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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971화 (938/2,000)

< 954. 별이 쏟아 지는-14- >

‘하긴, 내가 투기 종목이라고 꿀릴 것 같진 않은데···.’

도훈은 재능 약탈자를 통해 다양한 격투 특성을 몸에 익혔다. 그것은 그의 놀라운 피지컬과 합쳐져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했다.

‘조폭 행동 대장을 이기기도 했고.’

[아무리 그래도 길거리 싸움과 정식 겨루기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다르긴 한데···. 성수 역시 씨름이 메인은 아니란 말이지.’

성수는 유도선수다.

타격기술이 없어서 약하다는 오해를 가진 사람도 많지만, 유단자 손에 잡혀 아스팔트에 메다 꽂히기라도 하는 날엔 100% 중상을 입을 정도로 무서운 종목이다.

도훈은 성수의 두툼한 목과 찌그러진 귀에 주목했다.

‘오우, 저게 말로만 듣던 만두귀라는 거군.’

[만두귀라고요?]

‘하도 맨바닥에 비벼대니까 찢어지고 터져서 저렇게 이상한 모양으로 변형된 걸 말해. 레슬링이나 주짓수 쪽엔 저런 사람이 많은데, 가끔 유도 선수 중에 만두귀가 있다고 들었어. 싸움 상대로는 절대로 피해야 할 유형이랄까?’

[후후. 아무리 주인님이라도 성수군이 두렵긴 두려운 모양이군요.

‘아니. 내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시험해 보고 싶어졌어. 민간인 상대 말고, 진짜 제대로 된 선출에게.’

"까짓거, 해보죠. 한 번."

도훈이 성수를 바라보며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성수 또한 도전자의 눈빛에 씨익 웃었다.

"어쭈! 이도훈이, 자신 있나 보다?

"저도 어디 가서 꿀리는 피지컬은 아니거든요?"

"하하. 너 같은 패션 근육이랑 나 같은 실전 압축 근육이랑 같냐?"

"그게 실전 근육이면 형은 압축이 잘 안 되신 거 같은데요?"

"···뭐라고, 인마?"

도훈의 도발에 성수 역시 사내로서 호승심이 끌어 올랐다.

도훈이 평소 아끼는 후배기는 하지만, 남자 대 남자로서 자존심이 걸리자 그를 눌러주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새끼. 요새 좀 잘나간다고 아주 기고만장하네.’

성수는 오랜 기간 유도를 배웠다.

이미 초등학교 3학년 때 업어치기 자세가 완성되었을 정도로, 이쪽 분야에서는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씨름과 유도는 같은 종목은 아니지만, 힘과 균형을 이용해 상대를 넘어뜨린다는 목표는 똑같았다.

‘유도하던 애들이 씨름도 곧잘 하는 점을 간과했나 보군. 차라리 잘 됐어. 이번에 기회에 기를 팍 꺾어서 겸손이 뭔지 알려줘 볼까.’

"자, 결정됐으면 나가자."

***

태안의 모래사장에 20대 초반 남녀 대학생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사회를 맡은 우선이 가운데서 말했다.

"자, 예고했던 대로 오후는 수영 교습 없이 게임으로 진행하겠습니다. 경기에 나갈 지원자들 앞으로 나오세요. 남자부 선수부터."

우선의 말에 남학생 몇이 일어섰다.

다들 운동을 배워왔던 학생들이었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이었다. 우선은 지원자를 받아 화이트 보드에 실시간으로 대진표를 써 내려갔다.

"총 15명 지원하셨습니다. 한 분만 더 나오면 16강으로 짤 수 있을 것 같은데 지원자 더 없습니까?"

마지막까지 기다리고 있던 도훈이 번쩍 손을 들었다.

"내가 나갈게."

그러자 지켜보던 여학생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꺄아! 도훈 오빠다!"

"오빠 짱 멋있어요!"

"이도훈! 이도훈!"

도훈이 늦게 나온 건 다름이 아니었다.

