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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887화 (854/2,000)

< 869. 처녀 보살-11- >

‘설마 이게···.’

장군이 화들짝 놀라 손을 뺐다. 그러나 어찌나 당황했던지 빠르게 손을 거두는 도중, 도훈의 손목을 후려치고 말았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도훈은 자기도 모르게 핸들을 옆으로 꺾었다.

"우어엇!"

차가 좌우로 크게 요동쳤다.

하지만 베테랑 운전자인 도훈은 당황하지 않고 재빨리 사이드미러와 룸미러로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근처에 차가 없었다. 만에 하나 좌우에서 달려오는 차가 있었다면 2차 사고로 연결되었을지도 모를 아찔한 상황. 이에 화가 난 도훈이 장군을 크게 나무랐다.

"아니! 운전하는 사람 운전대를 건드리면 어떻게 햇! 사고 날 뻔했잖아!"

"죄,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아 놔, 진짜. 어떻게 다시 살아났는데···. 어처구니없이 뒈질 뻔했네."

"저, 정말 죄송해요. 정말로 실수였어요."

"아 됐고, 저기 잠깐 차 좀 세우죠."

휴게소는 아니지만, 전방 500M 앞에 졸음 쉼터 표지판이 보였다. 도훈은 졸음 쉼터에 차를 정차하더니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장군을 차에 혼자 내버려 둔 채 내려버렸다.

도훈은 본넷 앞에서 보란 듯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화난 얼굴로 담배를 뻐끔뻐끔 피워대는 도훈의 모습에 장군을 더욱 움츠러들었다. 김밥을 흘린 것도 본인 실수고, 사고를 유발할 뻔한 것도 명백한 본인의 잘못이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왜 그렇게 오버를 하십니까?]

‘내가?’

[아무리 봐도 수상하잖습니까? 사고가 날 상황도 아닌데 버럭 화를 낸 것도 그렇고, 핸들을 일부러 좌우로 흔든 것도 그렇고. 제가 모를 줄 아셨나요?]

‘크크. 눈치 빠르긴. 그래야 장군이 나한테 꼼짝 못 할 거 아니야.’

[네?]

‘일부러 미안하게 만들려는 거라고. 앞으로 컨트롤하기 편하게.’

[아아. 어쩐지 평소보다 훨씬 과한 반응인가 싶더라니.]

‘사람은 본래 미안한 마음이 들면 더 잘해주고 싶은 법이거든. 잘 봐. 앞으로 장군은 나한테 꼼짝 못 할 테니까.’

[한마디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술책이군요. 운전을 전혀 모르는 장군을 기만하면서.]

‘딱 그거지.’

도훈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장군이 고개를 떨군 채 보조석 문을 열고 나왔다.

"정말 죄송해요, 도훈씨."

"···됐어요. 별일 없었으니까. 그냥 담배 피우려고 멈춘 세운 거예요."

"···저 괜히 따라오겠다고 했나 봐요. 도움도 안 되는데."

"괜찮다니까요."

"근데 왜 갑자기 존댓말 해요?"

"내가요?"

"화나신 것 맞네요. 아깐 편하게 하신다더니."

"아니 그쪽이 자꾸 존댓말 하니까 나도 무안해서 그렇지. 그럼 나처럼 말 편하게 하던가."

"그럼 존댓말 안 하실 거에요?"

"그래."

"···알았어."

장군이 어색하게 대답하더니 이번엔 차 뒷문을 열었다.

"왜 뒤로 가?"

"보조석에 앉아봐야 도움 하나도 안 되니까."

"그러다 나 졸음운전 하다 사고 나면 어쩌려고? 그냥 앞에 타."

"······."

장군은 입을 오물조물거리다 보조석에 다시 올랐다. 담배를 비벼 끈 도훈은 장군이 안 보는데서 씩 웃더니 다시 차에 올랐다.

어느새 운전석에 있던 김밥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다시 출발하자."

"혹시 여긴 화장실은 없어?"

