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964화 (931/2,000)

< 947. 별이 쏟아 지는-7- >

한편 여학생 대표로 스트레칭을 주도하던 나연은 도훈의 반응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모습이 재밌는지 점점 더 야릇한 포즈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자, 이번에는 하체 강화 운동으로 맨몸 스쿼트 한 번 가실게요."

나연은 시범을 보이듯 양팔을 모아 가슴을 떠받치더니 허벅지에 힘을 주어 수직으로 몸을 내렸다.

"이 자세로 10번만 가겠습니다. 자, 하나."

다들 체육과라 어렵지 않게 맨몸 스쿼트 자세를 따라 했다. 비키니를 입은 10여명의 여대생이 단체로 스쿼트를 하는 모습에 도훈은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

‘커헉, 엉덩이 튀어나오는 것 좀 봐.’

스쿼트 자세는 유난히 힙이 돌출되는 동작. 특히 비키니를 입은 자세에선 팬티가 조여지는 효과 덕분에 굉장히 야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섯-"

‘지금 발기했다간 평생 흑역사다. 참아야 한다.’

도훈은 괜히 딴청을 피우며 스트레칭 중인 여학생 주변을 맴돌았다. 그때, 연두가 도훈에게 도움을 청했다.

"선배님. 이 자세가 맞는 건가요? 잘 모르겠어서."

연두가 허리를 구부린 채 내려가는 모습에 도훈은 자기도 모르게 조언했다.

"스쿼트 자세는 허리를 곧게 펴야해."

"어떻게요? 자세히 알려주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도훈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허리를 손으로 받쳤다. 비키니를 입은 연두의 부드러운 살결이 고스란히 손으로 만져지자 도훈은 자기도 모르게 움찔 놀랐다.

‘윽, 당했다.’

"아하, 고마워요 선배님. 역시 친절하시네요."

연두를 시작으로 갑자기 옆에 있던 서현도 도훈에게 끼를 부렸다.

"선배, 다리가 자꾸 안으로 오므려지는데 이게 맞나요?"

"아, 아니 그건···."

"선배님이 자세 좀 잡아주세요."

도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무릎 안쪽을 잡아 똑바로 만들었다.

"이 각도로 계속."

"감사합니다, 선배님."

"저기 선배님, 저도 자세 좀 봐주세요."

"선배님."

두 사람이 먼저 물꼬를 트자 사방에서 도훈을 찾는 요청이 쇄도했다. 도훈은 난처함을 넘어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이것들이 진짜, 하라는 스트레칭은 안 하고!’

그때, 나연이 재빨리 다음 동작으로 바꾸었다.

"자자, 자세 교정은 그쯤하고 이제 팔 벌려 뛰기 가겠습니다. 20회만 가죠. 선배님, 호각 좀 부탁드려요."

나연의 요청에 도훈이 목에 걸고 있던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다.

삑비~ 빅-

"하나!"

삑비빅삐빅!

"둘!"

삑비~ 빅!

도훈은 그제야 자세 교정에서 해방되었다는 생각에 열심히 리듬을 맞추었다. 그러나 비키니 복장으로 팔 벌려 뛰기는 스쿼트보다 최악이었다.

출렁출렁-

유난히 가슴 큰 애들이 많은 탓에 한번 뛸 때 마다 어마어마한 슴부먼트가 벌어진 것이었다.

‘크헉, 아, 안돼!’

[주인님! 이렇게 되면 강제 현자 타임이라도!]

‘제기랄, 진짜 사람 말려 죽이려고 작정을 했구나.’

출렁출렁~ 출렁출렁~

도훈은 사방에서 흔들리는 젖가슴의 무빙에 시선을 둘 곳이 없었다. 여학생들은 도훈을 골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유난히 과한 동작으로 팔벌려뛰기를 이어갔다.

"스물!"

"앗, 마지막 구호하면 안 되잖아."

"그럼 다시 해야겠네."

"그래? 10개 더!"

나연이 다시 도훈에게 호각을 요청하자 보다 못한 도훈이 마침내 스트레칭의 중단을 선언했다.

"그만. 그 쯤했으면 충분해."

"저희 아직 몸이 덜 풀린 거 같은데요."

