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2. 별이 쏟아지는-2- >
***
최근 국성대 체육교육과 1학년 여학생 사이에선 이상한 놀이가 유행이었다.
바로 수영복 착용 인증샷 올리기.
시작은 연두와 나연이 먼저 끊었다.
단톡방에서 여름 수영캠프 이야기 준비가 한창일 때, 해변에서 입을 거라며 수영복 사진을 올린게 발단이 된 것.
사실 처음부터 두 사람이 착샷을 올린 건 아니었다. 비키니를 샀다는 말에 누군가 얼마나 예쁜지 보자면서 사진을 보여달라 했고, 연두는 침대 위에 팬티와 브라를 펼쳐놓고 찍어 보냈다.
-너한테 별로 안 어울릴 거 같은데?
연두의 사진에 1학년 여자애 중 평소 연두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한 명이 시비를 건것이 화근이었다.
-뭐라고?
-수영복은 예쁜데 몸매가 받쳐 줘야 어울릴 디자인같은데?
이에 발끈한 연두가 과감하게 비키니를 착용한 사진을 올렸고, 친구혼자 민망해질까봐 함께 쇼핑한 나연도 따라 올렸다.
이어지는 엄청난 반응들.
남자 동기들도 함께 쓰는 단톡방인데 민망하게 사진을 올리냐는 소수의견도 있었지만, 어차피 캠프 가면 다 볼 건데 속옷도 아닌 수영복 사진 좀 올리는 게 어떠냐는 다수 의견이 우세해 지면서 이른바 수영복 인증 레이스가 시작된 것이었다.
남자 동기들이 때아닌 눈 호강에 비겁하게 침묵했던 것도 이번 사태를 키우는 데 일조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나연과 연두가 올린 다음 날.
한여름 뙤약볕에 바짝 태닝한 경희가 뒤이어 사진을 올렸다.
매일 같은 운동으로 건강미 후끈 넘치는 경희의 인증샷에, 침묵하고 있던 남학생들이 이모티콘으로 따봉을 보내며 환호하자 경쟁은 더더욱 과열되어 버렸다.
그때부터였다. 단톡방에 여학생이 사진을 올리는 순간, 남학생들로부터 몇따봉을 받는 지가 심사평처럼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경희 이후 쉽사리 덤비는 도전자들은 없었다. 그만큼 경희의 비키니가 앞선 둘을 압도할만큼 탄탄한 몸매를 과시했던 것이다.
경희가 대세를 이루던 시점, 혜성같이 등장한 인물이 바로 박서현이었다.
서현은 동기 중 유일하게 안경을 쓴 여학생으로, 지적이고 귀여운 타입으로만 알려졌지 몸매에 대해선 딱히 기대되는 바가 없던 인물이다.
객관적으로 봐도 경희 이후에 올리는 것은 굉장한 패널티처럼 인식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과연 수석 입학자라는 타이틀은 거저 먹은게 아니었다. 서현은 아예 판도를 바꾸는 방식으로 대응했는데, 이제껏 몸매만을 부각하던 방식에서 섹시함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었다.
특히 티팬티를 입은 뒤태를 고스란히 드러냄으로써 남학생들의 상상력을 자극시켰고, 특유의 뽀얀 피부와 청초한 모습으로 엄청난 수의 따봉을 받게 되었다.
단톡방 맴버들은 점점 수위가 아슬아슬 해진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여학생들은 이미 경쟁 레이스에 매몰되어 버린 상황.
남학생들은 이게 왠 떡이냐는 마음에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따봉 이모티콘으로 환호할 따름이었다.
서현의 티팬티 인증 이후 다시 소강상태가 찾아왔다.
그보다 센 것은 더 나오기 힘들 것처럼 보이던 그때, 끝판왕 희주가 등장했다.
사실 희주의 몸매가 체육과 1학년 동기들 사이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건 누구나 인정한 사실이었다.
서구형 체형의 놀라운 신체 비율과 압도적인 크기의 가슴과 힙은 평소 청바지에 흰 티만 걸쳐도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최근 들어 성형 의혹이 일만큼 얼굴이 눈에 띄게 예뻐지면서 8선녀의 탑 자리를 위협할 정도라는 게 세간의 평이었다.
