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6. 별이 쏟아 지는-36- >
‘나참, 무슨 면접 보러 온 것도 아니고.’
[세 사람이 합심해서 주인님을 몰아세우는군요.]
다들 목적은 달랐다.
우선은 도훈이 얼른 여자를 골라 안착하기를, 효민은 짝사랑하는 마음을 고백하기를, 그리고 경희는 오늘 밤 어떻게든 도훈과 회포를 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서로의 다른 목표가 결과적으론 도훈을 두고 압박 면접하듯 표출되고 있었다. 우선이 운을 띄우면 효민이 양념을 치고, 경희가 때리는 식이었다.
"그러니까 성격이 똑같다는 전제하에?"
"네."
경희는 이 질문만큼은 도훈이 피해갈 수 없을 거라고 보았다. 하지만 도훈은 여전히 한 수 위였다.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강경희?"
"예?"
"만약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정답은 정해져 있잖아."
"그게 뭔데요?"
"두 사람 중에 나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겠지. 안 그래?"
"아, 아니···."
경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도훈이 교묘한 말솜씨로 대답을 회피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거기에 또 토를 다는 게 궁색하게 느껴졌다.
‘하여간 기름장어처럼 잘 빠져나간단 말이야?’
도훈은 곧 화살을 돌렸다.
"나한테만 묻지 말고 우선이도 물어봐 줘."
계속 대화가 도훈 위주로 흘러갔기 때문에 여학생들도 우선을 챙기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을 병풍취급 한다는 인상을 주어선 곤란했다.
"우선 오빠는 이상형이 어떻게 돼요?"
"내 이상형? 음···."
우선이 잠시 생각에 잠기자 효민이 갑자기 허를 찔렀다.
"애매 모호하게 대답 말고 우리과에서 제일 근접한 사람으로 골라봐요."
"우, 우리과에서?"
"네.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고요, 그냥 우리과 여학생 중에서 그나마 가장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요."
효민의 얄팍한 수작에 우선은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어쨌든 대답은 해야 했기에 우선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씨, 이거 괜히 잘 못 말했다가 괜히 군대 가기 전에 흑역사 하나 남기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고백도 못 해보고 까일 순 없는데···.’
우선이 흔들리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데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화장실을 간다며 일어섰던 태영이었다. 안 그래도 자리를 뜬지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아 의아하게 여겼는데, 태영은 구석에서 여학생 한 명과 맥주를 홀짝거리는 중이었다.
"어? 잠깐. 저 애가 누구였더라?"
"에이, 오빠 말 돌리지 말고요."
"맞아요. 해병대 자원한 남자답게 시원하게 한 번···."
"아니, 태영이 옆에 있는 여자애 말이야. 얼굴은 본 것 같은데, 이름이 기억 안 나네?"
우선이 계속 태영 쪽을 가리키며 묻자 경희와 효민도 그제야 시선을 돌렸다. 태영 옆에는 맥주캔을 든 늘씬한 여대생 한 명이 함께 있었다. 멀리서 봐도 이목구비가 한눈에 들어올 만큼 눈에 띄는 미인.
"아영이네."
"아아, 박아영! 맞다."
"근데 저 둘이 뭐 하는 거야? 태영이는 아까 화장실 간다더니 저기서 아영이랑 둘이 놀고 있었네?"
"혹시 썸?"
효민이 장난삼아 던진 말에 우선이 발끈했다. 도훈은 그렇다쳐도 태영보다는 자신이 우위라고 여겼다. 그런 태영이 처음보는 미녀와 단둘이 있다는 사실에서 갑자기 질투심이 폭발했다.
"썸 이라니! 태영이가 무슨···."
"예?"
"오빠 왜 근데 갑자기 흥분하세요?"
우선은 아차 싶었는지 다시 말을 바꿨다.
"아, 아니. 너희들이 오해한 걸 수도 있잖아. 괜히 애먼 사람 잡지 말라는 소리지."
"진짜 그럴 수도 있잖아요?"
"맞아요. 태영이도 충분히 썸탈 수 있죠."
"그러지 말고 우리 데려와서 물어볼까?"
"그러자."
