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8. 별이 쏟아 지는-28- >
"저 못 보셨어요? 선생님 이름 크게 부르면서 헤엄쳐 갔는데!"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태영은 민주에게 자신의 희생적인 행위를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나 민주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아, 미안. 내가 수영할 때 에어팟을 끼고 있었거든."
"에어팟이요?"
"어, 음악 들을려고."
태영은 요즘 무선이어폰은 방수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민주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전 선생님 물에 빠지신 줄 알고···. 뛰어들었는데···."
"저런, 그렇게 된 거였구나. 그래도 다행이다 도훈이가 주변에 있어서."
태영도 생명의 은인인 도훈에게 뒤늦게 감사를 표했다.
"형, 고마워요, 형 아니었음 큰일 날 뻔했어요."
"목은 좀 괜찮고?"
"목이요?"
정신이 없던 태영은 그제야 목을 뒤로 젖혀보다 "악!" 하는 비명을 질렀다.
"아, 아파요!"
"아플 수밖에. 구해주려고 가까이 갔는데 하도 발광하는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어."
태영은 영 불편한지 계속 목을 까딱거리면 한 손으로 주물렀다.
‘그래도 세 대까지 때릴 정돈 아니었던 거 같은데···.’
태영은 왠지 과하게 맞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생명의 은인인 도훈에게 과실을 물을 수 없었다. 그가 아무리 뻔뻔한 성격이긴 했지만, 그것이야 말로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심보였다.
하지만 뺨도 계속 욱씬거리고, 한껏 들이킨 짠물 때문에 아무리 물을 마셔도 해갈이 되지 않는 탈수 증상도 보였다. 여러모로 피곤해진 태영이 민주에게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큰 이상은 없지만 혹시 모르니 여기서 좀 누웠다가 가래요."
"그래? 부모님께는 연락했고?"
"아직요."
"전화부터 드려. 난 교수님한테 상황보고만 할게. 아니다. 도훈이 네가 직접 가서 말씀드리자. 현장에 있던 당사자니까."
민주가 은근슬쩍 도훈에게 명분을 줬다.
도훈도 넙죽 이를 받아먹었다.
"그래야겠네요. 태영이도 이제 좀 쉬어야 하니. 태영이 너 혼자 있을 수 있지?"
태영은 민주와 계속 함께 있고 싶었으나, 민주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남자다운 매력이 떨어질 거라고 판단했다.
"당연하죠. 제가 애도 아니고. 아무튼 형, 고마워요."
"그래. 그럼 푹 쉬어라. 나는 이만 숙소로 돌아가 볼게."
"네."
"태영아, 충분히 쉬고 숙소로 복귀하렴."
"네, 조교 선생님."
두 사람은 작별인사를 마치더니 간이 진료소에서 나란히 사라졌다. 태영은 병문안을 와준 민주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꼈다가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근데 민주샘은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온 거지?’
그가 물에 빠져 간이 진료소로 이동한 시각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사이 자취를 감췄던 민주가 별안간 나타난 것이다.
‘도훈이 형이 불렀나? 혹시 몰라서 조교선생님께 보고 하려고.’
하지만 그것도 이상했다.
민주의 핸드폰은 분명 숙소에서 발견되었던 것.
한참 민주를 찾아 헤매던 태영은 민주의 방에서 혼자 울리고 있던 폰을 확인한 후 다시 해변으로 뛰쳐나왔다.
‘으음, 뭔가 이상한데?’
태영은 바보가 아니었다.
여러 정황 증거들을 미루어 볼 때 이곳에 갑자기 민주가 나타난 것은 굉장히 해명하기 힘든 일이었다.
거기다 자신이 물에 빠지자 기다렸다는 듯 등장한 도훈 역시 의심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물에 빠진 위치는 체육과 학생들이 물놀이를 하던 곳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굳이 그곳까지 와서 수영을 한다? 근처에는 찾아도 안 보이던 민주까지 있고?
태영은 여러 정황들을 종합한 끝에 한가지 가설을 수립했다.
‘와, 두 사람···.’
가설이긴 하지만 거의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었다.
‘지들끼리 좋은 스팟 찾아서 꿀 빨고 있었네!’
···어쩌면 태영은 정말로 바보였을지도 모른다.
***
"수영복은 이제 어쩌시게요?"
"모르겠어. 마음에 꼭 들어하던 옷이었는데."
"그러게 왜 버리고 왔어요. 팬티 저한테 있었는데."
"경황 중이라 미처 생각을 못 했어. 그나마 바닷가 근처 옷 가게라 수영복 입고 가도 신경 쓰지 않아 망정이지···."
"튜브차고 가셨다면 서요. 골반에."
"······."
민주가 부끄러웠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 얘긴 그만해. 어디 가서 말하기도 창피하니까."
"네. 근데 아쉬워서 어쩌나?"
"응?"
"하다가 마니까 안 한 것만 못한 것 같아요."
상황정리가 끝나자 민주도 그제야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럼 다시?"
"시간이 애매해요. 성수형이 준 휴식시간 곧 끝날 거예요."