"선배님. 이대로 찬물 들어가면 심장마비 걸릴지도 몰라요옹~."

"아잉, 선배님~"

도훈을 골려대느라 재미를 붙인 1학년 후배들이 사방에서 선배님을 찾았다. 보다 못한 도훈이 큰 소리로 외쳤다.

"몸 더 풀고 싶으면 저기 튜브 파는 데까지 뛰어갔다 온다. 실시!"

"앗, 저 멀리까지요?"

"아직 몸 덜 풀렸다며. 선착순이야. 뛰어!"

선착순이란 말에 여학생들이 부리나케 달려갔다. 여학생들이 멀리 사라진 후에야 도훈은 겨우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흑, 꼴려 뒤질 뻔했네."

"저···. 혹시 데뷔 준비 중인 아이돌 그룹인가요?"

그때 주변에서 구경 중이던 아저씨 한 명이 조심스레 도훈에게 말을 붙여왔다.

"아이돌이요?"

"아니, 같이 계시던 분들이 너무 아름다우시네요. 제가 여돌 입덕한 지 5년이 넘었는데 전혀 모르는 걸 봐선 신인 같아서요. 혹시 나중에 사인 좀 부탁할 수 있을까요?"

난데없는 사인 요청에 도훈은 어이가 없었다.

"그런 거 아닙니다. 쟤들 운동하는 애들이고요, 여기로 수영 실습 나온 거예요."

"아! 시, 실례했습니다."

덕후 팬을 물리친 도훈은 기가 찼다.

아무리 그래도 평범한 여대생을 보고 아이돌로 착각하다니.

‘하긴, 몇 명은 눈에 띄게 예쁘니 저렇게 오해할 만도 하다만···.’

도훈이 데리고 있는 13명의 여학생 중엔 8선녀라 불리는 국성대 사범대 최고의 퀸카 그룹이 몰려있었다. 그중에서도 와꾸 대장인 정음과 연두 나연, 몸매 쩌는 경희와 희주 그 외에도 각양 각색의 매력을 갖춘 인원들이 대부분.

도훈은 이들을 데리고 과연 정상적인 교육이 가능할지 덜컥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주변의 시선도 시선이지만, 모든 여학생이 도훈을 노리는 것처럼 틈만 보이면 달려들 준비만 하는 것이다.

‘어으, 진짜 성수 이 곰탱이 같은 놈 사람 피곤하게 만드네.’

도훈은 자신을 여학생 부 강사로 배정한 성수를 원망하며 여학생들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

"우아, 재들 뭐냐?"

"누구?"

"저기 비키니 입은 애들."

"어디, 어디?"

노랗게 염색한 머리와 태닝한 피부가 인상적인 사내 한 명이 해변을 가로지르며 뛰어가는 여학생 무리를 발견했다. 이들은 헌팅을 위해 서울에서 태안까지 내려온 이른바 헌팅 족들이었다.

"와, 요새 태안 물 좋네. 저런 애들도 있고."

"야, 오늘 밤 쟤들 어때?"

"쪽수 안 맞는 거 아냐? 우린 셋인데 저쪽은 10명 넘어 보이는데?"

"뭔 상관? 저 중에 제일 예쁜 애들로 골라 먹으면 되지."

"그래도 저번보다 낫다야. 그땐 셋이서 한 명 돌려먹었잖아."

"같이 온 년이 자긴 절대 안 할 거라고 빼서 그렇지."

"야 그래도 마지막엔 좀 심하지 않았냐? 술 먹고 꽐라된 애구멍에 숟가락 꽂아 놓고 오다니."

"크크크."

이들은 양아치였다.

금발, 태닝, 꽃무늬 셔츠에 팔과 어깨엔 문신도 가득했다. 그러나 셋 다 얼굴은 제법 반반한 편이라 여자들을 쉽사리 꼬시는 편이었다.

"어, 이쪽으로 온다. 가위, 바위, 보해서 진 새끼가 가서 말 걸고 오기하자."

"오케이."

"가위바위보!"

"현승이 당첨!"

"아씨, 대낮부터 쪽팔리게."

"얼른 가, 이 새끼야."