희주의 수영복 착샷은 과연 명불허전.
신이 내린 바디라 불리는 그녀의 몸매가, 과감한 비키니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자 남학생들은 단톡방 화면을 가득 채울 만큼 엄청난 따봉을 날려댔다.
진정한 끝판왕의 등장에 수영복 착샷 레이스도 슬슬 막을 내린 분위기.
그러던 바로 그때, 8선녀 중 단연 으뜸이라는 육정음이 마침내 사진을 올린 것이었다. 마트에 모인 네 남자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사진을 클릭했다.
"엇."
"이건···."
"이게 다야?"
엄청나게 실망스러운 반응.
정음이 몇 해 전부터 유행한 레쉬 가드 사진을 올린 것이다. 밑은 핫팬츠 스타일의 반바지에 위는 긴 팔로 전신을 다 가리고 있어, 이걸 수영복이라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혹시나 레쉬가드를 벗은 사진을 기대했던 네 사람은 더 이상 추가되는 사진이 없다는 사실에 더 큰 실망을 금치 못했다.
"정음이가 몸매는 자신 없나 보구나."
"역시 신은 공평하달까요."
"그래도 쟤 얼굴은 1학년 중에 제일 예쁘지 않나?"
세 사람이 각자 감상을 말하는 사이 도훈이 속으로 생각했다.
‘정음이도 참, 다들 비키니 사진을 올리는 와중에 레쉬 가드가 뭐람.’
[근데 정음양 몸매도 상당히 좋은 편 아닌가요?]
‘당연히 좋지. 경희가 대회 때문에 테니스 치는 것처럼 정음이도 태권도 사범 알바 한다고 체육관에서 매일 운동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왜 하필 꽁꽁 싸맨 사진을 올렸을까요?]
‘원래부터 부끄러움이 많잖아. 속옷 취향도 곰돌이 팬티처럼 귀여운 쪽이고. 아마 본인은 올릴 생각도 없었다가 다들 한장씩 올리니까 마지못해 구색맞춘거 같은데?’
[벗은 몸을 모두 확인해 본 주인님 입장에선 다소 아쉽겠군요. 동기들 사이에서 육정음양이 저평가 받는다는 사실이 말이죠.]
‘아니야. 차라리 그게 나아. '
[낫다고요?]
'당장 우선이도 정음이가 젤 예쁘다고 난리잖아. 괜히 다른 남자들에게 인기 끌어봐야 나만 신경 쓰이지.’
[어차피 육정음양은 그러거나 말거나 어차피 일편단심아닙니까? 주인님밖에 모르는 해바라기니까.]
‘그건 맞지. 흐흐. 그나저나 1학년 여자애들 수영복 사진 보니까 괜히 또 군침도네.’
[이번엔 자중하십시오. 미션이고 업적이고 하나도 걸려있지 않으니까요. 괜히 사람 많은데서 무리하다 안좋은 소문이라도 났다간 앞으로 학교 다니기 피곤해 질 겁니다.]
‘알았어 인마. 알아서 잘 할게.’
정음의 사진을 기대하다 김이 샌 성수가 나머지 셋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장도 다 봤으니 푸드코트에서 점심이나 먹고 가자. 다들 장본다고 고생했으니 밥은 형이 쏠게."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비싼 거 시켜도 되죠?"
"비싼 거 같은 소리 하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몰라? 햄버거 런치세트로 통일이야 이것들아."
지갑 사정이 우려된 성수가 점심메뉴로 햄버거를 주문했다. 다들 신이 나서 좋아하는데 도훈이 계산 중인 성수에게 다가가 몰래 자기 카드를 내밀었다.
"형, 이번엔 제가 살게요."
"됐어 인마. 뭘 또 니가 사. 난 후배한테 안 먹어 먹어."
성수가 선배답게 가오를 부리자 도훈이 설득했다.
