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7. 별이 쏟아 지는-27- >
민주는 점점 난처해졌다.
호기심을 느낀 사람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이러다 들키고 말 거야!’
민주가 위기를 느끼고 가랑이를 확 오므렸다. 수중에서 보빨을 하는 도훈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 하지만 도훈은 민주가 다리를 오므려 목을 조이자, 좋아서 그러는 줄 알고 더 세게 봊이를 빨아댔다.
"아, 아아앙!"
결국 참지 못한 민주가 물 위에 둥둥 뜬 채 신음을 터뜨렸다. 다가오던 사내 하나가 뭔가를 눈치챈 듯 옆 사람에게 말했다.
"뭐야, 방금? 들었어?"
"어. 신음 소리 아냐?"
"아까 그 남자 어디 갔지?"
"무슨 남자?"
"아까 같이 껴안고 있던 남자 말이야."
그는 눈앞에 벌어지는 기이한 장면에 야릇한 상상을 시작했다. 혹시나 발정난 남녀 커플이 욕정을 못 이기고 수중에서 한판 벌이는 게 아닌가 하는.
"야, 씨발, 이거 존나 유튜브 각 아니냐?"
"뭐? 진짜로?"
"너 고프로 가진 거 있지."
사내 중 한 명은 수중에서 촬영이 가능한 액션캠을 손에 쥐고 있었다. 물놀이 장면을 찍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마도 개인방송 촬영을 하는 유튜버로 보였다.
"야, 우리 저거 찍으러 가자. 잘하면 조회수 대박 칠 듯!"
흥분한 사내가 동료를 꼬드겨 계속 민주 쪽으로 다가갔다.
민주는 옴짝달싹을 못 한 채 발만 동동 굴렸다.
"주, 주인님! 사람들이!"
하지만 물속에 있는 도훈에게 제대로 전달 될 리 없었다. 급기야 마음이 급해진 민주가 발바닥으로 도훈의 등짝을 팡팡 때렸다.
"주인님!"
‘뭐야?’
보빨을 하던 중 넥쵸크도 모자라, 발로 등짝 스메싱을 맞은 도훈은 살짝 약이 올랐다.
‘민주 요 계집애가 이제 나를 때리기까지 하네?’
[항상 주인님께 당하기만 하다 보니 돌려주고 싶은 게 아닐까요?]
‘안 돼. 마유미도 벅찬데 민주까지 그런 꼴을 두고 볼 수 없지.’
민주의 급박한 싸인을 오해한 도훈이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이번엔 손가락으로 민주의 후장을 노렸다. 괄약근이 단단히 조여져 있어 잘 들어가지 않았지만, 도훈은 끈질기게 손가락을 돌려가며 후장을 공략했다.
"헉!"
보빨에 이어 후장까지 뚫리기 시작한 민주는 더욱 난처해졌다. 액션캠을 든 이들이 이제 지척까지 다가온 것이었다.
‘아, 안 되겠어.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지.’
마음이 다급해진 민주가 팔을 저으며 깊숙한 곳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물속에선 도훈이 다리에 목이 감긴 채 질질 끌려갔다.
"엇, 도망친다."
"야야, 따라가."
사내들은 특종을 잡으려는 기자처럼 민주를 뒤쫓았다. 민주는 그들과 거리를 벌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팔을 저었다. 그쯤에서 도훈도 점점 이상함을 느꼈다.
‘아니, 왜 계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여긴 발도 안 닿을 텐데?’
도훈이 물속에서 튀어나오려는 찰라.
때마침 해변에서 민주를 발견한 태영이 크게 소리쳤다.
"서, 선생님! 거긴 위험해요!"
한 시간 넘도록 뙤약볕을 돌아다니며 민주를 찾던 태영은, 민주가 안전 선을 훨씬 넘어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물에 빠졌다고 오해하고 만 것이다.
그는 미친 듯이 달려오더니 다이빙 자세로 물에 뛰어들어 헤엄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제가 구해드릴게요!"
