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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922화 (889/2,000)

< 905. 단기 알바-15- >

"내가?"

"뭘 그렇게 눈치를 봐?"

"눈치를 보는 게 아니고 오해받기 싫은 거지. 남자친구 있는 줄 빤히 아는데···."

크리스가 양 허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왠지 따지는 듯한 모양새였다.

"만약 몰랐으면?"

"응?"

"나랑 명우씨 관계를 몰랐으면 태도가 지금이랑은 달랐을 거란 소리야?"

‘이것 봐라? 완전 도발적인데?’

[굉장히 직설적인 성격이군요. 이 정도면 거의 주인님한테 유혹해달라는 의미 아닌가요?]

‘초면치곤 호감도가 유달리 높긴 했어.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글쎄."

"풋-. 난 용기 없는 남자는 매력 없던데."

크리스의 도발에 도훈이 차분히 응수했다.

"진정한 용기란 그런데 부리는 게 아니지."

"칫. 됐어. 도훈이 별로 재미없다."

크리스가 고개를 절래절래 젓더니 먼저 가게로 들어가 버렸다. 도훈은 실망한 그녀의 표정을 보며 살짝 후회감이 들었다.

‘적당히 넘어가 줄 걸 그랬나?’

[아닙니다. 잘하셨습니다. 미끼를 덥석 물었다간 오히려 신의 없는 사람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랬으려나? 아무튼 커플끼리 쌍으로 웃기고 있군. 남자는 둘이 따로 좋은 데 가자고 꼬시질 않나, 여자는 자길 꼬셔달라고 추파를 던지지 않나. 무슨 저런 콩가루 커플이 다 있어?’

[어쨌든 둘 사이에 균열이 있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 충분한 소득이지 않습니까? 끼어들 여지는 충분해 보이는데요.]

‘역시 그렇지?’

담배를 모두 태운 도훈이 가게로 돌아가자, 명우가 그를 향해 들으라는 식으로 말했다.

"아이고, 도훈 씨도 양반은 못 되겠네요."

그는 얼굴이 시뻘건 게 벌써부터 거나하게 취한 것처럼 보였다.

"왜요?"

"방금전까지 우리끼리 도훈씨 얘길 하고 있었거든요."

"제 얘기요?"

주변을 둘러보니 뭔가 비밀스러운 작당을 마친 모습이었다. 여직원들은 애써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고, 남자들은 그를 향해 낄낄거렸다.

‘뭐야? 기분 나쁘게.’

그때 남자 스텝 하나가 입을 열었다.

"아아, 오해 마세요. 이상한 얘기 안 했어요. 실은 도훈씨 칭찬하고 있었어요."

"칭찬요?"

"야, 하지 마."

"그래, 우리끼리 그냥 농담한 거잖아."

옆에 있던 여직원들이 말렸지만, 남자 스텝 역시 취했는지 근질거리는 입을 못 참고 터뜨렸다.

"도훈씨가 어째 화장실에서 늦는 오는지에 대해서."

"네?"

도훈이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남직원이 갑자기 손가락을 하나 펴더니 말을 이었다.

"하나, 양이 너무 많아서?"

"꺄하하하!"

"하지 말라니까."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텝이 차례로 손가락을 폈다.

"둘, 그걸 꺼내는 데 오래 걸려서?"

"푸하하하!"

"어휴, 진짜 변태도 아니고."

"셋, 집어넣는 데 더 오래 걸려서!"

"야! 너어는 진짜!"

"왜? 마지막 건 승미 네가 한 말이잖아!"

"아니 그래도···. 어떻게 사람을 면전에 두고."

가만 보니 이들은 화장실 다녀온다던 도훈이 늦어지자 자기들끼리 음담패설로 뒷담화를 즐긴 모양이었다.

도훈은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화를 낼까 하다가 가까스로 감정을 추슬렀다. 혈기를 부리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참는 것은 배로 힘든 일이었다.

‘···여기서 판을 엎으면 크리스티나랑 맺어지기 힘들어. 한 번만 참아보자.’

성희롱이나 다름없는 놀림에도 도훈이 웃으며 맞받아쳤다.