대진표에 성수의 이름이 적히는 걸 보고, 그 반대편에서 서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도훈의 의도를 오해한 몇몇 남학생들은 속으로 도훈을 흉봤다.

‘쳇, 주목받으려고 마지막에 나오는 건가?’

‘은근 주인공 병이 있단 말이지?’

‘배구는 곧 잘하지만, 씨름은 또 다르지.’

도훈을 끝으로 우선이 대진표를 완성했다.

앞 조엔 성수가, 그 맞은편엔 도훈이 포함된 이상적인 대진이었다.

"자, 그러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경기는 부회장 박성수 대 김찬호!"

"오오오! 멋있다."

"부회장님, 파이팅!"

"찬호, 이변을 보여줘!"

성수가 나오는 첫 대결부터 엄청난 열기가 피어올랐다. 대부분의 관심사는 우승 후보인 성수가 과연 몇 초만에 승부를 끝내느냐였다.

"자, 그럼 선수들 상의 탈의 하시고."

"탈의?"

"아무리 게임이라도 웃옷은 벗고 해야죠. 그래도 씨름인데."

우선의 완고한 고집에 어쩔 수 없이 성수가 상의를 벗었다. 살에 파묻혀 근육은 잘 보이지 않지만, 큰 덩치답게 몸통이 앞뒤로 엄청 두꺼웠다.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것 같았다.

타올을 갈라 만든 임시 샅바를 착용한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절을 하며 무릎 꿇고 앉았다.

성수가 엉덩이 쪽에 손을 넣어 샅바를 돌려 잡자 그를 맞이하는 상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샅바를 맞잡는 순간 어마어마한 힘의 차이를 실감한 것이었다.

"자 그럼 남자부 첫 경기 시작해 보겠습니다. 두 사람, 일어서!"

서로의 샅바를 잡고 있던 두 사람이 일어서자 표정이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성수는 여전히 여유가 넘치는 반면, 상대는 벌써부터 기가 팍 꺾여 있었다.

성수는 일부러 도훈 쪽을 쳐다보며 웃었다.

‘잘 보라고, 힘의 차이가 뭔지.’

"그럼 시이-작!"

우선이 큰 소리로 외치면서 경기가 시작되었다.

"으랏차!"

성수는 곧바로 힘을 주더니 그대로 상대를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이른바 들배지기자세.

"어, 어어!"

예상치 못한 공격에 상대가 두 발을 바둥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성수에 비해 못할 뿐, 그 또한 80kg는 가뿐히 넘는 거구였다. 하지만 성수는 그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단숨에 공중으로 띄워버린 것이었다.

두 발이 땅에 떨어진 상대는 도저히 힘을 쓸 수 없었다. 성수가 그래도 몸을 옆으로 회전시키며 앞으로 쓰러졌다.

쿵!

"끄, 끝! 청 샅바 승!"

"우아!!!"

"봐, 봤어? 5초도 안 걸렸어!"

"5초가 뭐야, 3초도 안 걸렸구만!"

성수가 보여준 어마어마한 괴력이 다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에도 힘이 좋다는 건 알았지만, 막상 거구의 상대를 아이처럼 번쩍 들어 메다꽂는 걸 보자 힘의 차이를 제대로 실감하게 된 것이었다.

성수는 매너 좋게 모래사장에 처박힌 상대의 손을 잡아 일으키더니 다시 도훈을 향해 웃어 보였다.

‘봤냐? 갑자기 후회되지?’

성수는 도훈이 쫄았을 거라 믿었다. 마침 방금 넘어뜨린 상대의 체격이 도훈과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훈은 심드렁하게 하품을 할뿐이었다. 이에 성수가 격노했다.

‘이, 이 자식 봐라?’

그는 도훈이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하고 더욱 전의를 불태웠다. 뒤이어 경기가 속행되더니 금세 도훈의 차례가 되었다.

경기에 나선 도훈의 상의를 벗자 특히 여학생들 사이에서 엄청난 함성이 터져나왔다.

"꺄아! 오빠 드뎌 벗었다!"

"명품 복근 이도훈!"

"오빠, 나 주겅!"