현승이 선글라스를 머리에 걸치더니 멋을 잔뜩 부리고 다가갔다. 맨 선두에 뛰어가는 여학생은 레쉬 가드를 입은 단발 의 미녀였다.

‘오케이. 제법 순진해 보이는 인상이군. 저 애가 좋겠다.’

"저, 안녕 하···."

"비켜요! 바쁘니까!"

상대는 말을 붙이기도 전에 쌩하고 먼저 달려가 버렸다.

감히 쫓아가기도 힘들 정도로 빠른 스피드였다.

"뭐, 뭐야?"

현승은 이어 두 번째로 달리고 있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여학생을 발견했다.

‘오우! 고져스! 빨통 출렁거리는 보소!’

현승이 곧바로 말을 붙였다.

"헤이! 아가씨 오늘 시간···!"

"뭐야, 바빠 죽겠는데? 안 비켜?"

두 번째 상대 역시 현승을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지나쳐버렸다. 두 번이나 뺀찌를 맞은 현승은 점점 열이 받기 시작했다.

‘뭐야 이것들?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는 중인가?’

선두의 두 명에 비해 나머지 학생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다들 빼어난 미인이었기에 현승은 다시 용기를 내 말을 붙였다.

"저기요, 지금 혹시 뭐하시는 거예요."

"헉, 헉 누구···세요?"

현승은 보폭을 맞춰 뛰어가며 말을 붙였다.

"아니 바닷가에서 단체로 뛰니까 신기해서요."

연두와 나연은 안 그래도 처지는 중에 자꾸 날파리 같은 현승이 달라붙자 짜증이 치밀었다.

"거, 신기할 것도 많네."

"비켜요, 그쪽 관심 없으니까."

"아니 그래도 사람이 말을 하는데···."

현승은 계속되는 거절에 화가 난 나머지 나연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때 반환점을 찍고 다시 돌아온 정음이 그 모습을 발견하고 쏜살같이 달려왔다.

"나연아, 뭐야? 무슨 일이야?"

"아니, 이 사람이 자꾸 귀찮게 하길래."

"저기요. 저희 지금 구보중이거든요? 말 걸지 말아 줄래요?"

현승이 자세히 보니 맨 선두에서 뛰던 단발의 아가씨였다.

‘와, 뭐냐. 얘는. 가까이서 보니까 완전 내 스타일인데?’

"그래요? 저희도 운동 좋아하는 데 같이하실래요?"

"이 손 좀 놓으시라고요!"

현승이 여전히 나연의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자 정음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손 놓으라는 말 안 들려요?"

뒤에서 지켜보던 친구들은 현승이 재차 무시당하는 모습을 보고 낄낄거렸다.

"얌마, 너 까였어."

"현승이 어쩔, 쪽은 있는 데로 다 팔리고."

친구들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현승은 갑자기 오기가 치밀었다. 어차피 여름 바닷가에 야한 비키니 입고 나온 걸 보면 목적도 뻔한 것 같은데, 너무 튕긴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씨, 그냥 좋은 말로 할 때 같이 놀자니까 더럽게 비싸게 구네. 니들은 뭐 금테 둘렀냐?"

현승은 키가 크고 팔에 문신까지 있어서 버럭 화를 내자 굉장히 위협적으로 보였다. 특히 소심한 여자들은 낯선 남자가 거칠게 나오면 주눅 드는 경향이 있어 일부러 세게 나간 것이었다.

"···뭐?"

하지만 현승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정음은 도훈 앞에선 늘 순한 양이지만, 보통의 남자들에게는 터프하기 짝이 없는 열혈 파이터였던 것.

"너 그 말 당장 사과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뒤이어 반환점을 찍은 여학생들도 하나둘 몰려들었다. 하지만 쪽수가 많아 봐야 어차피 여자라는 생각에 현승은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씨발, 봊이에 금태 둘렀··· 억!"

현승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정음은 그대로 앞차기를 날려 현승의 고환을 갈겨버린 것이었다.

"끄어억!"

현승이 사타구니를 부여잡고 쓰러지자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금발 태닝 양아치들이 슬금슬금 일어섰다. 일단 시비가 붙었으니 명분은 끼어들 확보한 셈이었다.

"와씨, 이것들이 단체로 돌았나 미친!"