"형, 요새 임용 때문에 인강 끊느라 용돈 부족할 거 아니에요. 맨날 형이 사지 말고 오늘우 제가 쏘게 해주세요. 형만 선밴가? 우선이랑 태영이도 내 후밴데."
도훈의 말에 성수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머쓱하게 물러섰다.
"새끼, 그래도 나 생각해주는 건 너밖에 없구나."
"별말씀을. 참 그리고 저 요새 알바해서 용돈 많으니 부담갖지 마요."
"도훈이 네가 알바를? 언제 또?"
"그냥 당일치기요."
"아하, 혹시 누구 땜빵이라도 선 거야? 새끼, 그런거면 진작말하지."
성수가 머쓱한지 도훈의 어깨를 툭 쳤다.
도훈은 최근들어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였다.
타짜 행세를 하며 민주의 외삼촌으로 부터 거의 2억에 가까운 돈을 뜯어낸 것. 게다가 김변의 내연녀였던 정원의 의뢰로 차후에 3억을 더 받기로 해, 이미 대학생치고는 말도 안 되는 부자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뿐인가? 나예림에게 투자한 돈도 차후에 몇배가 되어 돌아올지 몰랐다.
단돈 300만 손에 쥐어도 부자가 된 느낌인데 무려 3억이라는 현금을 들고 있으니, 이미 도훈은 대학생 수준의 경제력을 월등히 넘어선 상태였다.
그런 그에게 런치 세트로 햄버거 4인분 16,000원은 사실 있으나 마나한 푼돈에 불과했다.
‘거참 돈이 너무 많아도 대학생 신분이라 씀씀이 올리기 쉽지가 않네.’
[지금처럼 주변에 많이 베풀고 사십시오. 그럼 평판도 덩달아 좋아질 테니까요.]
‘그래야지. 나중에 기회되면 본격적으로 투자도 좀 하고.’
[투자요?]
‘원래 자본주의란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구조거든. 그중 종잣돈 모으는 일이 제일 어려운데 난 20대 초반에 벌써 억대급으로 벌어들였잖아. 이 정도면 뭐든 해볼 수 있지.’
[하긴, 돈 버는 건 전생부터 주인님 특기였죠? 혹시 어떤 걸 생각 중이십니까?]
‘저번에 받은 명당 스킬로 부동산에 한 번 넣어둘까 해. 러브 호텔 지을 땅 찾는 덴 제격일 거 같아서.’
[오, 그런 방법이.]
‘스킬이야 쓰기 나름인 거지.’
"야, 오늘 도훈이가 쏘는 거다. 알바해서 돈 벌었다고."
"오! 역시 도훈이 형!"
"잘 먹을게요, 형 헤헤."
네 사람은 두런두런 의자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당연 화제는 내일 있을 수영캠프에 관한 것이었다.
"이제 준비는 거의 다 끝난 거 같네요. 고생하셨어요, 부회장님."
"우선이 네가 많이 도왔지. 너 없었으면 힘들었을 걸."
"별말씀을. 참, 회장님도 참석하신대요?"
"마유미 말이야?"
"네, 요새 전지훈련 다니느라 학교에서도 도통 안보이시는 것 같던데."
"유미는 내일은 힘들고 하루 지나 합류할 거야. 스케쥴이 안맞아서 전지 훈련장에서 바로 태안으로 오기로 했어."
"아하. 그래도 오긴 오는 군요."
유미가 온다는 소식에 도훈도 살짝 긴장했다.
‘헐. 그 사디스트 변녀가?’
[위험하군요, 정말 이번 캠프는. 주인님을 노리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났습니다.]
‘어후, 유미 취향 맞추긴 진짜로 어려운데.’
마유미 얘기가 나오자 성수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도훈에게 말했다.
"맞다. 유미 오면 그거나 한 번 신청해 봐라 도훈아."
"뭘요?"
"이번에 태연 해변에서 비치 발리볼 대회 열리더라고."
"비치 발리볼 대회요?"
"어. 그냥 아무나 신청받는 대횐데, 마침 우리 캠프 중간에 당일치기로 열린다는 거야."
"에이, 날짜맞는다고 무조건 대회를 나가는 게 어딨어요."
