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890화 (857/2,000)

< 872. 처녀 보살-14- >

장군에 따르면 죽은 사람의 원혼을 달래주는 제사라는 설명이었다.

"무당이 그런 일도 해?"

"보통은 49제처럼 절에서 하는 경우가 많지. 근데 뭐 꼭 스님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렇구나."

장군이 계속 설명했다.

"호상을 당했을 땐 굳이 천도제까진 올리지 않아. 제 명대로 살다간 경우도 그렇고. 하지만 원망이나 한을 품고 죽은 사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 또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목숨을 잃으면 영혼이 생전의 미련과 집착이 남아 쉽게 이승을 떠나지 못하거든."

도훈은 그 말을 유난히 귀담아들었다.

바로 자신이 겪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살아있을 때 살던 곳이나 아님, 가까웠던 사람의 주변에 머물면서 산 사람에게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돼. 천도제는 이렇게 이승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하는 거야."

"그렇구나."

"왜, 죽은 사람이 꿈에 자꾸 나타나는 경우 있잖아. 아니면 하는 일마다 액운이 껴서 우환이 끊이지 않는 다거나. 이럴 때 천도제를 올려주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아."

"신기하네. 한마디로 죽은 처녀 귀신을 위로하기 위한 제사구나?"

"응. 아마도 혼자서 굉장히 무섭고 쓸쓸했을 거야. 너무 허망하게 세상을 떴으니···.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해서."

장군의 목소리는 무척 진지했다.

도훈은 그제야 장군이 자신을 따라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잿밥에 더 관심이 있는 자신과 달리, 장군은 진심으로 귀신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어려운 길을 자청한 것이었다.

‘마음씨가 곱네, 장군이는.’

[그러게요.]

‘전부터 생각했지만, 가슴 큰 여자치고 나쁜 사람은 못 본 것 같아.’

[그 무슨 비과학적 추론인가요? 훌륭한 인성과 유방의 크기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다고요?]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귀납적 추론이다, 짜샤.’

[거참, 외모로만 그렇게 사람을 판단하시니. 주인님도 한 번 큰코다쳐 봐야 하는데 말이죠.]

‘쉽지 않을걸?’

[왜요?]

‘내가 여자에게 당하는 걸 본능적으로 혐오해서 말이야. 전생에 얼얼하게 통수 한 번 맞아 봤더니, 조금만 낌새가 보여도 귀신같이 알아채거든.’

[너무 자신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항상 조심하십시오.]

‘알았어, 인마. 걱정도 팔자네.’

두 사람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올랐다. 처음엔 조잘조잘 떠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말수가 줄어들며 거침 숨소리만 들려왔다. 무더운 날씨에 등산하려니 체력이 후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아, 하아···. 생각보다 많이 높네."

"좀 쉬었다 갈래? 저기 바위 근처에서."

"으, 응. 물 좀 마시고 싶어."

장군이 백기를 들었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좋은 도훈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장군이 싸 온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배낭 안에 어찌나 눌러 담았는지 도훈은 군대 시절 완전군장에 유격 행군하는 기분을 다시 느껴야 했다.

쿵-

도훈이 커다란 배낭을 내려놓으며 이마에 땀을 훔쳤다.

"어휴, 무거워. 사람 하나 업고 가는 것 같네."

"미안. 이럴 줄 알았으면 최대한 짐을 줄일 걸 그랬어. 힘들면 지금이라도 바꿔 맬까?"

"아니. 너 지금 이거 멨다간 뒤로 굴러 떨어질 거야. 내 걱정일랑 말고 체력 관리나 잘해. 중간에 퍼지면 그땐 진짜 오도 가도 못 하니까."

"그, 그렇겠지?"

