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972화 (939/2,000)

< 955. 별이 쏟아 지는-15- >

솔직히 말하자면 성수는 지금껏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다친 허리에 괜히 무리가 가는 게 싫기도 했고, 더 노골적인 이유는 그가 전력투구할 상대가 없었던 탓이었다.

‘어디, 간만에 힘 좀 써볼까?’

성수가 살면서 일반인과 전력으로 붙은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바로 고등학교 시절, 일진에게 괴롭힘 당하던 친구를 도와줬을 때였다. 1:1로 처 발린 놈은 비겁하게도 다음날 친구들 10명을 이끌고 나왔다.

-옥상으로 따라와, 새끼야.

성수를 에워싼 놈들은 쪽수를 믿고 그를 압박했다.

당시 진지하게 유도를 배우고 있던 성수는 괜히 일이 커지는 걸 우려해 곧장 사과했다.

미안하다고, 말리려다 실수로 넘어뜨린 것이라며.

기분 나쁘면 얼마든지 사과를 하겠다고.

하지만 이를 겁먹은 것으로 오해한 일진들은, 간만에 본때를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시비를 멈추지 않았다. 성수가 별다른 반응이 없자 급기야, 또다시 약한 친구들을 위협하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전국 대회 출전을 앞두고 있던 성수의 인내심은 끝내 바닥이 났다.

-옥상으로 따라와, 한 놈도 빠지지 말고.

사실 운동부에 대한 인식이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되도록 엮이지 말자, 안 싸워서 그렇지 막상 싸우면 장난 아니다, 등등. 특히 성수는 고등학교 때 이미 선수 생활을 하고 있어 등빨이 좋았기 때문에 그를 건드린 다는 것은 금기에 가까운 행위였다.

하지만 혈기 넘치는 양아치 패거리는 자신들의 쪽수를 과신하고 말았다. 성수가 평소 서글서글하고, 성격도 좋다는 점에서 의외로 겁많은 성격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한 몫했다.

왜 그런 친구들 있지 않는가? 막상 경기만 나가면 살벌한데, 실제론 겁이 많아 싸움을 피하는 부류들.

하지만 그날 성수는 옥상에서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일화를 만들어냈다.

10 vs 1.

그리고 전원 병원행.

전력을 다한 만두 귀 성수 앞에, 놈들은 상대도 안 되고 순식간에 나가떨어졌다. 그것은 싸움이라고 할 수 없는 일방적인 학살이었으며, 그가 전력을 다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사건이었다.

그는 정의를 지켰으나, 선수 자격은 박탈당했다.

부상자가 너무 많았던 사건이었기 때문에 학교폭력에 연루되어 자격을 박탈당했고, 유망주였던 유도인의 인생도 거기서 끝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친구들과 술 먹다 그날의 이야기가 언급될 때 한마디씩 하곤 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때려 눕혔을 새끼들이었고.

다만 그 이후로 한가지 다짐한 게 있었다. 전문적으로 투기를 배우지 않은 사람에겐 절대 전력을 다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리미트가 풀렸을 때의 그는 스스로도 통제가 안 될만큼 무서웠다. 자칫하면 사람을 죽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진짜로 전력으로 해주시는 거죠?"

샅바를 잡은 도훈이 물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성수가 묵직하게 대답했다.

"그럼 시이~~~작!"

대결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시작부터 팽팽하게 허리를 낮추고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곰 같은 성수와 범 같은 도훈의 대결은 보는 것만으로 손에 땀을 지게 하는 긴장감이 흘렀다.

도훈을 연호하던 빠순이 후배들도 이때만큼은 경박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 너무 진지한데···.’

도훈이 걱정된 정음은, 두 손을 맞잡고 긴장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1학년에선 유일하게 태권도 종목 특기로 입학했던 정음이었다. 비록 종목은 다루지만 늘 무도인으로 살아온 그녀는 지금의 대결이 얼마나 팽팽한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뭐야? 왜 저렇게 가만히 있는 거야?"

