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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974화 (941/2,000)

< 957. 별이 쏟아 지는-17- >

"둘 중 누가 이기는가 보다, 너랑 나 둘 중 누가 올라갈지가 더 중요한 거 아닐까?"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8강 첫 경기에서 맞붙은 상황.

도훈을 놓고 벌어지는 쟁탈전은, 영혼의 콤비라 불리던 두 사람의 우정에 균열을 일으켰다. 연두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토라진 나연이 그녀를 쏘아보았다.

"너 진짜 나랑 한 번 해보겠다는 거야?"

"니가 먼저 시작했잖아?"

"내가 언제?"

"아까 달리기할 때! 아주 이 악물고 뛰더라? 난 네가 그렇게 빠른 줄 첨 알았네?"

"너는 뭐 기를 쓰고 안 뛰었니? 어차피 피장파장이잖아."

나연과 연두는 첫번째 경기가 시작되는데도 끊임없이 투덕거렸다.

"하-, 진짜. 야, 이연두 내가 이런 말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솔직히 너 좀 심하지 않니?"

"뭐가 또?"

"넌 굳이 도훈 오빠 아니어도 되잖아. 안 그래?"

연두가 바이섹슈얼이란 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나연의 말을 들은 연두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다행히 알아들은 사람은 없었지만, 사람들 앞에서 공개 저격 한 것이 수치심을 불러 일으켰다.

"뭐, 뭐라고? 너 그게 지금 할 소리야?"

어찌나 화가 났는지 주먹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 연두는 나연이 도훈을 원한다는 사실보다, 자신이 도훈에게 밀려났다는 사실에 더 분노했다.

본래 순혈 레즈비언이던 연두는 도훈의 개종(?)으로 바이섹슈얼로 거듭났다. 하지만 여전히 나연에 대한 애틋한 감정도 남아있는 상태였다.

나연이 자신을 우정보다 살짝 진한 관계로 인식한다면, 자신은 사랑보다 좀 더 옅은 관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 둘 사이에 도훈이 끼어들었고, 이후 관계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성애자였던 나연에게 도훈은 당연히 끌리는 존재였으므로, 연두 입장에선 나연을 도훈에게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라난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도 도훈에 대한 감정이 커가면서 모든 게 뒤죽박죽으로 변해 버렸다.

사랑이냐 우정이냐를 넘어 배신과 질투 혹은 바람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이 혼재되었고, 도훈의 내기 제안은 아슬아슬하던 둘의 관계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이나연, 이 나쁜 년! 두고 봐. 도훈 오빠는 내가 독차지 할테니까.’

배신자 나연에 대한 최고의 복수는 바로 자신이 먼저 도훈을 독차지하는 것.

연두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연을 노려보며 말했다.

"두고 봐, 이나연. 나중에 꼭 후회하게 만들어 줄 거야."

"흥, 두고 보라면 누가 무서울 줄 알고?"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경희와 희주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비록 샅바로 비키니 팬티 부분이 많이 가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몹시 민망한 의상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었다.

"두 사람, 일어서!"

샅바를 잡은 채 일어서는 두 사람은 준비 동작부터 신경전을 벌였다.

"심판 오빠, 경희 쟤가 자꾸 몸으로 미는데요?"

"너도 밀던가, 그럼."

경희가 까칠한 말투로 응대하자 희주고 샅바를 잡을 손을 한 바퀴 더 돌려 손등에 돌려 묶었다.

"윽! 뭐, 뭐야."

"넘어질까 봐 꽉 잡은 건데?"

"어쭈? 한 번 해보자는 거지?"

경희와 희주는 씨름에 대해 잘 몰랐지만, 아까 남자부 경기를 본 것을 떠올리며 엉덩이를 뒤로 쭉 내밀었다. 허리를 곧게 펴고 엉덩이를 뒤로 빼자, 남자들과 다르게 달덩이같은 둔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우, 우와!"

"이게 무슨 일이람!"

