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2. 별이 쏟아 지는-12- >
도훈은 새로운 미션에 흥이 났다. 어차피 치러야 할 의무방어전이라면 보너스라도 받는 편이 이득이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공짜 섹스는 없는 법이랄까?’
[왠지 창남 같은 마인드로군요.]
‘창남이라니? 내가 무슨 돈 받고 몸 파는 사람도 아니고.’
[어쨌든 포인트 벌이가 목적이지 않습니까?]
‘아니, 꼭 그렇다기보다는···. 최근 밖으로 많이 나돌았으니 가두리 어장에 간식 좀 투척한다는 소리지. 옛말에 그런 말도 있잖아. 수신 제과 치국 떡천하 라고.’
[글귀가 틀린 것 같습니다만?]
‘잘 들어봐. 수신, 자고로 내 몸을 가지런히 하고. 제과, 학과 를 원만히 다스리면, 치국, 우리나라는 물론. 떡천하, 전 세계를 떡으로 지배할 수 있다는 뜻이지.’
[캬, 참으로 대단한 포부십니다!]
‘비꼬지 말고. 어쨌든 내부단속을 확실히 해놔야 밖으로도 물이 안 새는 법이니까.’
[알겠습니다. 주인님 같은 카사노바 플레이어에겐 딱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10명 넘으면 준다는 1만 포인트 말이야.’
[네.]
‘지금 멤버 가지고 10명을 넘을 수 있긴 한가? 2,3학년 여자들은 모두 불참한 것으로 아는데. 걔다가 인연의 붉은 실 가위로 정리한 애들도 있고.’
[직접 한 번 헤아려보시죠.]
‘잘 봐. 나랑 관계가 있는 여자애들이 1학년에 육정음, 이나연, 이연두, 박서현, 양희주, 강경희. 거기다 3학년에 마유미, 그리고 조교 강민주까지잖아. 그럼 모두 8명 아냐? 두 명이 부족한 데?’
[나중에 추가로 더 올 수도 있지 않습니까?]
‘있다고 해봐야, 4학년 오수정?’
[꼭 학생만 오라는 법은 없죠.]
‘학생이 아니면···.’
[강민주 조교와 친한 송지희 양이 올지도 모르고요.]
‘으음, 그때 나한테 후장 털린 애 말이구나?’
[아니면 주인님과 관계했던 수많은 여자 가운데, 다시 태안에서 재회할 수도 있는 일이죠.]
‘전혀 새로운 사람을 공략하는 건?’
[그건 미션룰에 어긋납니다. 기존 관계망 안에서만 발동하는 미션이거든요. 근데 벌써부터 보너스 포인트를 노리는 건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는 거 아닙니까? 몰래 먹기 미션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을 텐데요?]
도훈이 씩 웃었다.
‘걱정 말라고. 여자 눕히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으니까.’
[어디 한 번 기대해 보겠습니다.]
***
점심 식사 후 쉬는 동안 도훈은 매의 눈으로 민박집을 샅샅이 살폈다. 대부분의 공략이 야외에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어쨌든 숙소 내에서 비밀스러운 공간을 확인해 볼 여지는 있었다.
‘흐음. 일단 여자방이든 남자방이든 자는 곳은 절대 무리야. 좆막음에도 한계가 있어. 더구나 이번 미션은 절대 다른 대상한테 들켜서는 안 되고 말이지.’
커다란 방은 20~30명이 모두 들어갈 만큼 아주 넓었다. 즉, 누군가와 단둘이만 남을 확률은 거의 없다는 소리였다. 특히 관계를 하는 동안 들락거리지 않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민주가 쓰는 독방이 제일 좋긴 한데···. 그 방에 민주 외의 여자를 끌고 들어가긴 힘들 거고.’
어쨌든 장소가 확보된 사람부터 제외했다.
‘잘하면 창고도 쓸만 하겠는 걸?’
민박집 내부 화장실 옆으로 각종 도구를 모아둔 창고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먼지 쌓인 각종 농기구며 어구들이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못 쓰는 물건들을 쌓아둔 곳 같았다.
‘오케이. 일단 여기서 한 명.’
도훈은 차분히 동선을 그렸다. 널찍한 앞마당 뒤로도 공간이 있었는데, 철창 같은 게 놓인 것으로 보아 가축을 키우던 우리로 보였다.
