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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980화 (947/2,000)

< 963. 별이 쏟아 지는-23- >

"아!"

자신의 손에 잡힌 게 끈이라는 걸 깨달은 정음이 황급히 손을 놓았으나 이미 늦었다. 올이 나가듯 스르륵 풀린 브라끈이 좌우로 툭 벌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목 끈이 남아있었다. 민주의 비키니 브라가 짧은 앞치마처럼 아슬아슬 걸쳐졌다.

"조, 조교 선생님!"

정음은 당황하며 손발이 꼬이고 말았다. 민주는 끈이 풀린 걸 아는지 모르는지 허둥대는 정음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학생들도 그쯤 슬슬 민주의 수영복 상태를 눈치챘다. 점점 브라가 말아 올라가며 둥근 밑가슴이 드러나자 몇몇이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헉! 조, 조교샘 혹시 끈 풀린 거 아냐?""정말이네? 근데 아직 모르시는 거 같은데···."

남학생들도 뜻밖의 눈 호강에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민주의 가슴을 쳐다보았다. 확 벗겨진 것보다 보일 듯 말 듯 밑가슴만 살짝 드러낸 모습이 더 야하게 느껴졌다.

‘헉! 대박 사건!’

‘민주샘 개 글래머!’

‘와, 오늘 밤 잠 못 자겠네.’

"저, 저 선생님!"

정음은 감히 반격 못 하고 일방적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무의식으로 피하는 것이었지만.

"뭐야? 왜 피하기만 하는데? 설마 선배라고 봐주는 거 아니지?"

민주도 정음의 무대응이 이상했는지 공격을 중단하고 물었다.

아무리 승리가 중요하지만, 조교의 권위를 앞세워 이기고 싶진 않았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정음이 차마 부끄러워 말을 못 잇는데, 그때까지 밑에서 정음을 떠받느라 정신 못 차리고 있던 승완도 민주의 비키니가 풀린 걸 그제야 눈치챘다.

‘오우 쉣!’

특히 목마를 태우고 있던 터라 상대적으로 밑에 있던 승완에겐 끈이 풀려 나풀거리는 모습이 너무나 잘 보였다. 거의 꼭지까지 보일 정도였다.

차마 조교의 알몸을 볼 수 없던 승완이 고개를 바닥으로 쳐박았다. 그 덕에 목마를 타고 있던 정음도 밑으로 처박히듯 떨어질 뻔했다.

"어, 어어!"

하지만 정음은 확실히 남달랐다.

로데오 위에서 곡예를 하는 것처럼 몸의 밸런스를 조절하여 버텨낸 것이다. 하지만 민주의 날카로운 공격은 피할 수 없었다.

‘요게 운동 좀 한다고 나를 우습게 봐?’

민주의 손이 모자챙을 향해 날카롭게 뻗어갔다. 하지만 정음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쳐들자 아슬아슬 챙을 빗겨나갔다. 민주의 손끝에 레쉬가드의 지퍼가 걸렸다.

부욱!

이번엔 정음의 상의가 홍해처럼 좌우로 갈라졌다.

"꺄, 꺄아!"

정음이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레쉬가드 안에 스포츠 브라를 받쳐입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한 상황이었다.

"오, 오오! 뭔가 화끈한데, 이 대결?"

"정음이도 몸매가 상당하구나."

"가만 저건···."

하필 정음이 흰색의 스포츠 브라를 한 것이 문제였다.

바닷물에 젖은 스포츠 브라는 불투명하게 속을 비추고 있었다. 꼭지가 있는 두 군데가 거뭇거뭇 윤곽을 드러내자 지켜보던 남학생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육정음이 노출이라니!’

‘키아, 얼굴도 예쁜 애가 몸매도 저 정도였단 말이야? 대체 왜 숨긴 거지? 희주한테도 전혀 안 꿀릴 정돈데?’

‘미쳤다 이 게임! 승부 안 나고 계속 싸웠으면 좋겠다.’