장난기가 발동한 효민과 경희가 갑자기 태영에게 다가가더니 그를 다시 데리고 왔다. 얼결에 함께 끌려온 아영이 사람들을 쳐다보며 멀뚱히 서 있자 태영이 그녀를 소개했다.
"이쪽은 다 아시죠? 저희 동기 박아영."
"···안녕하세요."
아영이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했다. 그녀의 시선 방향은 물론 도훈을 향해있었다.
"아영아, 안녕?"
"근데 너희 조는 어딨어?"
아영은 말수가 적은 편이라, 태영이 대신 대답했다.
"술자리 게임 안 좋아해서 잠깐 나왔다나 봐."
"···맞아."
"근데 둘이 원래부터 알 던 사이?"
"그러게. 엄청 친해 보이네?"
효민과 경희가 계속 쏘아붙이자 태영은 문득 기발한 생각이 들었다. 애매모한 대답으로 둘 사이의 관계가 뭔가 있는 것처럼 꾸미려고 한 것이다.
"원래 알던 사이는 아닌데···. 뭐 그냥 우연히 친하게 지내는···."
"안 친한데?"
"예?"
태영이 입을 털기도 전에 아영이 분명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태영이랑은 오늘 처음 봤어. 그냥 같이 맥주 한 캔 한 것뿐이야."
"아···."
확실한 선 긋기에 우선의 광대가 씰룩거렸다. 태영이 상처받을까 내색하지 않으려 겨우 비웃음을 참았다.
‘큭, 태영이 쪽팔리겠는데.’
여학생들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술 게임 싫으면 잠깐 우리 조에 있다 갈래? 우린 게임 같은 거 안 하거든."
예의상 건넨 말이었지만, 도훈을 한 번 응시한 아영이 곧바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지 뭐."
뻘쭘하게 서 있던 태영도 덩달아 앉았다.
이제 도훈 조의 멤버가 늘었다.
여학생은 강경희, 이효민, 박아영.
그리고 남학생은 도훈을 비롯한 우선과 태영 각각 셋이었다. 다른 조와 달리 유일하게 남녀 균형이 맞춰지자, 우선이 엉뚱한 생각을 했다.
‘이러니까 3대3 미팅 나온 것 같네. 분위기 괜찮은걸? 태영이 이 자식이 여자를 데려올 줄이야.’
"오빠, 아영이도 왔는데 저희 다같이 술 한잔 할까요? 아영이 넌 뭐 마셔?"
아영은 평소와 달리 곧바로 대답했다.
"맥주."
"오, 역시."
"태영이 넌 안 마시지?"
"아니, 나도 맥주로."
경희가 태도가 바뀐 태영을 향해 빈정거렸다.
"너 웃기다? 아깐 속 안 좋다고 술은 입에도 안 대더니 아영이 오니까 갑자기 마시네?"
"아, 아니 이제 좀 괜찮아졌어."
경희는 태영에게 맥주캔을 건네며 생각했다.
‘하여간 남자 새끼들이란. 예쁜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 쓰네.’
경희가 경계할 만큼 아영의 미모는 상당했다.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목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다. 인형 같은 눈코입에 의외로 몸매도 좋은 편이었다.
‘설마 도훈 오빠도?’
뉴페이스의 등장에도 도훈은 별다른 동요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살짝 피곤한 듯 이따금 미간을 찡그리며 관자놀이를 눌러댔다.
‘역시. 오빠는 저런 타입엔 전혀 흥미가 없단 말이지.’
경희가 안도했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도훈은 아영까지 합류하자 누구를 먼저 따먹어야 할지 선택의 고민에 빠졌던 것이다.
‘어휴, 여자애들이 왜 계속 늘어나지. 골라 먹는 아이스크림 가게도 아니고.’
[아영 양도 후보에 들어가나요?]
‘뭐 일단은 우리과니까. 근데 아까부터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게 영 부담스럽네.’
[주인님과의 만남이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흐흐. 난 나비문신이 더 충격적이던데. 그쪽에 문신한 여자치고 안까진 애들을 못 봤는데···.’
