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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888화 (855/2,000)

< 870. 처녀 보살-12- >

"평소에 대화는 해?"

"응?"

잠시 딴생각에 빠져있던 장군에게 도훈이 기습적으로 물었다.

"아니 너한테 붙은 귀신이랑."

"아···. 아니."

도훈은 장군과 처녀 귀신과의 관계가 자신과 로시와 같은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장군이 들려준 대답은 전혀 달랐다.

"평소에는 전혀 소통이 없어. 그리고 접신을 하게 되면···. 그러니까 점을 칠 때 신들리게 되면 나는 꿈을 꾸는 것처럼 의식이 몽롱해져."

"의식이 몽롱해 진다고?"

"몽유병이랑 비슷하다면 이해가 되려나?"

"자는데 막 깨어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거?"

"응. 분명 내 몸인데 내가 조정할 수가 없어. 영매(靈媒)의 일종이랄까? 내 몸을 빌어 영혼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거야."

"한마디로 아바타 같은 거구나."

"아바타?"

"왜 영화 있잖아. 파란 생물 나오는."

"그런 거 안 봐서 몰라."

"그 영화를 모른다고?"

도훈이 뜨악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는 단일 작품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을 기록했던 영화였다.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이름 정돈 들어봤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장군은 진심 모르는 눈치였다.

"왜? 모를 수도 있지."

"아니 그렇긴 한데. 혹시 평소에 영화 잘 안 봐?"

"···응."

"왜?"

"아, 안 좋아해. 별로."

장군이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도훈이 계속 캐물었다.

"그럼 취미가 뭔데?"

"취미?"

"일하는 거 말고 평소에 하는."

"음···."

장군이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했다.

"독서."

"독서?"

"응, 명리학 관련 서적은 꾸준히 읽는 편이야. 특히 주역은 볼 때마다 새로워서···."

"아니 그건 일의 연장이잖아. 일할 때 말고 쉴 때 말이야. 그때 보는 책은 뭔데?"

"···없는데?"

"없어? 취미가 없다고?"

"꼭 있어야 해?"

자꾸 따지는 듯한 도훈의 태도에 장군도 살짝 짜증이 난 목소리로 답했다.

"난 다른 사람이랑 많이 달라. 학교도 의무교육까지만 다녔고,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전국을 유랑했어. 그러니 당연히 친구도 없고, 또 남들이 아는 것도 잘 몰라."

"아···."

"그러니 모를 수도 있지. 아니 모르는 게 당연한 거야."

장군의 대답을 들은 도훈이 살짝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 저렇게 예쁜 외모를 가지고도 직업 때문에 또래들과 너무 다른 삶을 살았나 보군. 대학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뜻을 알겠네.’

"미안. 내가 거기까진 미처 생각 못 했어."

"아니야. 괜찮아. 내가 특이한 거니까."

"근데 그럼 친구도 없어?"

"학교를 제대로 안 다녔으니 친구가 있을 턱이 있겠어?"

"검정고시 공부했다며? 학원 안 다니고?"

"집에서 독학했어."

"아···."

"그럼 남자친구도?"

"뭐래 자꾸? 친구도 없는 데 남자친구가 있겠니?"

"하긴."

당연한 질문을 한 도훈이 머쓱하게 웃었다. 그러나 이는 다음 질문을 위해 준비한 포석이었다.

"학교 다녔으면 남자한테 인기 엄청 많았을 것 같은데···."

"내가?"

장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도훈이 볼 때 장군은 객관적으로 예뻤다. 단아하게 생긴 얼굴 아래, 폭탄 같은 가슴을 갖고 있었다. 더구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성격이 남성들의 정복욕을 자극하는 타입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매력 있는 줄 모르는, 숨겨진 원석이랄까?

저런 여자는 먼저 채가는 놈이 임자다.

"혹시 점 보러 온 손님 중에 추근대는 사람 있지 않았어?"

"없어."

장군이 단호하게 말했다.

"왜? 남자들도 오지 않아? 나같은."

"아까도 말했지만 나한테까지 찾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절박한 경우가 대부분이야. 다른 데 한 눈 팔 여유가 없는 사람이란 거지. 그리고 남자 손님보다 여자들이 훨씬 많은 데다, 젊은 남자들은 거의 없어."

"젊은 남자 손님이 없다고?"

"응. 그럼 사람들은 점 보는 걸 미신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구나. 하긴 나도 특별한 능력이 생기기 전에는 전혀 믿지 않았어. 너한테는 미안한 얘긴데 그냥 말장난으로 남의 돈 갈취해가는 사기꾼이라고 생각했거든."

"꼭 틀린 말은 아니야. 실제로 이런 일 하는 사람의 90%는 죄다 엉터리니까. 협회 같은 데 가보면 말만 번지르르하지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거든."

"가소롭겠네. 네 입장에선."

"근데 뭐 어떤 면에선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거짓말로 남의 돈 갈취하는 게?"

"넌 잘 모르겠지만, 점 보는 사람들은 다들 고민이 많은 사람이야. 절박하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고,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은 문제들을 잔뜩 안고 있어. 그런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으니까."