하지만 모두의 바람과 달리 정음을 떠받들고 있던 태영은 아슬아슬 걸쳐진 민주의 비키니 브라를 보는 순간 이성을 잃고 말았다.

‘허, 허윽, 이대로는 민주 샘이 위험해!’

금사빠인 태영은 어느새 민주를 흠모하고 있었다.

자신의 소중한 민주가 공개적으로 가슴 노출이 되는 흑역사를 남기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고의로 정음의 발목을 잡아 끌어 내렸고, 난데없이 균형을 잃은 정음은 제대로 승부를 보지 못하고 바닷속으로 입수할 수밖에 없었다.

풍덩-!

"뭐야?"

"떨어진 거야?"

"도훈이 팀 승!"

다소 허무한 결과.

대장 전에서 패한 승완 팀의 역전패였다.

"우아아아아아!!!"

"이겼어! 우리가 설거지 면제라고!"

"민주 샘 나이쓰!"

드라마틱한 역전승을 이루어낸 민주에 대해 찬사가 쏟아졌다.

"어머, 내 수영복!"

뒤늦게 끈 풀린 걸 깨달은 민주가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싸 쥐었다.

"도훈아 잠깐 물속에서 내려줄래?"

"왜 그러세요?"

"끈이 풀려버렸어"

"앗, 네."

도훈이 잠수하듯 무릎을 꿇자, 민주가 물속으로 뛰어들어 비키니 끈을 재정비했다. 다시 옷을 갖춰 입은 민주가 물 밖으로 나왔을 땐, 도훈 팀에 소속된 모든 선수들이 나와 박수갈채를 보냈다.

"선생님 정말 잘하셨어요!"

"덕분에 역전했어요."

"선생님 짱이에요!"

여학생들은 대부분 수영복이 벗겨질 뻔한 위기에서도 투혼을 보인 민주의 근성을 높이 샀고, 남학생들은 아슬아슬하게 몸매를 드러낸 민주의 섹시함에 찬사를 날렸다.

도훈은 조교 강민주의 주가가 확연히 올라간 모습에 기분이 이상했다.

‘허참, 별일이네. 강민주가 학생들에게 이렇게 인기가 많다니.’

[왜요? 주인님만 바라보던 민주양이 인기가 급상승하니까 괜히 서운하십니까?]

‘서운하긴 무슨···. 오늘은 좀 돋보일 만했지. 근데 정음이는 괜찮으려나? 패배가 익숙하지 않을 텐데.’

도훈은 게임에 이기고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최애라 할 수 있는 정음이 하필 대장 전에서 패하면서 패전의 책임을 떠안게 된 것이 안타까워서였다. 도훈의 생각대로 정음은 잔뜩 풀이 죽어 팀원들에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아니야. 정음이 넌 잘했어."

"맞아. 혼자서 3 vs 1을 상대했잖아."

"까짓 설거지 하면 되지. 괜찮아. 기 죽지마."

다들 정음을 격려했지만, 사실상 패배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태영은 시치미를 떼고 모른 척했다. 성수가 게임을 마무리하는 사이 정음이 태영을 따로 불렀다.

"태영아, 나랑 잠깐 얘기 좀 할래?"

"으, 응? 왜?"

정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 혹시 아까 내 발목 잡았니?"

물귀신이 장난이라도 한 것처럼 한쪽 발이 밑으로 쑥 꺼져버린 이유에 왠지 태영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당연한 의심이었지만, 태영은 정음에게 혼날까봐 거짓으로 둘러댔다.

"무슨 소리야? 너 혼자 미끄러진 거 잖아?"

"······."

정음은 더 따지고 싶었지만, 완강히 부인하는 태영을 다그칠 수 없었다. 어차피 증인도 없고, 그녀와 태영만이 유일한 증인이었다. 정음이 계속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자 태영이 적반하장으로 오리발을 내밀었다.

"설마 네가 떨어진 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 아니야. 미안. 내가 착각했나 봐."