태영이 물살을 가로지르며 다가오자 민주의 난처함이 극에 달했다.
‘헉, 안 돼. 물속에서 주인님이랑 있던 걸 태영이가 보면!’
누가 봐도 빼박캔트 오해 살 수 밖에 없는 상황.
입 싸기가 깃털보다 가벼운 태영은, 민주와 도훈이 과에서 몰래 나와 단둘이 수중데이트를 즐겼다고 소문을 낼 것이다.
‘주인님은 나와의 관계가 학생들에게 알려지면 나를 버릴지도 몰라!’
민주의 위기감이 극에 달했다. 그녀는 갑자기 도훈의 목을 조이던 다리를 풀더니 그를 디딤돌 삼아 박차고 나갔다. 사태가 이쯤 이르러서야 도훈은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로시! 마음의 소리!’
[넵!]
마음의 소리를 통해 민주의 속마음을 엿들은 도훈은 비로서 물 밖의 긴박한 상황을 파악했다.
‘아니, 태영이가 여길 대체 왜!’
도훈도 민주와 단둘의 데이트를 들킬 순 없었다.
심지어 민주와 만나기 바로 전에 정음과 풋풋한 데이트를 즐겼던 터였다. 촉새 같은 태영이 과에 소문이라도 낸다면, 무엇보다 정음이 실망할 것이 가장 두려웠다. 순수한 그녀를 가지고 놀았다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다.
‘윽, 제기랄 숨도 못 쉬겠는데!’
그의 폐활량은 일반인보다 월등하게 좋은 편이었지만, 보빨을 하느라 거의 질식 직전이었다. 하지만 태영에게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물밑으로 하강하여 필사적으로 유영을 시작했다.
한편 민주를 구하러 가는 태영은 이미 머릿속으로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중이었다.
‘조교 선생님을 내가 구해드리면, 어쩌면···.’
혼자 물놀이를 즐기던 민주가 위기에 처하자 수중 구조를 통해 물 밖으로 건져낸 태영. 급하게 인공호흡과 흉부 압박을 통해 극적 회생. 정신을 차린 민주가 생명의 은인은 태영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아아! 민주 샘을 구하기만 하면 나도··· 나도 드디어 쭉빵 연상 여친을! 지금껏 차이기만 했던 게 이런 큰 그림을 위해서 였단 말인가!’
흥분한 태영은 평소보다 무리하게 발차기를 했고, 몸풀기 없이 이루어진 격렬한 운동의 최후는 비극적으로 끝이났다.
"윽! 갑자기 다리에 쥐가!"
이미 태영은 발도 안 닿는 곳까지 깊이 들어온 상황. 갑작스러운 경련으로 온몸에 힘이 빠지자 머리가 물속을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 안돼!"
침착하게 대처했다면 배영으로 몸을 뒤집거나 팔로만 헤엄쳐도 충분했겠지만, 긴장한 태영은 당황하며 물을 먹어 버렸다.
"우엑!"
소금물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태영은 죽음의 공포에 직면했다. 이성이 마비되면서 생존의 본능이 그를 지배했다.
‘이렇게 허망하게 죽는 건가?’
민주는 유유히 먼 바다로 나가고 있는데, 오히려 구하러온 태영이 물에 빠지는 참사가 벌어진 것이었다.
"사, 살려! 욱- 주세! 사람 살!"
태영의 머리가 물 속에 처박혔다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주변의 사람들도 이쯤에서 뭔가 잘못 됐음을 깨달았다.
"아! 저, 저기 사람 빠졌다!"
"구조요원! 구조요원을 찾아!"
특히 민주를 촬영하기 위해 가까이 근접했던 유튜버들은 바로 앞에서 벌어진 일에 덩달아 당황했다.
"뭐야 저 사람 지금 물에 빠진 거야?"
"야! 얼른 구해봐!"
"나도 헤엄 못 친다고! 니가 가던가!"
