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2. 별이 쏟아 지는-22- >
"와···."
민주의 탈의를 지켜보던 남학생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비키니를 착용한 민주의 몸매가 신입생들에 비해 전혀 꿀리지 않았던 것. 오히려 특유의 성숙미가 더해져 20살짜리들로선 흉내도 못 낼 농염한 매력이 뿜어져 나왔다.
"침 닦아라 인마."
"조교 선생님이 저 정도였다니."
여학생들마저 일제히 시선을 빼앗겼다. 한동안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보였다. 지금 민주는, 태안 해변 최고의 씬스틸러였다.
‘세상에···. 몸매를 부각하면서도 최대한 절제된 디자인이야. 어쩜 저렇게 꼭 맞는 수영복을 골랐지?’
"예쁘시다."
"어쩜 저렇게 잘 어울리시지?"
민주의 비키니는 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히 섹시했다. 관록이 느껴지는 초이스였고, 노출이 심한 일부 여학생들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섹시함이란 결코 의상이 아닌 분위기라는 걸, 민주는 알고 있는 듯했다.
"자, 나도 준비 끝! 이제 시작해 볼까?"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민주가 활기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것이 게임의 시작을 알렸다.
"우아아아!"
"가즈아!"
"설거지 면제권이다!"
민주 덕분에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 일단의 대학생 무리가 우다다 바닷속으로 달려들었다.
풍덩, 풍덩-!
개중에는 급한 마음에 발을 헛디뎌 넘어진 남학생도 있었고, 밀려오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꺄악- 소리치는 여학생도 있었다. 어찌나 뙤약볕에 오래 서 있었는지, 단지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만으로도 다들 행복해했다.
승완팀과 도훈팀으로 나뉜 학생들은 적당한 거리를 벌리고 대치했다. 조장인 도훈이 팀원을 향해 물었다.
"대장조 기수는 누가 하기로 했지?"
"나야, 잘 부탁해."
민주가 손을 들며 눈웃음을 지었다.
도훈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 하실 수 있죠? 여긴 선생님이라고 봐주는 거 없어요?"
"물론이지!"
민주의 당찬 대답에 도훈이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타세요. 나머지 학생들도 적당히 나누어 타."
"네!"
비키니를 입은 민주가 도훈의 등 뒤로 다가갔다. 그리곤 조심스레 어깨에 발을 올리며 무게를 실었다.
"미안, 살짝 무거울지도 몰라."
"걱정마세요. 씨름대회에서 우승까지 한 몸이니까."
"어머, 그럼 튼튼하겠네?"
민주가 안정적으로 자세를 잡자, 양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학생 둘이 팔목을 교차해 발 받침을 만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기사를 말 위에 태우는 종자들처럼 보였다.
"일어설게요. 떨어지지 않게 꽉 잡으세요!"
민주를 태운 도훈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스파르탄 벨트로 강화된 그의 근력은, 50Kg도 안 나가는 민주를 거뜬히 소화해냈다.
"꺄아!"
일어서는 도중 기우뚱 몸이 기울자 민주가 앞으로 넘어지며 도훈의 이마를 붙잡았다. 그 덕에 민주의 가슴이 도훈의 정수리 위로 뭉개졌다. 말랑한 촉감에 도훈이 살짝 자극받았다.
‘크흠, 백퍼 고읜 거 같은데.’
"···조, 조심하세요."
"응!"
민주가 다시 자세를 잡는 사이 다른 기수들도 하나 둘 기마위에 올랐다. 심판을 맡은 성수는 양 팀을 돌아다니며 기수가 쓸 모자를 배분했다.
"모자 뺏기는 순간 무조건 탈락이야. 죽고 나서 물귀신 작전 써도 퇴장 조치고. 젊은 친구들, 신사답게 행동하라고?"
성수가 엄포를 놓으며 도훈 쪽으로 왔다.
그는 민주를 목마 태운 도훈을 향해 말했다.