"응. 설치되어있는 데도 있는데 여긴 없네. 왜? 화장실 가고 싶어?"

"아니, 그냥 손 씻으려고."

"조금만 더 가면 나올 거야."

"으, 응."

장군은 사실 조금 전부터 요의가 몰려왔지만, 휴게소에 들르자는 말을 못 꺼낸 상태였다. 도훈이 다시 차를 출발시키며 말했다.

"서로 말 편하게 하니까 얼마나 좋아? 나라고 누나한테 반말하는 게 편한 줄 알았어?"

"아니, 그래도 초면이니."

"정확히는 구면이지. 어제도 봤으니까."

"그, 그렇긴 한데."

"왜? 혹시 어렸을 때 서당 다녔나?"

"웬 서당?"

"아니 그렇잖아. 한복 입는 것도 그렇고. 어제 보니까 책상 위에 한자로 된 책도 보이길래."

"그거 주역 책이야. 사주를 보는 사람들에겐 교과서 같은 거."

"암튼 난 그래서 서당 다니면서 천자문 배웠나 했지. 워낙에 예의 바르게 자라서 계속 존댓말 쓰는 줄."

"풉- 뭐래?"

장군이 처음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늘 진지한 표정의 그녀가 웃자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웃으니까 예쁘다. 자주 웃어."

"······."

장군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입을 한일자로 꾹 다물었다.

‘이상한 남자야. 바람둥이같아. 설마 진짜로 바람둥인가?’

장군이 도훈의 얼굴을 떠올리며 도화살이 있는지 생각했다.

도화살이란 바람기 많은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특징이었다. 그러나 도훈의 얼굴엔 전혀 그런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잘생긴 얼굴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주변에 여자가 없는 타입이었다. 전형적인 숫총각의 얼굴이랄까?

‘희한하네. 관상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맞추는 게 없구나.’

물론 장군도 늘 점을 잘 맞추는 건 아니었다. 그럴 때는 늘 처녀 귀신의 도움을 빌렸는데, 지금은 전혀 접신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전혀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어쩌면 저 사람은 자기 운명이 바뀌어서 그럴지도 몰라. 원래는 박명할 상인데 죽다 살아났으니까.’

장군이 그렇게 해석하고 있는데 도훈이 뜬금없이 말을 걸었다.

"그럼 중졸이야? 아니 국졸인가?"

"국졸?"

국민학교를 졸업한 이정우는 초등학교란 단어가 잘 입에 붙질 않았다. 하마터면 정체를 들킬뻔한 도훈이 빠르게 말을 바꿨다.

"아아, 초졸 말한 거야."

"아니야. 학교는 다니지 않았지만, 고졸 검정고시까지 다 뗐어."

"그럼 몇 살 때부터 시작한 거야? 이 일은?"

"초등학교 졸업하고 아빠 따라다니면서부터. 아버지는 굿을 하러 전국을 떠돌았어. 그땐 내가 북을 치는 고수 역할을 했지."

"고수?"

"굿을 제대로 하려면 사람이 많이 필요해. 아버지가 어려서부터 나를 조기교육 시키셨거든."

"어머니는?"

"돌아가셨어. 나 3살 때."

"아, 미안."

"아니야. 너무 어려서 기억에도 없으니까."

"근데 보통 부모님 직업은 자기 자식한테 안 물려주려고 하지 않나?"

"보이셨던 거지, 내 운명이. 신병을 앓을 것도, 결국 무당이 될 거라는 것도."

"아···. 그럼 지금은 아버지에게서 독립한 상태야?"

"응. 나도 신을 받으면서부터 떨어져 지내는 수밖에 없었거든. 한 집안에 신들린 사람이 두 명이면 문제가 생겨."

"그렇구나. 그나저나 나도 너 같은 능력을 받았으면 좋았을  걸."

"왜?"

"신기하잖아. 다른 사람의 운명을 본다는 게. 재밌을 것 같아."

"···딱히 재밌는 일은 아니야."

