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927화 (894/2,000)

< 910, 여름 방학-2- >

***

"헉, 헉, 아, 자, 잠깐만."

"자기 아직 안돼!"

"아, 아···아!!!··· 미, 미안."

"뭐야? 설마 쌌어?"

"으, 응."

"하아···. 알았어. 빼."

덩치 큰 근육질의 사내가 콘돔 끝을 잡더니 조심스럽게 물건을 뽑아냈다. 여자친구는 시큰둥한 얼굴로 몸을 일으키더니 샤워하러 간다며 쌩하니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근육질의 사내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원룸의 창문을 열었다.

‘하아. 요새 왜 이러지. 임용 준비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였나?’

여자친구가 방에서 담배 피우는 걸 질색하는 걸 알지만 성수가 담배를 꺼내 들었다. 무더운 여름이나 옷을 벗고 있어도 춥진 않았지만, 여자친구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마음 한구석이 서늘했다.

‘허이구. 덩치가 아깝다 성수야. 이게 뭐냐.’

성수가 창문을 열고 담배를 태우고 있는데, 어느새 샤워를 마친 여자친구가 속옷을 걸치고 나왔다.

"벌써 씻었어?"

"어. ···내가 같이 있을 땐 집에서 담배 피우지 말랬던 것 같은데···."

"아, 미, 미안."

성수가 재빨리 재를 털고 담배를 껐으나 이미 여자친구는 딱딱하게 표정이 굳은 상태였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곧바로 벗어 두었던 옷을 입기 시작했다.

"버, 벌써 가게? 저녁이라도 먹고 가지."

"엄마가 집에서 밥 먹자고해서."

무미건조한 대답.

방금 전까지 살을 맞댔다곤 믿기 어려울 만큼 싸늘했다.

하지만 성수는 지은 죄가 있어서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후다닥 옷을 껴입은 여자친구가 현관문을 나서며 말했다.

"나 갈게."

"잠깐만 배웅해 줄게."

"괜찮아. 옷이나 좀 입어."

"아, 어···."

성수는 민망함에 쪼그라든 자신의 물건을 손으로 감추었다.

여자친구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했지만, 이내 돌아서서 원룸을 나가버렸다. 쾅- 하고 닫힌 문에 대고 성수가 힘없이 손을 흔들었다.

"잘 가. 성희야···."

성수는 현자타임이 오지게 왔는지 줄담배를 피워댔다. 그러다 문득 조교 선생님에게 전화를 받았다.

-성수야. 방학 잘 보내고 있지? 쉬운데 미안해. 학과장님이 여름 캠프 진행 상황 물어보길래. 유미는 전국체전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것 같아서.

"아니에요. 제가 먼저 챙겼어야 되는데 말씀을 아직 못 드렸네요."

-그래. 공부하느라 바쁜데 학과일까지 맡겨서 미안하구나. 네가 수고 좀 해줘.

"네. 제가 내일 학과장님한테 제가 직접 말씀 드릴게요."

-응. 고마워.

조교의 전화를 끊은 성수는 다시 기운을 차리더니 여름 방학 수영 캠프를 챙기기 시작했다.

학회장인 유미는 소속대학의 간판 배구선수였기 때문에 늘 바빴다. 대회 준비를 위해 자주 원정 훈련을 떠나는 터라, 처음 학회장을 맡을 때도 얼굴마담만 시키고 실무는 성수가 다 하기로 약조되었다.

"후, 그러고 보니 캠프가 일주일 밖에 안 남았었구나."

이번 여름 캠프까지는 현직 집행부의 몫이었기 때문에 여름 캠프가 그의 마지막 집무 업무가 될 예정이었다. 3학년 여름방학부터 임용 공부를 시작한다고 하지만, 당장 올해 시험을 볼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직 여유가 있는 편.

학과장 대면 보고를 위해 성수는 이리저리 예약 확인 전화를 돌렸다. 해수욕장 주변의 민박집도 알아보고, 식당 예약이라 던가 안전장비 등을 대여하는 것도 모두 그의 몫이었다.