‘으슥한 것이 여기도 괜찮겠는데?’
[설마 축사에서요?]
‘아니 바닥에 안 눕고 서서 치면 사이즈 나올 것 같지 않아?’
[하아-. 주인님은 정말 상상을 뛰어넘는 군요.]
도훈이 한창 빨빨거리며 민박집을 두리번거리던 그때였다. 누군가 뒷마당으로 다가오더니 도훈에게 말을 걸었다.
"오빠, 여기서 혼자 뭐해요?"
"어?"
도훈이 고개를 돌려보니 1학년 양희주였다.
오전 강습이 끝나고 샤워를 했는지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채였다. 젖은 머리를 말리기 위해 머리엔 아랍사람처럼 수건을 두르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올림머리가 되어 새하얀 목선이 훤히 드러났다.
"희주구나? 난 또."
"뭐예요? 그 반응은? 설마 다른 여자 기대한 거?"
"아니, 담배 피우려고 왔는데 누가 따라 와서 놀랬잖아."
도훈이 자연스럽게 담배를 꺼내 물었다. 희주가 씩 웃었다.
"방학은 잘 지내셨어요?"
"그럭저럭?"
"근데 저 많이 예뻐진 것 같지 않아요?"
희주가 활짝 웃으며 한 바퀴 돌아보았다.
몸매는 수영복을 입을 때 봤으니 안봐도 비디오지만, 그녀 말대로 얼굴이 눈에 띄게 예뻐져 있었다. 이젠 예전처럼 빻녀라고 했다간 눈이 삐었냐는 소릴 들을 정도였다.
"어. 요새 좀 예쁘네."
"후훗-. 고마워요. 오빠한테 꼭 그 말 듣고 싶었는데."
"아까 오전에도 봤잖아."
"그땐 애들하고 같이 있었잖아요."
도훈이 담배 연기를 훅- 내뱉으며 말했다.
"누구 덕에 예뻐졌는지는 알고 있지?"
"헤헤. 당연히 오빠 덕이죠. 근데 정말로 그게 효과가 있었을까요? 전 지금도 의문이에요. 그걸 피부에 바른다고 정말로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는지."
"뭐 겸사겸사지. 젖살이 빠졌을 수도 있고."
"앗, 엉큼하게 젖살이라니···."
"뭐가 엉큼해?"
"갑자기 제 젖살 보고 싶어요? 보여드릴까요?"
희주가 입고 있던 루즈핏 면티를 끌어 내리더니 밖으로 젖가슴을 훤히 드러냈다.
"헉!"
난데없는 노출에 도훈이 놀라 담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설마 노브라일 거라곤 생각도 못 한 탓이다.
‘맞다! 기억났어. 희주 저번에 엠티에서 버스 안에서 나한테 가슴 깠던 애지?’
도훈이 당황하는 모습에 희주가 신이나 웃었다.
"히히. 오빠 귀엽다."
"야! 넌 누가 보면 어쩌려고 브라도 안 하고 있어?"
"나중에 또 수영복 갈아입을 거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옷이 까매서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참나···. 얼굴이 예뻐져도 변한 게 하나도 없냐, 넌."
"사람이 쉽게 변하면 쓰나요? 뭐, 인기는 많아져서 좋긴 해요."
"인기가 많아져?"
희주가 신이 나서 떠들었다.
"왜, 예전에 나 얼굴 별로라고 무시하던 남자애들 있거든요. 최근에 프사 바꾸고 Sns에 사진 몇 장 올렸더니 아주 디엠이 빗발쳐요. 언제 한 번 술이나 한번 먹자고."
"디엠이 뭔데?"
"아이, 촌스럽게. 다이렉트 메시지요."
"아, 쪽지?"
"암튼, 귀찮아서 다 수신차단 걸어버렸어요. 거들떠보지도 않을 땐 언제고."
"잘했어. 그런 것들하곤 상종도 하지마."
"근데 오빠한테는 안 그러려고요."
"왜?"
"오빤 제가 못생겼을 때도 항상 예뻐해 주셨잖아요. 그게 고마우니까."
희주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도훈을 나직하게 말했다.
"···그 보답으로 오늘 한 번 대드릴까 해요."
"읏, 넌 무슨 말을."