어찌나 난리법석을 떠는지 지나가던 관광객들도 웅성거리며 모여들었다.

"이야, 젊은 친구들이 제법인데."

"저 잘생긴 학생 몸 좀 봐. 보디빌딩 나가는 학생들인가?"

다들 환호하는 가운데 먼저 경기를 끝낸 성수만이 냉철한 표정으로 도훈을 주목하고 있었다.

‘어디 한 번 실력 발휘해봐. 근자감인지 아닌지 한 번 봐주지.’

"경기 시작!"

***

"경기 시작!"

긴장된 가운데 시작부터 안다리가 들어왔다. 상대가 다리를 건 채로 어깨를 밀고 들어오며 무게를 앞으로 실었다. 급습을 통해 단숨에 경기를 끝내겠다는 의도였다.

‘흥, 어림없지.’

나는 놈의 기술을 흘리며 역으로 되치기에 들어갔다. 한 다리가 들려있던 놈은 굳건하게 버티는 나의 힘에 당황한 듯 어버버하다 반대로 넘어가 버렸다.

쿵-!

"오오! 도훈이 형 되치기 봤어?"

"의외로 씨름에 재능이 있는데?"

"오빠, 넘 멋져요!"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넘어간 상대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단 한 경기만에 나는 향상된 힘을 체감했다.

‘우아, 스파르탄 벨트 진짜 짱이구나. 살짝만 힘을 줬는데 그대로 못 버티고 넘어가 버리네?’

[근력 20% 상향이라는 건 실제로 어마어마한 차이입니다. 같은 무게에선 주인님 상대가 없다고 봐야죠.]

이후 경기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나와 성수의 경기는 길어야 30초면 끝나는 바람에 순식간에 4강전이 되었다.

성수는 괴력을 발휘하며 상대를 땅바닥에 메다꽂았고, 나는 대체로 되치기를 통해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방식으로 승리했다.

"으쌰!"

먼저 결승에 안착한 성수가 다음 경기를 위해 샅바를 차는 나를 향해 말했다.

"얼른 올라와라. 결승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금방 갑니다 형님."

나의 4강은 시시하게 끝이 났다. 앞선 경기에서 연장전까지 간 상대는 체력이 달리는지 제대로 힘을 써보지도 못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도훈 승!"

바짝 끌어 오른 경기 분위기에 경도된 듯, 우선이 흥분한 목소리로 결승을 안내했다.

"자 이것으로 남자부 씨름 결승 진출자가 가려졌습니다. 청 샅바엔 우리의 영원한 부회장, 체육과의 실세 박성수!!!"

"우아아아아!"

"홍 샅바는 만능 체육인, 얼굴 천재 이도훈!"

"꺄아아아아!"

"도훈 오빠, 이겨줘요!"

"파이팅!"

인간 띠로 빙 둘러 처진 모래사장 안에서 성수와 마주 섰다.

상의를 벗은 성수는 그야말로 곰 같은 덩치였다. 단순히 덩치만 큰 게 아니라, 두터운 살속에 어마어마한 근육이 파묻혀 있었다.

‘와, 떡대 보소. 완전 천하장사급이네.’

[막상 겨루려니 떨리십니까?]

‘떨리긴. 간만에 제대로 된 상대랑 붙는 건데.’

솔직히 말해 앞선 상대들은 시시할 정도였다. 하지만 성수는 마주 서는 것만으로 굉장한 압박이 느껴졌다. 태산 앞에 서 있는 기분이랄까?

"어이, 패션 근육. 약속대로 올라왔구나?"

"형님이야말로."

"제대로 해라. 여자애들 앞에서 괜히 창피당하지 말고."

"그런 거 하나도 신경 안 쓰거든요?"

"신경 써야지 인마. 운동 잘하는 남자가 얼마나 멋져 보이는데."

성수가 대화를 주고받는 데 우선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으며 저지했다.

"대화는 끝나고 마저 하시고, 그럼 게임 진행하겠습니다. 둘 다 앉아."