도훈의 엄포에 장군도 슬슬 걱정이 들었다. 어려서 전국을 유랑했던 기억에 산행을 쉽게 생각했는데, 점 집에 틀어박히면서 체력이 급감했는지 한 시간 밖에 안 됐는데도 벌써 입에 단내가 났다. 특히 브래지어에 땀이 차면서 접히는 살 부분이 쓸리는 건 말 못 할 고통이었다.

‘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스포츠 브라를 하고 오는 건데···.’

남다른 가슴 사이즈를 가진 장군은, 국내에서는 팔지 않는 특대형 사이즈를 외국에서 특별히 주문해서 들여왔다. 그러나 외국의 컵 사이즈와 우리나라의 컵 사이즈가 미묘하게 다르다 보니 자신에게 꼭 맞는 걸 주문하기 어려웠다. 해서 그녀의 브래지어는, 늘 조금씩 크거나 아니면 넉넉히 남는 편이었는데 하필 오늘 차고 온 속옷은 몸에 딱 달라붙어 유난히 땀이 차고 있었다.

‘어떡하지. 이러다 진짜 땀띠 날 것 같은데···.’

가슴이 큰 장군에겐 여름은 늘 곤욕스러웠다.

대부분의 여자는 공감할 수 없겠지만, 살끼리 맞닿는 밑가슴 부분에 유난히 피부 트러블이 잦았다. 특히 한 번 발진이 올라오면 평소에도 늘 습한 부분이라 잘 낫지 않고, 여름철이 끝날 때까지 고통받아야 했다.

장군은 이대로 계속 진행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인 도훈에게 그런 사실을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이 일을 어떻게 하지? 차라리 벗어버리는 게 훨 낫겠는데.’

꽉 막힌 브래지어를 차는 것보다 노브라인 채로 다니는 것이 환기가 잘 되는 건 자명한 이치. 그러나 아무리 대범한 여성이라도 몸에 꼭 달라붙는 옷을 입고 노브라로 다니기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특히 꼭지가 튀어나온 걸 들키게 되면 그 민망함을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그때 장군이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어? 잘하면, 이 배낭?’

장군은 도훈의 조그만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가방의 어깨걸이 부분이 정확히 유두의 위치와 일치했다. 즉 가방을 메고 있는 상태에선 노브라인 것을 들킬 일이 없었다.

‘그래. 계속 살이 쓸리느니 차라리 벗는 편이 낫겠어.’

결심을 굳힌 장군은 두 번째 난관에 부딪혔다. 속옷을 벗으려면 숨을 곳을 찾아야 하는데, 도훈이 가까이서 떨어질 생각을 않는 것이었다. 결국, 장군이 부끄러운 표정으로 도훈에게 말했다.

"혹시 근처에 화장실 없겠지?"

"화장실? 사방이 다 화장실인데 뭘."

"그게 무슨···."

"쉬 마려우면 구석에서 몰래 싸고 와. 공중화장실은 한참 올라가야 나올걸? 아님 밑으로 하산했다가 다시 올라오던가."

"으···. 아, 알았어. 훔쳐보면 안 돼?"

"참나,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도훈을 신뢰하는 장군은 그를 믿고 커다란 바위 뒤에 숨었다. 그리고는 정작 용변은 보지 않고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괜찮겠지?’

민망하긴 했지만, 피부가 쓸려 온종일 고통받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장군은 상의를 들춰 빠르게 브래지어를 벗어냈다. 예상대로 살이 접힌 밑가슴 부분이 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목에 맨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 낸 장군은 벗은 브래지어를 가방 속에 구겨 넣고 다시 옷을 입었다.

몸에 쫙 달라붙는 등산복 덕에 곧바로 꼭지가 뽕 튀어나왔다. 유난히 유두가 도톰한 편인 장군은 옷 위로 보이는 젖꼭지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휴, 참. 하필 꼭지까지 커서는.’

장군이 도훈의 배낭을 멨다. 어깨걸이 부분이 서로 연결되는 H 방식이었는데, 가운데를 걸자 어깨끈이 유두를 완전히 감추었다.