"정답 알려줄까요?"

"오? 이 중에 있어요?"

"진짜로?"

"정답은 셋 답니다."

"와하하하하하!"

"너무 야해 도훈씨."

"역시 촬영할 때부터 심상치 않더라니까?"

도훈의 임기응변으로 자칫 심각해질 수 있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삐지고 먼저 들어간 크리스티나 역시 그를 흥미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의 뻔뻔함에 다시 흥미를 느낀 듯.

"자자, 도훈 씨도 왔는데 우리 건배나 하죠."

"그래, 그래. 다 같이 잔 채워!"

술이 한 바퀴 돌았다. 도훈은 약도 챙겨 먹었겠다, 화끈하게 원샷을 때렸다.

"와, 술도 잘 마시네."

"아까는 왜 그렇게 뺐어요?"

"누가 안 따라 주더라고요."

도훈의 술을 받던 명우가 그를 향해 게슴츠레한 눈으로 말했다.

"근데 도훈씨. 방금 건 너무 기분 나빠 하지 마요."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먼저 말한 거거든요. 도훈씨 진짜로 크다고."

"네?"

"전 실물을 봤었잖아요."

"아···."

결국, 소문을 낸 사람은 차명우였다.

그의 싼 입에 도훈의 대물이 안줏거리로 올라간 셈.

‘하여간 저 새끼가 문제로군.’

도훈은 술을 따르며 차명우의 정보창을 확인했다.

‘로시, 지금은 쿨 타임 끝났지?’

[네. 차명우의 정보창을 열까요?]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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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차명우 (비총각, 21세 4개월)

나이 : 28

호감도 : 76/100

성취향 : 남색, 바텀, 거근선호

변태성 : 높음

*성감 포인트 : 대물에 박히는 걸 좋아합니다.

여성편력 : 관심없음.

공략팁

*그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그는 남자를 좋아하는 게이입니다.

-잘생긴 남자에 끌리며, 대물이라면 환장을 합니다.

-한때는 정상적인 이성애자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크리스티나와 연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1년 넘게 섹스리스인 쇼윈도 커플입니다.

-호감도를 상승시키기 위해 다음 멘트를 추천합니다.

-추천멘트 : "공,수 어느 쪽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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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게 뭐야, 씨발!’

***

충격적이다.

설마설마했는데 차명우가 진짜 게이였다니.

더구나 본래는 이성애자였다가 동성애로 전향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세상에···. 주인님의 추측이 맞았군요. 대체 어떻게 아셨습니까?]

‘설마 했지. 느낌이 이상하길래. 근데 이게 말이 돼?’

[뭐가요?]

‘어떻게 과거엔 멀쩡했던 새끼가 갑자기 동성애자로 변할 수 있는 거지? 그것도 크리스티나랑 계속 사귀고 있으면서.’

[날 때부터 게이가 아닐 수도 있죠. 나이가 들면서 본인의 취향을 깨달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연두양의 경우도 레즈였다가 주인님의 개입으로 바이섹슈얼로 전향했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가 아닐까요?]

‘하-. 1년이상 섹스리스! 그래서 크리스티나가 바람기가 저렇게 충만했던 거로군? 차명우가 전혀 상대를 안 해주니.’

[근데 그럴 거면 왜 크리스티나와 계속 사귀는 걸까요? 그냥 서로 헤어지는 게 낫지 않나요?]

‘아마도 책임감 같은 거겠지.’

[책임감요?]

‘자기를 믿고 머나먼 타국에 정착한 크리스티나를 배신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그러니 사귀긴 하되 섹스리스로 지내는 거지.’

[하지만 반대로 크리스티나양의 입장에서도 못 참고 헤어지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크리스티나도 어느 정도는 감내하는 거겠지. 연인관계라기보단 사업적 파트너로서 말이야. 이번에도 일감을 물어다 준 것처럼.’

[하아. 참으로 희한한 커플이군요. 이쯤 되면 커플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의문이지만.]

‘섹스리스가 결혼한 남녀 사이에만 있는 건 아닌 가봐. 둘 사이를 봐선. 설마 여자친구가 있는 게이라니. 아, 그걸 노린 걸수도 있겠다.’

