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0 여름 방학-32- >
정원이 도훈에게 찰싹 달라붙으며 물었다.
"근데 너 몇 살이야? 아직 정확한 나이도 모르고 있었네."
"몇 살처럼 보이는데요?"
도훈은 역용 마스크를 쓴 자신이 몇 살처럼 보이는지 궁금했다. 30대 정도로 변장하긴 했지만, 실제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어떨지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음, 대충 서른? 아니면 스물아홉? 근데 몸은 20대 초반같이 탄탄하네. 운동 많이 하나 보다."
"운동은 뭐···. 그냥 타고난 거라."
"정말? 이야, 부럽다."
정원이 은근슬쩍 도훈의 가슴에 손을 얹더니 근육질의 몸매를 어루만졌다. 섹스할 때 느끼긴 했지만, 얼굴보다 몸이 훨씬 매력적인 사내였다. 껄렁한 말투만 아니었음, 대부분의 여자들이 호감을 느낄만한 외모도.
"누님도 만만찮소. 아직도 탱탱하구만 뭘."
"에이, 난 아줌마 다됐는데 뭘."
도훈의 칭찬은 딱히 아부가 아니었다. 정원은 30대 중반이라곤 믿기지 않는 훌륭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봉긋 솟은 젖가슴이나, 매끈한 피부결은 당장 20대 후반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나이가 뭐 대순가? 거기만 쫄깃하면 그만이지."
"어휴, 너는 말을 해도 어쩜···. 그리고 말 편하게 해. 존댓말 계속 하니까 괜히 어색하다."
"난 원래 고객이랑 말 안 놓는 주읜데···."
정원이 허리를 껴안으며 등 뒤로 가슴을 부딪쳐 왔다.
"내가 그냥 고객이야?"
"그럼?"
도훈은 자꾸 엉겨 붙는 정원이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도도하게 굴던 그녀가 정감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묘한 뿌듯함마저 느껴졌다.
‘이 아줌마도 나한테 뻑갔구만?’
[그러게 말입니다. 근데 어떻게 사람이 180도 확 달라질 수가 있죠? 섹스 한 번 했다고.]
‘그만큼 좋았나 보지, 뭐. 따지고 보면 김변에게 버림받자마자, 더 훌륭한 기둥서방을 만난 셈이니까. 똥차 보내고, 새 차 받은 느낌이랄까?’
[한마디로 김변이 똥이었군요.]
"넌 고객이랑 이런 거 자주 하나 보다?"
도훈이 자꾸 선을 그으려 하자 정원이 토라진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아무나 따먹고 다니는 난봉꾼으로 보이쇼?"
"아니야?"
"뭐, 꼴리면 박긴 하지만 적어도 아무나는 아니지. 누님처럼 맛있는 것만 먹고 다니니까."
"치."
"누님 진짜로 맛있어."
"됐어."
"진짜라니까. 난 마음에 안 들면 좆도 안 꼴리거든. 아까 잔뜩 꼴린 거 봐놓고 그래."
"진짜로?"
"당연하지. 고객이고 뭐고 일단 눕혀서 따먹고 싶을 만큼."
"치. 말도 이쁘게 하네."
"난 아직도 김변이 누님을 버린 게 이해가 안 돼."
도훈이 김변을 언급하자 정원의 얼굴이 대번에 찡그려졌다.
"그 새끼 얘긴 꺼내지도 마. 앞에 있으면 확 걷어 차주고 싶은 심정이니까."
"놈이 그렇게 밉소?"
"당연히 밉지. 처음부터 내가 꼬신 것도 아니었어. 놈이 술 먹고 먼저 덮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된 거지."
"그럼 강간이란 말이요?"
"아마도."
"헐. 그때 확 신고해 버리지 그랬어?"
"그땐 너무 놀랐어. 남편한테 들킬까도 무서웠고, 혹시나 그것 때문에 이혼 당하면 내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감당 못 하겠더라고."
"흠."
"물론···. 처음은 실수 였어. 둘 다 취해있었으니까, 어쩌다 일어난 사고라고 생각했지. 근데 그게 이렇게 오래 갈 줄은 몰랐지만."