경희와 희주 뒤편에 앉아있던 남자들은 공격적으로 튀어나온 엉덩이에 입을 쩍 벌렸다. 몸매 좋기로 소문난 두 사람의 씨름 준비 자세는, 그야말로 섹스어필이었다.

지켜보던 도훈이 이마를 짚으며 절래절래 고개를 가로 저었다.

‘어휴, 이게 뭔 꼴이야. 야동도 이것보단 덜 야하겠네.’

그도 그럴 것이 타이트한 팬티를 입은 채 엉덩이를 뒤로 내밀자 중요 부위를 가린 부분이 안쪽으로 파고들며 바짝 조여진 것이었다. 비키니 라인으로 제모를 안 했더라면 밖으로 음모가 다 비칠 정도로 아찔한 광경.

"시이-작!"

경기가 시작되자 경희와 희주의 본격적인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몸매는 둘 다 빼어난 편이지만, 아무래도 꾸준한 테니스로 단련을 해온 경희의 하체 힘이 월등했다.

"으읏!"

자세가 불안해진 희주는 샅바를 바짝 당기며 나가떨어지지 않도록 버텼다.

그러자 이번엔 경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흑, 이 미친년. 왜 이렇게 바짝 조이는 거야!’

아닌 게 아니라 타이트하게 묶인 샅바가 하필 가랑이 안쪽에 바짝 조여지며 얇은 비키니 팬티 위를 짓누른 것이었다.

"흐, 흐응!"

약이 오른 경희 역시 희주의 샅바를 맞서 당겼다.

"학!"

난데없는 신음성에 남학생들이 미쳐 날뛰었다.

"아아! 역시 최고다!"

"비키니 씨름 기획자 누구냐, 포상금 줘라!"

"이게 씨름이지! 이게 우리 민족의 전통놀이지!"

이미 재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은 남학생들에게 승부 따윈 무의미했다. 그저 어떻게 하면 더 꼴리는 몸을 눈요기 할 수 있을까가 관건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훈이 탄식했다.

‘하-. 이게 뭐람 진짜. 아주 그냥 딸감 대방출이네. 이거 제안한 새끼 완전 변태 아냐?’

도훈은 안 그래도 30명 가까이 몰아서 자는 남자방에 새벽 내 밤꽃냄새로 진동할 생각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왜요? 주인님 혼자 독차지하던 광경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니 아까우신가요?]

‘아니 그걸 떠나 너무 게임이 변태스럽잖아. 이렇게 될 줄 뻔히 예상됐는데.’

[그건 아니죠. 애초에 복장을 바꾼 건 경기에 참여한 당사자들의 선택이었으니까요.]

‘흠···.’

진행되는 게임 양상이 다소 외설스러워지긴 했지만, 로시의 말대로 비키니를 자청한 건 희주와 경희였다. 따라서 씨름을 제안했다는 사실만으로 변태라고 비난할 순 없었다.

그때 대치 중이던 경희가 갑자기 안다리를 걸었다. 되치기 당하기 딱 좋게 균형이 무너졌지만, 오로지 하체의 힘만으로 버텨내며 희주를 넘겨버렸다.

쿵-!

엉덩방아를 찧고 넘어진 희주 위에 경희가 포개졌다.

"홍 샅바 승!"

둘 다 씨컵이 넘는 글래머라 그런지 두 개의 가슴이 위아래로 찌그러지면서 생겨나는 볼륨감에 구경하던 남학생들이 미친 듯이 환호했다.

"우아아아아! 마지막까지!"

"최고다 둘 다!

"기억할게!"

경기에 이겨 의기양양한 경희와 달리 바닥에 쓰러진 희주는 모래를 발로 차며 화풀이를 했다.

‘쳇, 무식하게 힘만 세 가지고.’

"자, 다음 경기 준비하세요. 경기자는 이연두, 이나연!"

우선의 진행에 앞선 두 사람이 퇴장하고 나연과 연두가 경기장에 입장했다. 방금 전 말다툼 때문이지 시작부터 서로를 쳐다보는 눈빛이 무시무시했다.

나연의 샅바를 맡은 도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야? 니들 싸웠냐? 죽일것처럼 노려보네 서로?"