[와우, 희주 양은 역시 화끈하군요.]
‘얼굴이 예뻐져도 섹스를 밝히는 건 똑같구나. 어쩜 더 야해진 것 같기도.’
도훈은 굴러들어온 떡을 옳거니 넙죽 먹기보다 일부러 한 번 튕겼다.
"안 돼. 학과 사람들 다 있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왜요? 몰래 하면 되지."
"몰래 할 곳이 있어야 말이지."
"음···."
희주가 축사 주변을 살피더니 말했다.
"여기도 괜찮지 않아요? 한 명이 바깥쪽으로 서서 망보고 있으면 누가 오는지도 다 보일 것 같은데."
"진짜 여기서 하자고?"
"못할 건 또 뭐예요. 오빠가 언제부터 장소 가렸다고?"
"일단 상황 봐서 생각해 보자."
"치."
[아니. 굳이 튕기실 필요가 있나요? 굴러 들어온 떡을···.]
‘어차피 희주는 나한테 대주려고 작정했잖아. 그러니 굳이 약속 잡을 필요 없이 짬나는 시간에 나오라고 하면 돼.’
[아하, 역시.]
‘한마디로 보험이랄까.’
도훈은 다시 앞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암튼 상황 봐서 연락할게."
"그래요, 그럼. 오빠 연락만 기다릴게요."
‘오케이. 이걸로 희주까지 해결했고.’
[현재까지 두 분 인가요? 민주양과 희주양이요.]
‘일단 확정은 그렇지.’
도훈이 다시 앞마당으로 나오자 마당에서 놀고 있던 나연과 연두가 도훈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강아지처럼 도훈만 보면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았다.
"오빠!"
"어디 갔다 오셨어요?"
"어, 민박집 한 바퀴 둘러봤어. 집이 생각보다 크네."
"우선 오빠가 그러는데, 예전에 되게 잘 살았던 마을 유지의 집이래요. 그래서 앞마당 뒷마당 다 하면 거의 200평 가까이 된다나?"
"그래? 어쩐지 방이 쓸데없이 넓더라니."
"참, 오빠 저 오늘 체조 잘 시켰죠?"
나연이 칭찬받으려는 강아지처럼 실실거리며 도훈에게 머리를 내밀었다. 쓰다듬어 달라고 조르는 모양새였다.
도훈은 혹시나 다른 사람이 보면 오해할까 조용히 말했다.
"나연아. 사람들 보잖아."
"앗,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눈치 보지 않게 저희랑 잠깐 동네 한 바퀴하고 오실래요?"
연두의 제안에 도훈이 흔쾌히 승낙했다. 점심 식사 후 쉬는 시간이었으므로 오후 교습이 시작되려면 30분 정도 자유시간이 남아있었다.
"배나 꺼뜨리게 잠깐 마실 좀 나갈까, 그럼?"
학과 사람들의 시야에서 멀어지자 연두와 나연은 도훈의 좌우 찰싹 붙어 쉴새 없이 재잘댔다.
"오빠, 오늘 강습할 때 엄청 멋졌어요."
"맞아맞아. 근육 진짜 예쁘더라."
"에이, 너희들 아부해도 소용없어. 어차피 수업 빡시게 할 거야."
"진짜라고요. 무식하게 빵빵하게 키운 근육보다 오빠처럼 슬림하면서 탄탄한 근육을 얼마나 여자들이 좋아하는데요."
"맞아요. 오빤 진짜 바디가 예술이에요. 호호."
두 사람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서로 주거니 받거니 신이 나서 떠들었다. 그때 연두가 재밌는 소릴 했다.
"참, 오빠 이번 캠프 조심하셔야 겠던데요?"
"뭘?"
"저희 동기 중에서 오빠 노리는 사람 디게 많아요."
"노리다니?"
"오빠 한번 자빠뜨려 보겠다고."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진짜라니까요?"
"맞아맞아. 나 경희가 아까 피임약 먹는 것도 봤어."
"피임약? 잘 못 본 거 아냐?"
"아니라니까? 그 왜 28일 주기로 먹는 약."
"세상에! 작정했네 했어, 고년 비키니 고른 것부터 아주."
도훈이 계속 떠들어대는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경희는 나중에 테니스 대회 나가잖아. 아마도 경기 때문에 생리 주기 조절하느라 그런 거겠지."