‘좋았어. 이러면 절대 티 안 나겠지?’

통풍이 잘되는 등산복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자 아까와 달리 시원한 청량감이 들었다. 장군은 스스로 아이디어에 만족해하며 다시 도훈에게로 돌아갔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설마 큰 거는 아니지?"

"무, 무슨 소리야! 쓸데없이."

"농담이야. 나도 망 좀 봐 줄래?"

"응?"

"실은 나도 아까부터 참고 있었거든. 금방 싸고 올게."

이번에는 도훈이 장군이 숨었던 자리로 교대했다.

도훈은 진짜로 소변이 마려웠으므로 바위 앞에서 곧바로 지퍼를 열었다. 그리고는 특유의 오줌 빨을 자랑하며 콸콸 소변을 쏟아냈다.

쏴아아아-.

‘젠장. 몰카 아이템을 붙일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야산 방뇨는 구경도 못 했네.’

도훈이 툴툴거리며 소변을 보는 데 경사진 지형이라 그런지 바위에 닿고 흘러내린 오줌이 등산화 쪽으로 흘러 내려왔다.

"으읏!"

신발에 소변이 묻을까 화들짝 발을 피한 도훈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응? 뭔가 이상한데?’

흔적이 없었다.

소변을 보고 나면 자신처럼 의례 남아야 할 물 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도훈은 사방을 꼼꼼히 살피며 두리번거렸지만, 어디에서도 장군의 소변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뭐야? 소변을 안 봤음 대체 여기서 뭘 한 거야?’

도훈이 의문을 품고 다시 등산로로 복귀했다.

"이제 출발할까?"

"응."

양손으로 어깨끈을 붙잡고 있던 장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앞장섰다. 도훈은 경사로를 오르는 그녀를 뒤따르며 계속 의문을 떠올렸다.

‘분명 소변을 본다고 하고 가놓고 한참 만에 돌아왔단 말이지? 근데 왜 소변을 본 흔적이 조금도 없을까? 만약 소변을 보지 않았다면 그 시간 동안 대체 뭘 하고 돌아온 거야?’

뒤따르던 도훈이 앞서 오르는 장군의 엉덩이를 노려보았다.

골반이 발달한 장군의 탐스러운 엉덩이가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것처럼 교대로 씰룩거렸다.

‘키야. 팬티 라인 다 비치네. 개이득.’

몸에 달라붙은 쫄바지 덕에 팬티 라인이 적나라하게 비치고 있었다. 한참을 눈요기로 욕망을 채우던 도훈이 장군에게 말했다.

"천천히 가봐. 나 가방에서 물 좀 꺼낼 게."

"헉, 헉, 응."

점점 지쳐가던 장군은 산을 오르는 데만 정신이 팔려 도훈이 등에 멘 가방을 여는데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물을 꺼내 마시기 위해 가방을 열던 도훈은 맨 위에서 못 보던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뭐지? 내가 이런 걸 챙겨왔던가?’

등 뒤에서 정체불명의 물건을 끄집어내던 도훈은 반쯤 가방 밖으로 삐져나왔을 때 마침내 정체를 깨달았다.

‘헉! 이, 이게 왜 여깄어?’

그것은 장군이 숨겨놓은 브래지어였다. 어찌나 컵이 큰지 컵을 머리에 쓰면 비니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도훈은 땀에 절여 있는 브래지어의 촉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안쪽에서 생수병을 꺼내고 다시 닫았다.

"다 됐어."

"으으, 힘들어 죽겠다. 얼마나 더 올라가야 하는 거야?"

"아직 한참 남았어. 좀 있다 쉬면서 폰으로 확인해 보자."

도훈이 생수병을 열어 벌컥벌컥 물을 마시며 생각했다.

‘브라에 땀이 차서 벗어 버린 거네. 그럼 아까 화장실을 간 게 아니라 속옷을 벗으러 간 것이었어.’

