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6. 처녀 보살-18- >
"졸면 안 돼. 눈 떠! 이런 곳에서 잠들면 진짜로 위험해질지도 몰라."
"그게 아니라 내가 술을 마시면 자꾸 눈이 감기는 버릇이···."
"얼마나 마신 거야 대체?"
술병을 들어보니 반 넘게 비어 있었다.
내가 한 모금 정도 마셨으니, 나머진 모두 장군이 마신 꼴이다.
‘뭐야? 반병을 원샷 때렸어? 이건 선을 넘은 것 같은데?’
제아무리 주당이라도 반병을 원샷하면 한순간 훅 올라올 것이다. 더욱이 평소에도 술이 약한 장군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아마 몸이 차가울 땐 천천히 퍼지다가, 뜨거운 열기에 술기운이 빠르게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나, 잠깐만 자고 싶은데···."
취기가 오른 장군은 제대로 몸을 가누지조차 못했다. 병든 닭처럼 고개를 푹푹 떨구더니 몸을 좌우로 휘청이는 게 금방이라도 쓰러질 기세였다.
"그럼 잠시만 눈 좀 붙이고 있어. 비 그치면 깨워줄게."
나는 옆으로 다가가 기댈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주었다. 장군은 머리를 기대는가 싶더니 그대로 품 안으로 쓰러지며 허벅지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
"아니, 장군아."
"나 너무 졸려 도훈아. 잠깐만 이렇게 잘게. 미안."
평소 씹선비처럼 굴던 장군이지만 술에 취하자 경계가 많이 허물어졌다. 어쩌면 술이 깨면 스스로의 행동을 자책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누워 자겠다는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이것 참···."
머리를 베자마자 곧바로 쌕쌕거리며 잠에 빠져든 장군을 보며 나는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잘 수 있도록 허벅지를 내어 주었다. 인적도 없는 산속 토굴에, 젊은 처자에게 무릎베개를 해주는 상황이 어딘지 우습게 느껴졌다.
‘나 잡아 듭셔도 아니고 말이야.’
[그렇다고 정말로 잡아드시면 곤란합니다. 면간은 의사에 반하는 행위기 때문에 클리어 조건에 위배 되거든요.]
‘설마 내가 자는데 덮치겠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지만 술에 취해 불그스름해진 장군을 얼굴을 내려보고 있으니 점점 허튼 생각이 들었다. 특히 겉에 걸쳐 입은 후드집업의 지퍼가 끝까지 올라오지 않아, 위에서 내려다보자 가슴골이 훤히 보였다.
F컵 가슴이 포개져 눌리며 만든 깊은 골까지.
그 짙은 음영이 나를 숨 막히게 만들었다.
‘아이고, 이걸 참아야 한다고? 고문이 따로 없네.’
"음냐, 음냐."
그때 장군이 잠꼬대를 하는지 머리를 뒤척이더니 점점 내 사타구니에 정수리를 비벼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자극을 참고 있던 나는 끝내 발기하고 말았다.
‘허읏,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장군이 먼저 자극했어.’
[누가 뭐랩니까?]
‘아씨. 술 먹고 잠드는 주사라니, 엄청 피곤하네.’
[주인님이 딱 그렇습니다만.]
그때 장군이 다시 뒤척였다. 그 바람에 가운데 지퍼 사이가 더욱 벌어졌고, 이젠 가슴 위가 완전히 드러날 만큼 훤히 노출되고 말았다.
‘흐억, 이, 이건···.’
새하얗고 풍만한 가슴이 꼭지만 아슬아슬 가리고 있었다. 옆으로 몸을 뉘었기 때문에 아래로 처진 장군은 젖가슴은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차에서부터 참고 있던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싶다.’
[주인님. 자제를. 여기까지 와서 미션을 그르칠 생각은 아니죠?]
‘그냥 빨통 확 꺼내서 젖꼭지 쪽쪽 빨아 버리고 싶은데.’
[주, 주인님···.]
