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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966화 (933/2,000)

< 949. 별이 쏟아 지는-9- >

수온에 대한 적응과 빡센 몸풀기에 대한 보상으로 도훈은 한동안 여학생들끼리 물장구를 치고 놀도록 해변으로 물러나 있었다.

비키니 입은 스무살 아가씨들이 물장구를 튀기며 노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흐뭇해는 지는 감성이 있었다.

‘참, 좋을 때다.’

[주인님도 이제 다시 회춘하셨잖습니까?]

‘그래도 정신이 늙었잖아. 청춘엔 청춘의 때가 있는 법이야. 난 몸만 돌아왔지, 마인드는 여전히 아재인걸.’

[아재라도 인기만 많으시면서.]

‘암튼, 보기 좋긴 하네. 조카들 같기도 하고.’

"어이."

도훈이 흐뭇하게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도훈은 처음엔 자신을 부르는 줄 모르고 무시했다.

"어이, 선글라스. 너 말이야, 너."

도훈은 그제야 자신을 부른다는 걸 알고 뒤를 돌았다.

샛노랗게 물들인 젊은 청년. 어깨부터 팔에는 다소 과한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저요?"

"그럼 여기 너 말고 다른 사람 있냐? 씨팔, 말귀 좆나게 못 알아 처먹네."

"야야, 쫄겠다. 너무 겁주지 말라고."

뒤이어 껄렁한 태도로 일본식 슬리퍼를 신은 두 명이 따라붙었다. 도훈은 단박에 세 글자로 놈들을 정의했다.

‘양아치?’

[괜히 시비 거는 것 같은데 무시하시죠.]

"저한테 무슨 볼일 있으신가요?"

도훈이 최대한 점잖은 태도로 반문했다. 어쨌든 공개적인 장소에서 시비에 휘말리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볼일은 아니고 경치 보는데, 방해돼서."

"그래. 예쁜이들 비키니 좀 구경하려는데 영 걸리적거린다."

"면상 치우라고 새끼야!"

도훈은 다짜고짜 시비를 거는 모습에 순간 성수의 통화를 떠올렸다.

‘가만. 이 새끼들 행색을 보니 아까 우리 후배들 괴롭혔다는 걔들 아니냐?’

[맞는 거 같은데요.]

‘사내 새끼들이 쪽팔린 줄도 모르고 복수하러 온 거야? 어이가 없구만 진짜.’

3인조의 정체를 파악한 도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니들 뭐냐?"

도훈이 차갑게 물었다. 그러나 여전히 사태를 파악 못한 3인조는 계속 껄렁거리며 도훈에게 다가올 뿐이었다. 심지어 도훈의 말투를 흉내내며 조롱하기까지 했다.

"니들 뭐냐? 에헤헤헤!"

"새끼, 센 척하기는. 너네과 새끼들 저 반대편에 있어 인마."

"우리들이 지금 몹시 기분이 꿀꿀하거든? 니가 대표로 한 대만 맞자."

도훈은 양아치들의 도발에 피식 웃었다.

"어? 쪼개? 방금 쪼겠냐?"

"하- 요 새끼. 우르르 몰려다니니까 겁대가리를 상실했네? 니 친구들 저 멀리 있다니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게 이런 얘기지."

세 명은 무슨 꽁트라도 하는 것처럼 한 명씩 돌아가며 입을 털었다. 어느새 세 사람이 도훈과 지척 거리까지 다가왔다.

"···다 떠들었냐?"

도훈이 조금도 쫄지 않고 되묻자 성격이 급한 양아치 한 놈이 곧바로 선빵을 날렸다.

"진짜 보자보자하니까!"

예상외로 날카로운 펀치.

하지만 놀라운 운동 신경을 가진 도훈에게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려 보였다. 도훈은 고개만 살짝 뒤로 젖혀 주먹을 피하더니 달려드는 녀석의 발목을 살짝 걸어 넘어뜨렸다.

헛방을 날린 놈은 균형을 잃고 젖은 해변에 머리를 처박았다.

"어이쿠!"

"이 새끼가!"

그들은 이때 깨달았어야 했다. 최소한의 동선으로 주먹을 피해낸 도훈의 동체시력과 반산신경이 일반인을 월등히 뛰어 넘었다는 것을.

