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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938화 (905/2,000)

< 921. 여름 방학-13- >

통상 심부름센터라고 이름 붙은 곳들은 대부분 흥신소다.

흥신소란 쉽게 말해 무슨 일이건 돈만 주면 다 해결해 주는 곳이다. 설사 불법적인 일이라도 액수만 맞으면 상관없다.

행복 심부름센터는 딱히 사무실이 좋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인지 연식이 30년도 더 되어 보이는 초라한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비좁은 계단 사이엔 까맣게 달라붙은 껌딱지와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들로 수북했다.

계단을 통해 3층에 오르자 건물 밖에 험상궂어 보이는 떡대 하나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도훈 역시 만만치 않은 인상이었기 때문에 곧바로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무슨 일로···."

"길 터, 돼지 새끼야."

"···예?"

상대는 움찔했지만, 도훈의 흉흉한 기세에 감히 덤벼들지 못했다. 이 바닥의 생리란 강해 보이는 사람 앞에선 찍소리도 못하는 법. 도훈은 문지기나 하고 있는 놈이 실력자일 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아니, 설사 실력자라도 상관 없었다.

떡대가 우물쭈물하며 다시 물었다.

"저희 사장님하고 아시는 분인가요? 혹시 누구라고···."

"얼른 문이나 열라고. 확 씨!"

도훈이 문신 가득한 팔을 쳐들자 사내가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막았다. 예상대로 덩치만 컸지 배짱이라곤 조금도 없는 쫄보였다.

"죄, 죄송합니다."

떡대가 공손한 태도로 문을 열어주었다.

도훈은 거드름을 피우며 사무실로 들어가며 한 마디했다.

"야. 쓸데없이 서 있지 말고 입구 청소 좀 해라. 원참, 더러워서 발을 들이기도 싫네."

"아, 네, 넵!"

도훈이 사무실에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있던 사내 셋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도훈이 들어오면서 한 소리를 들었던 것.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 있는지 파악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당연히 족보도 없던 도훈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눈치가 빠른 사내 하나가 벌떡 일어서더니 폴더 인사를 건넸다.

"오셨습니까 행님!"

그를 따라 나머지 둘이 헐레벌떡 일어나 나란히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까!"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조용히 쏙닥거렸다.

"누, 누군데?"

"몰라 나도 새끼야. 그냥 인사부터 박아."

도훈은 심드렁한 표정을 짓더니 사장 의자로 보이는 가장 좋은 가죽 의자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그러면서 두 발을 책상 위로 뻗어 다릴 꼬았다.

"나랑 통화한 놈이 너야?"

도훈의 물음에 가장 먼저 인사를 올린 녀석이 잽싸게 튀어나갔다.

"넵, 행님. 최번갭니다, 행님."

"이름하고는···."

도훈이 거들먹거리며 담배를 꺼냈다. 그 순간 번개 잽싸게 지포라이터를 열어 불을 붙였다.

"불 있습니다, 행님."

도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시 보니 이름 하나는 잘 지었네."

"예?"

"불 하나는 번개같이 붙이잖아."

도훈의 썰렁한 농담에 번개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부하들은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근데 대체 누구지? 조직에 있을 땐 본적이 없는 얼굴인데···.’

번개는 한때 민수가 행동대장으로 있는 석산파의 식구였다. 지금은 독립해 조그만 흥신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래도 정식 조폭 출신이었기 때문에 어지간한 주먹들 계보는 꿰고 있는 편이었다.

"행님, 차라도 한 잔 올릴까요?"

"어, 커피로."

"야. 쌩쌩이. 커피 한 잔 타와라."

"네."

부하를 시킨 번개가 도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근데 민수 행님하곤 어떻게 아시는···."

"민수가 말 안했어?"

번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냥 아시는 분이라고···. 혹시나 연락오면 시키는 대로 따르라고만···."

"그랬구만. 나, 목포에서 왔어."

"모, 목표요? 목표면 혹시 국제파···."