"그게 거짓된 희망인데도?"

장군은 자기 직업 얘기가 나오자 평소보다 업된 목소리로 떠들었다.

"내가 놀라운 거 하나 알려줄까?"

"뭔데?"

"사람은 정말로 믿는 만큼 강해져."

"그게 무슨 소리야?"

"가령 어떤 학생이 꼭 붙고 싶은 시험이 있어서 나 같은 사람을 찾아왔다고 쳐. 그럴 때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적인 말을 해주는 거야.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하면 붙을 수 있다. 올해 운이 좋으니 합격할 것이다. 최선을 다하면 원하는 것을 얻는다. 이런 식으로."

"그러면 정말로 붙는다고?"

"모두가 다 붙진 않지.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 시험에 합격한다고 믿으면 더 잘되는 경우가 훨씬 많아."

"아아! 피그말리온 효과."

"피그··· 뭐?"

"심리학에도 있는 말이야. 플라시보라고도 하지. 그러니까 쉽게 말해 점을 보는 건 거짓일지언정 믿음을 심어주는 일인 거구나?"

"무슨 소린 줄 잘 모르겠지만, 대충 의미는 비슷해. 우리 같은 사람은 고달픈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격려자가 될 수 있지. 그래서 점궤가 신통치 않은 무당이라도 다 쓸모가 있다고 했어. 이건 우리 아버지가 해준 말이야."

"재밌다."

서울에서 지리산까지는 4시간이 넘는 머나먼 여정이었다.

하지만 장군과 함께 대화를 이어가며 함께 가는 길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역시 여자는 처음 보는 여자가 가장 매력적이란 말이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겠군.’

[슬슬 입질을 하셔야 하는 거 아닐까요? 차 타고 오는 내내 전혀 진전이 없는 것 같은데···.]

‘아니야. 내 생각엔 장군은 급하게 들이대면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이 커. 보통의 20대 초반 여자들이라고 생각해선 안 돼. 살아온 환경이 남다르잖아.’

[그렇긴 하죠.]

‘오히려 성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은 10대 초중반 수준 밖에는 안 되는 것 같아. 게다다 남자랑 단 둘이 얘기한 경험도 많이 없을 거고. 이런 타입은 오히려 스무스하게 들어가야지. 어린 소녀애를 살살 꼬드기듯 말이지.’

[상대에 따른 맞춤식 전략인가요?]

‘정확해. 두고 봐. 지금은 이렇게 오붓하게 얘기하고 있지만, 서울로 돌아올 땐 저 입에다 잦이를 물리고 운전해서 올 테니까.’

[꿈은 크셔서 좋군요.]

‘아까 못 들었어? 간절히 소망하면 온 우주가 응원해준다잖아.’

도훈은 평소보다 느리게 템포를 올렸다.

정신 조작류 스킬이 제한 된 상대에게 무작정 밀어붙이는 건 능사가 아니었다. 조금씩 라포를 형성해 가다 보면, 언젠간 마음의 문을 열고, 그리고 몸의 문도 열 것이라고 보았다.

한편 장군 역시 도훈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에게 흥미를 느끼는 중이었다. 평소 또래의 남자와 단둘이 이야기해 본 경험이 없었던 만큼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처럼 자연스러워졌다. 특히 존댓말을 관두고 말을 놓기로 한 것이 결정적인 촉매가 되었다.

‘신기해. 이렇게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은 처음 보는 것 같아.’

잦은 이사로 전학을 다니는 통에 그녀 주변엔 늘 친구가 없었다. 박수 무당의 딸이라는 태생적 배경도 그녀를 외롭게 만들었다.

-저런 애랑 어울리면 안 돼.

-어린 것이 보는 눈이 꼭 쟤 애비 같아서 원.

나이가 먹고 나선 더했다.

-무당집 딸이 신들렸다지?

-가까이하면 괜히 귀신이 붙을지도 몰라.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10대부터 늘 외톨이로 지냈기에 장군은 항상 외로웠다. 그런 그녀에게 젊고 매력적인 도훈의 등장은 색다른 충격이었다.

‘친하게 지내고 싶어. 생각보다 이상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물론 그의 능력이 순진한 장군에게는 부담스럽긴 했지만,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아온 장군에게는 도훈이 받은 특별한 능력조차 동질감으로 느껴졌다.

‘근데 하필 받아도 이상한 능력을 받아서는.’

섹스를 잘하는 능력이라는 게 도통 감이 오지 않았던 장군은 도훈에게 넌지시 물었다.

"도훈아."

"응?"

"그럼 너는 친구 많아?"

"친구? 뭐 적당히 있지. 왜?"

"아, 아니 혹시 여자친구도?"

물어보는 장군의 얼굴이 빨개졌다.

도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왜, 없게 보여?"

"있을 것 같아."

"없는데."

"응? 진짜? 어떻게?"

"아니 없을 수도 있지. 너도 없으면서."

"근데 아깐 능력을 확인해 봤다지 않았어?"

"무슨 능력? 아···."

"그, 그걸 그럼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여자친구도 없으면서?"

도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꼭 여자친구가 있어야 능력을 실험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뭐, 뭐라고!?"