"둘 다 결승에 올라와서 지친 거 아닐까?"

"맞네. 체력회복하고 있구나."

경기 보는 눈이 없던 다른 동기들은 버티기만 하고 있는 도훈과 성수가 쉬고 있는 거라고 오해했다. 정음은 즉각 반박하고 싶었다.

‘저게 쉬는 거라고? 온몸에 바짝 힘이 들어갔는데?’

정음이 볼 때 두 사람은 현재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벗고 있는 상체는 말할 것도 없고, 반바지를 입은 하체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있었다. 종아리 뒤에서 핏줄이 돋아났고, 바닥을 딛고 선 발가락이 하얗게 질려갔다. 부들거리는 허리는 두 사람의 완벽한 힘의 균형을 이루느라 꼼짝달싹 못하는 명백한 증거였다.

정음은 두 사람의 힘겨루기를 보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대, 대단해. 부회장님이야 원체 장사시니 그렇다고 쳐도 도훈오빠는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도훈이 건장한 편이긴 하지만, 성수와 비교하면 족히 두 체급은 아래였다. 그리고 투기 종목에서 두 체급 차이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그 어려운 걸 도훈이 해내는 것이었다.

"으읏!"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 물론 성수가 고의적으로 발을 빼며 몸을 일어선 것이었다. 엉덩이를 뒤로 쭉 빼며 떨어져 있던 두 남자가 이번엔, 서로 키스를 하는 것처럼 가슴과 가슴이 서로 맞붙었다.

‘와, 이 새끼 보기보다 힘이 장난 아니게 좋네. 하지만 아직 기술은 못 당해낼걸?’

성수는 자신과 비등한 힘을 보여준 도훈에게 진심으로 감탄했으나 씨름은 결코 힘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었다. 절묘한 균형감, 밀고 당기기, 기술 걸기와 되치기. 찰나의 순간에도 수많은 페인트와 기술이 펼쳐지는 고도로 발달한 투기 종목이었다.

도훈을 바짝 끌어당긴 성수가 그대로 샅바를 감싸 쥐고 들배지기를 시도했다. 1차전에서 선보였던 그 기술.

‘어엇, 뭐, 뭐야?’

실로 교활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재빠른 수법에 도훈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덩치는 곰 같이 우직하면서 기술을 걸 적엔 여우만큼 꾀가 있었다.

[주, 주인님 위험합니다!]

힘과 힘에선 꿀리지 않았지만, 기술에선 현격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밀고 들어오는 오른 다리를 빠르게 쳐내지 못한 도훈은 그대로 공중으로 몸이 들렸다.

‘으읏, 누가 넘어갈 것 같아!’

몸이 들리긴 했지만, 도훈은 넘어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버텨냈다. 놀라운 반사신경과 균형감각을 바탕으로 씨름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어떻게 하면, 이어지는 기술을 막을지 몸이 자동반응한 것이었다.

"우와! 대박!"

"버텨요, 오빠!"

"도훈 선배 파이팅!"

도훈이 위기에 처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학생들의 일방적인 응원이 시작되었다. 이에 지지 않고 성수에게 감정 이입한 남학생들이 반대편을 응원했다.

"넘겨버려!"

"부회장의 권위를 보여줘!"

"운동은 잘생긴 얼굴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치열한 응원전이 이어지자 대결은 더욱 뜨거워졌다.

특히 기술을 건 성수나, 버티는 도훈이나 온몸이 땀범벅이 될 정도로 필사적이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으읏, 버틴다! 버틸 수 있어.’

도훈이 샅바를 붙잡힌 채로 공중에 매달린 그때, 지켜보던 여학생 한 명이 놀란 목소리로 탄성을 내질렀다.

"아! 도, 도훈 오빠!"

여학생은 급기야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외면하고 말았다.

