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1. 별이 쏟아지는-1- >
도훈이 성수에게 전화하니 지하 1층 식료품 매장을 털고 있다고 했다.
"매장을 턴다고요?"
-와서 보면 알아.
도훈이 직접 성수 일행을 만나보니 매장을 턴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이, 이게 다 뭐예요?"
한 사람당 쇼핑 카트 양손에 두 개씩.
그것도 산처럼 위로 가득 채워진 것들뿐이었다. 도훈은 어마어마한 양에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어, 도훈이 형 오셨어요?"
"야, 생각해봐. 머릿수가 무려 40명이야. 그것도 3일분이나. 이 정도도 모자라지 않겠냐?"
성수의 대답에 도훈이 기가 막힌 듯 카트 안의 내용물을 훑었다. 주류가 든 카트만 2개였는데, 피쳐 맥주가 5박스. 소주가 두 박스, 나머진 막걸리와 샴페인까지 꽉꽉 들어있었다.
"아니, 샴페인은 좀 오버 아니에요?"
"몰라, 최대한 싼 걸로 태영이가 고른 거야. 기분만 내자면서."
"헤헤, 태안 가서 축포 한 번 터뜨려야죠."
‘미, 미친.’
나머지 카트에는 라면 한 박스, 각종 야채와 고기류, 그리고 과자와 생수 등이 담겨있었다. 그렇게 산처럼 가득 쌓인 카트가 6개. 도훈이 어이없어 하는데 성수가 말했다.
"야, 쌀도 사야되니까 너도 얼른 카트 하나 끌고 와."
"여기에 하나 더요?"
"당연하지. 그럼 너만 빈손으로 가려고 했냐."
다행히 주변에 빈 카트가 있길래 도훈이 하나를 끌고 왔다. 그러자 성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20kg 짜리 쌀 포대를 얹었다.
"읏차!"
"아니, 무슨 한 포대씩이나 사요, 쌀을."
"말했지만 40명이 3일간 지어먹을 밥이라고. 식사가 7번이니 280인분은 지어 먹어야지."
"성수형, 남자들은 이인분으로 잡아야죠."
"아, 그렇지. 그럼 한 포대 더?"
성수가 한 손으로 또 쌀 포대를 들어 올렸다. 실로 어마어마한 괴력. 보다 못 한 도훈이 이를 뜯어말렸다.
"거기까지. 20킬로면 차고 넘쳐요. 아니 무슨 우리 태안에 밥 먹으러 갑니까? 가서 먹방 찍어요?"
"먹는 게 남는 거지."
"아니 라면도 한 박스나 있고, 고기도 엄청 있잖아요. 남아봐야 짐만 되니 그쯤 해둬요."
"그럴까?"
도훈이 절래절래 고개를 가로 저었다.
‘누가 보면 씨름단 전지훈련 가는 줄.’
[그러니까요. 좀 과하긴 하네요. 성수군이 손이 좀 큰 편이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다 자기처럼 처먹는 줄 아네.’
"이렇게 많이 살 거면 차라리 현지 조달이 낫지 않아요? 아무리 관광버스라도 싣고 가는 것도 일인데."
"우선이가 찾아봤는데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가 10킬로 밖에 있다더라고. 아무리 체육과에 남자가 많아도 이 많은 걸 무슨 수로 들고 가냐."
"맞아요, 형. 게다가 바캉스 시즌이잖아요. 휴양지에선 무조건 바가지 씌울 걸요."
"아니 내 말은 그냥 태안 시내 마트에서 배달시켜도 되지 않겠냐는 거지."
도훈의 우문현답에 남자 셋이 멀뚱히 서로를 쳐다보았다.
마치 이제야 이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아차! 그런 방법이."
"이런 멍청이! 왜 배달을 생각 못 한 거야."
"형, 그럼 이거 다시 갖다 놓을까요?"
‘와, 진짜 노답 3형제.’
도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다시 가져다 놓는 게 더 일이겠네. 그냥 사요. 어차피 내 차에 실으면 되니까."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사서 가자."
"맞아요. 그래도 여기가 조금이라도 싸지 않을까요? 그래도 최저가 보장하는 엑스마튼데."