"나도 못 해!"
그 와중에도 그들의 액션캠을 물에 빠져 허덕거리는 태영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남자 하나가 빠르게 물살을 가르며 태영에게 다가갔다. 수영 선수를 방불케 하는 스트로크와 발길질에선 엄청난 박력이 느껴졌다. 흡사 한마디의 돌고래를 보는 것 같았다.
"우오오! 저기봐!"
"구조대원인가봐!"
"수영 엄청 잘 한다!"
그는 바로 잠수로 도망쳤다가 태영의 위기를 발견한 도훈이었다.
‘아으, 저 똥멍청이 같은 새끼!’
태영이 탐탁지 않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마음씨가 못된 놈은 아니었기에 도훈은 기꺼이 수영 실력을 발휘했다.
"태영아!"
"사, 살려··· 우윽!"
"입 열지마. 물먹고 있잖아!"
"도··· 도훈이 형! 사, 살려! 우윽!"
"아씨, 말하지 말라니까!"
태영에게 접근한 도훈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미 공포로 이성이 마비된 태영은 도훈을 붙잡아 끌어 내리기 시작했다.
물에 빠진 사람 특유의 본능이 발현된 것이었다.
"어푸!"
"가만있어!"
"사람 살!"
태영은 급기야 도훈의 목을 껴안고 자신이 위로 오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어찌나 힘이 센지 도훈이 물속으로 처박힐 정도였다. 수상 구조 시 익사자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생존 본능만 남의 인간의 어마어마한 괴력을 간과하는 경우 때문이다.
‘이런 미친놈이! 왜 이렇게 힘이 세?’
[제정신이 아닙니다! 완전히 패닉 상탭니다! 이대론 주인님도 위험합니다!]
‘안 되겠다.’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도훈은 손날을 세워 태영의 목덜미를 거세게 후려쳤다.
퍽!
"윽!"
하지만 한방으로 태영을 기절시킬 순 없었다.
퍽! 퍽!
두 방을 더 손날치기를 맞고서야 태영이 몸부림을 그쳤다.
태영을 기절시킨 도훈은 목에 팔을 두르고 배영 자세로 몸을 뒤집은 뒤 물가로 팔을 저어 나왔다. 생명을 구해낸 도훈의 모습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와! 멋있어요!"
"대박! 저 사람 수영하는 거 봤어? 완전 선순대?"
"구조 요원 아니야?"
"구조 요원은 아니지. 복장이 전혀 다르잖아."
태영을 물밑으로 건져낸 도훈은 그를 번쩍 들어 어깨에 들쳐 맸다. 그의 어마어마한 근력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성인 남자를 한 팔로 어깨에 매다니."
"장사네, 장사야. 근육이 아깝지 않네!"
"무슨 힘이 저렇게 세담?"
모두 스파르탄벨트의 효과 덕분이었지만, 물을 마시고 기절까지 한 태영을 구하기 위해 도훈 역시 힘 조절할 생각을 미처 못했다.
태영을 모래사장에 눕힌 도훈이 응급처치를 위해 경동맥을 짚고 동공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완전히 빠지기 전에 건져내서 그런지 맥박도 정상이고 눈동자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도훈이 안도하며 태영을 깨웠다.
"얌마, 일어나."
"우우···."
의식이 불안정한 상태인 태영이 뭐라 중얼거리자 도훈이 귀를 바짝 대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뭐라고? 뭐라고 한 거야 방금?"
"···조교···샘."
"조교샘? 강민주 선생님?"
"···나이···쓰 ···바디."
‘미, 미친 새끼가!’
기절한 와중에도 나이스 바디를 외치는 태영의 모습에 도훈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뺨을 후려치고 말았다.
짝-!
"정신차려, 정신!"
"으헉!!!"
불꽃 싸다구를 맞은 태영이 번쩍 눈을 떴다.
"정신 들었냐?"
"도, 도훈이형! 이게 어떻게 된···."
"깨어났다!"
