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6. 별이 쏟아 지는-16- >
도훈의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우선의 제안은 집행부와 사전에 상의 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의 역할은 게임의 진행자였을 뿐, 누구도 그에게 노예팅을 주선하거나 1일 커플 지명권을 준 적이 없었다.
"형, 이거 선 넘은 거 같은데?"
도훈이 성수에게 따져 물었다.
하지만 성수는 팔짱을 낀 채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뭐가 어때서?"
"아니 누구 맘대로 커플 지명권을 주는데요?"
성수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가 시켰는데?"
"예?"
도훈이 얼빠진 표정을 짓자 성수가 설명했다.
"지원자 부족하면 뭐든 좋으니까 마음껏 지르라고 말이야. 왜? 덕분에 저렇게 지원자가 많아졌잖아?"
"아니 그래도 이건···."
"누구 싫어하는 사람 있어?"
성수의 뻔뻔한 태도에 도훈은 남학생 쪽을 쳐다보았다.
노예팅이 열린다는 소식에 오히려 남학생들은 쌍수를 쳐들고 환호했다. 이쯤 이르러 도훈은 이 모든 것이 성수의 계획된 각본임을 깨달았다.
‘이 곰탱이 새끼,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네?’
[성수군이 시켰다고요?]
‘아직도 모르겠어? 이건 성수가 우선이에게 따로 언질을 준 거라고.’
[괜한 억측 아닙니까?]
‘우선이 성격 몰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거. 녀석이 뜬금없이 저런 제안을 했을까봐? 백퍼 성수의 농간이라고.’
[아···. 하지만 성수군 말대로 다들 환영하는 분위긴데요?]
‘당연하지. 1학년 여학생들이 야한 비키니 입고 캠프 참여한다는 소식은 이미 남자애들 사이에 다 퍼졌을 거란 말이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대를 하고 왔겠지. 여름밤, 바닷가에서 눈 맞은 커플이 한둘이겠냐고.’
[아아, 그럴지도.]
‘거기에 오전에 남녀 분리 수업을 하는 통에, 남학생들은 불만이 팽배한 상황이었잖아. 기껏 기대하고 왔는데 비키니 입은 꼴은 제대로 구경도 못 했으니까.’
[그럼 설마 이 모든 게 성수군의 계획이라는 말입니까?]
‘당연하지. 노예팅이건 커플 지명권이건 남학생 입장에선 손해 볼 게 없는 제안이란 말이야. 동시에 나를 노리고 있던 여자 후배들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 테고.’
[결국 여기서 입장 곤란하신 분은 주인님 한 분뿐이군요.]
‘바로 그걸 성수가 노린 거라고. 으으, 저 곰탱이 새끼 진짜 뚜쟁이 귀신이라도 붙은 건지 왜 나를 못 이어줘서 안달이람?’
모든 걸 안배한 성수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다들 좋아하잖아, 그럼 된 거 아냐? 뭐 예전처럼 노예팅 한다고 이상한 짓 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재미 삼아 하는 거니까 너도 좀 즐겨."
"······."
도훈은 화가 나 입을 다물어 버렸다.
"오오, 지원자 나와주세요!"
성수의 농간으로 머뭇거리던 여학생들이 대거 씨름 대회에 참가했다. 특히 커플 지명권을 준다는 말에 도훈을 점찍고 있던 여학생들 대다수가 손을 들었다. 육정음을 비롯해 나연, 연두, 경희, 희주, 효민, 서현, 그리고 마지막은 8 선녀 중 한명인 아영이었다.
"오케이, 아영이까지 딱 여덟. 그럼 8강으로 대진표 짜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나머지는 대충 예상하던 멤버였지만, 붉은 실 가위로 기억이 삭제당한 효민과 과활동에 거의 참여가 없었던 아영의 등장은 의외였다.
‘응? 효민이는 그때 연을 끊은 게 아닌가? 왜 나왔지?’
