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0. 처녀 보살-2- >
플레이어에겐 정보창 스킬이 통하지 않는다.
그것은 PK단에게도 마찬가진데, 정보창으로 상대의 히든 스킬이나 스텟을 알게 된다면 너무나 사기적인 능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플레이어의 능력을 읽는 스킬은 별도로 존재하며, 정보창 스킬을 수십 번 강화시킨다 한들 털끝 하나 정보를 읽지 못한다.
도훈의 눈빛이 모자챙 밑으로 날카롭게 빛났다.
‘정보창 개방.’
[아앗, 이럴 수가.]
‘뭐야? 진짜로 안 읽혀?’
[아닙니다. 보입니다.]
‘에이씨, 뭔데 그 반응은? 나까지 놀랬잖아.’
아쉽게도 처녀 보살은 도훈과 같은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대를 품었지만, 그저 신기를 받은 무녀였을 뿐이었다.
‘플레이어랑 조우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어쨌든 스킬은 얻어야 하니까.’
도훈이 스마트워치를 슬쩍 들어 처녀보살의 정보창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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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김장군 (처녀)
나이 : 24 #무녀 #신내림 #처녀 보살
호감도 : ???/100
개방성 : ???
성감대 : ???
*애무 포인트 : 알 수 없음.
성욕지수 : ???
공략팁
*위 대상을 공략하면 ‘처녀보살을 공략하라’ 미션이 완수됩니다.
-그녀는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모종의 기운이 정보창의 간파 능력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신내림을 받은 그녀에게 세속의 일은 무의미합니다.
?추천행동 :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그녀에게 무속인 행세를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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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엇? 뭔데 죄다 물음표야?’
[호감도가 낮아서 생기는 것과는 전혀 다른 패턴이군요.]
‘모종의 기운이 정보창의 능력을 가로막고 있다니, 이게 무슨 소리지?’
[아마도 그녀가 가진 영험한 능력과 연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일전에 주인님을 보고 썩 물러가라고 했던 그 기운 말이죠.]
‘흐음. 확실히 독특하군. 정보창이 뜨는 걸 보면 플레이어는 절대 아닌데, 그렇다고 일반인도 아니고. 일전에 템플 스테이에서 만났던 그 쌍라이트 형제랑 비슷한 경운가.’
[쌍라이트 형제요?]
‘빡빡이 스님 형제 말이야. 둘이 형제랬잖아.’
[어허! 불경스럽게! 그러다 천벌 받습니다!]
‘예수쟁이도 불신하는데 스님이 뭔 대수라고?’
[삐빅-! 신성 모독입니다!]
찌릿-
오랜만에 받은 신성 모독으로 도훈의 손목이 시큰했다.
순간 움찔 놀라는 도훈을 바라보던 처녀보살 김장군의 눈빛이 묘하게 변해갔다.
"아니, 당신은···!"
‘헉, 들켰나?’
도훈이 조마조마한 마음에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는데, 처녀보살이 다짜고짜 도훈의 손을 잡아당겼다.
"손금 좀 봐요."
"소, 손금이요?"
거두절미하고 손을 빼앗아 간 장군이 도훈의 손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계속 혼자 중얼대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손금으로 봐선 진즉 죽었어야 할 사람이 어찌하여!"
"주, 죽다뇨? 제가요?"
"지금 보이는 이게 생명선입니다. 당신은 급살맞아 죽을 팔자였어요, 원래."
장군이 가리킨 손금은 특이하게도 중간이 툭 끊어져 있었다.
일전에 도훈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것인데 그것이 바로 박명해 죽은 이도훈의 실제 생명선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와, 신통방통하네? 이 여자 진짜로 신기가 있나 본데?’
"모자 한 번 벗어보세요."
"그, 그게···."
"당장요."
도훈은 왠지 모를 위압감에 자기도 모르게 모자를 벗었다. 일전에 한 번 축객령을 받은 뒤로 되도록 얼굴을 감추고 싶었으나, 결국 이렇게 드러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도훈이 천천히 모자를 벗자 처녀 보살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구면이지 않나요?"
"저 본 적 있으세요?"
"아닌데···. 이 기운 분명 어디서 느꼈는데."
순간 도훈은 정보창의 공략팁이 떠올라 거짓말을 지어냈다. 아까 바른 립글로즈가 아직 마르지도 않은 채였다.
"어차피 대충 눈치 챈 것 같으니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네? 뭘요?"
"저도 보살님과 비슷한 사람입니다."