"아니 다름이 아니라 팀 구성이 무조건 남녀 혼성이라는 규칙이 있더라고. 도훈이 너랑 유미에 수비 볼 애 한 명만 있으면 해볼만 하지 않겠냐?"
성수가 계속 부추겼지만, 도훈은 괜히 유미와 팀을 이뤘다간 엮일 것이 두려워 계속 거부했다.
"어차피 전 후보잖아요. 당장 3학년 중에 남자 배구부 선수로 뛰는 애들도 있는데."
"아니 남자 배구부는 이번에 중요한 연습경기가 겹쳐서 캠프 참석 못 한다더라. 걔들 못 뛰면 그다음으로 뛸만한 애가 너밖에 없지 않아?"
‘에이씨, 하필.’
[이거 왠지 빠져나가기 힘들겠는데요.]
도훈이 난처해하는데, 태영이 흥분해 끼어들었다.
"비치 발리볼이라고요? 형 우리 나가요. 제가 뛸게요."
하지만 성수가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야. 넌 배구 안 되잖아. 니가 뛸거면 우선이가 낫지."
"억!"
성수가 계속 말을 이었다.
"다름아니고, 지방대회치고 의외로 상금이 쏠쏠하더라고. 1등 팀 100만원, 2등 50만원, 3등이 각각 20만원씩이던가? 그래도 현직 대학 선수가 끼어 있는데, 4강 안에는 들지 않겠냐? 상금 타면 저녁에 체육과 회식비로 쏠 수도 있고 말이야."
도훈은 돈이 중요하지 않았으므로 계속 고사했다.
막말로 100만원을 회식비로 찬조하라면 자비를 털어서라도 주면 그만이었다. 그만큼 그에겐 100만원이란 금액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에이, 그래도 무슨 수영캠프까지 가서 난데 없이 배구대회를 나가요? 취지에도 안 맞잖아요."
"왜? 우리과 이름도 날리고 좋지. 국성대 체육교육과 이름으로 출전하는 거니까 말이야."
"무슨 이름을 날려요. 조그만 지역 대회라면서."
"아냐, 은근히 그 대회 입소문 나서 외국 선수들도 많이 참가한데."
"외국인이라고요?"
잠자코 듣고 있던 우선이 성수의 설명을 보탰다.
"맞다. 저도 기사에서 봤어요. 비치 발리볼이 무조건 수영복을 입어야 하는 룰 때문에 막상 우리나라 팀은 많이 참가 안 한다더라고요."
"그건 왜?"
"아마도 비키니 입고 뛸만한 여자 선수가 많이 없나 봐요. 아니면 배구 잘하는 애들중에 몸매 좋은 사람이 몇 없거나."
도훈은 외국인 참가자가 나온다는 말에 생각을 바꿨다.
상금이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게임을 하면서 외국인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였다.
‘어? 잘하면 외국인 관련 업적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수 있는 거 아냐’
[그렇군요. 배구 경기로 친목을 도모할 수 있다면 말이죠.]
‘잘됐다. 안 그래도 흑마 업적 필요했는데. 게다가 인종의 도가니탕도 아직 남았고 말이야.’
결심을 마친 도훈이 성수에게 대답했다.
계속 빼다 마지막에 겨우 승낙하는 모양새였다.
"알았어요. 유미 참가한다고 하면 한 번 생각해 볼게요. 전 사실 비키니 입는 규정 때문에 유미가 불편할까 봐 그런 거였어요. 저야 남자니까 상관없지만."
도훈의 대답에 성수가 노렸다는 듯 씩 웃었다.
"크크. 그럼 결정됐네."
"네? 아니 유미 대답을···."
"벌써 승낙했지, 짜식아. 사실 엊그제 유미한테 전화 와서는 비치발리볼 대회 나갈 건데 도훈이 너 선수로 넣어 달라 부탁하더라. 배구 주전들 제외하면 네가 제일 낫다면서."
‘억! 그럼 유미한테 낚인 거였어?’
왠지 여름 수영 캠프가 벌써부터 불안해지는 도훈이었다.
< 942. 별이 쏟아지는-2-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