우선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태, 태영아. 태안 시내에도 엑스마트 있었어."
"앗."
"됐고, 얼른 담기나 하라고요. 혹시 더 살 거 있어요?"
3일간 식단을 짠 우선이 수첩을 꺼내 삭선 된 목록을 살피더니 말했다.
"아뇨. 방금 올린 쌀이 마지막이었어요. 계획대로 모두 구매했어요."
"자, 그럼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각자 물품 살 시간 줄 게. 태영이 너 아까 수영복 필요하다며."
"넵, 그럼 전 2층으로."
"야, 나도 같이 가자 수경 필요한데."
태영과 우선이 2층으로 올라가자 도훈과 성수만 둘이 남았다. 성수가 뻘쭘한 듯 도훈에게 말했다.
"진작 너부터 부를 걸 그랬다야. 미련하게 여기서 장을 싹 다 봤으니."
"어쩔 수 없죠. 이미 다 봐버린걸."
"역시 도훈이 네가 집행부를 해줘야 해. 머리 돌아가는 게 차원이 다르잖아."
"아니 이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우선이가 아직 미필이라 그런지 센스가 부족하단 말이지."
"그게 미필이랑 무슨 상관···."
성수가 불리한지 화제를 돌렸다.
"야. 그나저나 넌 무슨 해가 중천에 떠서 일어나냐? 진짜로 밤에 폭딸 치다 잔 겨?"
‘폭딸은 무슨, 내 손으로 물 안 뺀지 반년도 넘었겠구만.’
"아니에요. 게임하다 잤어요."
"이햐, 천하태평이구만. 방학이라고 날 새서 게임이나 하고. 하긴 2학년 때 많이 즐겨놔라. 3학년 되니까 임용 준비하느라 놀지도 못하겠다."
"알아요. 벌써부터 겁주고 그래."
"오죽하면 내가 그렇겠냐? 그리고 기왕 노는 김에 혼자 폐인처럼 집구석에서 게임만하고 놀지 말고 여자도 좀 만나. 너 내년 되면 씨씨하고 싶어도 바빠서 못 해."
"꼭 씨씨를 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인마, 그래도 서로 힘들 때 의지할 여자친구 있으면 얼마나 좋은데. 난 여자친구랑 같이 임용 공부하니까 훨 낫더라."
성수가 능글맞게 웃으며 덧붙였다.
"밤에 스트레스도 같이 풀고 말이야. 흐흐."
[성수군이 파스 효과를 톡톡히 본 모양이네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데요. 일전에 봤던 고개 숙인 남자가 아닙니다.]
‘파스 괜히 줬나봐. 자기 좋다고 자꾸 나보고 여친 사귀라는 데 귀찮아 죽겠네.’
도훈이 대꾸가 없자 성수가 계속 꼬드겼다.
"야, 그러지 말고 너 이번 캠프에서 새끈한 후배 하나 꼬셔봐. 태영이가 그러는데 1학년 사이에서 너 인기 완전 쩐다 더라. 동기 톡방에서 네 얘기 엄청 많이 나온 데."
‘하여간 김태영 이 촉새 자식은 입도 싸긴.’
"됐고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참, 그나저나 아까 장보다가 태영이가 말해줬는데 1학년 여자애들 있지? 그 팔선녀가 뭔가 하는."
"네."
"걔들 이번 캠프 때 입을 거라고 수영복 뭐 샀는지 서로 자랑하는데···. 어우, 민망해서 내 입으로 말도 못 꺼내겠다."
"수영복요? 1학년 동기 톡방에서 그런 얘기도 해요? 남자들도 있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태영이 말이 몇몇 여자후배들이 동기들을 거의 무슨 투명인간 취급하듯 신경도 안 쓰고 수영복 착샷을 올리더라는 거야."
"헐, 대박."
"쩔지? 확실히 요즘 애들이라서 다르긴 다르다야."
"걔들은 대체 왜 그런데요?"
때마침 개인 장보기를 마친 태영이 다가와 부연 설명했다.
"우리과 여자 동기들이 저흴 남자로 안 보거든요."