[뭘요?]

‘주변 사람들 반응을 봐선 차명우가 커밍아웃을 안 했잖아. 심지어 여자친구한테도.’

[네, 그렇죠.]

‘어쩌면 내 추측인데, 크리스티나는 위장인 셈이야. 설마 여자친구까지 있는 사람을 아무도 게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평판을 지키기 위한···.]

‘맞을 거 같아. 그게 아니면 아무리 책임감이 강해도 지금까지 사귀고 있을 리가 없지. 크리스티나만 딱하게 됐어.’

[그나저나 이제 어쩌실 생각입니까? 차명우는 주인님을 노리고, 주인님은 크리스티나를 노리고, 크리스티나는 어쨌든 차명우와 연인 관계인데요.]

‘참으로 거지 같은 트라이앵글이구만.’

[역시 가장 최선은 둘 다 노리는 겁니다. 그럼 3개의 업적을 동시에 노릴 수 있습니다. 숨겨왔던 나의···, 인종의 도가니탕, 그리고 친구의 친구를 사랑 했네까지 달성 가능합니다. 무려 일타 삼피!]

‘아니. 정중히 사양하지. 나의 똥꼬는 언제나 소중하니까.’

[차명우는 바텀아닙니까?]

‘뭐가 됐던 남자랑 살 섞는 건 용납할 수 없어. 똥꼬를 뚫던 똥꼬를 대주던 둘 다 사양하겠어.’

[그럼 역시 일석이조를?]

‘그렇지. 이렇게 된 이상 적극적으로 크리스티나 공략하는 수밖에. 게이 남자친구에게서 뺏는 거니까 죄책감도 안 들잖아.’

마음을 굳힌 내가 차명우를 향해 씩 웃었다.

상대가 게이라는 걸 알자 오히려 홀가분해지는 부분도 있었다.

"술 잘 드시나 봐요."

"저요? 이 정돈 거뜬하죠. 도훈씨도 좀 하시는 것 같은데?"

"뭐 그럭저럭. 근데 저보다 형 같은데 편하게 부르세요. 제가 한참 어린데."

"에이, 어리다고 함부로 말을 놓으면 쓰나."

그러면서 은근슬쩍 말을 놓는 차명우였다.

"저도 그게 편해서요."

"그럴까 그럼?"

"네."

잔을 주는 척 하고 일부러 차명우 옆에 앉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술자리에서 그를 실신시키는 것. 차명우만 없어지고 나면, 혼자 남은 크리스티나를 공략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어제 같이 온 예림씨랑은 어떤 관계야? 엄청 친해 보이던데?"

"예림이요?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어요. 왜요?"

"나도 처음엔 여자 친구로 알았거든. 자기 소개시켜주는데 눈빛이 심상치 않아서."

‘자기? 우엑?’

구토가 밀려왔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원체 친해서요. 남자로 치면 거의 부랄친구랄까?"

"남녀 사이에 친구가 돼?"

"못할 건 없죠. 서로 이성으로 안 보면야."

"이성으로 안 본다고? 예림씨 되게 예쁘던데."

"하하. 그거 다 화장빨이에요."

"진짜?"

"네. 사실 그것도 많이 예뻐진 거예요. 어렸을 때는 진짜 육덕이었거든요."

"그랬구나. 어쩐지 허벅지 쪽에 튼살이 좀 보이더라니. 살 뺀거였군."

"살 빼서 좀 용 됐죠. 근데 전 옛날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그럼 도훈이는 어떤 스타일 좋아하는데? 나 아는 여자 많은 데 한 명 소개시켜 줄까?"

명우가 넌지시 물었다.

의미가 함축된 물음 같았다.

‘내 성향을 떠보는 거겠지?’

[성향이요?]

‘이 새끼 게이잖아. 저 질문은 내가 여자를 좋아하는지 궁금해하는 거란 말이지.’

[호오. 그렇군요.]

"하하, 괜찮아요."

"아니 진짜로. 나 사진작가잖아. 모델들 많이 알아. 쭉쭉빵빵한 스타일? 아니면 슬랜더? 어떤 취향인데?"