"아···."
"태영이 일도 있고 둘만 갑자기 또 사라지면 이번엔 진짜로 의심받을 걸요?"
"그럴 수도 있겠다."
"못다 한 일은 새벽에 마저해요. 오늘만 날도 아니데."
"으, 응."
두 사람이 숙소로 복귀하자 물놀이를 끝낸 학생들이 삼삼오오 귀가하는 중이었다. 민주는 지도교수에게가 태영의 일을 짤막하게 보고했고, 도훈은 성수에게 알렸다.
"뭐? 태영이는 그럼 괜찮아?"
"네, 짠물 좀 마신 것 같은데 그 외에는 별 탈 없는 것 같더라고요."
태영의 일을 들은 성수가 혀를 끌끌 찼다.
"하여간 이 새끼, 빨빨거리고 돌아다닐 때부터 불안하긴 하더라."
"이제 저녁 먹어요?"
"어. 우선이가 집행부 애들이랑 식사 준비하고 있어."
"오늘 메뉴는요?"
"당연히 고기지. 너도 할 일 없으면 좀 거들래?"
"아, 네. 일단 씻고요."
"그래. 남자 숙소 뒤편에 단체 샤워장 있어. 거기서 씻으면 될 거야."
"단체 샤워장이요?"
"가보면 뭔 말인지 알아."
성수가 씩 웃었다.
도훈은 몸에 묻은 소금기를 씻어내기 위해 샤워도구를 챙겨 샤워장으로 갔다.
"와, 이게 무슨···."
쌍팔년도 군대에서도 이런 곳은 찾기 힘들어 보였다. 야외에 마련된 샤워장은 커다란 대야에 물이 가득 차 있고, 바가지를 이용해 몸에 뿌리는 시스템이었다.
먼저 씻고 있던 후배들이 도훈을 보고 인사했다.
"엇, 도훈이형. 어디갔다 오셨어요? 저희끼리 수구하면서 한참 찾았는데."
"일이 좀 있었어. 나중에 태영이 오면 물어봐."
"태영이요? 아 그러고 보니 태영이도 안 보이던데."
도훈은 구석에 갈아입을 옷을 정리해 놓고 찝찝한 몸에 물부터 뿌렸다. 몸에 남은 소금기가 제거되자 한결 기분이 낫아지는 거 같았다. 그때 다른 학생이 옆에 학생과 대화를 나누었다.
"야, 여자 샤워장도 이러냐? 아무리 싼 맛에 빌린 민박이라도 샤워기 하나 없을 줄 몰랐네."
"여자들은 그나마 천막이라도 설치되어 있을걸?"
"이렇게 열악할 줄 알았으면, 그냥 해변에 있던 유료샤워장에서 씻고 오는 건데."
"그러게. 다음엔 샤워용품 챙겨 가지고 거기서 씻자."
도훈은 몸에 비누를 묻히며 생각했다.
‘여자들끼리 씻고 있으면 죄다 홀딱 벗고 있겠네.’
[그새 또 야한 생각 중이십니까?]
‘민주랑 어설프게 끝나서 그렇잖아. 싸지도 못하고 중간에 끝날 줄 알았으면 시작도 말 걸 그랬어.’
[뭐, 일이 그렇게 꼬일 줄은 몰랐으니까요.]
‘하. 3일이란 시간이 있다고 해도 제대로 할 곳이 마땅치 않네. 특히 대낮에는 주변 눈치 보느라 아예 불가능하고.’
[결국은 저녁과 새벽에 바쁘게 움직이시는 수밖에 없군요.]
‘이번 미션 난이도가 상당하겠는데. 1:1로 공략해야 하는 조건도 그렇고.’
[주인님은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도훈이 발기가 살짝 덜 풀려 욱씬거리는 대물을 마사지했다.
‘뭐 어쨌건,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
"다 씻었어?"
"응. 근데 시설 진짜 최악이야."
"그래도 남자애들보단 상황이 낫잖아. 걔들은 아예 가림막 같은 것도 없다던데."
"그래? 그럼 훔쳐보면 다 보이는 거야?"
"어머, 얘는 뭐래? 변태니?"
"호호, 말이 그렇다는 거지. 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다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한 명을 떠올리고 있었다. 군계일학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한 사람.
‘···도훈오빠 정도라면 모를까.’
캠프가 시작한 뒤 도훈의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기록했다.
교육 특성상 상의 탈의가 필수인 해변에서 그의 우월한 기럭지와 근육질 몸매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성수마저 씨름으로 제압한 엄청난 괴력은, 그의 근육이 허풍선이 아닌 진짜배기임을 드러냈다. 이미 그 엄청난 정력의 맛을 봤던 여후배 몇몇은 도훈에 대한 감정이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 밤 잘하면···.’
별이 쏟아지는 여름밤의 해변.
술이 들어가고, 기타 반주에 노래가 어우러지면 더할 나위 없이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제아무리 무미건조한 사람이라도 감성적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 시작되는 로맨스.