"그렇게 된 거 였구만. 나도 처음엔 누님과 김변이 하나도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나도 잘한 건 없어. 남편은 애 낳은 뒤론 날 거들떠보지도 않지, 그와 중에 젊은 김변은 적극적으로 들이대지. 몸은 외롭고, 이미 한 번 버린 몸이라고 생각하니 두 번 세 번은 쉽더라고. 내가 미쳤지."
"누님도 참···."
"그래도 김변이 그 새끼가 나한테 날 뒤통수치면 안 되는 거야.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아직도 놈이 밉소?"
"밉지. 정말로 싫어. 내가 그 거지 같은 성격 다 받아줬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최소한 헤어지더라도 미안하다는 말은 해줘야 하는 거 아냐? 근데 뭐 나를 꿔다놓은 보릿자루 취급해? 에피타이져? 하-. 나쁜 새끼."
"그것 맞소. 예의 없는 놈이지."
"그런 말론 부족해. 싸가지 밥 말아 먹었다고 해줘."
"싸가지 밥 말아 먹은 놈."
"물건도 시원찮은 놈."
"흐흐. 나랑 비교해서?"
"감히 누굴 들이대? 너랑은 비교도 안 돼. 하늘과 땅 차이야."
"알면 됐소."
"그나저나 김변은 어떻게 망가뜨릴거야? 구체적인 방법이 있어?"
"생각해 놓은 건 있소."
"알려줘.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최대한 돕고 싶어."
"일단은···."
도훈은 차분히 계획을 설명했다.
내용을 모두 들은 정원이 도훈에게 물었다.
"음, 정말로 그렇게 할 수 있겠어?"
"그래서 누님의 돈이 필요한 거요.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 해야 할 테니까."
"돈은 조금도 걱정마. 내가 최대한 빠르게 마련해 볼 테니. 다만 내 걱정은 그 여자를 어떻게 설득하냐는 거야."
"그건 나한테 맡겨두쇼."
"알았어. 그럼 현금으로 줘야겠네? 3억을 계좌이체하면 기록에 남을 테니까."
"그렇지."
"음, 그럼 다음 주 정도에 한 번 만나. 내가 준비되는 대로 연락 넣을게."
"알겠소. 사전 밑밥은 내가 다 깔아 놓은 테니 누님은 누님 할 일만 신경 쓰쇼."
"응. 너만 믿고 있을게. 난 김변 그 새끼가 꼭 패가망신했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정원이 결기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도훈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근데···. 이제 갈 거야?"
"왜? 누님은 집에 안 들어가게?"
"나 오늘 남편 출장이라···. 원래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갈 생각이었거든."
도훈은 살짝 당황했다.
‘뭐야, 설마 한 판 더 땡기자는 건가? 아줌마 성욕하고는.’
도훈을 어루만지던 손은 어느새 지퍼를 끌어 내리고 있었다. 지퍼 속으로 손을 집어넣은 정원이 대물을 주물럭거리며 도훈의 귀에 속삭였다.
"···나, 지장 한 번만 더 찍어주면 안 돼?"
결국, 도훈은 그날 좆이 아플 때까지 정원을 눌러줘야 했다.
꾹꾹-
몇 번이고.
***
도훈이 모텔을 빠져나온 시간은 새벽이 훌쩍 넘어서였다.
3차례나 지장을 계속 찍어주고 나서야 겨우 나가떨어진 정원에게 짤막한 메모를 남긴 도훈은 모텔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혀를 내둘렀다.
‘와, 아줌마 겁나 질기네. 3억 준다고 몇 번을 뽑아먹는 건지.’
[고생하셨습니다. 주인님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는 오랜만이군요.]
‘아무튼, 질이 헐 만큼 해줬으니 한동안 잠잠하겠지. ’
도훈은 주차해둔 차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정말로 가능하시겠습니까?]
‘뭐가?’
[김변의 스폰녀를 이용하는 계획이요.]
‘설득해 내야지. 어차피 여자 후리는 건 내 전문이야.’
[아니 그래도, 상대역시 쌍방 처벌을 받을지 모르는데···.]
도훈의 계획은 쉽게 말해 논개 작전이었다.