아영은 배꼽 아래 깊숙한 곳에 나비모양의 문신이 있었다. 겨우 스무 살의 나이에 중요 부위 주변에 문신을 새긴 여자라니···. 과묵해 보이는 성격과 달리 굉장한 과거를 가진 걸지도 몰랐다.
[문신정돈 할 수도 있죠. 괜한 편견이 아닐까요?]
‘단순한 문신이 아니잖아. 생각해봐. 위치가 딱 배꼽이랑 봊이 사이지? 그럼 그쪽에 털도 싹 밀었을 거고, 특히 문신할 때 홀딱 벗고 있었다는 얘기거든.’
[음···.]
‘타투가 좀 오래 걸려? 첨보는 남자 앞에서 빽보 상태로 다리 벌리고 긴 시간 문신 받는 게 보통 멘탈가지고 가능하겠냐는 거야 내 말은.’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네요.]
‘문신을 했다는 자체에 뭐라고 하는 게 아니야. 하지만 그 위치나 방식을 떠올리면 평범한 여자애는 아니라는 거지. 겉으로 보이는 모습하곤 완전히 딴판일 가능성이 높아.’
"자, 그럼 술도 들었으니 건배나 할까?"
도훈이 맏형으로서 건배를 제의하자 모두가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소주판인 경희와 폭탄주를 만든 우선 외에는 모두가 맥주를 들고 있었다.
짠-!
잔과 캔이 부딪히고 술이 목구멍으로 벌컥벌컥 넘어갔다. 여름밤에 시원한 맥주가 주는 청량감 때문인지 평소보다 술이 잘 넘어가는 기분이었다.
혈기 넘치는 남녀를 짝을 맞춰 모아놓자 안주가 따로 필요 없었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술잔을 비우는 사이 다들 조금씩 취기가 올라갔다.
도훈은 긴 밤을 대비, 술 마시는 속도를 조절하며 끊임없이 눈치를 살폈다. 어찌됐던 셋 중 하나를 자빠뜨려야 하는데, 이렇게 같이 모여있다간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거 영 곤란한데···. 잠깐 신호를 줘볼까?’
[신호라뇨?]
‘눈치가 있으면 반응하겠지.’
"아-. 잠깐 난 바람 좀 쐬고 올게."
"형 담배 피우러 가세요? 같이 가드릴까요?"
"아냐. 너희들끼리 마시고 있어."
도훈은 따라오려는 우선을 만류했다. 어차피 흡연자도 아니었던 우선은 도훈의 말을 따라 자리에 앉았다. 도훈이 자리를 뜨자 경희가 먼저 일어섰다.
"아, 난 화장실 좀···."
화장실로 향하던 경희는 중간에 방향을 틀어 민박집 바깥으로 몰래 빠져나갔다. 밖으로 한참 걸으니 전봇대 아래 도훈이 혼자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오빠. 여기 계셨구나."
"응? 경희 너는 왜."
왜 왔냐고 묻기도 전에 경희가 도훈의 손을 잡더니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갔다.
"오빠, 잠깐 저랑 얘기 좀 해요."
의외로 터프한 리드에 도훈이 속절없이 끌려갔다. 한참 골목으로 들어가자 담벼락으로 둘러쳐진 막다른 길이 나왔다. 주변은 쥐죽은 듯 고요했고, 저녁이라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을까?"
도훈은 경희의 속셈을 짐작했지만, 짐짓 모른 척 했다. 그 모습에 안달이 난 경희가 말했다.
"저희끼리 풀어야 할 이야기가 있지 않나요?"
"응?"
도훈은 계속 딴청을 피우자 경희가 열을 올렸다. 그녀가 술이 세긴 했지만, 그렇다고 취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술이 강하다는 이유로 걸핏하면 원샷을 때리다 보니 지금은 살짝 취기가 오른 상태였다.
"계속 모른 척 할거예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데? 나보고 맞춰보라는 거야?"
"아니! 그때 테니스장에서 저랑···."
자신과 있었던 일을 계속 모른 척하자 경희가 억울함에 울먹였다. 강간하듯 실컷 따먹어 놓고는, 이제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모른 척하는 그의 태도에 실망한 것이었다.
