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3. 단기 알바-13- >
***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고추 크다고 퇴짜맞을 뻔하다니, 참으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나는 명우가 남기고 간 유리 테이프를 들고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공사 작업에 대한 요령은 없지만, 대충 방법은 알 것 같았다. 다만 내 손으로 내 물건을 붙잡고 테이프로 둘둘 감고 있을 걸 생각하니 자괴감에 쉽게 손이 움직이질 않았다.
결국, 나는 테이프를 구석으로 내던져 버렸다.
[아, 아니 주인님! 설마 업적을 포기하시려고요?]
‘아니야. 생각해보니까, 지금 붙이면 나중에 땔 때 존나 아플 거 아니야. 테이프에 털 다 엉길 거고. 왁싱한지도 오래되서 다 올라왔단 말이야.’
[그렇겠죠. 하지만 주인님이 예전에 말씀하신 데로 그 아픔 또한 견뎌내는 게 플레이어의 숙명이 아닐까요?]
왠지 로시의 목소리 톤이 업 된 느낌이다.
내가 골탕을 먹는 작금의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순 나쁜 놈 같으니라고. 아니 년인가?
‘아니지. 이럴 때 쓰라고 스킬이 있는 거야. 그냥 작아져라 여의봉 쓰자.’
[아앗, 이런 일에 스킬을요? 쿨타임 때문에 지금 사용하고 나면 정작 필요할 때 못 쓸지도 모릅니다.]
‘상관없어. 내 평소 크기로도 충분하니까.’
[하지만 크리스티나 양이 외국인이라는 것도 고려하셔야 할 겁니다.]
‘흐음. 외국인이라···.’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서양인과 동양인의 체급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한국에서야 내가 대물이지, 서양의 진짜 대물들에 비하면 한 수 접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만에 하나 크리스티나가 20cm 이상의 대물을 상대한 경험이 있다면, 나의 것에 성이 차지 않을지도 모른다.
‘젠장. 그럼 진짜 테이프로 말아?’
[모든 것은 주인님의 선택입니다. 보험을 들어 놓던지, 모험을 걸어보던지 말이죠.]
‘보험이냐, 모험이냐로군.’
다시 추하게 내가 던진 테이프를 집어 들었다.
‘이걸··· 진짜 감아야한다고? 하-. 크다고 마냥 좋은 건 아니네. 큰 게 내 잘못도 아닌데.’
팬티를 내리고 노발기된 대물을 거울로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남자 탈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저기, 도훈씨 제가 커터칼을 준다는 걸 깜빡···."
커터칼을 챙겨온 명우가 거울에 비친 대물을 쳐다보고는 놀란 듯 눈을 떼지 못했다.
"아, 앗···. 죄송합니다. 제가 안 좋은 타이밍에 들어왔나 보군요. 커터칼은 바닥에 내려두고 가겠습니다."
명우는 얼굴이 빨개지더니 바닥에 커터칼을 내려두고 후다닥 물러났다.
‘뭐야? 저 미친 새끼는 왜 얼굴이 빨개지는데?’
[왠지 수상한데요?]
‘설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보통 남자의 물건을 보고 놀랄 수야 있지만, 두 볼이 빨개지는 건 보기 드문 경우다.
나는 어제부터 함께했던 명우의 태도를 복기해 보았다.
-싸가지 없고 까칠한데, 실력만큼은 확실해.
그와 함께 먼저 작업했던 나예림의 평가였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그와 함께 작업하면서 까칠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물론 촬영에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은 받긴 했지만, 적어도 나에게 무례하게 굴거나 재수 없는 태도를 보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난 이제껏 내가 잘나서 그런 건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면?
‘뭐야? 설마 그럼 나에게만 유독 친절했던 거야?’
[숨겨왔던 나의···.]
‘하지 말라고!’
갑자기 역겨운 기운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크리스티나의 환상적인 몸매를 보고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던 차명우. 아깐 프로의식의 발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여성의 몸에 대해 전혀 흥미를 못 느낀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내 물건을 보고 유독 흥분하던 명우의 태도.
어쩌면 그건 질투였을까?
다른 여자를 보고 흥분한 나를 향한 집착같은?
"이런 씨발 진짜!"
갑자기 모든 게 명쾌해졌다.
남들에겐 까칠하지만 나에게는 친절한.
굳이 처음 보는 나에게 쉽게 돈 벌 수 있는 속옷 모델일을 제안한 그의 속셈은 어쩌면 다른 데 있었던 것은 아닐까?
소름이 돋았다.
‘으으, 도저히 못 하겠다. 다 때려치워!’
[주, 주인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생각해보니까 명우 저거 게이 새낀 거 같아. 나를 잘 봐서 이곳으로 부른 게 아니라 속셈이 있어서 데려온 거라고!’
[설마요? 주인님의 억측일 뿐입니다.]
‘그럼 왜 남자 물건을 보고 귀까지 빨개지는데? 그리고 타이밍 좀 봐. 마치 이쯤 되면 팬티 벗었을 거라고 예상될 시간에 불쑥 들어왔잖아. 내 잦이 보려고! 이래도 모르겠어?’