스폰서를 하는 여대생을 꼬드겨 김변을 성매매특별법으로 엮는 것이다. 실형이 떨어지면 한동안 변호사는 자격정지 된다. 여자도 잃고, 직장도 잃는 일타 쌍피인 셈.
‘그래서 매수할 돈이 필요한 거야. 20살 여대생에게 억 단위 돈은 결코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거든. 용돈이 주기적으로 필요할 만큼 생활고에 쪼들리는 여학생에겐 더더욱.’
[주인님 계획대로만 된다면야 이제 김변도 나락으로 떨어지겠군요.]
‘그 새낀 당해도 싸지. 감히 민주를 담글 생각을 하다니. 감히 누구 여잘 건드려?’
[그나저나 일정이 좀 겹치겠는데요? 내일 모래가 당장 체육과 수영캠프 출발 일 아닙니까?]
수영캠프는 이미 5월 달부터 정해져 있던 체육과 주요행사 중 하나였다. 특히 도훈은 수영 교관으로 참가하기로 되어 있어 빠질 수 없는 행사기도 했다.
‘거기 다녀와서 시작하면 돼. 어차피 정원이 3억 마련하려면 일주일은 족히 걸릴 테니까.’
[방학 참 알뜰하게 보내시는군요.]
‘그러게나 말이다. 일단 집에 가서 좀 쉬어야겠다. 예기치 않게 힘을 빼서 그런지 영 피곤하네. 너무 긴 밤이었어. 타짜도 기둥서방 노릇도.’
도훈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그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정오 쯤 성수의 전화를 받고 나서였다.
"여보세요."
-뭐야, 목소리가 왜 그래. 너 설마 이제 일어난 거냐?
"누구···. 성수 형?"
-그래. 형이다인마. 그니까 밤에 딸딸이 적당히 치고 자라니까. 크크.
도훈은 전화를 받다 피식 웃었다.
‘딸딸이면 이랬겠냐. 30대 미씨한테 죽도록 기빨리다 왔구만.’
"어쩐 일이세요, 근데?"
-어쩐 일은 인마. 내일 캠프 출발하는 건 알고 있지? 준비가 됐는지 확인차 전화 넣었다.
"네."
-무슨 대답이 그렇게 성의 없게 나와? 몸은 다 만들었고?
"수영 가르치는 데 무슨 몸을 만들어요? 동네 수영장 다니면서 며칠 연습 좀 했어요. 영법은 어느 정도 회복된 거 같아요."
-이 새끼, 수영이야 대충 가르치면 되지.
"대충이라뇨?"
-너 같은 솔로에겐 여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몸이 더 중요하잖아. 화끈하게 벗을 건데.
"참나, 어필해서 뭐하게요? 어차피 다 우리과 애들 아니에요?"
-하. 진짜, 하나뿐인 후배 외롭지 않게 해주려고 무진장 애쓰는 선배 마음도 몰라 주네. 야, 너 그리고 우리과 애들 무시마라. 이게 해수욕장 가서 보면 또 다르다니까?
도훈은 어이가 없었다.
‘알지. 내가 다 벗겨봤는데, 몸매도 모를까봐.’
-너 군대가 있을 때 내가 2년 연속 갔었단 말이야. 갈 때마다 aosksf 과씨씨 탄생하고 난리도 아니었어. 과씨씨 탄생의 보고랄까?
"운동하러 가놓고 딴 짓하는 건 좀···."
-그게 분위기가 그렇게 안 된다니까 그래. 저녁에 해변에서 술 먹고 어울리다 보면, 은근히 아니던 사람들도 기분이 붕- 뜬단 말이지. 한 여름밤에 해변, 시원한 맥주, 그리고 비키니. 캬-. 그림 나오지 않냐?
"아니 형, 요새 뭐 잘 못 드셨어요? 사람이 좀 야해진 것 같네."
-무, 무슨 소리야 인마. 네가 준 파스로 여친이랑 왕성하게 뜨밤 보내고 있는데.
"근데 왜 그래요? 형이 더 들뜬 것 같네."
-아니, 난 너 연결시켜 줄라고 그러지. 너한테 고마운 것도 많으니까. 아무튼 딱 찍기만 해. 내가 적극적으로 밀어줄라니까.