도훈이 나오는 대로 씨부리자 번개가 알아서 살을 붙였다.

"아! 그, 그러셨구나. 죄송합니다. 제가 아래쪽은 잘 몰라서."

"···뭐 인마?"

도훈이 인상을 팍 구겼다.

안 그래도 근육질 몸매에 문신까지 위협적인 도훈이 인상을 찌푸리자 대번에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시골서 올라왔다고 무시하냐?"

"아, 아닙니다 행님! 제가 어찌 그러겠습니까요. 사투리를 전혀 안 쓰셔서 몰라 뵜습니다, 행님."

"왜? 사투리 막 써브까?"

[···뭔가 어색한데요.]

‘알게 뭐야. 저 새끼가 따질 것도 아니고. 애들 확 쫀 거 같지?’

[그래 보입니다. 주인님 인상보다는 그 민수라는 사람의 영향력 같긴 하지만요.]

‘민수가 생각보다 끝 발이 있네. 잘 됐어.’

그때 쌩쌩이라는 놈이 커피를 타가지고 왔다. 커피를 받아든 도훈이 고개짓을 하며 말했다.

"너네 사장이란 둘이 할 얘기가 있으니까 잠깐 나가있어."

"넵!"

부하들을 모두 물리친 도훈이 번개를 향해 말했다.

"아까 김변 한테 전화 왔었다고?"

"네, 행님. 저랑 몇 번 거래했던 행님 소개로 연락했다는데···. 혹시 그 새끼 뭐 사고 쳤습니까?"

"아니야. 자세한 건 알 거 없고. 그 새끼 신상 따는 데 얼마나 걸려?"

"신상이요?"

"어. 뭐하고 다니는 지, 누굴 만나는지, 그런 거."

"맡겨주시면 3일 안에 털 수 있습니다 행님."

"그래? 하는 김에 한 명 더 알아봐."

"누구 말입니까, 행님."

"폰 번호만 알려줘도 찾아낼 수 있지?"

"네, 행님. 요샌 택배 쪽 애들이랑 쪼인해가지고 번호만 따면 주소는 금방입니다, 행님."

도훈이 메모지에 폰 번호를 적었다.

아까 민주와 있을 때 외워둔 외삼촌 번호였다.

"이렇게 둘이. 신상 따는데 3일 준다. 할 수 있지?"

"네, 행님. 맡겨만 주시면 집안에 숟가락 개수까지 싹다 알아오겠습니다, 행님."

"숟가락이 몇 갠지는 궁금하진 않고. 이렇게 하자."

"어떻게 말입니까 행님."

도훈이 구체적인 주문을 했다.

"아까 전화온 놈은 여자관계 좀 파악해봐."

"여자요?"

"어. 만나는 여자가 누군지. 어디서 만나는지. 그런거."

"네, 알겠습니다 행님."

"그리고 방금 알려준 번호 주인은 재산 상황 좀 털어봐. 뭐 예금이고 부동산이고 그런 거 있잖아. 어디 돈 빌린 데는 없는지."

"알겠습니다, 행님."

도훈은 번개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가장 중요한 건 왜 알아오라는 지에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 태도였다.

"민수 소개로 왔지만, 내가 맨입으로 부탁하긴 그렇고."

도훈이 뒷주머니에서 5만원 권 다발을 꺼냈다. 차에 보관하고 다니던 비상금이었다.

"500. 이 정도면 애들 입에 기름칠 할 수 있지?"

묵직한 사이즈에 번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 아닙니다. 행님, 괜찮습니다. 민수 행님 부탁으로 도와드리는 건데 그 돈을 받을 순 없습니다, 행님."

그러나 도훈은 눈치가 빨랐기 때문에 번개가 돈에 욕심을 내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냥 한 번 사양해 보는 것이라는 것도.

"아니야. 받아. 난 공짜로 신세질 생각 없으니까. 왜 부족해?"

"아, 아닙니다 행님. 충분합니다 행님."

번개가 황송하게 두 손으로 돈다발을 받아들었다.