[그 또한 주인님의 가정일 뿐입니다. 정말로 그의 속셈이 궁금하시면 정보창으로 확인해 보시면 될 거 아닙니까? 괜히 엄한사람 잡지 마시고요.]
‘정보창을? 사내새끼한테 쓰라고?’
[왜요? 경험이 없지도 않으시면서. 그리고 주인님. 솔직한 말로 방학 끝날 때까지 중수2단계를 어떻게든 돌파하시겠다는 분께서 각오가 그게 뭡니까?]
‘뭐? 지금 날 비난하는 거야? 나도 내가 할 업적 정도는 고를 자유는 있다고. 내가 때려죽여도 비역질만은 싫다고 했지!’
[아니요. 제 말 뜻을 오해하신 것 같은데, 차명우랑 숨겨왔던 나의 업적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차명우가 설사 게이이고, 주인님을 노리고 있다 할지라도 주인님은 지금 인종의 도가니탕 업적 때문에 이곳에 오셨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싫은 것도 참아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주인님 각오라는 게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이었습니까?]
‘이, 이이!’
로시가 단호하게 꾸짖었다.
속속들이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로시는 지금 나보다 훨씬 냉정하다. 게이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진 나에게, 업적을 위해 참아보라고 설득하고 있었다. 내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부득부득 갈자 로시가 잠시 후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었다면 사과를.]
‘···아니. 잘했어.’
[네?]
‘화 난 거 아니야. 네 말이 옳아서 대답할 말이 없었을 뿐.’
[주, 주인님!]
‘앞으로도 충고가 필요할 땐 지금처럼 기탄없이 말해줘.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 감정이 앞서면 이성이 작동을 못 할 때가 있으니까.’
[역시 우리 주인님이십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유리 테이프로 거길 감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그냥 줄어들어라 여의봉으로 할래. 보험보단, 그냥 모험을 걸겠어.’
[알겠습니다. 그럼 스킬을 실행하겠습니다.]
스킬이 실행되자 노발기 상태의 대물이 절반가까이 줄어들었다. 마치 차가운 얼음물에 풍덩 빠졌을 때처럼 바짝 쪼그라든 대물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으으. 이게 내 물건이라니···. 보고도 믿기 힘들 정도구만.’
[개구리 올챙이적 모른다더니···.]
‘뭐 인마? 왜 쓸데없이 전생을 들먹여?’
[그래도 그때보단 크지 않습니까?]
슬프지만 그건 사실이다.
전생엔 발기해도 5cm.
지금은 노발기에도 그보다는 컸다.
"흠. 얼른 팬티 입고 나가야겠다. 네 말대로 싫어도 한 번 참아 볼 게. 어쨌든 업적을 수행해야 하니까."
[잘 생각하셨습니다.]
준비를 마치고 탈의실 밖으로 나가자 촬영장에 스텝들이 민망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남자 스텝은 부럽다는 듯 슬며시 엄지를 추켜세웠고, 다른 여자 스텝은 얼굴이 빨게져 내 시선을 감히 쳐다보질 못했다.
뭔데? 이 요상한 분위기는. 사람 민망하게스리.
그때 차명우가 손뼉을 짝짝 두 번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자자, 모델분 오셨으니까 다시 촬영 합시다. 시간이 금이에요, 여러분. 후딱 끝냅시다."
다시 가운을 벗었다.
그 이후부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메소드 연기를 덧씌운 나의 포즈는 프로를 방불케 했다.
시크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차명우는 감탄을 연발하며 사진을 찍었고, 크리스티나 역시 나와 호흡을 맞추며 커플 사진들을 무난하게 소화했다.
그렇게 모든 촬영이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끝났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특히, 이도훈씨는 정말 아마추어라곤 믿기지 않네요. 이참에 아예 모델로 전업해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 괜찮은 에이전시 소개해 드릴 수 있는데."
빈말이 아니었다. 명우는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간만에 원석을 발견한 예술가처럼.
하지만 한번 의심이 들자 그런 태도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왠지 그것을 빌미로 나와 친해지려고 수작을 부릴 것만 같았다.
‘저 게이 새끼를 진짜···.’
그때 크리스티나도 말했다.
"어멋, 도훈씨 프로 아니었어요?"
"네? 저요? 본업은 대학생입니다."
"학생이라고요? 대단해요. 전 저와 같은 모델인 줄 알았어요. 너무 자연스러우셔서."
"칭찬 감사합니다."
차명우가 흐뭇하게 우리 둘을 바라보다 좌중을 향해 소리쳤다
"자자, 야간 작업이 생각보다 일찍 끝났으니까 간만에 촬영 스텝 회식이나 할까?"
"회식요?"
"사장님이 쏘시는 거예요?"
"당연하지. 어때요? 도훈씨랑 크리스티나도 시간 괜찮으면 같이 하실래요?"
크리스티나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전 오늘 스케줄 없어요, 회식 좋아. 뭐 먹어요 우리?"