도훈에 대한 실망감과 취한 기운에 경희가 빽 소리쳤다.
"오빠 먹튀였어요?"
"먹튀라니?"
"저 따먹고 이렇게 모른 척하시기 있냐고요."
"아니, 잠깐만 경희야···."
"한 번도 아니잖아요. 두 번이나 따먹었잖아요."
"아니라고 한 적은 없어."
"그럼 지금 이건 뭔데요?"
"잠깐만 흥분 좀 가라앉혀봐."
"제가 흥분 안 하게 생겼어요? 제가 뭐 사겨달라고 했어요? 아니면 책임지래요? 왜 근데 절 먹튀하시냐고요!"
도훈이 그쯤에서 경희의 입을 틀어막았다.
더 놔뒀다간 동네방네가 떠들썩할 것 같았다.
"읍읍!"
"잠깐만 내 말 좀 들어봐."
경희가 벗어나려고 하자 도훈은 아예 그녀를 뒤에서 껴안으며 확실하게 제압했다. 한 손으론 입을 다른 손으론 허리를 감싸며 몸을 바짝 붙이자 경희도 더는 저항할 수 없었다.
오히려 도훈의 그런 강압적인 행동으로 구속감을 느낀 경희는 자기로 모르게 부쩍 흥분하고 말았다. 특히 엉덩이에 닿는 단단한 물건의 정체가 대물임을 깨닫고는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하, 하아···. 도훈 오빠한텐 꼼짝 못 하겠어.’
경희를 완벽히 제압한 도훈이 경희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혼자 하고 싶은 말만 다하는 거 아니야? 내 말도 좀 들어줘야지."
"······."
"이제 들을 준비가 된 것 같네. 그래, 모른 척 한 건 사실이야. 다른 학생들 다 있는데, 대놓고 티를 낼 수도 없잖아.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도훈의 말에 경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말은 틀렸어."
"?"
"먹튀라는 말 말이야. 난 먹긴 했지만 튀진 않았거든."
도훈이 살짝 입막음을 풀자 경희가 물었다.
"튀지 않았다고요?"
"그래. 나보고 먹튀라며? 난 안 튀었다고. 여기 지금 있잖아."
도훈은 그 말을 하며 일부러 더 대물을 엉덩이 틈 사이로 밀어 넣었다. 동시에 허리를 감싸 쥔 손으로 경희의 큼지막한 가슴을 세게 움켜쥐었다.
"하, 하악, 뭐, 뭐하시는 거예요!"
"왜? 싫어? 나보고 튀지 말라며. 그래서 또 먹어 주려고."
도훈은 우악스러운 손길로 경희의 젖가슴을 거침없이 주물렀다. 다소 강압적인 분위기였지만, 오히려 경희는 그것에 완전히 흥분하고 말았다.
"아, 아니 진짜···. 이렇게 갑자기···. 아, 아앙."
도훈의 손이 경희의 헐거운 나시 안으로 파고들었다. 브래지어를 헤치고 들어간 손이 단단해진 젖꼭지를 비틀자 다리에 힘이 풀린 경희가 무너져내렸다.
"아, 아, 오빠아···, 여기는···."
"왜? 이런 거 원하는 거 아니었어? 나한테 따달라고 몰래 쫓아온 거 아니냐고."
"······."
경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방금전 까지 얌전하게 술을 마시고 있던 도훈이 단둘만 남게되자 짐승처럼 변하는 모습에서 극도의 흥분감을 느낀 것이었다.
"싫으면 말해. 다시는 너 안 건드릴 테니까."
그 말을 마친 도훈이 손을 떼고 한 걸음 물러서자 경희는 진한 아쉬움을 느꼈다. 금방이라도 덮칠 것처럼 잔뜩 흥분시켜놓고는 안해도 상관없다는 듯 발을 빼버리자 이제 조급해진 것은 경희쪽이었다.
"···해, 해주세요."
"뭐? 똑바로 말해. 평소처럼."
"···저 한 번만 따먹어주세요, 선배."
경희가 애원하듯 말했다.
< 976. 별이 쏟아 지는-36-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