"몰라요, 짜증나."

그때 성수의 도움을 받던 연두가 코칭을 부탁했다.

"부회장님. 초보자가 바로 쓸수 있는 기술 뭐 없어요?"

"기술?"

"네, 저 꼭 이겨야 되거든요."

난데없는 부탁에 성수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대답했다.

"음, 그러면 오금 당기기 같은 게 좋지."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요?"

"시작하면 바로 상대 무릎 뒤를 손으로 잡고 몸을 밀어버리는 거야. 한쪽 다리가 갑자기 들리면 균형을 잃고 넘어질 가능성이 크거든."

"아항!"

연두가 성수의 코칭을 받기 시작하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연도 도훈에게 물었다.

"오빠, 오빠, 저도 알려줘요."

"뭘?"

"연두 쟤 지금 부회장님한테 과외받고 있잖아요."

"아니, 뭐 말로 듣는다고 바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요. 연두가 이기는 꼴은 죽어도 못 봐요."

"나참. 일단, 어설프게 기술 들어가는 것보다 수비가 제일 중요해."

"수비요?"

"어. 무게 중심이 낮을수록 잘 안 넘어지거든. 그러니까 시작하자마자 자세를 낮춰버려. 그럼 쉽게 못 넘길거야. 그러다 기회를 봐서 역습."

"알겠어요."

나연의 샅바를 매주던 도훈은 그녀의 늘씬한 몸매에 감탄하면서도 가슴팍이 살짝 헐렁한데 아쉬움을 느꼈다.

‘바로 전에 희주 걸 봐서 그런지 영 작아 보이네. 나연이가 우리과 여자애 중에서 제일 작았던가?’

[아마도요?]

도훈이 눈대중으로 빠르게 캐치했다.

‘잘치면 꽉 찬 A쯤 되겠다. 옷 입을 땐 늘씬하니 좋아보였는데, 비키니는 좀 아니구나.’

[지금 그런 거나 평가하실 땝니까?]

‘하긴 뭐, 빈유든 거유든 맛만 좋음 그만이지.’

나연은 무용을 배워서 그런지 원체 몸이 유연하고 늘씬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빈약한 가슴이 크게 흠이 되는 건 아니었다.

"자, 샅바 다 매셨으면 가운데로."

우선의 호출에 연두와 나연이 서로를 노려보며 원형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시작부터 치열한 신경전에 구경하던 여학생들이 우려를 드러냈다.

"쟤들 베프 아니었나? 분위기 왜 저래?"

"몰라, 둘이 싸웠나봐."

"신기하네. 하루가 멀다 하고 붙어 다니더니···."

"선수, 앉아."

우선의 진행에 나연과 연두가 서로를 마주 보고 무릎 꿇었다.

"샅바 잡아."

치열한 신경전의 여파 때문인지 샅바를 잡는 동작도 거칠기 짝이 없었다. 두 사람은 성난 암고양이처럼 할퀴듯 샅바를 거머쥐었다. 그러면서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거세게 잡아당기는데 그 기세가 너무도 흉흉하여 심판인 우선이 당황할 정도였다.

"너, 너희들 괜찮겠냐?"

"어서 시작해 주세요."

"해요. 얼른."

"게임 중 만에 하나 싸우면 둘 다 몰수팬 건 알지?"

규칙을 상기시킨 우선이 두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

"시이- 작!"

"얍!"

성수에게 오금당기기를 배운 연두가 시작부터 돌진하듯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연이 개구리처럼 바짝 쪼그려 앉으며 버티자 기술이 무위로 돌아갔다.

"흥, 어림없지!"

"이러면 내가 못 넘길 줄 알고?"

연두는 샅바를 꽉 잡은 채 횡이동으로 몸을 움직였다.

이에 나연 역시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두 사람이 꼬리물기를 하듯 빙글빙글 돌아갔다.

"어우, 이번엔 엄청 치열한데?"

"그러게. 둘 다 진지 빨았네."

"엄청 어지럽겠다."