[주인님과 호감도는 초기화되었지만, 그 이후 다시 호감도가 높아졌을 수도 있죠.]
‘호감도가 다시 높아지더니? 그 뒤론 거의 얼굴도 안 마주쳤는데?’
[꼭 자주 만나야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는 것은 아니니까요. 주인님 정도면 학과 내에서 평판도 좋은 편이니, 의외로 짝사랑하는 사람도 많지 않겠습니까? 효민양이 그 중 한 명일 수도 있고요.]
‘그 말은, 호감도가 초기화되더라도 다시 연이 계속될 수 있다는 거야?’
[물론 가능합니다. 이전의 기억은 거의 나지 않겠지만, 전혀 새로운 추억을 쌓아 간다면요.]
‘하-. 이건 생각 못 했네. 그럼 아영이는? 아영이도?’
[저분은 어장에 없던 분이라 정보가 전혀 없습니다.]
‘나도 과 행사에서 얼굴 보기는 새터 이후 처음이야. 얼굴 보니까 이름이 얼핏 기억나네.’
[어차피 이번 미션 달성과 관계없으니 정보창을 실행해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럼 무슨 의돈지 알 수 있을 텐데요.]
‘그렇군. 간만에 한 번 열어볼까?’
도훈이 멀뚱히 서 있는 여학생들 가까이 다가가 아영의 정보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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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박아영 (비처녀, 18세 8개월)
나이 : 20 #아웃사이더 #염세적 #과묵
호감도 : 65/100
개방성 : A
성감대 : 클리토리스, 애널, 엉덩이
*애무 포인트 : 후장을 좋아해, 애널 주변 마사지를 즐깁니다.
성욕지수 : 높음 (임신확률 : 45%)
공략팁
*위 대상은 당신에게 보통의 호감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아싸 스타일 여대생입니다.
-무척 과묵한 편이며 주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약간 염세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욕이 왕성한 편이라, 이미 고등학교 때 후장을 뗐을 만큼 성적으로 과감한 시도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계속된 아싸 생활에 지쳐, 최근 다시 마음을 먹고 학과 사람들과 어울릴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친구를 사귀지 못할 경우, 미련 없이 과생활을 접고 임용에 올인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추천행동 : "넌 이름이 참 특이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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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의 정보창을 열람한 도훈은 그제야 새터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 맞아. 박아영. 이제 기억났다.’
[설명에 보니 새터 이후 과 행사 참여를 거의 안 했군요.]
‘그러니 나도 있는지도 몰랐지. 사실 학과가 큰 곳은 저런 애들 간혹 있어. 아예 OT때부터 시작해서 졸업 때까지 학적만 두는 유령같은 애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 여름 수영캠프에 참여했을까요?]
‘그러게? 이제 혼자 놀기 심심했을까나?’
도훈은 간만에 등장한 뉴페이스를 유심히 관찰했다. 과 행사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체육과 8선녀 중 일인으로 뽑힐 만큼 얼굴은 예쁜 편이었다.
다만 염세주의적 성향 때문인지, 어딘가 어둡고 음울한 기운이 표정에서 묻어나왔다. 한마디로 얼굴은 예쁜데, 좀처럼 웃지 않아 말을 걸기 쉽지 않은 타입이었다. 괜히 무시당할 것 같고, 단답으로 퉁명스레 대화를 중단해버릴 느낌이랄까?
‘그나저나 신기하네. 아싸 주제에 후장 유경험자라니. 의외로 난잡한 스타일인건가?’
[남자를 많이 사귈 것 같아 보이진 않은데요?]
‘하긴 원래 저런 애들이 한 번 누군가에게 빠지면, 엄청 의지하는 편이거든. 본인의 정서가 불안정하니까 정을 준 상대에게 간이고 쓸게고 다 내준달까?]
[호오.]
‘쉽게 말해 남자를 잘못 만나면 타락하기 딱 좋은 성격이라는 거야. 섹스에 대한 거부감도 많이 없는 편이고.’