정음이 풀죽어 물러나자 태영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휴-. 들킬 뻔했네. 하지만 조교샘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고.’

배신자 태영은 자신의 선택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민주가 그렇게 된 것도 정음의 실수 때문이었다/

‘그깟 설거지 좀 하면 어때? 어쨌든 민주샘은 지켰는데.’

태영이 학생들 사이에 환호받는 민주를 보며 만족해했다.

***

성수는 남은 시간 동안 간만에 자유시간을 줬다. 학생들은 신나게 물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늘 하루 고생했다."

성수가 수영강사들을 불러 치하했다. 회장도 없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학생들이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형도 고생하셨어요."

"오늘은 그럼 이걸로 쫑이에요?"

"그래. 간만에 바닷가 놀러 왔는데, 애들도 좀 풀어줘야지."

성수가 물놀이를 즐기는 학생들을 보며 우선에게 말했다.

"우선이 넌 좀있다 2학년 집행부 애들 집합시켜라. 저녁 준비하게."

"네, 형."

"강사들은 이제 좀 쉬어. 일 다 끝났으니까."

"형은 안 쉬세요?"

"혹시 모르니 애들 보고 있어야지. 수영 못하는 애들도 많은데."

"나참, 무슨 얼라들도 아니고. 다들 대학생이잖아요."

"그래요. 안전요원도 쫙 깔렸구만."

성수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에 하나라는 게 있는 거야. 도훈이 너도 집행부 해보면 알 거야. 행사 진행하면서 즐기는 게 쉬운 게 아니라는 거."

"저 아직 결정 안 했는데요?"

"암튼, 놀다 와. 난 여기서 애들 보고 있을 게."

"도훈아. 같이 수영이나 하러 갈래?"

남자부 강사를 맡은 승완은 아까의 패배가 아쉬었던지 도훈에게 대결을 제안했다. 수중기마전은 비록 졌지만, 바다수영 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아니. 난 그냥 산책이나 하려고. 오늘은 좀 피곤해서."

"그래? 그럼 다음에 한 번 붙자."

다들 물놀이에 뛰어드는데, 도훈만 혼자 무리를 빠져나와 해변을 거닐었다.

[웬일이 십니까? 후배들과 어울리지도 않으시고.]

‘지금 뛰어들어봐야 괜히 여자애들만 자극할 뿐. 괜한 신경전 벌이게 하느니, 나중에 따로 한명씩 보는게 나아.’

[그렇군요. 마침 저기 한 분 보이는데요?]

‘응?’

도훈이 가만히 보니 인파 속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검은 레쉬가드를 걸친 정음이었다. 그녀는 학과에서 떨어진 곳에서 혼자 해변을 거닐고 있었다.

"정음아."

"어, 선배."

정음이 눈치를 살피며 도훈에게 꾸벅 인사했다.

"오빠라고 불러도 돼. 주변에 애들 없어."

"그, 그래도. 괜히 조심스러워서."

"근데 왜 혼자 여깄어? 애들이랑 안 놀고."

"그냥 미안해서요."

"아까 기마전 졌다고 애들이 뭐라 그래?"

"아, 아뇨! 다들 별말 안 했어요. 그냥 저 혼자···."

도훈이 의기소침해진 정음을 위로했다.

"에이, 뭘 그런걸 가지고 그래. 게임 좀 질수도 있지."

"···네. 고마워요 오빠."

"응."

도훈과 정음은 해변을 따라 계속 걸었다.

체육과에서 멀어질수록 두 사람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어느새 어깨가 맞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도훈은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아, 앗···. 괘, 괜찮으세요?"

정음은 도훈과 손잡고 걷는 모습을 들킬까 조마조마했다.

"뭐 어때? 보는 사람도 없는데."

"그래도···."

정음이 자꾸 손을 빼려고 하자 도훈은 오히려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더 강하게 스킨쉽했다.

"아, 앗! 오, 오빠."

"눈치좀 보지마. 내가 괜히 미안해 지니까."