하지만 정음은 양아치 두 명이 더 다가와도 낯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불의의 부상으로 국대에서 탈락한 태권도 유망주였고, 지금도 도장에서 유단자들을 지도하는 사범을 맡고 있는 현역 선수급이었다. 평범한 남자들이 그녀를 제압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들 내 뒤로 물러서 있어."

정음이 자세를 취하며 겨룰 준비를 하던 그때.

"여어, 우리 과 여학생들한테 무슨 일이신가?"

뒤에서 어마어마한 떡 대의 사내가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다가왔다. 그는 바로 체육과 부학회장이자 어마어마한 괴력으로 도훈에게 곰탱이라 불리는 사내, 박성수였다.

성수는 평소 늘 웃는 상이지만, 한 번 인상을 찡그리면 사지가 오그라질 만큼 무시무시했다. 더욱이 고등학교 때까지 유도를 배워서인지 단순히 덩치만 큰 게 아니라, 어깨가 떡 벌어져 기골이 장대한 편이었다.

‘마, 만두 귀다!’

양아치 한 명이 성수의 만두 귀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랐다.

만두 귀란 레슬링이나 주짓수, 혹은 유도 종목의 선수들에게 흔히 보이는 형상으로 잦은 충격으로 귓바퀴의 연골과 연골막 사이가 벌어져 만두 모양으로 찌그러진 귓바퀴를 의미했다. 성수 또한 오랜 시간 유도를 배우면서 귀가 찌그러져 만두 귀로 변형되었던 것.

‘만두 귀를 가진 사람하곤 절대 시비 붙지 말랬는데···.’

성수의 귀를 알아본 양아치 한 명이 질겁하며 놀라는데 뒤이어 스무 명이 넘는 건장한 사내들이 상의를 탈의한 채 양아치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근처에서 수영 교습을 받고 있던 남학생들이었다. 다들 운동을 배운 몸이라 그런지 덩치부터 남다른 남학생들이 우르르 접근하자 양아치 셋은 그대로 포위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부회장님, 거기 무슨 일 있습니까?"

"그러게나 말이다. 애들이 우리과 여학생들하고 시비가 붙은 모양인데?"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양아치 셋은 오들오들 떨면서 바짝 엎드렸다.

"아, 아닙니다. 저희가 실수로···."

"실수? 아, 실수로 넘어진 거야?"

"네, 넵!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분노 조절 장애를 가졌던 양아치 셋은 어느새 완치가 되어 거듭 허리를 숙여 사과하더니 그대로 줄행랑 쳤다. 사태가 해결되자 성수가 상황을 정리했다.

"별일 없으니 남자부는 계속 운동하러 가."

"넵!"

"그리고···."

성수가 놀란 여학생들을 향해 물었다.

"도훈이는 어디 가고 너희들끼리 여기서 이러고 있어?"

"아, 그게···."

경희가 상황을 설명하자 성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이마를 부여잡았다.

‘하여간 도훈이 이 새끼는 떠먹여줘도 그걸 못 받아먹네. 이럴 때 딱 옆에 붙어 있었어야지.’

"일단 알았어. 내가 도훈이한테 말 해 놓을 테니까, 또 시비 붙으면 너희들끼리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바로 남자애들 찾아. 알았지?"

"네!"

"부회장님 멋져요."

"짱멋있어, 성수 오빠!"

여학생들을 다시 도훈 쪽으로 보낸 성수가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야 인마! 넌 왜 여자애들끼리만 구보시키고 있어!"

-네? 무슨 일 있어요?

"자식이 진짜, 판을 깔아줘도···. 암튼 앞으론 24시간 꼭 붙어 있어. 애들 추행당할 뻔했잖아."

-뭐요? 거기 어딘데요. 지금 당장 갈게요.

"다행히 우리 과 애들이 먼저 봐서 해결했어. 암튼 꼭 붙어 있어라. 이건 부회장 명령이다. 알았어?"

-네.

통화를 마친 성수가 피식 웃으며, 달려가는 여학생들을 쳐다보았다.

‘으으, 나도 여자친구만 없었으면···. 아니지. 내가 무슨 생각을. 크흠.’

성수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 947. 별이 쏟아 지는-7- > 끝.

ⓒ 성난불기둥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