"그래?"

"보통 점을 보러오는 사람들은 절박한 경우가 많아."

"그렇지. 보통은 정말 답이 안 보일 때 궁여지책으로 찾아가니까."

"맞아. 하지만 답이 없는 문제에 해답을 제시해 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 꼭 그게 맞는다는 보장도 없고."

"안 맞아? 그럼 사기 아닌가?"

"타고난 팔자는 얼마든지 바뀌는 거야. 너만 해도 정해진 운명대로였으면 진작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잖아. 결과가 정해진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을 걸."

장군의 말을 들으며 도훈이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네. 정해진 길만큼 시시한 건 없지. 그래서 인생이 재밌는 거고.’

도훈은 문득, 자신의 삶을 반추했다.

전생에선 40대까지 재미도 없는 삶을 살았다.

머리는 좋았으나 외모가 형편없어서 여자도 제대로 사귀지 못했다. 아마 상간남에게 칼맞아 죽지 않았다면, 마누라의 바람도 눈치 못 채고 병신처럼 평생 일만 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것이 정해진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도훈으로 다시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야.’

그에 반해 이도훈의 삶은 과거 이정우에 비하면 훨씬 다이나믹했다. 무엇보다 이제 겨우 스물셋이라는 젊은 나이가 가장 만족스러웠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엔 너무나 사치스럽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 누구에게나 인생 2회차를 살아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바보처럼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을 텐데.’

"내 얘긴 별로 재미없으니 네 이야기 들려줘."

"나?"

"응. 대학은 다닐만해?"

"그저 그래."

"왜?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야?"

"뭐 요즘 대학이 대학인가? 낭만의 캠퍼스란 것도 옛날 말이지. 지금은 뭐 취업 준비 학원이랄까?"

"그렇구나. 난 사실 대학에 꼭 가보고 싶었어."

"왜? 지금 돈 잘 벌지 않아? 엄청 잘나간다고 아는데."

"돈···. 돈이야 아쉽지 않지. 근데 세상은 돈이 전부가 아니잖아."

‘역시 맞는 말이군. 장군은 어려서부터 일을 쭉 해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 조숙한 느낌이야.’

"물론 너한테는 많이 중요하겠지만. 그러게 왜 학교나 잘 다닐 것이지 왜 코인 같은 걸 했어?"

"잘 될 줄 알았지. 그리고 나만 잘되려고 그랬겠어?"

"누구나 다 그래."

"난 내가 재능이 있는 줄 알았어. 하룻밤에 10배를 번 적도 있었어."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시드가 너무 작게 느껴지더라고. 코인은 하루만 지나면 두 배, 세배씩 뛰는데 들어간 돈이 작아서 큰 돈을 못 벌고 있구나 싶어서. 그래서 그냥 확···."

"얼마를 넣었길래?"

"그건 말하고 싶지 않아. 아무튼 앞으론 다신 안 할 거야. 다시 살아났을 때 든 생각이 내가 두 번 다시 코인에 들어가면 사람이 아니다 였거든."

"그래도 소중한 걸 배웠으니 인생에 큰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해. 그게 속 편해."

"근데 받은 내 능력이 너처럼 쓸모 있는 거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무슨 능력이라 그랬더라?"

"처녀 감별···."

"음, 그건."

"그리고 몸매 맞추기."

"변태 같아 그건. 참, 어제 하나 더 있다지 않았어?"

도훈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먼저 말을 꺼내기보다 상대가 물어주길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됐다. 슬슬 분위기를 잡아볼까?’

"이것도 민망한 거야."

"그럼 말 안해줘도 돼."

"근데 사실 다른 능력보다 이게 제일 돈이 될 것 같기도 해."

"돈이 되다니?"

"말하지 말래서 하지 않을게."

도훈이 일부러 튕겼다.

궁금해진 장군이 망설이다 다시 물었다.

"말해봐. 뭔데?"

"하지 말라며?"

"아니 정말로 돈이 되는 지 봐줄게."