도훈은 그제야 아까의 의문을 해결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의외로 대담하네. F컵 폭유 주제에 노브라 쫄티라니. 사람 환장하게 만들 셈인가?’

"으으, 나도 물 좀."

"어. 여기."

도훈이 마시던 생수를 통째로 건넸다. 생수를 받아든 장군이 잠시 멈춰 서더니 망설였다.

"입 안 대고 마셨어. 그냥 마셔도 돼."

"으, 응."

장군이 민망해하며 목을 젖혀 생수를 넘겼다.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가방의 어깨끈이 어긋나며 숨기고 있던 젖꼭지가 훤히 비쳤다. 밖으로 유난히 도드라진 젖꼭지가 도훈의 가슴에 불을 댕겼다.

‘헉, 시발. 꼭지 존나 튀어나왔어.’

남다른 가슴 사이즈에 걸맞게 꼭지도 상당히 돌출된 편이었다. 도훈은 애써 못 본척하며 딴소리했다.

"날씨가 에러네. 이 날씨에 등산이라니."

"그러게. 우리 말곤 아직 한 명도 못 본 것 같아."

"올라가면 좀 있을 거야. 지리산은 오르는 루트가 다양해서 위에서 결국 만나게 되거든."

"아···. 등산 많이 했었어?"

"아니 뭐. 그냥 남들 하는 정도?"

그때 위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길이 있는 거야? 최 선생?"

"그렇다니까요, 누님. 계속 내려가면 결국 밑에 닿지 않겠어요?"

맞은편에서 두 사람이 내려오는 중이었다. 40대쯤 보이는 남자와 여자였는데, 남자가 누님이라고 부르는 걸 봐선, 여자 쪽이 나이가 좀 더 많아 보였다.

도훈과 장군은 하산하는 사람을 위해 좁은 길목에서 옆으로 비켜섰다. 사교성이 좋은지 남자가 둘에게 먼저 인사했다.

"아유, 날도 더운데 고생하시네. 조금만 올라가면 쉼터 나올 거에요."

"네, 감사합니다."

"수고들 해요. 젊은이들."

중년 남녀가 빠르게 두 사람을 지나쳐 갔다.

장군이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사람이 있긴 있구나. 부부 사인가?"

도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닌 거 같은데?"

"왜?"

"가방에 표식이 달려있더라고. 호암등산회라고. 등산회 사람들인가 봐."

"아. 벌써 정상 찍고 내려오는 길인 가 보네."

도훈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볼 땐 등산하는 척 적당히 올랐다가 둘이 샛길로 빠진 것 같은데?"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순진한 장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훈이 말했다.

"원래 등산회를 등산을 목적으로 가는 사람들은 많이 없거든."

"그럼?"

"뻔하지 않겠어? 등산 핑계 대고 바람피우려고 모이는 거지."

"서, 설마."

"너무 순진하네. 생각해봐. 이 시간에 하산하는 사람들치곤 짐이 무척 가볍잖아. 가방도 안 보이고."

"그게 어째서?"

"천왕봉까진 아무리 등산에 익숙한 사람도 온종일 걸리는 코스야. 정상을 찍고 내려왔다면, 어제 와서 하룻밤 자고 새벽부터 내려왔다는 건데 전혀 일박할 준비가 안 된 복장이잖아. 그럼 아침에 올라서 중간에 내려왔다는 소리지."

"아···. 뭐 갑자기 급한 일이 있어서 내려갈 수도 있잖아."

"급한 일이긴 하겠네. 이제 다른 곳을 올라야 하니까."

"응?"

"아니야 아무것도. 얼른 서두르자. 이러다 진짜 날 새겠어."

"어어."

두 사람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장군은 도훈이 해준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한참을 생각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곳을 오르다니 뭔 소릴까, 대체?’

< 872. 처녀 보살-14-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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