장군이 화들짝 놀랐다.

"그럼 사귀지 않은 상대랑···."

"에이, 아니야. 그런 거."

"실망이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순진한 장군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혼전 순결주의자까진 아니었지만, 최소한 사귀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는 보수적인 장군이었다.

‘역시 내 생각대로 바람둥이였어.’

도훈은 괜히 말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다급히 둘러댔다.

"아니라니까 네가 생각하는 거."

"그럼 뭔데?"

"그···. 내가 진짜 이런 얘기까지 해야 하나?"

"싫으면 하지 마. 근데 대답에 따라 너한테 조금은 실망할 것 같아."

"딸딸이야!"

"···응?"

"딸딸이 친 거라고. 딸딸이."

"그게··· 뭔데?"

장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생전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였다.

"아이참, 그러니까 혼자 자위하는 거 말이야."

"자···. 크흠."

"그때 죽다 살아나서 혼자 자위를 하는데 도무지 싸질 못하는 거야."

"······."

"한 시간, 두 시간, 아니 하루종일 쳐도 끄떡없더라고. 그래서 알게 된 거야."

"아, 아니 그게 무슨···."

도훈이 내친김에 더 내질렀다.

"처음엔 몸에 이상이 생긴 줄 알았어. 그래서 병원도 가봤는데 정상이라는 거야. 야동도 자극적인 걸로 바꿔보고 별에별 도구도 다 써봤는데···."

"그, 그만해. 알았어."

"이제 오해 풀린 거지?"

"···으, 응."

장군이 민망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무슨 자위를 하루종일···. 너무 망측해.’

딸딸이라는 단어는 몰랐지만, 장군도 자위가 뭔 줄은 알았다. 왜냐하면, 그녀도 어려서부터 혼자 즐겨왔기 때문이었다. 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장군은 우연히 자위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자위에 중독되어 버린 장군은 잠들기 전에 자위를 하는 게 습관처럼 굳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자위는 길어야 20분을 넘기지 않았다. 몸이 예민해서 그런지 그쯤 만지다 보면 도저히 그곳에 손을 대기 힘들 만큼 찌릿찌릿해져서 도무지 어찌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괜한 걸 물었다는 생각에 장군의 얼굴이 뜨거워져 있는데 도훈이 다시 물었다.

"자위는 할 수 있는 거잖아. 안 그래?"

"아, 알었어. 그만 해."

"근데 딸딸이가 뭔지 몰라?"

"내,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자위는 알면서 딸딸이는 모르는 건 신기하네."

"···넌 부끄럽지도 않니, 그런 말?"

"왜?"

"아니 그래도 너랑 나 둘밖에 없는 데 그런 얘기를···."

장군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추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 상황이 너무나 자극적이었다.

밀폐된 공간.

젊은 남녀.

그리고 화끈한 19금 소재.

장군은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호, 혹시 도훈이가 내 비밀도 알아 버리는 건 아니겠지?’

장군은 소위 자위 중독.

쓸쓸하게 보낸 청소년기부터 꾸준히 해온 자위는, 이제 하루라도 거르지 않으면 몸이 간지러울 만큼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하필 도훈이 가진 능력은 성과 관련된 능력이 대부분. 처녀감별이라던가, 몸매를 읽는다거나, 섹스를 잘하는 능력 등. 가진 능력이 하나같이 외설적인 능력뿐이었다.

장군은 만에 하나 도훈이 상대가 자위를 얼마나 자주 하는지도 알 수 있다면 너무나 부끄러울 것 같았다.

‘아니겠지?’

괜한 걱정에 장군이 넌지시 도훈에게 물었다.

"너 뭐 또 다른 능력도 있는 거 아니지?"

"무슨 소리야?"

"산신령에게서 3가지 능력을 받았잖아. 또 다른 것도 있냐고."

"글쎄? 왜? 더 있을 것 같아?"

"아니 몰라서 묻는 거잖아. 확실히 없지?"

"알아서 생각해."

"뭐야? 왜 갑자기 숨겨?"

도훈이 피식 웃었다.

"나보단 네가 더 숨기는 게 많은 거 같은데?"

"뭐, 뭐라고?"

장군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은 마음에 곧장 입을 다물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도훈에게 말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됐어. 나 눈 좀 붙이고 있을게. 너무 떠들어서 피곤해."

"그래. 한숨 자. 한 시간 후면 도착할 것 같으니까."

장군이 보조석 차창쪽으로 머리를 기울이고 눈을 붙였다. 그러나 눈만 감고 있을 뿐 정신은 말똥말똥했다.

‘도훈이가 내 비밀을 알아챘으면 어떻게 하지? 아, 괜히 신경 쓰이네. 아무 말 하지 말고 있을걸.’

장군이 잠이 든 척 누워있는 모습을 도훈이 슬쩍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벨트에 눌린 F컵 가슴이 유난히 도드라져 있었다. 도훈은 맛있는 음식을 보는 것처럼 입맛을 다셨다.

‘캬, 빨통은 진짜 기가 막히는구나.’

< 870. 처녀 보살-12-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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