"암튼 먹는 건 사실이잖아요."
"맞아. 오빠한테 맘껏 질싸하라고."
"야! 넌 무슨 말을 해도."
도훈이 흠칫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얘들은 둘이 같이 두면 진짜 답도 없겠는데.’
[유난히 시너지가 강한 편이죠. 1+1이 2가 아니라 4가 되는 조합이랄까?]
"오빠 혹시 경희가 주면 먹을 거예요?"
"기집애 당연한 소릴 하고 있어? 오빠가 주면 안 먹고 뻐기겠니?"
"야야. 적당히들 해. 난 이번엔 진짜로 생각 없으니까."
"진짜요?"
"그럼 저희랑도 따로 안 보실 거에요?"
"따로 보긴 어디서 따로 봐. 다 트인 숙소에서."
"굳이 숙소를 고집할 필요가 있나요?"
"맞아요. 지금처럼 밖으로 나가면 되지."
도훈은 두 사람이 쓰리썸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딱 잘라 말했다.
"이번에는 정말로 생각 없으니까, 그런 줄 알아."
"힝-. 난 이번 캠프에서 그것만 제일 기대했는데."
"맞아요. 오빠 방학하셨다고 저희한테 너무 뜸하신 거 아니에요?"
"아무튼, 셋은 안 돼."
"······?"
"······!"
연두와 나연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정도면 말귀 알아먹었겠지?’
[서로 눈빛으로 사인 주고받는 거 보니까 대충 감을 잡은 거 같은데요?]
나연이 불쑥 도훈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만약 저희가 동시에 따로 보자고 하면 오빤 누굴 고르실 거예요?"
"야. 이나연? 너 치사하게 나올 거야?"
나연의 도발에 연두도 반대쪽에 찰싹 매달렸다.
"오빠, 나연이보단 제가 더 맛나지 않아요?"
도훈은 양쪽에서 보드라운 가슴살이 물컹거리는 통에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으윽, 이것들은 진짜 답도 없구나. 민박집에서 얼마나 떨어졌다고 이렇게 스킨십을 해대니.’
도훈이 두 사람에게서 조심스럽게 빠져나오며 말했다.
"첫째. 나는 이렇게 대놓고 티 내는 거 안 좋아해."
"앗!"
"조심할게요."
두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 좌우로 떨어졌다.
"둘째. 둘 중 누구든 내 말 잘 드는 사람에게 기회를 줄 거야."
"그럼 저랑 나연이랑 경쟁이에요?"
"연두 너 정도는 껌이지."
"웃기고 있네. 오빠가 너 같은 빈유 쳐다나 볼 것 같아?"
"비, 빈유 라니! 내가 어디가 작다고?"
"솔직히 큰 편은 아니지."
도훈이 속으로 동의했다.
‘음, 나연이가 체조를 배워서 그런지 유연하긴 한데 글레머 타입이랑은 거리가 멀긴 해.’
[그래도 빈유까진 절대 아니지 않아요?]
‘아마 꽉 찬 A나 될까? 아니면 헐렁한 B 정도.’
[가슴만큼은 연두 양의 판정승이군요.]
"연두 너 진짜 이렇게 나왔다 이거지?"
"왜? 어쩔 건데?"
"오빠. 저 자존심 상해서 안 되겠어요. 저희 둘 중에 누굴 먼저 고르실지 말씀해 주세요."
"말했잖아. 난 말 잘 듣는 사람 고를 거라고."
"잘 들을게요. 오빠가 시키는 건 다 해드릴게요."
"흥, 너만 잘 듣냐? 오빠 저도 시키는 건 다 할게요."
"그래? 그러면 아까 선착순 할 때 찍고 온 곳 기억나지?"
"그 튜브 파는데요?"
"어. 지금부터 거기 먼저 찍고 오는 사람에게 가산점 준다."
"에, 에?"
"시작!"
나연이 먼저 치고 나가자 연두가 고래고래 악을 쓰며 뒤따라갔다. 멀어진 두 사람을 보고서야 도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겨우 쫓아냈네."
"왜 땅이 꺼져라 한숨이세요?"
두 사람을 보내자마자 릴레이처럼 또 다른 여자가 다가왔다.
< 952. 별이 쏟아 지는-12-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