최종적인 확인을 마친 성수는 캠프 강사들에게도 확인 전화를 걸었다. 방학 중에 불시에 펑크나 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었다. 앞서 2명의 강사에게 전화를 건 성수가 마지막으로 도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성수형, 어쩐 일이세요.

"짜식아. 내가 꼭 일이 있어야 전화하냐?"

-그건 아니지만··· 근데 목소리가 왜 그렇게 힘이 없어요? 평소랑 좀 다른 것 같은데요?

도훈이 묻자 성수가 당황했다.

‘촉도 좋네. 새끼. 여자친구 문제 때문에 살짝 기운 빠져 있는데···.’

"뭔 소리야. 힘이 없긴. 더위 먹었나 보지."

-벌써부터 공부 너무 열심히 하시는 거 아니예요? 올해 시험도 안 치시는데 빡세게 하지 마세요. 그러다 지치면 내년에 힘들어요.

"웃기고 있네. 너나 열심히 하지마. 학기중엔 맨날 도서관에서 살던 놈이."

-하하. 저야 학점 관리한 거죠.

"아 맞다. 학점 어떻게 됐냐?"

-내일 학사관리 시스템 열린다는데요? 기다리고 있어요.

"잘 봤을 거야. 공부 열심히 했잖아."

-덕담 감사합니다. 근데 진짜 어쩐일로 전화하셨어요?

"아, 맞다. 다름이 아니고 여름 방학 캠프 강사 맡기로 했잖아. 차질 없지?"

-넵. 열심히 몸 만들고 있어요.

"몸을 왜 만들어?"

-형이 저 근육 쳐졌다고 놀렸잖아요.

"그랬냐? 암튼 별일 없다니 다행이고. 일주일 남았으니까 준비 잘해."

-넵.

"근데 지금 어디야? 주변이 시끄러운데?"

-헬스장 왔어요. 간만에 운동좀 하려고요. 왜요?

"너 운동 끝나면 저녁 누구랑 먹는데."

-저요? 맨날 혼자 먹는데요.

"새끼. 그럴 줄 알았다. 나와 인마. 형이 오늘 저녁 사 줄테니까."

-형, 여자친구랑 안 드세요?

도훈이 또 아픈곳을 찔렀다.

성수는 살짝 안색이 굳었지만, 이내 안 좋은 기억을 떨쳐냈다.

"오늘 집에서 식사한다더라고. 간만에 얼굴이나 보게. 방학하고 한 번도 못 봤잖아."

-네 형. 그럼 제가 형 집 쪽으로 갈게요. 30분 후에 뵐까요?

"그래. 나도 준비할게."

성수가 통화를 끊고는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

헬스장에서 통화를 끊은 도훈은 마지막으로 3대 운동을 풀세트로 돌렸다. 사실 그는 최근에 얻은 스파르탄의 벨트를 시험하는 중이었는데, 그 덕분인지 체중에 비해 월등한 무게를 들 수 있었다.

15%의 근력증가가 사실인 듯, 그의 3대 운동량도 정확하게 15%가 향상되었다. 도훈은 간만에 뻑쩍찌근해진 근육통에 기분이 좋은지 씩 웃었다.

‘기분 최고네. 역시 남자는 힘이지. 근데 성수형이 많이 심심한가? 시간 맞추려면 지금 씻고 나가야겠다.’

도훈이 개운하게 샤워를 마치고 성수의 집쪽으로 갔다.

집 앞에 성수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여, 요새 잘 나간다? 차도 몰고 다니고."

"제가 말 안 했어요? 아버지 아는 분한테 싸게 받았어요."

"차만 있으면 뭐하냐, 여자가 없는데 크크."

도훈을 만나자 마자 성수가 잔소리를 했다.

두 사람은 차를 타고 근처의 식당으로 향했다.

"저기 뼈해장국집이 살코기가 많이 붙어서 좋아. 운동했으니 많이 먹어야지?"

"그래요. 배고픈데 잘 됐네."

주문을 해놓고 기다리는 사이 성수가 물었다.

"너 근데 진짜 여자친구는 안 사귀냐? 저번에 소개팅까지 시켜줬는데 어째 소식이 없어?"