"야 이도훈, 조교 선생님 떨어뜨리면 오늘 밤 니 밑으로 싹다 집합 할 각오해, 무슨 말인지 알지?"
"어머, 성수도 참···."
도훈은 성수가 일부러 조교 선생님을 떠받들며 면을 세워주려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씩씩하게 대답했다.
"넵, 부회장님!"
성수는 도훈이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씩 웃더니 민주를 향해 말했다.
"조교 선생님. 이 녀석이 이래 보여도, 나름 튼실한 놈이니까 잘 타보세요."
"응, 고마워."
"저는 그럼 상대 팀 모자 전달하러 가보겠습니다."
성수가 떠나자 조장인 도훈이 기마들을 불렀다.
"자 다들 이쪽으로 보여봐."
"네."
"어우, 이게···."
대답과는 달리 물속이라 그런지 행동이 굼뜨고 어딘가 불안했다. 목마를 탄 여학생들도 혹여나 넘어질까 바짝 움츠러든 모습이었다.
"생각만큼 잘 못 움직이겠지?"
"네, 균형 잡기 힘들어요."
"바닥으로 푹푹 빠지는데요?"
"그래서 우리 팀은 아까 말한 것처럼, 초반엔 최대한 방어적으로 나갈 거야. 상대가 다가오기 전까지는 절대 맞서지 마."
"네."
"그리고 우리 팀이 있는 곳까지 상대가 다가오면 쉴 틈 주지 말고 곧바로 적 대장조를 노려."
"정음이 말이죠?"
우선이 반대편에 승완에게 올라탄 정음을 가리켰다. 예상대로 상대의 대장조는 정음이었다.
"그래. 제아무리 정음이라도 한방에 우르르 몰려들면 감당 못할 거야. 정신없는 틈을 타서 내가 뒤로 돌아가 모자를 뺏어 볼게. 아니, 내가 아니고 조교 선생님이."
"이해했어."
"너희들도 알아들었지?"
도훈이 기수로 있던 연두와 서현, 아영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도훈 위에 올라탄 민주를 부러워하면서도 씩씩하게 대답했다.
"네, 오빠."
"자, 그럼 파이팅 한 번 외치고 시작하자."
"형, 저흰 손이 없는데요."
"아니, 너희들 말고 기수들."
"아하."
기마 위에 오른 여자들이 겨우 팔을 뻗어 손등을 겹치더니 파이팅을 외쳤다. 그 사이 모자 배분이 끝났는지 양 팀의 가운데 자리한 성수가 휘슬을 입에 물었다.
"자, 준비되셨음 시작합니다!"
삐이이익!
***
정음 팀은 초반부터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민주가 올라탄 기마를 향해 4팀이 파도를 가르며 달려왔다. 그 기세가 몹시 흉흉했다.
"오, 오빠. 어떻게 해요?"
"저희도 슬슬 뭉쳐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판세를 정확히 읽고 있던 도훈은 단호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직이야. 기다려."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기마들을 보고도 도훈은 인내심을 발휘했다.
‘조금만 더···. 분명 간격이 벌어진다.’
도훈이 노리는 것은 바로 시간 차.
상대는 멀리서 뛰어오므로 기마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다. 즉 송곳처럼 일점돌파를 노리고 달려오는 이들은, 결국 한 줄로 늘어서게 된다는 의미.
반면 도훈 팀은 학익진으로 넓게 포진해 들어오는 상대를 감싸는 형국이었다. 마치 뱀의 아가리를 향해 먹잇감이 제 발로 굴러 들어오는 것 같은 모습.
‘조금만··· 조금만 더.’
도훈은 상태가 완전히 늘어설 때까지 충분히 기다렸다.
그리고 완벽한 타이밍을 간파했다.
"지금이야!"
도훈의 좌익과 우익에서 서현과 연두를 태운 기마가 달려나갔다. 또한 도훈 뒤로 살짝 처져있던 아영의 기마가 앞서 나가며 3대 1의 협공을 이루어냈다.
