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1. 처녀 보살-3- >
***
"진짜로 숫처녀시군요."
"뭐, 뭐라고요?"
장군의 표정에 노기가 서렸다.
모욕을 받은 자의 얼굴이다.
"지, 지금 그건 성희롱···."
처녀 보살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좌식 테이블 위로 올렸다. 이럴 때 침묵은 도리어 독이 된다. 나는 처맞기 전에 입부터 먼저 놀렸다. 입은 손보다 빠르다.
"혹시 병아리 감별사라고 아십니까?"
"병아리··· 뭐요?"
당신은 숫처녀로군요와 병아리 감별사를 아십니까는 전혀 대응하지 않는 문장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불호응은 당연히 분노를 잠재우며 당혹감을 안겨주기 십상.
과연 장군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는지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마도 두 개의 문장의 연관성을 잇기 위해 두뇌를 빠르게 회전시키고 있을 것이다. 저 미친놈이 대체 뭐라는 거야? 라면서.
"제게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이것이 바로 산신령에게 받은 능력중 하나입니다."
"···네?"
"병아리 엉덩이를 쓱 만지기만 해도 암컷과 숫컷을 구분해 내는 감별사처럼요."
"!?"
"맞습니다. 처녀 감별사."
"처, 처녀 감별사!"
장군은 황당을 넘어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한복을 입고 단정하게 머리를 땋은 성숙한 여인에게서 저런 얼굴 표정이라니. 당장 사극에 투입해도 손색이 없다.
"많이 놀라셨죠?"
"······."
"별의별 일을 다 겪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저도 처음엔 당황했습니다. 어떤 여인이던 손을 잡기만 하면 처녀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 있다니···. 무슨 이런 황당한 능력을 주셨는지 원."
"아무튼 놀랍군요."
"맞습니까?"
"네?"
"그러니까 확인을."
"···그 이상 물어보는 건 실례에요. 아무튼 당신의 능력은 인정하겠습니다."
장군의 낯이 뜨거웠다.
앞서 기구한 스토리를 주구장창 늘어놓지 않았더라면 절대 믿지 못했을 것이다. 하물며 스스로가 처녀니 만큼 비밀을 알아 맞춘 것에 놀라기도 했으리라.
"또 있습니다."
"또, 또 뭐죠?"
장군이 손을 확 빼며 뒤로 감추었다.
왠지 더 손을 내주었다간 자신의 치부를 드러낼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던 것 같다.
"역시 여자와 관계된 능력입니다."
"기이하군요. 그럼 당신의 능력은 남자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 건가요?"
"네. 저도 그 점이 이상했습니다. 저에게 붙은 신이 어떤 분인지는 모르지만, 남녀를 구별하더라고요. 남자의 경우엔 손을 잡아도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흐음."
"더 능력을 보여드릴까요?"
"아, 아뇨. 괜찮습니다."
장군이 몸을 사렸다. 왠지 그녀에게 감추는 뭔가 비밀이 있는 것 같다.
‘반응 좀 이상하지? 로시 마음의 소리 들을 수 있나?’
[네. 준비 되었습니다.]
‘들려줘.’
{어떻게 저런··· ···기이한··· 능력 치지직}
어라?
뭔가 이상했다.
능력을 가동해 처녀 보살의 속내를 읽으려 했지만, 주파수를 잘못 잡은 라디오처럼 마음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마치 강력한 방해 전파가 가로막고 있는 기분이었다.
‘뭐지 이건?’
[놀랍군요. 그녀에게 주인님의 스킬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아까 정보창이 제대로 안 보였던 것처럼?’
[네. 동일한 상황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플레이어의 스킬을 피할 수 있는 거지?’
[일전의 스님들 사례를 보면 아시겠지만, 일정 영역에서 무수한 수련을 쌓다 보면, 평범한 인간도 규격을 벗어나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마도 처녀 보살에겐 그런 능력이 있는 모양입니다.]
‘규격 외 인간이라···. 재밌네. 탐구할 여지가 있겠어.’
[탐구라뇨?]
나는 갑자기 머리가 아픈 것처럼 이마를 짚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편두통 연기였다.
"으읏. 가, 갑자기 머리가."
"왜 그러시나요?"
"이상합니다. 이곳에 뭔가 저를 옥죄는 물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옥죄다뇨?"
"혹시 부적 같은 것을 쓰시나요?"
"부적요? 네. 호신용으로."
"아아, 아마도 그게 제 능력을 방해하는 것 같습니다. 아까부터 능력을 쓸 때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픕니다."
"으음. 그럴 수 있습니다. 저희 같은 무당도 굿을 하러 갈때는 되도록 종교인들은 꺼리거든요. 신께서 가까이하길 노여워 하셔서요."
"그렇군요. 죄송한데, 잠시만 그 부적을 치워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지금 머리가 너무 아파와서."
장군이 머뭇거렸다.
"꼭 치워야 하나요?"
"으으! 머, 머리가 너무 아파서요. 참아보려고 했는데, 견디가 힘들 것 같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잠시만 뒤를."