"그냥 잘 안됐어요. 친하게 지내기로만 하고. 근데 형수님한테 아직 감사 인사를 못 드렸네요."

"감사 인사는 무슨. 그냥 연결만 시켜준 건데."

"형은 형수님이랑 잘 지내죠?"

"응?"

성수가 뜨끔한지 순간 딴청을 부렸다.

"어, 야 식사 나왔다."

도훈은 뭔가 성수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굳이 속마음을 읽진 않았다. 공략할 대상도 아닌데 괜히 남의 마음을 읽는 것은 실례가 될 것 같았다.

한참 맛있게 뼈를 발라 먹던 성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훈아. 넌 근데 괜찮냐?"

"예? 뭐가요?"

"아니 군대 갔다 오면 대게 여자에 미치잖아. 연애 하려고 환장하고. 어째 너는 그런 기색이 없어?"

"제가 그렇게 보여요?"

"안그럼 벌써 여친 사겼겠지. 이 새끼 혹시 군대가서 고자 된 거 아냐?

"아, 형. 저 아시면서."

도훈이 은근슬쩍 가랑이를 활짝 벌렸다.

당당하게 대물을 과시하는 도훈의 모습에 성수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맞다. 이 새끼 좆크지."

"뭐라고요?"

"조크다임마."

"와, 아재 개그 작렬. 형, 어디가서 이런 개그하면 뺨 맞아요. 이걸 참아주다니 형수님이 천사네 천사."

"천사는 무슨···."

뭔가 낌새를 챈 도훈이 훅 치고 들어갔다.

"왜 그래요? 요새 형수님이랑 사이 안 좋아요?"

"아니 뭐 사이야 늘 좋지."

"혹시 임용 공부한다고 소홀해지신 거 아니죠? 여자는 늘 챙겨줘야 해요. 남자 후배 챙기듯이 가끔 밥 사주는 건 곤란하죠."

"갑자기 얘기가 왜 그렇게 돼? 오늘 니가 사는 거 아니었냐?"

"아, 전 형이 밥사준데서 온건데요?"

"이 새끼 넉살은. 알았어 인마. 밥 한끼 정돈 내가 사주지."

"근데 진짜 뭔 일 있어요?"

"아니 그게···. 아니다. 됐다. 내가 너한테 무슨 이런 얘길 하니."

"왜요? 말해봐요. 형이랑 저 사이에."

"그러니까 그게···."

성수가 머뭇거리다 이야기를 시작했다.

"야. 나 어째 요새 잘 안된다."

"뭐가요?"

"그거."

도훈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힘딸려요? 형이?"

"아니 이상하게 요새 권태긴가 오래 못 하겠더라고."

"진짜요? 얼마나 하는데요?"

"그게 시간을 재보진 않았는데···."

"대충이라도요."

"5분?"

"네?"

도훈이 화들짝 놀랐다.

3분 컷은 아니지만, 5분도 토끼 수준이다.

도훈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계속 물었다.

"형, 어디 아파요?"

"내가 어딜 아파. 아직도 튼튼해."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수는 누가 봐도 건장한 사내다. 골격만 봐도 장사타입이다.

힘으로는 스파르탄의 벨트를 찬 도훈도 한 수 접을 정도였다.

"근데 왜 그러는데요?"

"나도 잘 모르겠어. 이상하게 요새 못 버티겠더라고. 오늘도 사실 너 만나기 전에 여자친구가 집에 놀다 갔거든."

"네."

"그래서 간만에 분위기 잡고 했다? 와, 근데 막상 하려니까 힘이 쭉 빠지면서···."

"허어. 더워서 그런가?"

"아니야. 에어컨 빵빵하게 틀었어."

"형이 기력이 딸리긴 딸리나 보네."

"그런거 같아."

"아님 질렸거나."

"내가?"

"형 사귄 지 얼마나 됐는데요? 여자친구분."

"거진 2년 되가지. 의가사 전역하고 바로 만났으니까."

"애정이 식을 때도 된 것 같은데요."

"아니야. 절대 그럼 문제는 아니야. 내가 한 눈 파는 거 봤냐?"

"저번에 아이돌 연습생 만나셨잖아요. 같이."

