는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사라진 도훈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그나저나 이 바람둥이 오빠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한참 도훈을 찾던 서현은 결국 별 다른 소득없이 털래털래 숙소로 복귀했다. 혼자 씩씩 거리며 술을 마시고 있는데, 여자 방으로 또 다른 한 명이 들어갔다. 커다란 키로 보아 회장인 마유미 같았다.
‘응? 유미 언니는 이 밤에 또 어딜 다녀온 거지?’
서현은 이제 유미까지 의심스러웠다.
먼저 방에 들어간 세 사람은 다들 공통점이 있었는데, 하나 같이 심하게 당한 것처럼 절뚝거리거나 지쳐 있었다는 점이었다.
‘서, 설마 유미 언니까지? 맙소사!’
서현은 이제야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도훈은 시시때때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자취를 감춘 여성들이 있었다. 잠시 후 그 여성들은 하나같이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들어가 먼저 잠을 청했다.
서현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고, 곧 질투심으로 철철 끓어 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년이 나 빼고 다 주는 년이라는 법칙으로 미루어 볼 때, 도훈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이나 마찬가지였다.
‘나 빼고 다 따먹고 다니는 거잖아, 지금?’
서현은 너무나 억울했다.
희주는 본래부터 도훈의 좆집이었고, 최근에 예뻐지기라도 했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희나 유미에 비하면 자신이 꿀리는 것도 아니었다. 경희는 얼굴이 너무 까맸고, 유미는 키가 지나치게 컷다.
쉽게 말해 둘 다 매력은 있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취향이었다.
그런데 도훈이 먹성 좋게 다 따먹으면서도 자신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은 것이었다. 이것은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고, 질투의 화신인 서현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감히 나한테 이따위 취급을 했다는 거지? 내가 입만 뻥끗하면 매장당할 처지면서.’
서운함이 지나치자 서현의 마음에 애증이 자라났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도훈은 이 와중에도 다른 여자 동기들 두명과 하하호호 떠들고 있었다.
분에 찬 그녀가 도훈에게 다가갔다.
"오빠. 저좀 잠깐 보실래요?"
< 984. 별이 쏟아 지는-44-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