[그건 왜 그렇습니까?]
‘삶이 허무한 거지. 삶의 목적도 동력도 없는 상태에서, 제 몸뚱이를 함부로 굴리는데 아무런 죄책감도 없는 거야. 약간의 우울질 같은 기질인데, 타고난 성향이라 극복하긴 쉽지 않을 거야.’
[안타까운 여학생이로군요. 얼굴은 참 예쁜데.]
‘그러게.’
"자, 대진 완성됐습니다. 첫 번째 경기는 양희주 대 강경희!"
"오오오!"
"두 선수는 샅바 준비해주세요."
"심판님! 이거 어떻게 매요?"
"아, 맞네. 잠시만 그럼 도우미를···."
그때 잠자코 있던 성수가 우선에게 사인을 보냈다. 자기 자신과 도훈을 가리키는 손짓이었다. 우선이 곧바로 성수의 의도를 캐치하고는 말을 이었다.
"···샅바 도우미는 남자부 결승에 올랐던 부회장님과 도훈이 형이 고생해주시겠습니다."
"워워!"
"그런 법이 어딨어?"
"나도 샅바 멜 줄 안다고!"
"누군 손 없냐!"
일부 남학생들의 반발이 이어졌지만, 성수가 나서서 한 방에 제압했다.
"그럼 니들이 결승 올랐어야지."
"······."
"이도훈, 뭐해. 니가 청 샅바 맡아."
성수가 도훈에게 일방적으로 말하더니 홍 샅바를 들고 가버렸다. 졸지에 샅바 도우미가 된 도훈은 주위의 눈총을 받으며 샅바를 들고 갔다.
‘아씨, 또 당했네.’
[성수군이 정말 집요하군요. 어떻게든 엮으려는···.]
‘성수는 그렇다 치고 우선이는 왜 동조하는 거야? 아주 성수형 시다바리네.’
도훈은 모르고 있었지만, 우선은 성수에게 몰래 지령을 받은 터였다. 어떻게든 도훈은 여학생들이랑 엮게 해라. 도훈을 최대한 먼저 밀어줘야 다른 남학생에게도 기회가 온다 라는.
샅바를 들고 청코너 쪽으로 가자 희주가 활짝 웃으며 도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호, 도훈 오빠다, 잘 부탁드려요!"
도훈은 지나치게 자신을 반기는 희주가 부담스러우면서도 그리 밉지는 않았다. 샅바 고리를 만들던 도훈이 희주에게 물었다.
"넌 씨름 왜 나온 거야? 상금 타려고?"
"설마요. 데이트 지명권 준다잖아요. 우승해서 오빠 찍으려고요."
"참나···."
도훈이 고리를 완성해 희주의 발아래 놓고 말했다.
"여기다 발 끼워."
"잠시만요. 이거 옷 때문에 걸리적거릴거 같은데···. 심판 오빠."
희주는 우선을 심판 오빠라고 불렀다.
"어, 왜?"
"그냥 수영복 입고 해도 되죠?"
"수, 수영복? 으, 음. 안될 건 없지. 괜히 옷깃이 잡았다간 반칙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우선의 말에 희주가 입고 있던 긴바지와 상의를 훌렁훌렁 벗기 시작했다.
"오, 오오!"
"우아, 벗는다!"
오후 훈련 공지가 해변에 도착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여학생들은 대부분 옷 안에 수영복을 입고 온 채였다. 이에 과감히 희주가 옷을 벗어 던지자 금세 후끈한 수영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 이제 발 끼울 게요."
희주는 여학생 중에서도 과감한 비키니를 선택한 터라 쳐다보기도 민망한 정도였다.
특히 특유의 육감적인 몸매와 새하얀 피부 덕에 햇살 아래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웠다. 희주의 몸매를 본 남학생들은 게임이 시작되기도 전에 열광적으로 희주의 이름을 연호했다.