"이, 인마. 그건 순수하게 팬심으로 만난 거지. 내가 뭘 한것도 아니고."

당황하는 성수의 모습에 도훈이 피식 웃었다.

실은 그도 성수가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바위같은 심성의 남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단순한 만큼 순박하며, 후배들을 잘 챙기는 의리파이자, 자신을 늘 챙겨주는 착한 형이었다.

‘문제는 조루라는 건데.’

[의외군요. 성수 군처럼 힘이 좋은 사람도 드물텐데요.]

‘그 힘이랑 그 힘이 같냐. 근육질이라고 다 정력가도 아니고.’

[그런가요?]

‘생각해봐. 우리 나라엔 없지만 일본 남자 AV배우 중에 몸 엄청 좋은 사람 봤어?’

[많지는 않죠.]

‘그치? 말라깽이나 배불뚝이 같은 아저씨들도 야동 한 번 찍으면 작살 나게 하잖아. 정력은 사실 전혀 다른 문제야. 체력도 중요하지만 그건 일부일 뿐이고.’

[그렇군요.]

‘하-. 성수가 여친에게 쿠사리 먹고 속이 많이 상한 것 같군. 하긴 남자 입장에서 여자친구 만족 못 시키면 자존심을 다칠 수 밖에 없지. 쯧쯧. 혹시 성수를 도와줄 만한 아이템 같은 거 없을까?’

[아이템이요?]

‘어. 조루를 극복할 수 있는 종류로. 나한텐 필요 없지만 성수한텐 필요해 보이는데.’

[잠시만요 마켓을 좀 뒤져보겠습니다.]

"하긴 그렇네요. 참, 여름 방학 캠프건은 어떻게 되고 있어요? 제가 도와드릴 건 없어요?"

"어, 거의 끝났어. 2학년 과대 우선이랑 같이 나눠서 했어."

"형 성격에 다 시켰을 리가 없죠. 형이 거의 다 하고 몇 개만 나눠 줬겠지."

"이번 캠프까진 3학년 집부 몫이니까. 괜히 후배들시키기도 미안하고. 너도 내넨에 집부해봐 인마. 얼마나 챙길게 많다고."

"아이고. 형님. 저는 공부만 열심히 할랍니다."

성수가 무슨 소리냐는 듯 반문했다.

"넌 꼭 해야 됌마. 2학년에 인물이 없다."

"우선이 있잖아요. 과대. 싹싹하고 일 잘하더만."

"우선이 저번에 만났는데 내년에 군대 갈지도 모른다더라고."

"구, 군대요?"

도훈이 깜짝 놀랐다.

그가 미필이란 걸 알았지만, 갑자기 군대를 간다고 할 줄은 생각을 못 한 탓이다.

"어. 우선이도 임용생각하면 미리 가긴 가야지. 현역으로 스트레이트 졸업했다가 임용 재수하게 되면 골치아파 지니까."

졸업 후 임용시험을 봐야하는 사범대 남학생들은 대부분 중간에 군대를 가는 편이었다. 아무래도 현역으로 시험을 쳤다가 한방에 붙지 못하면 돌아와서 굳은 머리로 다시 재수를 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암튼 그것 때문에 조교선생님하고도 얘기했는데, 지금 2학년 중에 집행부 맡길 만한 사람이 너밖에 없다고 하더라."

"강민주 조교샘도요?"

"왜? 너 민주 샘이랑 친하잖아. 조교샘 내년에도 학교에 있는다고 했으니 서로 케미가 잘 맞는 쪽이 낫지."

‘하아. 민주 이것이 확.’

"암튼 그 얘긴 나중 일이니까 다음에 하고, 몸만 잘 준비해놔. 이번 여름캠프는 유난히 참가자가 많으니까."

"그래요?"

"어. 1학년 애들은 거의 다 참가한다고 했어.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아하."

"이제 딱 일주일 남았다."

"참, 근데 캠프 장소가 어디에요?"

"접때 못 들었어? 태안반도라고 했잖아."

"그랬나요."

[주인님. 찾았습니다.]

‘아이템 찾았어?’

[네.]

< 910, 여름 방학-2-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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