‘농담이야 인마. 아무리 그래도 자는 사람을 덮칠 순 없지. 그래도 계속 보고 있으면 자극되니까 가려줘야겠다.’
나는 지퍼를 올려주기 위해 장군의 가슴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절대 만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만두었다간 정말로 딴 맘을 품게 될 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누워있는 장군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는데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한 번도 침범당한 적 없는 처녀의 말랑한 가슴. 조금만 손을 내밀면 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야. 참자. 어차피 공략하고나면 내 건 데 굳이···’
손을 뻗은 체 공중에서 잠깐 고민하던 찰나.
무릎을 베고 누워있던 장군이 눈을 부릅떴다.
"···뭐하니 지금?"
"어, 어어엇!"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분명히 자는 것 같았는데, 설마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단 말일까?
장군이 누운 채로 눈알을 위아래로 굴리더니 나를 향해 비릿하게 웃었다. 생전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왜? 내 가슴 만지게?"
"아, 아니 난 그게···."
"괜찮아. 만져. 아까부터 머리를 쿡쿡 찌르는 걸 보니 하고 싶어 죽겠나 본데, 한 번 줄게."
섬뜩한 기분이었다. 눈빛부터가 이상했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해도, 장군은 이렇게 적극적인 타입이 아니었다.
"···누구냐 넌?"
"지금 내가 누군지가 중요해? 네가 하고 싶은 게 중요하지."
장군이 갑자기 내 손목을 붙잡더니 가슴팍으로 쓱 잡아당겼다. 물컹하는 촉감과 함께 장군의 커다란 가슴이 만져졌다.
너무나 폭신하고 말랑한 감촉.
그리고 어느새 단단히 선 유두.
기분 좋은 촉감이었지만, 이래선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다급히 손을 뺐다.
"지금 뭐하는 거야!"
"에혀, 생각보다 순진하긴."
장군이 혀를 끌끌 차더니 불쑥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냥 하고 싶은데로 해. 좋은 기회잖아."
"너 누구야? 설마 처녀 귀신?"
"처녀 귀신? 내가 처녀라고? 호호. 듣기 좋은 소리네."
장군이 어이없다는 듯 픽 웃더니 혀를 날름거리며 윗입술을 핥았다. 그 모습이 너무 도발적이라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장군은 젖은 머리를 두 손으로 쓸어올리더니 곧바로 크게 기지개를 켰다. 그 바람에 커다란 가슴이 앞으로 불룩 튀어나왔다.
"으아암, 몸이 찌뿌뚱하네. 그건 그렇고 이건 왜 이렇게 크데니?"
장군은 갑자기 자신의 커다란 가슴을 두 손으로 받치더니 밑에서 위로 들어 올렸다.
출렁-!
커다란 가슴이 위아래로 슴부먼트를 펼치자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참으로 육감적인 처자구나. 그건 그렇고 넌 뭐하는 놈이니?"
"뭐?"
적반하장격인 질문.
분명 눈앞의 장군은 장군의 몸을 빌린 누군가였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던 처녀 귀신은 아니었다.
"어떻게 내가 다른 사람인 걸 눈치챈 거지?"
"내가 아는 장군이랑은 전혀 다르니까."
"장군? 이 여자애 이름이 장군이야? 기집애, 이름하고는···."
"어서 썩 나가지 못해?"
"뭘 나가? 얼마 만에 육신을 찾았는데? 조금만 즐기다 갈래."
장군, 아니 장군의 몸을 빌린 누군가가 갑자기 나를 향해 도발적으로 다가왔다. 두 팔로 땅을 짚고 엉금엉금 기어오는 것이었다. 벌어진 후드 집업 사이로 두 개의 커다란 가슴이 축 늘어지며 어마어마한 크기를 드러냈다.
"너 이 애랑 하고 싶은 거 아니었어?"
섬뜩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달려드는 여자를 피해 물러서긴 처음이었다.
‘뭐, 뭐야 대체? 장군이 대체 왜 저러는 거야?’
[빙의가 된 것 같습니다만?]
‘빙의? 처녀 귀신이 아니라면서?’