"네?"
"뒤로 돌아앉아 주십시오."
"아, 네."
등을 돌린 후 로시에게 물었다.
‘뭐야? 갑자기 왜 돌라는 건데?’
[윽. 주인님 절대 돌아 보시면 안 됩니다. 저고리를 풀어헤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옷을 벗는다고?’
[벗는 건 아니고, 아. 부적을 가슴팍 쪽에 숨겨 놓았군요. 근데 이상합니다. 왜 가슴을 붕대로 칭칭 감았을 까요?]
‘오잉? 가슴을 왜?’
[그야 저도 모르죠.]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고는 장군이 다시 말했다.
"이제 괜찮을 겁니다. 부적을 치웠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뒤를 돌았다.
"감사합니다. 한결 낫군요."
부적의 방해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말끔하게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가슴가리개가 살짝 풀어졌는데 괜찮겠지? 이걸로 싸매지 않으면 너무 흘러내려버리니···.}
‘가슴 가리개라니?’
좀 더 듣고 싶었지만, 장군이 옷을 갈아입는 사이 이미 스킬의 사용시간이 끝나버려 마음의 소리를 더 들을 수 없었다. 쿨타임이 다시 돌아올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그 압박붕대를 말하는 게 아닐까요?]
‘안 하면 흘러내린다라.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가?’
[뭐요?]
‘너무 큰 거지.’
[네?]
‘직업상 한복을 입어야 하는데, 옷맵시를 흐릴 만큼 너무 가슴이 큰 거야.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압박 붕대로 가리는 거고.’
의심이 들기 시작하자 좀 더 꼼꼼히 장군의 몸매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펑퍼즘한 한복으로 가리고 있어 몸매를 전혀 읽을 수 없었다.
‘흐음. 의상이 문제네.’
[주인님에겐 스카우터가 있지 않습니까?]
‘스카우터? 아! 쓰리싸이즈 스카우터?’
[네. 방해막이 사라졌으니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랜만에 맞는 소릴 하는구나, 로시.’
[저야 늘 맞는 말 소리만 하죠.]
‘그래. 가끔은 처맞는 말도 하고.’
[아, 아니 주인님!]
‘스카우터나 준비해.’
[안경타입으로요?]
‘아니 선글라스로.’
실내에서 썬글라스를 쓰자니 마땅히 핑계를 댈 게 없어 궁리를 하는데 이번엔 장군이 먼저 물었다.
"허면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만나뵙고 싶었습니다."
"네?"
"사실 보살님 이전에 다른 역술인들을 몇몇 찾았는데 사기꾼들이 훨씬 많습니다. 관상을 본다는 이는 제가 여복이 없을 거라고 했고, 손금을 보는 이는 저보고 장수한다더군요. 사주를 보는 이는 제가 관운이 있다고도 하였고요. 죄다 헛소리만 늘어놓았습니
다."
"음, 물론 이쪽 계통에 가짜들이 많긴 합니다. 많이 실망하셨겠네요."
"해서 좀 더 수소문을 해봤습니다. 인터넷에서 보살님의 평이 자자하더라고요."
"그래요? 전 그런 것은 잘 모릅니다."
"역술을 좋아하는 블로거들이 평을 해 놓은걸 많이 찾아보았습니다. 워낙에 신통력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한 달 전부터 예약을 해두고 기다리고 있었죠."
"잠시만요. 근데 예약에서는···."
장군이 갑자기 테이블 위에 노트를 뒤적였다. 날짜와 이름이 적힌 걸로 보아 전화로 받은 예약을 수기로 적어 놓은 수첩인 듯했다. 컴퓨터같은 건 전혀 쓸 줄 모르는 걸까?
"분명 여자 문제라고···."
"네. 어쨌든 여자문제긴 하죠. 제 능력이 주로 여자와 관계되어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보살님처럼 진짜로 능력 있는 분을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저도 이제 더 나이가 들면 직장도 구하고 해야 하는데, 갑자기 생긴 능력 때문에 제 삶의 궤도가 완전히 달라져 버렸거든요. 대체 이 능력이 왜 나한테 생겼는지, 이걸 어디다 누구에게 어떻게 써야 하
는지 도통 감이 오질 않습니다. 해서 저보다 먼저 능력이 생긴 분께 자문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그럴듯한 동기였다.
평범한 사람에게 초능력이 생기면 어떤 기분일까?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남들에게 없는 특별한 능력을 선물처럼 생각하게 된다. 처음엔 신기하고 재미있다. 능력을 쓸 때마다 남과는 다른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능력이 익숙해지고나면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게 된다.
세상에 정말 나 혼자만 이렇게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걸까? 내가 능력을 갖고도 숨기고 살 듯이, 다른 누군가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이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궁금증이다.