씨름판 위를 팽이처럼 돌고 있는 두 사람은 점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러면서도 절대 먼저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겠니?"

나연의 말에 연두가 콧방귀를 끼며 대답했다.

"그게 지금 누가 할 소린데?"

"끝을 보자 이거지?"

"너한테는 절대 안 지거든?"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을 지켜보던 도훈은 마음이 착잡했다.

‘아. 괜히 경쟁붙였나 보다. 보기 민망할 정도네.’

[그러게 말입니다. 둘 다 미션 때문에 어차피 공략하게 될 텐데요.]

‘그러게 그 말을 먼저 해줄 걸 그랬어.’

모래사장은 정식 씨름판과 달리 경사가 고르지 않았다. 바닷가 방향으로 살짝 기울어진 형태였다. 계속 빙글빙글 돌던 연두는 순간적으로 경사진 부근에 발을 헛딛으며 균형을 잃고 말았다.

‘아차!’

나연이 이를 놓치지 않고 다리를 걸며 넘어뜨렸다.

‘쌤통이다!’

하지만 연두는 바닥으로 쓰러지는 와중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나연을 끌어 안은 채로 공중에서 한바퀴 몸을 돌린 것이었다. 굉장한 순발력이었다.

"어엇!"

당황한 나연이 반격하려 했지만, 이미 엉덩이가 땅에 닿은 후였다. 하지만 비스듬히 떨어졌기 때문에 유심히 보지 않고는 판단이 쉽지 않았다. 얼핏 봐선 연두가 먼저 닿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 어 잠깐."

당황한 우선이 잠시 판정을 보류했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판단이 쉽지 않았다. 안 그래도 치열한 경기였기 때문에 혹여 오심을 내렸다간 상대편에게 두고두고 원성을 살 것 같았다.

고심 끝에 우선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주심 혼자 판정이 쉽지 않아, 삼심 합의 판정으로 가겠습니다."

"삼심이라니? 우리가 모르는 부심이 있었어?"

"뭔 소리야 갑자기? 나연이 먼저 닿았잖아."

"아니야. 연두가 살짝 먼저 닿았어."

"자자, 선심은 샅바 도우미로 오신 부회장님과 도훈이 형으로 하겠습니다. 남자부 결승진출자만큼 판정 시비는 없는 것으로."

졸지에 부심을 떠맡게된 도훈과 성수가 가운데로 모였다.

"뭔데? 진짜 못 봤어?"

"애매해서요. 마지막에 갑자기 뒤집히는 바람에···."

성수가 심판들만 들리도록 조용히 말했다.

"아, 나도 근데 제대로 못 봤는데. 도훈이 너 혹시 봤냐?"

"저는···."

도훈이 머뭇거렸다.

상황을 보니 자신에게 선택권이 주어진 셈이었다.

달리 말하면 누굴 떨어뜨릴지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신중해 질 수밖에 없었다.

‘아씨, 괜히 원망듣는 거 아냐?’

[그럴 땐 최대한 솔직하게 대답하시는 게 좋습니다. 어차피 누굴 골라도 나머지 한 명은 주인님을 원망할 테니까요.]

"···나연이가 미세하게 먼저 닿은 거로 봤어요."

"정말요?"

"도훈이가 좀 더 가까이 있었으니 확실하지. 연두가 이겼네."

"네, 그럼 합의판정 발표할게요."

성수와 도훈이 물러나고 혼자 남은 우선이 말했다.

"삼심 합의 결과 연두의 승리로 결정되었습니다."

"와아아아!"

"그럴줄 알았다니까."

연두가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는 데 나연은 어깨가 축 처져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세상을 다 잃은 표정에 친구들이 위로했지만, 상처받은 자존심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그 모습을 먼 발치서 바라보던 도훈은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흐음, 괜히 미안하네. 나중에 따로 봐서 위로해 줘야지.’

곧바로 다음 경기가 이어졌다.

"다음 출전자는··· 이효민, 박아영! 출전자 나와주세요!"

< 957. 별이 쏟아 지는-17-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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