"···네."

정음이 고개를 떨구며 발그레 미소지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노을 진 해변의 풍광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곳을 정음과 단둘이 걷고 있으니 도훈은 절로 행복지는 기분이었다.

‘데이트하는 기분이네. 간만에.’

[요새 정음 양을 자주 못 챙기긴 했죠.]

‘그러게. 본처 두고 바깥으로만 돌다 보니···.’

"참, 너 오늘 엄청 멋있더라."

"네? 제가요?"

"응. 씨름 이긴 것도 그렇고. 기마전에서도 혼자 거의 다 쓸어담았잖아."

"운이 좋았어요."

"아니야. 내가 볼 땐 넌 정말 운동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

"오빠한테 그런말 들으니까 기분이 이상해요."

"왜?"

"오빠도 다 잘 하시잖아요."

"에이, 너만큼은 아니지."

"아니에요. 전 오빠가 진짜 만능 스포츠맨 같아요. 배구면 배구, 보드면 보드, 이번엔 수영까지···. 못하시는 게 없잖아요. 또···."

정음은 뭔말을 하려다 부끄러웠는지 입을 닫았다.

"또 뭐?"

"아, 아니에요. 제가 괜한 말을···."

"괜찮아. 말해봐. 여긴 너랑 나 둘밖에 없으니까."

정음이 민망한지 겨우 입을 열었다.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하신다고···."

"몸으로?"

‘얘도 나랑 똑같은 생각했구나?’

[그러니까요. 신기하군요. 정음양이야말로 주인님이 인정한 몸 천재 아닙니까?]

‘역시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일까나?’

[주인님은 사실 스킬빨에 템빨이죠. 정음 양은 순수한 재능이고요.]

‘그거나 그거나.’

정음이 뭔가 부끄러운지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몸으로."

"응? 너 방금 야한 생각했지?"

"아, 아니에요!"

정음이 화들짝 놀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꼬투리를 잡은 도훈은 이번엔 그녀의 허리를 끌어 안으며 바짝 밀착시켰다.

"괜찮아, 그럴수도 있지."

"아, 아닌데···."

"난 했는데?"

"예, 예?"

놀란 정음이 커다란 눈을 껌뻑거렸다.

"야한 생각."

"아, 앗···."

패배의 쓰라림을 식히려 혼자 산책하러 나왔다가 도훈을 만난 것도 우연이지만, 그가 해주는 위로와 적극적인 스킨쉽에 정음은 점점 몸이 달았다.

‘아···. 오빠만 옆에 있으면 왜 이러지.’

실은 정음은 도훈이 갑자기 손을 잡을 때부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들킬지도 모른다는 긴장감보다 그의 몸이 닿기만 해도 짜릿한 자극이 느껴졌다.

고개를 숙인 정음이 도훈을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오빠가 이렇게 가까이만 있어도 이상해지는 거 같아요."

"어떻게 이상한데?"

"모르겠어요. 막 괜히 몸이 뜨거워지고···."

"뜨거워지고?"

"숨도 가쁘고···."

"또?"

"그냥···. 모르겠어요."

도훈이 정음의 귀여운 반응에 피식 웃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반응이군요.]

‘나도 그 생각했어.’

[주인님은 안 그러신가요?]

‘난 순수한 사랑을 하기엔 이미 때가 많이 타버렸으니까. 그래도 정음이랑 같이 있으면 다른 애들보단 훨씬 기분이 좋긴 해.’

[주인님도 정음양을 많이 아끼시니까요.]

‘어떻게 이렇게 귀엽게 예쁜애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나밖에 모르는 바보같은 애한테.’

도훈이 정음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정음이 뭔가 결심을 한 듯 걸음을 멈추었다.

"왜 그래?"

"···저 오빠."

"응?"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요."

"응. 말해."

"···저 오빠랑 손만 잡아도 젖어버리는 데 정상인가요?"

< 963. 별이 쏟아 지는-23-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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