"야! 조져!"

이번엔 두 사람이 동시에 좌우에서 달려들었다. 도훈은 발차기를 날려 한 명의 가슴팍을 후려치고는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손등으로 다른 놈의 면상을 강타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회피와 동시에 공격이 이루어지는 기가 막히게 효율적인 동선이었다. 더욱이 80kg에 육박하는 근육질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압도적인 파워에 두 놈은 단 한 방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사실 도훈은 스파르탄 벨트의 근력 강화 효과로 거의 헤비급에 달하는 중량감을 보이고 있었다. 쉽게 말해 스피드는 라이트미들급인데, 파워는 헤비급에 육박하니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타격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결과 발차기에 맞은 놈은 그대로 나가떨어지며 뒤로 2바퀴를 굴렀고, 손등에 왼쪽 뺨을 강타당한 놈은 입안이 다 터졌는지 피가래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오히려 맨 처음 발에 걸려 넘어진 놈이 상대적으로 덜 다친 꼴이었다.

놈이 놀라서 도훈을 쳐다보는데 도훈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니들이 아까 우리 애들한테 시비 걸었다는 놈들이지?"

"예, 예!"

혼자 멀쩡한 놈은 도훈이 보여준 무시무시한 실력에 바짝 쫄아 자기도 모르게 존댓말로 대답했다. 아무리 한낱 양아치에 불과하더라도 도훈의 실력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었다.

‘히익, 괴, 괴물!’

"좋은 말로 할 때 꺼져라. 한 번만 내 눈에 뛰면 그땐 진짜 응급실 실려 가는 거야. 알아들어?"

"예, 옙! 죄, 죄송합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녀석은 바닥을 나뒹구는 친구를 겨우 부축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우, 우리 상대가 아니야. 완전히 잘못 건드렸어.’

세 사람이 줄행랑을 치는데 도훈이 도망치는 놈들을 향해 물었다.

"야."

"예?"

"넌 왜 근데 안 맞고 그냥 가냐?"

"···예?"

유일하게 도훈에게 맞지 않은 사람은 바로 현승이었다. 정음에게 고자킥을 맞고 쓰러졌던 양아치.

"이리와. 너도 맞아야지."

"아, 저, 그게···."

‘미, 미친놈한테 걸렸다!’

"얼른 튀어 오라고. 아님 내가 갈까?"

도훈이 겁을 주자 현승이 부축하던 친구를 팽개치고 쪼르르 달려왔다.

"가, 가겠습니다!"

"잘못했지?"

"네, 죄송합니다.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생각이 짧으면 생각을 많이 하고 살라고. 괜히 시비털고 다니지 말고."

"아, 알겠습니다!"

"자 그럼 딱 한 대만 맞다. 너만 안 맞으면 네 친구들이 억울할 거 아니···."

"이 새끼가!"

그때였다.

어디선가 날아온 정음이 벼락같은 날라차기로 현승을 날려버린 것은.

난데없이 날라 차기에 얻어맞은 현승은 그대로 바닷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풍덩-

"도훈 오빠! 괜찮아요?"

도훈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 너 왜···."

"저 새끼들이 오빠한테 해꼬지했어요?"

정음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도훈을 바라보더니 곧 악귀같은 형상으로 힘겹게 서 있는 양아치 둘에게 소리쳤다.

"니들 진짜 뒤지고 싶어?"

"아, 아니 정음아 이제 그만···."

"감히 누굴 건드리려고!"

흥분한 정음이 다시 달려들 태세를 취하자 도훈이 정음을 뜯어 말렸다.

"아니야 정음아. 그쯤 해도 돼. 좋게 다 말했어."

"오빠, 저 새끼들이 아까 우리과 여자애들 추행하려고 했던 애들이에요."

"어 나도 알어. 그래서 내가 알아듣게 타일렀어."

"이것들은 말로 해선 안 돼요. 오빠한테까지 해꼬지 하려고 했잖아요. 제가 아주 버릇을!"

정음이 다시 튀어나가려고 하자 도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뒤에서 정음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만-. 이제 그만해도 돼."

"오, 오빠···."