"됐고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잘 합니다."
‘풉- 들었냐? 누가 누굴 밀어준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래도 성수군은 착하군요. 주인님 생각하는 마음보면.]
‘착하지. 곰처럼 학과 일만 하는 등신이잖아. 적당히 뺑끼도 부리기도 해야지, 사람이 너무 성실해. 군대에서 허리 다친 것도 무리한 작업하다 그런 거잖아. 몸 사렸으면 의병제대 할 일도 없었을 텐데.’
-여튼, 할 일 없음 나와라. 밥이나 먹게.
"점심요?"
-어. 지금 우선이랑 같이 장보러 나왔거든? 1학년 태영이도.
"태영이도요?"
-장 볼 게 한두 개가 아니라서 말이야. 거진 40명이 2박 3일 먹을 분량이라.
도훈이 불쑥 핵심을 찔렀다.
"혹시 짐나를 차 필요하신 건 아니고요?"
-와! 새끼, 눈치도 존나 빠르네. 어떻게 알았냐?
"그 정도면 차로 실어 날라야 되잖아요. 딱 보니까 셋 다 차는 없고."
-크크. 미안, 원래 우선이가 아버지차 잠깐 빌리기로 했는데, 급한 일이 생겨서 끌고 나가셨나봐. 그걸 만나서 처 얘기하고 있네. 아니면 우리 집에 있는 차라도 가지고 나올 걸.
도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았어요. 준비해서 나갈게요. 어딘데요?"
-어, 엑스마트로 오면 돼. 지금 셋이서 장 보는 중이야. 대신 점심은 거하게 형이 쏜다.
"됐고요. 가서 전화 할게요."
도훈은 통화를 끊고 나갈 채비를 갖췄다. 대충 샤워하고 츄리닝 챙겨 차에 오르니 10분이면 충분했다. 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하는데 흥신소 최번개에게서 전화가 왔다.
-행님, 최번갭니다 행님.
"어, 그래."
-어제 일은 잘 마무리되셨습니까? 저희가 도와드리려고 했는데 필요 없다고 하셔서.
도훈은 어젯밤 최번개 일당이 현장 급습을 돕는다고 할 때 혼자 하겠다며 그들을 물리쳤다. 아무래도 제3가 끼면 괜히 복잡해질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아, 어제. 안 그래도 전화하려다가 깜빡했다. 어제 허탕쳤어."
-허탕이요?
"어. 햐, 고 새끼 존나 토끼 새끼더라고. 현장 덥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이미 끝나버렸지 뭐야?"
-억, 먼저 들어간 지 10분도 안 지나서 갔는데 그새요?
"그러게 말이야. 씻지도 않고 들어가자마자 헐레벌떡했나 보더라고. 근데 조루끼가 있는지 찍 싸버려서 현장이고 뭐고 증거가 있어야지."
-하-. 어이가 없는 새끼네요, 행님.
"그래서 혹시나 한 번 더 할까봐 계속 기다리는데 두 번은 없더라고. 네가 현장을 찍어야 한다면서? 아니면 증거 효력이 없다고."
-맞습니다요, 모텔에 같이 있더라도 직접 삽입증거가 없으면 인정이 안 되거든요. 놈이 변호사니까 그런데 더 빠삭할 거고요. 어케 그럼, 다음번 만남 때까지 계속 감시할까요?
"아니야.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간통죄도 없어진 마당에 불륜으로 엮어봐야 위자료 물어주고 끝날 게 뻔하겠더라고. 그걸론 안되겠어."
-그럼···.
"그 스폰한다는 여대생있지?"
-네, 있습니다요.
"그 여자애 신상 좀 털어 봐. 무슨 대학 다니는 누군지, 집안 환경은 어떤 지, 누굴 만나고 다니는지. 통장 잔고까지 싹 다."
-흐음, 이건 시간 좀 주셔야겠는데요. 최소 사나흘은.
마침 도훈의 수영캠프와 딱 겹쳤다.
"상관없어. 아무튼 최대한 신상 털어와봐."
-알겠습니다, 행님.
전화를 끊은 도훈은 어느새 마트에 도착했다.
< 940 여름 방학-32-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