"응? 너 언제 왔냐. 물건 다 샀어?"
"네, 그냥 트렁크 바지로 대충 샀어요."
"근데 남자로 안 본다는 게 무슨 말이야?"
도훈이 의문을 가지고 물었다.
태영이 한숨을 푹-내쉬며 대답했다.
"솔직히 사범대 안에서도 소문 쫙 났잖아요. 이번 학번 체육과 애들 여자들은 풍년인데, 남자들은 쪽빡이라고. 그래서 그런지 여자 동기들이 우릴 거의 사람 취급도 안 해줘요."
"야, 그건 좀 심한데. 아무리 그래도 동기끼리···."
도훈의 걱정에 태영이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긴다는 모습이었다.
"흐흐. 근데 하나도 서운하지 않은 게 그 덕에 여자애들 수영복 사진 실컷 구경했거든요. 그래서 아무 불만도 없이 닥치고 눈팅만 했어요."
"야, 너 사진 있다 했지? 함 봐봐."
"깨톡 사진첩에 저장되어 있을걸요. 잠시만요."
태영이 폰을 뒤져 사집첩을 열자 도훈과 성수가 호기심을 가지고 몰려들었다. 도훈은 8 선녀 대부분을 벗겨 보긴 했지만, 수영복을 입은 모습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여기 있네요. 여기서부터 시작이에요. 연두랑 나연이가 캠프 때 입을 수영복 샀다고 자랑하면서 스타트를 끊더라고요."
사진 속에는 수영복을 입은 두 명의 여대생이 서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화보에 나올 것처럼 쭉 빠진 비키니 사진이었다. 성수가 체면도 잃고 침을 질질 흘렸다.
"와, 대박! 얘들 이렇게 몸매 좋았냐?"
"그러니까요. 라인 쩔죠."
도훈은 나연과 연두가 늘씬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감흥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단 별론데.’
[주인님은 벗은 모습을 이미 알고 계셔서 그런게 아닐까요?]
도훈이 실망한 표정을 짓자 태영이 다음 사진으로 넘겼다.
"이게 끝이 아니에요. 나연이랑 연두가 올리고 나자 경쟁이 붙었는지 이번엔 경희가 사진을 올린 거예요."
"테니스 치는 강경희? 그 전국 대학 체전 준비한다던?"
"네, 한번 보세요. 애는 벌써 해수욕장 한 번 갔다온 줄 알았다니까요? 적당히 태닝 된 피부하며, 특히 비키니가 진짜 예술이에요."
태영이 보여준 두 번째 사진 속엔 강경희가 수줍게 셀카를 찍은 모습이 담겨있었다. 경희는 과감하게도 가슴 쪽이 훤히 파인 스타일이었는데, 골짜기 부분만 동그랗게 패여 더욱 야해 보였다.
"와, 경희 애도 은근 몸매 쩔구나."
"대박이죠? 확실히 여자도 적당히 까무잡잡해야 섹시하다니까요."
‘음, 경희가 발육이 남다르긴 하지.’
[굉장히 과감하군요. 저런 수영복이라니.]
도훈도 살짝 마음이 동하는데 태영이 한 술 더 떴다.
"여기가 끝이 아니에요. 경희가 올린 다음 날 서현이가 올린 게 더 대박이에요."
"박서현? 체육과 수석 입학한 범생이? 걔도 비키니야?"
"말도 마요. 평소 쓰던 안경도 벗고 사진 올렸는데, 와 진짜 입을 못 다물겠더라고요. 한번 보세요."
세 번째 사진은 특이하게 뒤태를 찍은 모습이었다. 앞선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드가 딸리는 서현은 최대한 각선미를 부각시키는 컨셉을 잡은 듯했다.
사진을 보던 성수가 갑자기 헉- 하는 비명을 내질렀다.
"와, 와 미쳤네 애들 진짜. 이걸 입고 온다고?"
"쩔죠?"
"티팬티 실화냐?"
"티팬티?"
도훈도 놀라서 눈을 껌뻑였다.
놀랍게도 사진속의 서현은 엉덩이가 훤히 다 보이는 티팬티를 착용하고 있었다. 아슬아슬 가운데만 가린 모습이 놀랍도록 섹시했다.