그제야 상황을 눈치챈 다른 사람들은 여학생이 무엇을 보고 놀랐는지 깨달았다.

"헉!"

"아, 아니 저게···."

"사람이야?"

바로 반바지가 샅바에 바짝 당겨지며, 대물이 고스란히 실체를 드러낸 것이었다. 마치 조끼니 진을 입은 것처럼 바짝 쫄아든 바지가 대물의 실루엣을 노출했고 공중에 매달린 도훈은 그것을 숨기지도 못하고 만천하게 공개를 해버린 셈이었다.

"아아!"

"오!"

"우아!"

이제는 씨름의 긴박감보다 도훈의 무력시위(?)가 더 관전 포인트가 되고 말았다. 남학생들이 서로 조용히 수근거렸다.

"야, 도훈이형 실화냐?"

"저거 진짜 그거 맞지?"

"와, 난 첨에 샅바가 바지속으로 말려 들어간 듯."

"대박. 크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이건 뭐 압도적인데···."

"존잘에 운동천재에 대물이라고? 씨발··· 고자가 아니고 대물?"

안 그래도 도훈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고 있던 남학생들은 갑자기 폭발적으로 성수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성수형! 끝내요, 이도훈을 발라버려!"

"형은 할 수 있어요! 사이즈가 전부는 아니야!"

"부회장님, 저희의 복수를! 흑흑!"

"박성수! 박성수!"

반면, 여학생은 차마 밖으로 말은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역시, 도훈 오빠는 진국이라니까.’

‘미친 존재감. 아니 미친 대물.’

‘하아···. 오빠를 꼭 따먹고 말거야.’

그러다 남학생들의 일방적인 응원이 시작되자 지지 않겠다는 여학생들 또한 열띤 응원전을 이어갔다. 숫자는 남자에 비해 절반이었지만, 목청만큼은 뒤지지 않았다.

"꺄아아아아! 얼굴천재 이도훈 힘내라!"

"할 수 있어, 크면 장땡이야!"

"이도훈! 이도훈!"

점점 고조되는 응원전이 두 사람에겐 전혀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의 치열한 기술 싸움에 몰입하느라, 외부의 소리는 음소거 된 느낌이었다.

성수는 들배지기를 방어해내는 도훈에게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와, 이걸 방어해 낸다고? 이 기술을?’

그는 정식으로 씨름을 배우지 않았지만, 현역 씨름 선수를 했던 삼촌에게 들배지기 하나만큼은 제대로 전수 받았다. 그의 아버지나 삼촌들도 대부분 성수만큼 덩치가 좋았는데, 장사 체형은 그의 부계 유전이었던 것이다.

도훈이 넘어가지 않고 버티자 성수는 점점 다친 허리에 무리를 느꼈다. 애초에 허리힘이 많이 들어가는 기술이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자빠뜨리지 못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위험해진 것이었다.

‘크흣, 이대로가면···.’

그리고 그 조그마한 빈틈을 도훈이 파고들었다.

‘힘 빠졌어. 지금이다.’

성수의 벨런스가 무너진 것을 깨달은 도훈이 순식간에 기술을 파하더니 곧바로 되치기에 들어갔다. 바닥에 내려온 도훈은 그대로 안으로 파고들더니 성수의 무릎 뒤를 손으로 잡은 채 강한 임으로 당겨버렸다.

이른바, 오금 당기기!

갑작스러운 손기술에 거구의 성수가 균형을 잃고 무너졌다.

"어, 어어!"

쿵!

성수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쓰러졌다.

도훈의 역전승이었다.

"우아아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 오빠 짱!!!!"

이변이 일어나자 체육과가 난리가 났다.

***

"새끼, 쫌 하네."

도훈에게 담배를 받아든 성수가 뻘쭘한 얼굴로 말했다. 두 사람은 남자부 경기가 끝나고 잠시 막간을 이용해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형이 봐주셨겠죠."