목마를 타고 있던 민주가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감탄했다.
"우아, 순식간에 3:1이네?"
도훈의 전략은 이른바 각개격파였다.
4:4라는 균등한 상황을, 진형이 늘어지며 발생한 시간차를 이용해 3면 포위 공격으로 완성한 것이었다.
"선생님, 저흰 후방 침투할게요. 꽉 잡으세요!"
뒤로 물러나 있던 도훈은 크게 우회하며 상대의 후미를 타격하기로 했다. 흔히 망치와 모루라 불리는 전술이었다. 도훈은 자칫 난전으로 끝나버릴 수 있는 물놀이를, 전략 전술로 승화시킨 것이었다.
이를 멀리서 지켜보던 성수가 이마를 탁 쳤다.
"이야, 저 자식."
그는 심판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높은 위치에서 전체가 조망되었다.
"우아, 무슨 미식축구에서 작전하는 것도 아니고···. 그 틈에 저런 전략을 구상했다고? 하여간 난 놈이라니까?"
성수는 이제 상대 팀의 대응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이쪽에 전략가 도훈이 있다면, 상대 팀에는 일당백이라 불리는 정음이 있었다.
"어으, 이건 또 뭐야?"
성수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선봉에 선 정음이 3 VS 1의 열세 상황에서도 미친 움직임을 보이며 수비를 해 내는 것이었다.
"정말 뛰는 놈위에 나는 놈이라더니!"
정음의 움직임은 가히 예술의 경지였다. 사방에서 모자를 뺏으려고 달려드는 손길들을 요리조리 헤쳐나가며 오히려 역으로 반격을 시도했다. 어찌나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가는지 무리해서 공격을 들어가던 서현이 균형을 잃고 목마 위에서 낙마하고 말았다.
풍덩-!
"어, 도훈팀 한 명 탈락!"
성수가 재빨리 판정을 내렸다.
이제 2 VS 1 상황. 3팀이 덤벼도 당해내지 못하던 것을, 둘이서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기수로 오른 연두는 슬슬 조바심을 느꼈다.
‘아이씨, 도훈 오빠는 왜 안 오는 거야! 지금이 한계라고!’
원래는 셋이 하나를 상대하는 동안 도훈이 후방에서 때리는 망치 역할이었다. 하지만 망치는 오히려 상대의 수비에 가로 막혀 있었다.
"헉, 헉. 경희 너 좀 한다?"
"조교 선생님, 게임에선 위아래 없는 거 아시죠?"
우회를 통해 후방을 노리던 도훈은 수문장 강경희에게 딱 막히고 말았다. 도훈은 이쯤에서 자신의 전략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뱀의 아가리로 들어오는 게 먹잇감이 아니라, 내장을 꿰뚫는 창살이었구나!’
그가 간과한 것은 정음의 놀라운 신위였다.
3 VS 1 이면 충분히 버텨 줄줄 알았는데, 오히려 지금 보니 선봉에 선 정음은 미끼를 자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아, 내가 미끼를 물어븐 것이여.’
[주인님 이대로는 패배가 확실시됩니다. 어서 결단을!]
도훈의 위에 올라탄 민주는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현역 시절 체육과 에이스였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날쌔고 위협적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상대 팀엔 NO.2라 불리는 경희가 있었다. 정음보다 못할 뿐, 경희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젠장, 여자 신입생 원투 펀치한테 이렇게 당하고 마는 건가!’
도훈이 실망한 그 순간이었다.
경희를 목마 태운 남학생이 다리를 삐끗하더니 그대로 물속에서 주저앉았다. 기둥이 무너지자 양옆에서 바치고 있던 남학생들도 속절없이 나가떨어졌다.
"으아아!"
경희가 버티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노련한 민주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모자!"
날랜 손놀림으로 쓰러져가는 경희의 모자를 빼앗은 민주가 빠르게 도훈에게 말했다.
"뺏었어! 얼른 애들 도우러 가자!"
"네!"