명우가 끈질기게 물었다.

여기서 답정너는, 난 여자보다 남자가 좋아요. 겠지만, 굳이 마음에 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사양할게요. 예쁜 여자는 부담스러워서."

"그래? 어째 수상한데? 예쁜 여자를 마다하는 남자라니?"

"왜요?"

"혹시 남자 좋아하는 건 아니지?"

‘씨이발, 소오름!’

나도 모르게 빈 병으로 명우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뻔했다.

겨우겨우 심호흡을 하며 이성의 끈을 붙잡았다.

‘너이 게이새끼. 크리스티나만 없었으면 뚝배끼 깨버렸다 진짜.’

"술이나 한 잔 더 하시죠."

"그래. 좋네. 도훈이가 술 따라주니."

명우는 주는 족족 술을 퍼마셨다. 나 역시 그를 죽이기 위해 맞불을 놓았다. 물론 내가 질 수 없는 게임이었다. 지금의 나에겐 술이 물이나 마찬가지기 때문.

"어으 취한다. 도훈이 술 세네."

"형님이 더 잘 드시네요."

"대표님, 우리 2차가요 2차!"

"2차? 2차 어디가고 시포?"

여자 스텝의 말에 명우가 꼬브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한 그를 보니 조금만 더 먹이면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참치 어때요? 참치 먹고 싶어요."

"회? 조오치! 가자 2차!"

1차 회식이 정리되자 두명의 이탈자가 생겼다.

남자 스텝 하나, 여자 스텝 하나가 빠졌다.

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를 애특하게 쳐다보는 게 뭔가 수상해서 가만히 지켜보니 몰래 손을 잡고 있는게 아닌가?

‘어랍쇼? 이건 또 뭐야?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인가?’

"그럼 재밌게 더 놀다 가세요. 저는 승미 데려다주고 집에 갈게요."

"그래, 그래."

"내일 뵈요."

"크리스티나씨랑 도훈씨랑 함께 더 못해서 아쉽네요."

‘풉. 둘이 몰래 떡치러 가는 거 같은데 아쉽기는.’

그렇게 두 명을 보내고 남은 넷이서 2차로 향했다.

참치를 무한 리필 해주는 가게였다.

"마음껏 시켜. 오늘은 내가 다 쏘니까."

"꺄아, 대표님 짱 멋있어!"

"아, 근데 화장실이 어디지?"

테이블에 자리를 잡기도 전에 명우가 화장실로 사라졌다. 여자 스텝은 집에 전화를 하러 간다며 잠시 밖으로 나갔다. 어쩌다 보니 나와 크리스티나만 단둘이 남게 되었다.

"술은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소주 4병 주세요."

"네."

사람이 넷인데 소주를 4병이나 시킨 배포가 놀라왔다.

"4병이나요?"

"왜? 한 사람당 한 병 씩은 먹지 않아?"

"대표님 많이 취한 것 같던데."

"상관없어. 취하면 먼저 집에 가라고 하지 뭐. 너랑 둘이 마셔도 되니까."

"나랑 둘이?"

"난 술 잘 마시는 남자 좋아하거든. 도훈이 너처럼."

둘밖에 남지 않은 자리에서 크리스티나가 슬슬 본색을 드러냈다. 아무리 소련 여자라고 한들 1차부터 들이부은 상황에 취기가 오르지 않을 리 없었다.

"에이, 크리스 취했네. 남자친구 챙겨야지."

"흥, 남자친구는 무슨···."

크리스티나가 뭔가 서러움을 토로하려는데 전화를 하러 나갔던 여직원이 급히 들어오며 말했다.

"아, 죄송해서 어쩌죠? 집에서 30분 안에 안 들어오면 아빠가 내쫓아 버리겠다고···."

술에 취한 여직원은 더 놀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도저히 사정이 안되는 듯 했다.

"대표님 오시면 말씀 좀 잘 해주세요. 저 지금 바로 택시타고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

"아이고 저런. 조심히 가세요."

"네, 재밌게 노세요. 정말 죄송해요!"

여직원이 줄행랑치듯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거지같은 트라이앵글 뿐이었다.

< 905. 단기 알바-15-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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