갑자기 백허깅을 당한 정음은 얼굴이 빨개져 움직이질 못했다. 그 사이 바닷물 속에서 기어 나온 현승이 겁에 질린 얼굴로 친구들을 데리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정음은 달아나는 놈들을 향해 악다구리를 지르며 소리쳤다.

"야! 거기 안 서! 니들 진짜 나한테 한 번만 더 걸리면 뒤진다!"

[와우, 역시 열혈 태권 소녀답네요. 성격이 화통합니다.]

‘정음이가 좀 단순하고 다혈질이잖아.’

[그래도 주인님 도와준다고 날라 차기로 달려든 거 보셨습니까? 그렇게 벼락같은 발차기라니···.]

‘내 타격의 상당수가 정음이한테 배운건데 뭘.’

"정음아. 이제 그만. 사람들 다 보겠다."

"아···, 아, 네."

도훈이 허리를 놔주자 정음은 그제야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고개를 축 숙인 채 중얼거렸다.

"죄, 죄송해요. 방금은 저도 모르게 흥분해서."

"아니야. 덕분에 고마웠어."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물놀이를 하던 다른 여학생들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는지 물가에서 나와 도훈 쪽으로 모여들었다. 도훈은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말을 돌렸다.

"아니 잠깐 잡상인 때문에. 물에 적응 훈련을 충분히 했지? 다들 모여봐."

"네!"

도훈은 여전히 창피해는 정음을 향해 몰래 엄지를 척 치켜세웠다. 정음이 그 모습에 겨우 안도하며 환하게 웃었다.

***

대충 상황이 정리된 후 본격적인 수영 강습에 들어갔다. 무릎 정도 높이 바닷물에 몸을 담근 여학생들이 내 주위로 반원을 그리며 모여들었다.

"여기서 수영 배웠던 사람 손들어봐."

단순한 질문임에도 여학생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손을 들기를 주저했다.

[왜 저러죠?]

‘설마 수영 배웠다고 하면 나한테 강습 못 받을까봐 저러는 거 아냐?’

그때 누군가 희주를 보며 소리쳤다.

"희주야, 너 고등학교 때 수영 좀 했었다지 않았어?"

"어, 맞아맞아. 특기가 수영이랬잖아."

"내, 내가 언제. 야 그러는 너도 접영까지 다 땠다며!"

"아니 그건 진짜 속성으로···."

갑자기 서로의 숨겨진 수영 실력을 일러바치는 분위기가 되자 다시 좌중을 정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배웠어도 상관없어. 바다 헤엄은 실내 수영장이랑 전혀 다르니까. 그러니까 자유형이라도 배웠다 하면 무조건 손 들도록."

재차 묻자 절반 정도의 여학생이 쭈뼛거리며 손을 들었다.

"오케이. 일단 이번 수영 캠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야. 뭐라고?"

"안전입니다."

"그렇지. 그러니까 혹시나 자기가 수영을 배웠다고 해도 처음에는 절대 발이 닿지 않는 곳에 가지 않는다. 알겠지?"

"네!"

"그래도 빠지면 선배님이 구해주실 거죠?"

"맞아요. 선배님만 믿고 있다고요."

"알았어. 구해줄테니까 일단 기초부터."

계속 수업을 진행하려고 했지만 여학생들은 아무래도 수업 내용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근데 선배님, 계속 옷 입고 수영 가르칠 거에요?"

"어?"

"아니, 저희는 이미 다 수영복 갈아입었는데 선배님은 여전히 반바지에 반팔 차림이잖아요."

"맞아요. 불공평해요."

여학생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이구동성으로 나를 압박했다. 사실 첫 날은 수영을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수영복을 챙겨오지 않았다.

"수영복 숙소에 있어서···."

"그래도 상의는 벗고 하셔야죠."

"벗어라! 벗어라!"

"벗어라! 벗어라!"

[아, 아니 이게 무슨···.]

‘나도 당황스럽네. 난데없이 옷을 벗으라니.’

마냥 여학생들의 요구를 따르기도 난감하던 차, 갑자기 연두가 손바닥에 물을 모으더니 나를 향해 뿌렸다.

"으엇! 뭐하는 거야?"