도훈이 말에 성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봐주긴 인마. 간만에 전력으로 했는데···."

하지만 도훈은 성수의 몸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들배지기 상황에서 몇 초만 더 있었으면 그대로 넘어갈 수도 있었다.

"형, 허리 여전히 불편하신 거 아니에요?"

"마, 부상도 결국 본인 책임인거야. 핑계댈 생각 없다. 내 패배야."

성수가 무쇠같은 주먹으로 도훈의 팔을 툭 쳤다.

물론 툭 친 것 치곤 꽤나 강한 펀치였다.

"윽."

"새끼, 뭘 먹고 이렇게 힘이 센 거야? 옛날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형 생각보다 운동 꾸준히 했다니까요."

"붙어보니까 코어가 굉장히 좋아보이더라. 보이는 근육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아."

스파르탄 벨트의 존재를 알길이 없는 성수가 의아하게 말했다.

‘흠, 도핑으로 이긴 것 같아서 미안하네.’

[아이템을 얻은 것도 주인님 능력이죠. 그렇게 치면 플레이어는 다 사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것도 그렇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론 여자애들한테 점수 땄네. 축하한다."

"아휴, 형 저 이런 거 관심 없다니까."

"인마. 옆에서 도와줄 때가 고마운 줄 알어."

"예?"

"진짜 인간성 없는 놈이라면 심지어 가족이라도 안 밀어주는 거니까."

"암튼, 고마워요."

"됐고, 아으···. 간만에 힘 썼더니 허리가 영 뻐근하다."

"무리하지 마시라니까."

"뭐래? 언제는 전력으로 붙어 달라면서. 암튼 여자부 경기 시작하는 거 같으니까 응원이나 가자."

"근데 여자 씨름도 재밌어요? 애들이 할줄은 아나?"

어느새 패배의 충격을 떨쳐버린 성수가 씩 웃으며 말했다.

"야, 너 싸움 구경 중에 제일 재밌는게 뭔 줄 몰라?"

"뭐요?"

"좆밥 싸움."

"아니 그럼 우리과 여자애들이···."

"아니 내 말은 오히려 하수들 대결이 훨씬 흥미진진 하다는 거지. 여자애들 한 번 제대로 붙으면 얼마나 재밌는데."

"참나···. 어디 한 번 보고요."

도훈과 성수가 원래 자리로 돌아가자, 진행을 맡은 우선이 한창 선수들을 뽑고 있었다. 8명 토너먼트를 예상했는데 막상 지원자가 적어 고작 3명이 앞으로 나온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여학생들에겐 씨름에서 우승하는 메리트보다, 여성적인 매력을 유지하는 편이 본인에게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우선이 자꾸 머뭇거리는 여학생들을 위해 계속 독려했다.

"자자, 상금이 무려 10만원이라고! 얼른 지원하세요!"

"······."

"선배, 전 힘이 없어서···."

"다칠까봐 무섭단 말이에요."

"어휴, 여자가 씨름을 어떻게 해요."

지원자가 계속 나오지 않자 우선도 도저히 안 되겠던지 갑자기 계획에도 없는 말을 쏟아냈다.

"여자부 씨름 대회 우승자 각각에겐 10만원의 상품과 더불어 저녁 술자리에서 커플 지명권을 드립니다!"

"커, 커플 지명권?"

"그게 뭐야?"

"설마 아무나 고를 수 있다는 거?"

갑자기 웅성거리는 여학생들에게 우선이 큰 소리로 소리쳤다.

"쉽게 말해 노예팅 프리티켓이랄까?"

"오오?"

"그럼 진짜 아무나요?"

남학생들이 벙찐 가운데 우선은 마구잡이로 질러댔다.

"아무나 무조건 오늘 저녁! 자, 지원자 받습니다!"

갑자기 여학생들이 개 때 같이 손을 들었다.

< 955. 별이 쏟아 지는-15- > 끝.

ⓒ 성난불기둥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