[장군은 타고나길 타인의 혼을 잘 받아들이는 영매의 몸입니다. 아마도 술에 취해 정신이 혼미한 틈을 타고 구천을 떠돌던 다른 귀신이 들러붙은 게 아닐까요?]
‘그럼 잡귀가 씌웠단 말이야?’
잡귀.
말 그대로 구천을 떠도는 영혼을 지칭한다. 모종의 이유로 지상에 남아 인간 주변을 배회하는. 현재 장군은, 원래 붙어살던 처녀 귀신이 아닌 다른 영혼에 몸을 빼앗기 상태로 짐작되었다.
"좋은 말 할 때 썩 물러나. 혼나고 싶지 않으면."
"혼? 어떻게 내줄 건데? 그 커다란 방망이로 때리기라도 할 거야? 꺄하하하!"
경고에도 아랑곳않고 장군이 계속 다가왔다. 어느새 구석까지 몰린 나는 더 물러날 공간이 없었다. 막다른 길이었다.
‘젠장. 확 패버릴 수도 없고.’
[장군이 정신을 차리는 게 급선무입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데?’
[거기까진 저도 모르죠. 영적인 세계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으니까요.]
‘젠장, 도움이 일도 안 되네.’
"산 아래서부터 너희 남녀를 쭉 따라왔어. 여자애 몸이 특이하더라고. 쉽게 말해 혼을 잘 받아들이는 몸이랄까? 이 얘 무당 맞지?"
"그게 어쨌다는 거야?"
"호호. 네 녀석이 시종일관 여자애 엉덩일 훔쳐보는 것도 잘 구경했지. 응큼하긴."
"좋은 말 할 때 썩 꺼져. 장군이 무당인 줄은 눈치챘으면서 내가 퇴마사라는 건 몰랐나 보지?"
"···퇴마사?"
장군이 갑자기 기괴하게 목을 비틀었다.
저러고 보니 영락없는 귀신이었다.
"저승 구경 한 번 시켜줘?"
"잠깐만."
장군의 몸을 훔쳐 간 영혼이 말했다.
"너 정말로 퇴마사야?"
"그럼 거짓말로 퇴마사겠냐?"
"재밌네. 영매 무당하고 호색한 퇴마사라. 이 시골구석까진 뭐하러 왔는데?"
"너 같은 잡귀 잡으러 왔지."
"내가 잡귀라고? 푸하하하!"
갑자기 장군이 미친 듯이 웃었다.
어찌나 목소리가 음산한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내가 누군지는 알고 잡귀라는 거야?"
"알게 뭐야? 좋은 말 할 때 어서 썩 꺼지지 못해?"
"영 빨도 없는 녀석이 허세 부리기···, 윽, 뭐야?"
갑자기 장군이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더니 달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장군을 깨우세요!"
"뭐야? 넌 처녀 귀신?"
"얼른요! 제가 감당하기 힘든 상대에요! ···이건 또 뭐야? 네가 이 애 지박령이구나?"
장군은 갑자기 이중인격으로 변한 것처럼 두 가지 목소리를 동시에 냈다. 아마도 처녀 귀신이 장군을 보호하기 위해 끼어든 모양이었다.
"어떻게 깨워야 하는데?"
"하-. 이런 잡귀 따위가 감히···. 자, 장군은 지금 몽유병인 상태와 똑같아요. 자는 사람을 깨운다고 생각하심··· 네가 그 처녀귀신? 네까짓 것이 나에게 덤빈다고? 아악!"
장군은 혼자 울고불고 생쇼를 하는 중이었다.
스스로 머리를 쥐어뜯는가 하면 혼자 고래고래 악을 쓰고 난장을 피웠다. 전형적인 귀신들린 사람의 모습이었다.
‘세상에, 영매라고 다 좋은 건 아니구나. 저런 꼴을 보게 될 줄이야.’
[주인님 서두르셔야 합니다. 처녀 귀신이 밀리는 것 같습니다.]
‘오케이.’
나는 장군에게 다가가 그녀의 두 팔을 붙잡았다.