"크리스티나가 좋아하는 걸로?"
"그럼 삼겹살에 쐬주?"
"콜!"
‘와, 무슨 이 여자는 소련여자가 아니라 무슨 거의 한국사람이네.’
[소련은 이미 해체된지 오랜데요?]
‘아니 말이 그렇다고. 개떡같이 말해도 좀 찰떡같이 알아들어.’
"도훈씨는 어떠세요?"
물론 나는 이 순간만 기다렸다.
크리스티나와 친해질 기회만.
"저도 좋습니다."
"자, 그럼 다들 정리하고 20분 뒤 스튜디오 앞에서 봅시다."
다들 부산하게 마무리에 들어갔다. 정신없는 분위기에 차명우의 정보창을 들여다 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촬영 사진 파일을 정리한다고 사무실로 쏙 들어간 버린 것이다.
그때 크리스티나가 나에게 말했다.
"도훈, 술 잘 마셔?"
"저요? 그냥 좀···. 크리스씨는요?"
"난 4병까지 마셔봤어. 한국 술 우리한테 좀 약한 편."
역시 불곰국의 시민이란 건가?
하긴 보드카의 나라에서 온 크리스티나에게 소주는 물과 같을지도.
명우의 정보창을 보는 것은 뒤로 미루고 나는 크리스와 대화에 집중했다. 어쨌든 오늘은 공략대상은 누가 뭐래도 크리스티나다.
"근데 한국말 너무 잘하시는 거 아니에요? 삼겹살에 소주라는 말은 어디서 배운 거예요?"
"어? 몰랐어? 나 한국에 산 지 2년 됐는데."
"네? 어제 러시아에서 건너 오신 게 아니에요?"
"응, 왔지. 간만에 집에 갔다 오느라."
아!
이제껏 착각하고 있었다. 남자 모델이 마약 소지 혐의로 공항에서 걸렸다는 말을 듣고, 크리스티나 역시 외국에서 한국으로 불러들였다 오해한 것이었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들이 차고 넘치는 상황에 굳이 속옷 모델 하나 구하려고 외국에 비행기값까지 지불하면서 부를 이유가 없었다.
"그랬구나! 몰랐어요."
"명우씨가 말 안 했어?"
"명우씨요? 혹시 차명우 씨랑 아는 사이에요? 구면?"
"말 안 했나 보네? 명우씨는 내 애인이야."
애인?
아니 씨발, 잠깐.
이게 뭔 개소리야?
혼란이 급습했다.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다.
지금 그러니까 게이 새끼 차명우가 크리스티나의 애인이란 말이야? 저놈이 광고 대행사를 속이고 자기 애인을 모델로 차출했다고?
그때 크리스티나가 재차 말했다.
"아, 맞다. 이거 말하지 말랬는데. 명우씨가."
"왜요?"
"괜히 오해할 수 있다고. 사람들한테 비밀로 하랬어. 도훈도 비밀 지켜줘."
크리스티나가 갑자기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
충격받은 내가 눈만 껌뻑이고 서 있자 그녀가 재촉했다.
"뭐해. 약속. 비밀 지켜주기로."
"아, 아···. 네."
"약속했다?"
나는 크리스티나와 손가락을 걸었다.
동시에 그녀의 정보창을 개방했다.
------------------------------
성명 : 크리스티나 소트니코바, (비처녀, 일시 16세 4개월)
나이 : 24 #소련여자#모델#한국남자좋아
호감도 : 72/100
개방성 : A
성감대 : 가슴, 젖꼭지, 겨드랑이
*애무 포인트 : 가슴 부근의 애무에 유난히 취약합니다. 성감대인 가슴을 자극받으면 금새 흥분하는 스타일입니다.
성욕지수 : 높음.
공략팁
*그녀는 한국을 좋아하는 모스크바 출신의 러시안 미녀입니다.
-한국이 좋아 2년전 무작정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당시 촬영을 계기로 차명우와 만나 그와 2년 째 교재중입니다.
-KPop의 열광적인 팬이며, 특히 한국 아이돌을 좋아합니다.
-그녀는 술에 취하면 흐트러지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만취 상태가 되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실수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차명우와 사귀게 된 계기도 끝까지 술자리에 남았던 그와 우연히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2년 째 지속된 연애관계에 약간의 권태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바쁜 애인을 대신할 남자를 찾아 몇 번 바람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추천행동 : 그녀를 취하게 만드세요. 그녀는 술자리에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과 끝까지 갑니다.
------------------------------
‘정보창 깔끔하구만.’
오래만에 쉽게 공략의 해법이 보였다.
요약하면 그녀는 현재의 남자친구인 차명우에게 권태감을 느끼고 있는 헤픈 여자였다. 특히 술에 만취하면 누구랑도 잘 수 있다는 걸 봐선 이미 몇 번의 경험도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오늘의 회식이 차명우와 함께하는 술자리라는 게 문제였다.
가만? 이거 잘하면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업적까지 동시 달성각 아냐?
< 903. 단기 알바-13-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