"양희주! 양희주!"
"섹시하다, 비키니 걸!"
"체육과 신내바 파이팅!"
희주가 비키니를 입고 샅바를 차자, 맞은편에서 성수의 도움을 받던 경희가 눈빛을 번뜩였다.
‘와, 이게 진짜 해보자는 거지?’
경희는 본래 승부욕이 넘치는 열혈 타입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지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그녀가 육정음을 체육과 라이벌로 여기는 것도 자신보다 뛰어난 운동능력에 열등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오빠, 잠시만요. 저도 그냥 벗을게요."
경희는 찼던 샅바를 다시 풀면서까지 수영복으로 탈피했다.
희주가 백마중에 으뜸이라면, 경희는 과내에 유일한 흑진주였다. 한여름 뙤약볕으로 까맣게 탄 피부와, C컵을 넘나드는 굉장한 가슴은 그녀의 비키니가 작아 보일 정도였다.
"오오오! 경희까지!"
"대박이다. 이 경기는 시작부터 대박이야!"
"지지 않아, 강경희!"
자칭타칭 8선녀 최고의 핫바디 대결.
끌어 오르는 분위기에 샅바를 채워주는 도훈은 죽을 맛이었다.
‘어우씨, 씨름이 이렇게 야해도 되는 거야?’
[왜요?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은 게 뭐가 어떻다고요.]
‘아니 그래도 이건 좀 아닌데···.’
도훈은 자신의 대학 시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유분방함에 문화 지체를 느끼고 있었다. 학과 동기들 앞에서 비키니를 입는 것도 모자라, 그것을 입고 씨름 대결이라니···. 마치 컨셉 야동의 한 장면 같아 영 기분이 이상했다.
"오빠, 샅바 꽉 매줘요. 경희 꼭 쓰러뜨려야 하니까."
희주가 각오를 다지며 도훈에게 요청했다.
도훈은 어쩔 수 없이 샅바를 단단히 조여 매야 했는데, 비키니 팬티만 입은 채 샅바를 돌리다 보니 왠지 노끈 플레이를 하는 기분이었다. 손이 허벅지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괜히 야한 생각이 들면서 자꾸 희주의 탄탄한 몸매가 의식이 되었다.
‘어우, 얘는 왜케 꼴리게 생겨 가지고.’
[이젠 몸만 그런 것도 아니죠, 주인님 덕에 미모도 물이 올랐으니까요.]
‘확실히 희주가 인기가 많이 올랐네. 옛날엔 다들 이 정도 반응은 아니었는데···.’
도훈이 몸소 체감할 정도로 응원의 목소리가 희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본래 희주의 몸매가 좋다는 건 새터나 스키캠프 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겨울철 두꺼운 옷을 입은 상태로는 몸매가 부각 되기 힘들었던 탓이다. 하지만 여름이 다가올수록 희주의 주가는 계속 올라갔다. 얼굴은 빻았지만, 우월한 몸매만으로 8선녀에 들만큼 그녀의 몸매는 환상적이었다.
거기다 최근 들어 얼굴까지 예뻐졌으니, 당연히 학과 내 남학생들 사이에선 희주의 인기가 급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과 내 최고 퀸카로 뽑히는 육정음과 비견될 만큼 인기가 치솟은 상황이었다.
그 덕분인지 여학생들은 대부분 경희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는 희주의 평판이 별로기 때문이었다. 얼굴이 예뻐지기 전에도 남친을 자주 갈아치운다느니, 질질 흘리고 다닌 다니는 하는 소문이 뒤따랐다. 물론 이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희주 또한 딱히 그런 소문에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것에 연연하는 성격이었다면 자유분방하게 살지도 않았을 테니까.
"둘 중 누가 이길 거 같아?"
경기를 기다리던 나연이 단짝 연두에게 물었다.
< 956. 별이 쏟아 지는-16-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