"장군! 정신차려! 장군!"
"놔라, 이 무엄한 놈!"
"장군! 넌 지금 꿈을 꾸는 중이야! 어서 깨어나라고!"
장군의 두 팔을 잡았으나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남자인 나를 월등히 능가하는 힘으로 나를 제압하는 것이었다.
"한낱 인간 주제에 나를!"
‘뭐, 뭐야? 왜 이렇게 힘이 세? 내가 힘에서 밀린다고?’
장군은 순식간에 나를 바닥으로 패대기치더니 위에서 덮쳐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저항하려고 했지만, 차마 그녀를 때릴 수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으윽!"
"그러니 곱게 줄 때 먹었어야지!"
장군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목을 움켜쥔 힘이 어찌나 강한지 아무리 떨쳐 내려고 해도 손가락 하나 풀 수 없었다.
[주인님! 반격하십시요! 이대론 위험합니다.]
‘끄윽. 내가 여자를 어떻게 때려! 게다가 자기가 한 짓도 아닌데.’
[저 귀신은 지금 그걸 이용하는 겁니다. 주인님부터 살고 봐야지 않겠습니까?]
‘조, 조금만.’
목이 졸리는 와중에도 쥐어짜듯 소리쳤다.
"커헉, 장군! 잠에서 깨어나라고!"
부르르!
쥐어짠 마지막 외침이 통했을까? 장군의 눈동자가 갑자기 풀리더니 손아귀의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커헉, 자, 장군. 너야?"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온 장군이 내 목을 쥐고 있던 손을 화들짝 놀라 치워냈다.
"아, 아앗! 세상에! 괜찮아?"
"···괜찮아 보이냐?"
나는 손자국이 남은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볼멘소리를 내뱉엇다. 장군이 마지막에라도 겨우 정신을 차렸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목 졸라 기절할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장군이 상황을 깨달았는지 눈물을 글썽거렸다.
"미, 미안. 내가 한 짓이 아니야. 갑자기 누군가 내 몸에 들어와서."
"알았어. 알았으니까 일단 위에서 내려와 줄래?"
장군은 그제야 자신이 내 몸 위에 올라타 있다는 걸 깨닫고 재빨리 일어섰다.
"아앗!"
"그리고 지퍼 좀 올려. 다 보여 지금."
"악!"
옥신각신 다투는 통에 후드 집업의 지퍼는 배꼽까지 내려온 상태였다. 장군이 등을 돌리며 재빨리 지퍼를 끌어 올렸다. 나는 그녀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그거 내가 내린 거 아니야. 네 스스로 내린 거지."
"···미안."
"방금은 대체 뭐였어? 갑자기 눈빛이 바뀌더니 나를 잡아 죽일 듯이 달려들었어."
조금은 진정이 된 장군이 말했다.
"귀신이 들렸나 봐. 흔한 일은 아닌데, 술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서 도저히 저항할 수가 없었어."
"기억은 나?"
장군이 얼굴을 붉혔다.
"어, 어렴풋···."
그녀는 자신이 한 짓을 똑똑히 기억하는 듯 했다.
나에게 도발적으로 달려든 것까지.
"네 몸에 붙은 처녀 귀신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정말로 큰일 날 뻔했어. 대체 무슨 귀신이야? 힘이 엄청 쌔던데?"
나는 장군에게 졸린 목덜미를 보여주었다. 빨간 손자국인 도장처럼 남아있었다. 장군은 미안함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사과했다.
"정말 미안해. 나 때문에 너까지···. 널 따라오는 게 아니었는데."
"지금 널 비난하려는 게 아니야. 살짝 놀랐을 뿐. 내가 퇴마사라고 말했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더라고."
"아마 오랫동안 묶은 귀신이라 상대의 영 능력을 볼 수 있었을 거야. 그런 귀신은 보통의 귀신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야. 흔히 말해 악귀라고 부르는."
"악귀?"
왠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지리산까지 온 것이 실수였을까?
< 876. 처녀 보살-18-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