처녀 보살도 내 의중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듣고 보니 알겠습니다. 많이 놀라고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제 생각에 이유 없이 주어지는 능력이란 없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네. 저는 미래를 알려주는 댓가로 복채를 받는 무속인이지만, 가난한 자에겐 조금만 부자에게는 더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제가 돈 욕심이 있었다면 누구에게나 많은 복채를 받았겠지요. 하지만 제가 모시는 신께선 금전을 취하기보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
이 되고 싶어하셨습니다. 부자에겐 큰 돈이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에겐 전재산이 될 수도 있거든요. 명훈씨의 능력도 분명 쓰임새가 있을 것입니다."
"근데 제가 이 능력으로 뭘 할 수 있을까요?"
처녀 감별사.
조선시대에 궁녀를 뽑는 직업이라면 모를까 현대에 이 능력
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크흠, 아마 잘 찾아보시면···. 아, 아까 다른 능력도 있다지 않으셨나요?"
"네.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것인지요."
"잠시 선글라스를 써도 될까요?"
"지금요?"
"네. 눈을 마주쳐야 하는데 눈빛이 혼탁하게 변하기 때문에 감춰야 할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살면서 기이한 일이라면 수도 없이 보고 자랐으니까요."
"아닙니다. 제가 불편해서요. 잠시만."
나는 양해를 구한 뒤 썬글라스를 썼다.
사실상 썬글라스로 위장한 쓰리사이즈 스카우터였다.
스카우트를 쓰고 장군의 전신을 스캔하자 랜즈 위로 나만 볼
수 있는 숫자가 떠올랐다.
<40-25-37
‘4, 40이라고?’
놀라운 수치다.
물론 컵 사이즈가 나오진 않지만 저 체구에 40이면 거의 F컵에 육박하는 폭유라는 말이 된다. 지난번 만났던 간호사 박지애가 폭유녀였는데, 여기서 또 한 번 F컵을 만나게 되나디.
나는 젖소에게, 아니 장군을 보며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왜 그러시죠."
"외람되지만, 혹시 가슴에 뭔가를 차고 계신가요?"
"네, 네?"
장군이 당황하며 두 손으로 가슴을 가렸다.
마치 선글라스가 투시안경이라도 되는 듯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나는 급히 벗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놀라서 실언을 하고 말았습니다."
"대체 뭘 본 거죠?"
"제 또 다른 능력은 바로 여성의 신체 사이즈를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설마 투시 능력!"
"아, 아닙니다. 오해는 마시고요. 그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뿐입니다. 다만 제가 여쭌 것은 겉으로는 전혀 티가 안나서···."
장군이 또 다시 얼굴을 붉혔다.
"입고 있는 옷이랑 안 어울려서 가리고 있습니다."
"아, 한복. 그렇군요."
"저고리 밑이 들려서···."
"이해했습니다. 많이 불편하시겠네요."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 해주시죠."
"네."
분위기가 다시 이상해졌다.
둘밖에 없는 방에서 뜬금없이 숫처녀라느니, 가슴을 꽁꽁 싸매고 있느냐니 물으면 누구라도 심기가 불편할 것이다.
특히나 상대는 겨우 20대 중반의 여인.
아무리 신기를 받았다 한들, 다른면에서도 보면 세상물정 잘 모르는 순박한 처녀일 뿐이다.
"아무튼 이게 제 능력입니다."
"독특한 능력을 받으셨군요."
"아, 하나 더 있습니다."
"또, 또요?"
"근데 이건 정말로 어디 내놓기도 부끄러운 능력이라 도저히 보살님께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네."
"저는 대체 왜 이런 능력을 받게 된 걸까요?"
"그것까진 잘 모릅니다."
"혹시 모시는 신께서 뭐라도 알려주시진 않습니까?"
"점궤를 봐달라는 건가요?"
"네. 제가 앞으로 이 능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길을 제시해 주면 좋겠습니다."
"흐음. 알겠습니다. 잠시만."
장군이 갑자기 의관을 단정히 하더니 눈을 감았다.
아마도 몸에 붙어있다는 신을 불러드리는 강신의식 같았다.
순간 촛대에 꽂힌 불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장군이 부릅 눈을 뜨며 소리쳤다.
"네 이놈! 썩 물러가라고 했는데, 제 발로 이곳을 또 왔구나!"
갑작스러운 일갈에 나도 모르게 움찔 놀라고 말았다.
눈 앞의 여인은 장군이되, 장군이 아니었다.
내가 알던 수줍음 많은 처녀 보살이 아니라, 전혀 다른 영혼이 들어간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이도훈의 몸에 빙의된 것처럼.
"보, 보살님. 갑자기 왜."
"어디서 천박한 입을 함부로 놀리느냐! 썩 물러가지 못 할까!"
‘로시. 이게 대체 뭐지?’
[저도 잘 모르지만, 장군 아가씨의 몸에 다른 사람의 혼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게 가능해? 나도 구천을 떠돌아 보았지만 저건 불가능 했는데?’
이것은 내가 경험한 것이기에 확실하다.
물리적 실체가 없는 영혼은 다른 사람 몸에 깃들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장군의 몸에 다른 귀신이 붙었다는 사실이었다.
이거 흥미진진 해지는걸?
< 861. 처녀 보살-3-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