성수와 내가 서로 무릎을 맞대고 앉았다. 185를 넘는 내가 그의 앞에선 다소 왜소해 보일 정도였다.

"샅바 잡아."

서로의 팔이 교차하며 샅바를 단단히 끌어 쥐었다. 어깨와 어깨가 부딪히자, 바짝 옆에 붙은 성수가 나에게 몰래 귓속말을 했다.

"너 내가 왜 씨름 경기 출전했는지 모르지?"

"네?"

"짜식아, 내가 진짜로 돈 10만원 따려고 나왔겠냐."

"그럼요?"

"너 밀어주려고 나온 거지."

"뭐라고요?"

성수의 말귀를 못 알아듣고 당황하는데 우선이 계속 경기를 속행했다.

"두 사람 일어서!"

성수와 나는 서로의 몸을 밀치며 일어섰다. 엉덩이가 뒤로 바짝 빠지며 상체가 낮아지자 구경하던 학생들 사이에서 엄청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아니 학생들 뒤로도 구경하러 온 수많은 관광객들이 우릴 보며 환호했다.

"형, 방금 무슨 뜻으로 말한 거예요?"

"너 오늘 주인공 만들어 줄 테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시작하자마자 내가 덧걸이 들어갈 거야. 그럼 바로 호미걸이 걸어 되치기해."

"시이- 작!!!"

경기가 시작되었다.

***

"잠깐!"

도훈이 갑자기 타임을 외쳤다.

"왜 그러세요?"

"나 샅바 풀렸어."

"예?"

"샅바 풀린 것 같다고. 다시 매야 해."

"경기 중단!"

우선이 양팔을 높이 들며 X자를 그렸다.

한참 기대감에 팽배해있던 분위기가 팍 사그러들었다.

"뭐야, 갑자기 게임을 중단시켜?"

"도훈이 형 샅바 풀렸다는데?"

"샅바가 풀리긴 뭐가? 멀쩡해 보이는구만."

"괜히 겁먹어서 핑계 대는 거 아냐?"

한참 들떠있던 터라 학생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봐도 억지였던 것. 하지만 도훈은 계속 샅바가 느슨해졌고 주장했다. 성수는 도훈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샅바를 다시 묶고 경기가 속행되었다. 다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샅바를 잡는 데 성수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도훈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너 지금 뭐하냐?"

"형이야 말로 뭐하세요?"

"왜? 내가 너 띄워준다니까. 아무렴 내가 너랑 진짜로 붙으려고 하는 줄 알았어?"

도훈이 딱딱히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승부 조작을 하겠다고요?"

"인마, 내가 이런 게임 이겨봐야 어디다 써 먹어? 그냥 니가 이겨서 여자애들한테 점수나 따는게 낫지."

"제대로 붙어줘요."

"어?"

"두 사람 일어서!"

"진심으로 승부해 달라고요. 게임에 이겨도 져도 좋으니까, 장난 같은 거, 치지 말고."

도훈의 진지한 목소리에 성수도 그제야 실수를 깨달은 듯 사과했다.

"···미안하다. 기분 나빴냐?"

"아니요. 형 마음은 알겠는데, 난 여자애들 앞에서 잘 보이는 것보다 형이랑 제대로 한 번 붙어 보고 싶었어요."

"···진짜로 후회 안 하지?"

"당연하죠. 제가 언제 또 형이랑 이렇게 붙어 보겠어요? 이제 임용 공부 들어가면 자주 보지도 못할텐데."

도훈의 말에 성수가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도훈은 약은 놈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인간적으로 좋아하는지도 몰랐다.

오히려 그런 상대에게 승부 조작을 제안한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얕은 수작으로 여학생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보다, 남자 대 남자로서 자존심을 걸고 겨루는 것을 더 가치있다고 여기는 사내였다.

‘새끼, 은근 멋있는데.’

그때 우선이 두 사람을 향해 큰 소리로 소리쳤다.

"그럼 시이~~~작!"

감동받은 성수가 처음으로 진지하게 씨름에 몰입했다.

< 954. 별이 쏟아 지는-14-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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