"보니까 비키니 라인으로 제모까지 한 것 같더라고요."
"티팬티 입으려면 어쩔 수 없지. 와, 근데 이건 좀 선 넘은 거 같은데."
"진짜 끝판왕은 아직 등장도 안 했어요."
"여기서 더 있어?"
"있죠. 1학년 최고의 핫바디가 누굽니까?"
"글쎄? 난 1학년은 잘 모르는데."
도훈이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설마 양희주?"
"딩동댕. 이건 어제 올라온 따끈따끈한 사진이거든요. 한 번 보세요."
태영이 끝판왕이라 부르는 희주의 사진이 핸드폰에 띄워졌다. 어느새 다가온 우선까지 도합 4명의 사내들이 조그만 핸드폰 하나에 몰려들어 초집중 상태로 사진을 보고 있었다.
"헉! 뭐야 이건."
"으아. 이건 선 넘은 거 같은데."
도훈은 사진을 보는 순간 태영이 끝판 왕이라고 말한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희주의 비키니는 흔히 업사이드 다운이라고 불리는 스타일로 목에 끈을 매는 대신 가슴 윗부분에서 끈을 매는 방식이었던 것. 특히 가슴 중앙에 큰 구멍이 남겨 있어 밑가슴부터 골
짜기가 훤히 드러난 형태였다.
팬티 역시 나뭇 잎사귀 한 장을 붙여놓은 듯 손바닥 만한 사이드의 천을 골반 옆에서 헐겁게 매듭 진 스타일이었는데, 실수로 끈을 잡아 당기면 그대로 벗겨지게 만들어져 있었다.
놀랍도록 야한 비키니에, 러시안 혼혈의 핫바디가 결합된 결과는 분명했다.
"우어어어어! 1학년 여자애들 단체로 왜 이러냐!"
뒤늦게 합류한 우선이 입에 거품을 물 정도였다. 여자친구를 끔찍이 사랑하는 성수 역시 입에서 침을 닦지 못했으며, 태영은 동기사랑 나라사랑을 증명하듯 자신이 매니저라도 된 것처럼 으쓱해 했다.
[와, 희주양은 무슨 모델 사진 같군요. 몸매가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만.]
‘다 내 덕이지 뭐. 수영복 입었을 때 제일 예쁠 몸이니까.’
[흐흐. 이쯤 되면 육정음양도 슬슬 궁금하지 않습니까?]
‘정음이는···. 음, 내 생각에 비키니 안 입을 걸.’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걔 취향을 내가 모르냐? 처음 봤을 때 곰돌이 팬티 입고 있었잖아. 저런 야한 비키니는 꿈도 못 꿀걸.’
[정음양도 한 몸매 하는 데 말이죠. 희주양 못지 않게.]
‘어차피 꽁꽁 싸매고 다니니 잘 모를 거야.’
도훈이 그런 생각을 하는데 우선이 은근슬쩍 태영을 찔렀다.
"야, 근데 걔 건 없냐?"
"누구요?"
"왜, 1학년에서 제일 예쁜애 있잖아. 그 뭐더라 성씨 특이한 애."
"아, 정음이요?"
"어어, 걔가 8선녀 중 탑 아니야?"
"정음이는 사진 안 올렸을걸요? 그리고 걔는 이런 거 싫어해요. 톡방에서 얘기도 잘 안 하던데."
우선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래? 난 걔가 젤 궁금했는데."
‘우선이 저 새끼가 감히 누굴 넘봐?’
[넘보다니요. 우선군은 주인님이랑 정음양이 그렇고 그런 사인걸 전혀 모를 텐데요. 아니 체육과에선 서현양 말고는 아무도 모르지 않나요?]
‘그렇긴 한데, 누가 정음이 몸매 궁금하다고 하니까 괜히 기분 나쁘네’
도훈이 예민해져 있는데, 갑자기 태영이 소리쳤다.
"억! 잠깐만요. 지금 정음이가 수영복 샷 올린 거 같아요!"
"레알?"
< 941. 별이 쏟아지는-1-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