"잘할 수 있지?"

"네, 행님. 믿고 맡겨만 주십쇼, 행님."

"오케이. 그럼 난 가볼란다."

도훈이 의자에서 일어서더니 남은 커피를 한 번에 들이켰다.

"캬, 서울 커피는 겁나게 써블구마잉."

"다음에는 설탕 팍팍 치라고 하겠습니다, 행님."

도훈은 끝까지 거들먹거리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다시 차량으로 돌아온 도훈이 긴장을 풀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아-. 씨. 메소드 담배를 펴도 후달리네."

[잘 하셨습니다. 진짜 무슨 깡패줄 알았습니다.]

‘감쪽같았지?’

[예. 그 어색한 사투리 연기만 빼면요.]

‘메소드 담배가 사투리는 커버가 안되는 모양이야.’

[그나저나 굳이 돈까지 챙겨줄 필요가 있었을까요? 어차피 돈을 안 주셔도 민수라는 조폭의 명령 때문에 알아서 해줬을 텐데요.]

‘그걸 몰라서 쥐어줬겠냐. 피같은 500을?’

[네?]

‘걔들 때문에 준 게 아니야. 민수 때문에 준 거지.’

[민수 때문에요?]

‘신세 지기 싫어서. 이번 일 도와줬다고 괜히 얽혀봐. 어휴, 피곤해지느니 그냥 돈주고 시키는 게 났지.’

[아!]

‘그리고 오늘 쓴 착수금은 나중에 싹 다 돌려받을 거야.’

[누구에게요?]

‘누구긴 누구야. 민주 외삼촌이지. 내가 말했잖아.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돈을 잃어야 상실감이 가장 크다고.’

[아! 역시 주인님은 계획이 다 있으시군요.]

‘일단 애들이 조사해 온 것 좀 보고 견적 내보자.’

일을 마무리한 도훈이 집으로 차를 출발시켰다.

다시 집 앞에서 내렸을 땐 변장을 푼 도훈은 평범한 대학생으로 변신해 있었다.

***

도훈은 3일간 헬스와 수영을 병행하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 남지 않은 수영캠프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강산데 누군가를 지도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전생의 이도훈은 수영도 곧 잘하는 편이었다. 3일 동안 신체에 남아 있던 기억을 되살리자, 어지간한 동네 수영강사급 실력이 회복되었다.

그날도 연습을 마치고 수영장을 나서는데, 행복 심부름센터 최번개에서 전화가 왔다.

-행님, 시키신 거 다 조사해 놨습니다.

"그래? 요약해봐."

-네, 행님. 먼저 김경인 변호사 여자관계 부분입니다.

"어."

번개는 3일간 조사한 김변호사의 여자관계를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이넘아 여자관계가 너무 더럽던데요?

번개의 말에 따르면 김변호사에겐 애인이 있었다.

그것도 셋이나.

-원래 사귀던 여자가 있는데 지방에 있습니다. 사법시험 준비할 때부터 뒷바라지하던 여자친군데 멀리 있다는 핑계로 가끔 서울 올라올 때만 본다고 합니다. 집안이 썩 좋진 않은지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고요.

"오케이. 또?"

-나머지 둘은···

번개의 조사에 따르면 나머지 둘은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한 명은 소송 의뢰로 알게된 유부녀였고, 나머지 한 명은 유흥주점에서 일하는 여자였다.

"업소 여자?"

-네, 견적보니까 스폰 관계 같던데요?

"스폰? 변호사 주제에 무슨 스폰씩이나?"

도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스폰서를 하려면 집도 내주고, 다달이 생활비 조로 챙겨줘야 할 금액이 있었다. 제아무리 변호사라도 업소녀를 스폰으로 들이기엔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게···. 상대가 대학생입니다. 정식 스폰까진 아니고 만날 때마다 용돈을 쥐어 주는 모양인데, 쉽게 말하면 정기적으로 돈 주고 만남을 하는 원조교재 방식 같습니다.