비록 한 여름밤의 꿈이라고 해도, 풋풋한 스무살 여대생들이라면 한 번쯤 꿈꾸어 본 상상이었다.
효민 역시 그런 상상에 젖어 있었다.
‘···확실히 도훈 선배가 우리과에선 제일 멋진 것 같아.’
사실 효민은 도훈과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
새터를 섹터로 만든 도훈이 좆막음을 위해 정음과의 쓰리썸에 끌어들인 것.
하지만 그 이후 인연의 붉은 실 가위로 잘려나가면서 도훈과의 기억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런 일이 있었었지. 정도로 남아있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런 일이 있었다고? 정도로 망각되어 버리고 말았다.
도훈과의 호감도 역시 기본 상태로 초기화되면서 효민은 한동안 도훈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분명 몸을 섞으면서 강렬한 추억을 남긴 상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인연의 붉은 실 가위의 위력에 완전히 남남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효민은 도훈에 대한 소식을 동기들에게 자주 접하게 되었다.
사범대 최고 킹카라느니, 인싸의 결정체 라느니···.
특히 대학생이면서 차도 몰고, 아직까지 솔로라는 말에 효민도 슬슬 그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 마음이라는 다 그렇듯, 누구나 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연히 쏠림현상이 나타나기 마련. 주변에서 동기들이 하도 칭찬을 해대는 탓에 자기도 모르게 도훈을 주시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 달 관찰한 결과 효민도 도훈에게 점점 빠지고 말았다. 그녀가 지켜본 도훈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무결점의 사나이였다.
얼굴, 몸매, 성격 뭐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운동능력도 발군이고, 심지어 공부도 잘한다고 했다.
부모님이 미국에 계시며, 차도 몰고 다니면 집안도 중산층 이상이라는 말이었다.
그야말로 모든 여대생들이 꿈꾸는 완벽한 선배.
말 한마디만 붙여도 하루종일 기분이 좋고 생각날 것 같은, 잘생기고 멋진 오빠.
효민은 짝사랑에 빠져버렸다.
‘근데 그 소문이 사실일까?’
이처럼 완벽한 도훈에게도 한 가지 안 좋은 소문이 따라다녔다. 바로 바람둥이라는 소문.
도훈 정도로 완벽한 남자에게 여자가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당장 손만 내밀어도 좋다고 달려들 여자들만 한 트럭은 되어 보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솔로라는 것은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것.
‘아니야. 도훈 오빠가 무슨 바람둥이야? 그럼 진작 소문이 낫겠지.’
루머는 무성했지만 막상 도훈이 여자와 따로 데이트를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거나, 그와 교제를 하고 있다는 여자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들 서로를 견제하며 쉬쉬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소문이 악의적인 루머에 불과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바람둥이라는 소문이 잠잠해질 때쯤 이번엔 그가 게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저렇게 완벽한 남자가 여지껏 여자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이 소문은 오히려 남자 동기들 사이에서 촉발되었는데, 역시나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효민은 이것이 남자들의 바람이 구체화되어 나타난 일종의 트집잡기라고 치부했다.
왜, 잘생기고 돈 많고 직업까지 좋은 남자를 볼 때 흔히 하는 말이 있지 않는가?
‘게이 일거야.’
‘제발 고자.’
뭐 이런 등등의.
그러고 보면 성기능 불구자라는 소문도 잠시 돌았다. 그러나 이는 저주에 가까운 악담같은 루머였기 때문에 효민은 이를 가볍게 무시했다.
오히려 도훈의 성적 능력에 대해선 다른 소문이 들이 더 무성했다. 체육관 샤워실에서 힐끔 봤는데 거기에 페트병을 달고 있다더라 하는 카더라 통신같은.
다만 이는 신빙성이 좀 있어 보였는데, 그런 목격담이나 간접 체험이 학기초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는 점이었다. 가령 말뚝박기를 하는데 등판에 뭐가 닿았는데 용이 한 마리 꿈틀대더라 라던가. 아니면 몸에 꽉 끼는 청바지를 입고 왔는데, 바지 주머니에 바나나를 숨긴 줄 알았다던가 하는.
효민도 그 점이 궁금해서 하루 종일 도훈을 눈여겨보았다.
과연 소문이 진실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보고야 말았다.
노팬티 반바지 틈 사이로 힐끔 보이던 거대한 거북이 대가리를.
때는 바로 성수와의 씨름 결승전.
대부분 손에 땀을 쥐는 공방에 정신이 팔려있었지만, 효민은 오로지 도훈의 바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다 우연한 각도로 바지 안쪽에서 덜렁거리는 물건을 직접 마주치고 만 것이었다.
효민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도훈이 노팬티라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노발기 상태에서 바지 밖으로 밀려나올 사이즈라면 대체 얼마나 큰 것일까 하는.
그 장면을 생각하자 효민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왠지 오늘 밤엔 도훈에게 자신의 짝사랑을 이렇게 고백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오빠가 대물이라서 좋아요.’
< 968. 별이 쏟아 지는-28-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