"저흰 다 젖었는데, 선배님만 안 젖으셨잖아요."

"맞아. 찝찝하면 벗지 않겠어? 애들아 물 뿌려!"

"뿌려 뿌려!"

나연의 선동에 갑자기 여학생들이 물장구를 치듯 사방에서 물을 뿌려댔다. 난데없는 물벼락이었지만, 장난을 치는 데 정색하며 화를 낼수도 없었다.

"와아아아!"

"계속 뿌려!"

선글라스엔 물이 들어가고 티셔츠는 젖어 달라붙고 난리도 아니었다. 결국 나는 두 손을 들고 항복했다.

"오케이, 그만. 벗을 게."

"꺄아아아아!"

"대신 상의만이야."

"와아아! 도훈 오빠 벗는데!"

"벗어라, 벗어라!"

신이 난 여학생들이 계속 벗어라를 연호했다.

나는 하는 수없이 고개를 절래절래 가로 저으며 몸에 달라붙은 티셔츠를 들어 올렸다.

"우, 우아아아!"

"쩐다!"

"도훈 오빠, 진짜로 몸 좋구나!"

이미 몇 명은 벗은 몸을 본 애들도 있었지만, 반응은 가히 폭발적. 해변 한가운데서 어린 여학생들의 연호를 받으며 상의를 탈의하고 있으니 광팬에 둘러싸인 아이돌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이햐, 주인님 인기 절정인데요.]

‘그러지 마라. 부담스러워 죽겠다.’

티셔츠를 벗어 해변가로 대충 던져놓은 나는 여학생들에게 말했다.

"자, 됐지. 그럼 본격적으로 실습 시작한다."

***

"마, 빠져 죽을 것 같으면 구해줄 테니까 일단 뛰어들라고!"

수영을 못하는 태영은 또 한 번 소금물을 잔뜩 먹었다.

"우엑!"

"하, 새끼 진짜 깡다구 하고는. 그래가 수영이 늘겠나?"

웃음꽃 만발한 여자조에 비하면 남자조는 거의 해병대 실전 훈련에 가까웠다. 주교관을 맡은 승완은 부산 사나이답게 터프하고 거칠게 후배들을 조련했다.

"팔 저으라! 팔! 아오, 새끼들 이제껏 수영도 안 배우고 뭐했노?"

결국 체력이 떨어진 태영은 안전을 위해 물 밖으로 끌려 나왔다. 모래사장에 주저 앉은 그는 숨을 헉헉거리며 중얼댔다.

"에이 썅, 바닷가 놀러 온 줄 알았는데 무슨 해병대 수영 캠프야 뭐야. 존나 빡시네."

태영은 불만으로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여학생들의 비키니 인증샷 러시에 기대에 잔뜩 부풀어 온 바닷가.

그러나 무슨 이산가족도 아니고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분리해놓고 강습을 진행하느라 태영은 여학생들을 구경도 못한다는 게 너무 분했다.

"그냥 따로 배워도 좋으니까 여자애들 하고 같이라도 하던가."

태영은 문득 여자부에 혼자 강사로 배치된 도훈을 떠올렸다. 안 그래도 인기 폭발인 도훈이 비키니를 입은 동기들과 화기애애 어울리고 있을 상상을 하자 부러운 마음에 질투심이 솟아 올랐다.

‘도훈이 형 존나 부럽다. 그 형도 나름 픽업 아티스트인데 나중에 맘대로 골라 먹는 거 아닌가 몰라.’

지난 기말 대체 과제 때 도훈의 비밀을 알게 된 태영은 도훈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하루라도 그와 몸을 바꿀 수 있다면 영혼도 바칠 수있을 것 같았다.

그때 숙소와 해변을 오가며 캠프를 총괄하고 있던 성수가 물밖으로 나온 태영을 향해 물었다.

"왜 그래? 벌써 지쳤냐?"

"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좀 쉬고 있어요."

"그래? 잘됐네. 조교 선생님 거의 도착했다는데 네가 숙소가서 안내 좀 도와드릴래?"

조교라는 말에 우울해 있던 태영이 번쩍 정신이 들었다.

< 950. 별이 쏟아 지는-9-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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