"그러니까 이건···."

"응."

"일종의··· 뭐랄까. 아니 됐다."

"뭐야?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초면에 말하긴 민망해서 그래."

"아깐 또 구면이라며?"

장군이 자꾸 졸랐다.

처음의 어색했던 기류도 단둘이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많이 변해있었다. 특히 서로 말을 놓으면서부터는 친구처럼 편한 느낌이 들었다. 모두가 도훈이 의도한 것이었다.

‘후후. 어디 한 번 슬쩍 운을 띄워볼까나.’

"섹스를 잘하는 능력이야."

"뭐, 뭐?"

장군이 얼굴이 빨개지며 당황했다.

도훈은 한 번 더 또박또박 말했다.

"섹스를 잘하는 거라고. 섹스."

"아, 아니 그러니까···."

"나도 처음엔 이상하게 생각했어. 근데 그 산신령 같은 사람을 만난 뒤로는 정력이 너무 강해져서···."

"그, 그만해."

"왜? 들려 달라며?"

"아니 그렇게 구체적으로 말할 건 없잖아."

"아무튼 그래."

"······."

처녀인 장군은 섹스라는 말을 저렇게 노골적으로 발음하는 사람은 처음 봤기 때문에 엄청 놀란 상태였다.

‘어휴, 뻔뻔한 건지 눈치가 없는 거지.’

그러다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근데 그걸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거야?"

"내가 이 능력을 받고 곰곰이 연구해 봤거든. 근데 이걸 써먹을 직업이 있더라고."

"그런 직업도 있어?"

"응. 호빠 선수."

"호빠? 호빠가 뭐야?"

"아니 남자 접대부 있잖아. 호스티스 빠."

"아, 아니 그건···."

순진한 장군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접대부라는 단어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혐오감이 올라왔다.

‘무슨 그런것도 직업이라고.’

직업에 귀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을 사고파는 일에는 굉장히 보수적인 입장인 장군이었다.

"그거 불법 아니야?"

"불법인가? 몸 파는 여자들도 있잖아."

"그것도 마찬가지로 불법이지. 불법적으로 돈을 버는 건 옳지 않아."

"그럼 능력을 쓸 데가 그것밖에 없는데 어떻게 하겠어?"

"아무리 그래도 그런 식으로 돈 버는 건 떳떳지 못해. 나중에 결혼할 여자를 어떻게 보려고 그래?"

"이래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흠. 아무튼 그 능력은 안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장군은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끝까지 할말을 했다.

"어, 휴게소 다 왔다. 쉬하러 갈거지?"

"소, 손씻으러 가는 거야."

"그거나 그거나."

도훈이 휴게소에 차를 주차했다. 이정표를 보니 어느새 절반 쯤 온 듯했다. 장군이 화장실에 들른 사이 도훈은 휴게소에서 파는 간식거리를 이것저것 샀다.

"손 씻는데 되게 오래 걸리네."

"주, 줄이 길어서."

"간식 좀 사왔어. 핫도그 좋아해?"

"으, 응. 내가 사도 되는데."

"괜찮아. 차에서 좀 먹다 가자."

두 사람은 간식으로 요기를 때운 뒤 다시 출발했다. 장시간의 운전으로 피로해진 도훈은 점점 말수가 없어졌다. 조용히 옆에 앉아 있던 장군은 아까 도훈이 한 말이 자꾸 떠올랐다.

-섹스를 잘하는 능력이야.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가? 도훈이는 별 생각없이 말한 것 같은데 괜히 기분이 이상하네.’

처녀인 장군은 도훈의 말이 계속 신경 쓰였다. 특히 어려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느라 남녀간의 교합에 대해선 무지에 가까운 장군에게는 섹스를 잘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쉽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건 대체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거지?’

장군은 문득 아까 우연히 손에 닿은 대물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손바닥을 마주 비볐다. 그 독특한 촉감이 여전히 손에 남아 있는 듯했다.

< 869. 처녀 보살-11-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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