"저 남자가 사람을 구했어!"
"세상에! 천만 다행이네!"
물에 빠진 태영을 건져낸 도훈의 용감한 행동에 몰려든 사람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중에는 유튜브를 한다던 사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연히 일련의 과정을 촬영한 두 사람이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대박! 우리 엄청난 거 하나 건진 것 같아."
"그러게. 여자 찍으러 갔다가 실시간으로 사람 구조하는 장면을 담게 되네! 이거 조회수 100만각 아니야?"
"백만이 뭐냐, 천만 각이지."
"야, 얼른 편집해서 오늘 밤 바로 업로드하자. 이거 무조건 터진다. 생명을 구해 낸 이름 모를 태안 근육남. 어때?"
"제목은 나중에 짓고 얼른 가기나 해."
***
도훈이 구조한 뒤 잠시 후 호출을 받고 달려온 응급요원이 태영을 의무실로 데려왔다. 도훈은 보호자 자격으로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그나저나 민주는 어디로 간 거지? 수영은 제법 하는 것 같긴 했지만···.’
민주와는 물속에서 헤어진 뒤로 깜깜 무소식이었다. 도훈이 멍하니 대기실 의자에 앉아있는데, 평상복을 입은 민주가 헐래벌떡 의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도훈아!"
"선생님."
"이게 어떻게 된 거니? 태영이는 괜찮아?"
의무실에는 다른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도훈은 존댓말로 응대했다.
"네, 다행히 큰일은 없었어요. 출동한 응급대원들이 혹시 모르니까 한 번 상태를 본다면서 데려온 거예요."
"저런··· 천만다행이구나."
"선생님은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옷은 또 언제 갈아입으시고."
도훈이 아까 전 상황을 물었다.
"어, 난 그러니까···."
처음엔 촬영을 피해, 그 후엔 태영을 피해 깊은 바다로 계속 도망치던 민주는 태영이 물에 빠진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자신이 구하러 가기 전 이미 도훈이 발견한 것을 깨닫고는 마음을 졸이며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태영을 물 밖으로 끌고 나온 것을 보고서야 안도한 민주는 그제야 자신의 팬티가 도훈에게 벗겨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뿔싸!’
팬티가 도훈의 호주머니에 담겨 있던 것이다. 도훈이 구조요원을 따라 사라지는 순간 민주는 어떻게든 스스로 물속에서 나와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걸 어떻게 하지?’
그때 바다 위에 길잃은 튜브가 눈에 들어왔다. 어린애들 용인지 작은 사이즈였는데,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온 것 같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을 민주가 튜브를 붙잡아 골반에 끼웠다. 팬티 대신 치고는 밑이 휑 했으나, 그나마 없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튜브를 끼고 도로 편까지 나와서 곧장 옷가게로 들렀어."
도훈 옆에 앉은 민주가 속삭이듯 설명했다.
어린애 튜브를 끼고 옷가게에 들어간 민주의 모습을 떠올린 도훈은 빵 터지고 말았다.
"푸하- 민··· 아니 선생님. 너무 죄송해요. 이게 제 호주머니에···."
도훈이 바지를 뒤적거리자 민주가 괜찮다는 듯 그의 손을 제지했다.
"···주지마. 어차피 그 수영복은 버리고 왔으니까."
"네. 그럼 이건 제가 보관."
그때 진료를 마친 태영이 핼쑥한 얼굴로 대기실로 나왔다.
"어, 태영아 괜찮냐?"
태영은 뻘겋게 팅팅 부운 볼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네, 다행히 별다른 이상은 없데요. 여기가 제일 많이 부었다고."
마치 도훈보고 들으라는 듯 시위하는 모습이었다.
"태영아!"
"엇, 조, 조교 선생님!"
조교 강민주를 뒤늦게 발견한 태영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전 조교선생님이 물에 빠진 줄 알고···."
"응? 무슨 소리야?"
민주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 967. 별이 쏟아 지는-27-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