"하-. 새끼, 완전 쓰레기네."

도훈이 혀를 끌끌 찼다. 보다 못한 로시가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주인님이 누굴 비난할 상황인지는···.]

‘야. 난 적어도 돈 주고는 안 하잖아.’

[그 차인가요?]

‘어쨌든 쓰레기지. 그 와중에 민주랑 맞선까지 봤다는 거지? 좆같이 생겨가지고 좆같은 짓만 골라서 하고 있네.’

[이제 어쩌실 생각입니까?]

똑같은 질문을 번개가 물었다.

-일단 파악은 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행님?

"잠깐만, 생각 좀 하고."

-네, 행님.

도훈이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김 변호사에게 물을 먹일 수 있을지.

‘조강지처 여친은 어차피 손절 할 생각인 거 같아. 그러니 지방에 놔두고 실컷 바람피우고 다니겠지.’

[아마도요.]

‘그럼 별로 타격은 아니고. 대학생 스폰도 성매매 특별법으로 엮을 순 있긴 한데, 증거가 없을 거란 말이야. 계좌로 입금하지 않은 이상. 변호사니까 당연히 현금처리 했을 테고···.’

[그렇겠죠?]

‘남은 건 딱 하나네.’

[유부녀요?]

‘그렇지.’

[하지만 간통죄가 사라졌지 않습니까?]

‘누가 간통으로 엮겠데?’

[그럼요?]

‘가정 있는 유부녀 건드리면 좆된다는 걸 몸소 체험시켜 줘야지.’

[왠지 주인님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결정을 내린 도훈이 번개에게 명령했다.

"김 변호사랑 만나는 유부녀 말이야, 접선 장소도 파악했어?"

-네, 행님. 싹 다 조사해 놨습니다.

"그럼 다음에 만날 때 나한테 위치 알려. 내가 처리할 테니까."

-애들 준비시킬까요?

"아니 됐어. 개인적으로 처리할 거거든."

-알겠습니다, 행님. 아, 그리고 노태윤 이 양반 재산도 조사해 봤는데요.

"노태윤? 아아, 그래. 말해봐."

도훈은 민주 외삼촌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완전 개털입니다.

"어?"

-겉으로는 멀쩡한 부동산 임대업자처럼 보이는데, 자산이랑 부채를 합산해 보니 깡통 중에 깡통입니다. 아마 계약 만료되는 시점에 터지면 가진 건물이고 재산이고 싹 다 털릴겁니다.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라. 부동산 관련 일을 한다는 게 임대업자였구만? 게다가 깡통 건물주고.’

[깡통 건물주가 뭡니까?]

‘쉽게 말해서 남의 돈으로 건물 샀다는 소리야. 은행에 저당 잡히고 전세금 땡겨서 레버리지 바짝 굴린 거지. 그러다 부동산 시세 휘청하니까 고대로 부실이 드러난 거고.’

[민주양의 재산을 노린 이유가 그것이었군요.]

‘그렇지. 매형은 100억대 넘는 자산간데, 자긴 실제로 빈털터리 신세니까. 얼마나 배 아팠겠어? 사촌이 땅을 산 것도 아니고 빌딩을 올렸으니.’

[하-. 거참.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요건 내가 직접 작업 쳐야겠다.’

[직접요? 주인님 부동산 쪽도 잘 아십니까?]

‘기본은 알지. 내가 전생에 부동산으로 재미 좀 봤었거든. 상가도 몇 개 굴리기도 했고.’

[전생의 주인님은 참 능력 있는 분이셨군요.]

‘그때 내 머리가 얼마나 좋았는데?’

[지금도 훌륭합니다. 느린 것만 빼면.]

"오케이. 번개, 수고했어. 노태윤씨 건은 놔두고, 일단 김변호사가 그 새끼 바람 피울 때 연락좀 줘."

-알겠습니다. 계속 감시하겠습니다, 행님.

"그래. 수고해."

< 921. 여름 방학-13-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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