도훈이 기동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뒤에선 스스로 자멸한 경희가 억울한지 물을 내리치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에이씨! 진짜!"
[운이 좋았군요.]
‘운이 아니지.’
[그럼요?]
‘경희가 다른 애들보다 무거워서 기마들이 오래 못 버틴 거야. 저 빵빵한 엉덩이로 위에서 쉴 새 없이 비벼대는데 감당하기 어려웠을 걸?’
[아하. 몸무게가 변수였군요.]
‘그나저나 또 한 명 쓰러졌군.’
도훈이 경희를 물리치고 정음 쪽으로 달려가는 사이 모자를 빼앗긴 아영이 탈락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연두 한 명 뿐이었다.
"연두야, 조금만 기다려!"
목마를 탄 민주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도훈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달려나갔다.
‘인중정음 마중도훈이라.’
[갑자기 무슨 소립니까?]
‘인중여포 마중적토를 따라한 거잖아. 정음이 여포같은 장수라면, 나는 민주를 태운 종마니까 말이야.’
[보통은 여포가 타는 말이 적토 아닙니까?]
‘적토가 여포를 타는 경우가 더 많지 않았나? 정음이랑 말타기는 딱히···.’
[아, 아니 갑자기 무슨 소리를···.]
‘농담이야 인마. 어쨌든 내가 정음이를 아무리 아껴도 지금은 적으로 만난 상황이니까.’
도훈의 움직임은 단연 압권이었다. 민주가 아무리 가벼워도 50Kg에 근접할 텐데, 위에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는 듯 물속을 빠르게 달려나갔다.
"다 왔어, 조금만 더!"
하지만 도훈이 당도했을 땐 마지막으로 버티던 연두마저 끝내 모자를 빼앗기고 말았다. 신출귀몰한 정음의 움직임을 당해내지 못한 것이다.
‘젠장. 정음이 변수를 너무 쉽게 생각했어.’
[민주양이 과연 이길 수 있을까요?]
‘기수는 밀린다고 봐야지. 하지만 말은 우리 쪽이 더 좋아.’
도훈은 승완의 체력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셋을 동시에 상대하느라 지친 건 정음 태운 기마들이었다. 특히 정음을 목마 태운 승완은 목이 빠질 것 같은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고 버티는 중이었다. 격렬한 정음의 움직임을 감당하기 쉽지 않았던 탓이다.
"안녕하세요, 조교선생님."
"반가워 정음아, 이제 대장전이네?"
정음이 하도 깊숙이 들어온 것도 있고, 도훈의 기동력이 원체 빨랐으므로 단둘이 1:1 상황이 만들어졌다. 먼 거리에서 정음 팀에서 살아남은 희주와 효민이 달려오고 있긴 했지만, 아직 여유가 있었다.
‘정면 승부는 위험해. 기마가 지치게 만드는 편이 빠르겠어.’
도훈이 승완의 상태를 보더니 전략을 수정했다. 그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꼬리잡기를 하듯 뒤를 노렸다.
"야, 자꾸 어지럽게 돌 거야?"
"힘들면 그만 쉬라고. 어차피 우리가 이길 테니까."
"어림없지. 정음이가 있는 한!"
이는 민주와 정음의 일기토였지만, 수영 강사들끼리의 대결이기도 했다. 특히 남자부 강사를 맡은 승완은 도훈에게 약간의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다.
‘수영 실력은 내가 더 뛰어난데, 왜 다들 도훈이만 찾는 거야? 도훈이 네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물속에선 내가 더 낫다고!’
기회를 노리고 있던 승완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 벼락같이 움직였다. 빙글빙글 주변을 돌던 도훈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느라 오히려 뒤를 노출하고 만 것이었다.
"정음아, 뒤를 노려!"
정음가 민주의 뒤통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민주가 공격을 피하기위해 바짝 몸을 수그렸고, 그녀의 손끝은 민주의 비키니 브라끈을 잡고 당기고 말았다.
< 962. 별이 쏟아 지는-22-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