"혹시 저처럼 신내림을 받으셨다는 말인가요?"
"그런 종류일거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도훈이 붙잡힌 손을 빼며 말했다.
"방금 저보고 진즉 죽었어야 할 사람이라고 하셨죠?"
"손금에 따르면 분명 그렇습니다. 그래서 무척 놀랍군요."
"실은 전 이미 한 번 죽었던 사람입니다."
[주, 주인님! 플레이어의 정체를 누설하면···.]
‘쉿. 다 생각이 있어.’
"죽었다고요? 그럼 제가 지금 귀신을 보고 있다는 말씀인가요?""사전적인 의미의 죽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요. 저는 한때 투자 실패로 전 재산을 날리고 폐인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무슨 투자를?"
"비트코인입니다."
"아···."
"집에 큰 빚까지 떠안기고 죄책감에 자살을 결심하고 산에 올랐습니다."
"산에요? 무슨 산이요?"
"지리산입니다."
"지리산이면···."
"네, 청학동이 있는 지리산이요."
"영험한 기운이 있는 곳이군요."
"산에 올라 죽으려고 했습니다. 원룸에서 죽게되면 저한테 잘해주신 집주인분께 괜한 폐를 끼칠까 봐 차마 그렇게는 못 하고 아무도 안보는 데서 죽은 뒤에 조용히 가길바랬습니다."
도훈이 연기력을 발휘하자 처녀 보살도 눈이 휘둥그레지며 도훈의 사연을 경청했다. 점을 보러 온 사람들은 대게 억울하거나 기구한 일이 많았지만, 시작부터 자살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몇 없었다.
"한데 죽으려고 준비해 온 농약을 마시려는데···."
"농약이요?"
"그라목손이라고 있습니다. 먹으면 한 방에 끽-. 아시죠?"
도훈이 손날로 자신의 목을 치는 시늉을 했다.
왠지 우스꽝스러운 제스쳐였지만, 워낙에 실감 나게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처녀 보살은 깜빡 속아 넘어가는 것 같았다. 영험한 신기와 달리 사람 자체는 무척 순박한 성품인 듯했다.
"저, 저런! 아무리 그래도 젊은 나이에."
"전 사실 그때 죽었어야 했습니다."
"한데 어찌 사셨나요?"
"그게 제가 보살님을 찾아 온 이윱니다. 분명 농약을 먹고 잠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제가 깨어나질 뭡니까? 지나가던 등산객이 조난신고를 해서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몸속에선 조금도 농약이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저체온증 증세만 조금 보이고요."
"세상에! 어찌 그런 신묘한 일이?"
"실은, 그날 밤에 꿈을 꿨습니다."
"꿈이요?"
"도포를 입은 흰 수염의 노인분이 지팡이로 제 머리를 때리면서 꾸짖는 꿈이었습니다."
"설마!"
"네 이놈! 어느 안전이라고 못된 짓을 꾸미느냐! 라고 하시더니 제 머리를 팍 치는데 입에서 하얀 거품을 토하지 뭡니까?"
"그게 정녕 꿈이었습니까?"
"하도 머리가 아파서 꿈인지 생시인지는 헛갈리지만 농약을 마시고 쓰러진 이후에 꾼 꿈입니다."
"세상에. 기연을 만나신 겁니다!"
"기연이라고요?"
도훈은 의도했던 대답을 들으며 속으로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전혀 의외라는 듯 귀를 쫑긋 기울이며 처녀 보살에게 되물었다.
"설마 제가 정녕 산신령이라도 만난 건가요?"
"그분의 정체에 대해선 함부로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같은 무속인들 사이에서는 신내림을 받았다고도 합니다. 귀인을 만나신 거지요."
"아하!"
"아마도 명훈씨는 그날 죽을 운명이었을 겁니다. 명줄로 봐도 그렇고요. 한데 죽기 직건 우연히 지리산에서 기연을 만난 겁니다. 그분이 명훈씨의 목숨을 살려 주신 거고요."
"세상에!"
도훈이 소름 끼친다는 듯 두 볼을 손바닥으로 감싸며 입을 크게 벌렸다.
[주인님, 투머칩니다.]
‘너무 오버했냐? 장군이 너무 잘 속아 넘어가서 나도 모르게.’
[적당히 하십시오.]
‘근데 어째서 이름이 장군이지? 남자 이름으로도 쓰긴 창피한데.’
"하면 제가 정말로 그날 구사일생을 한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제 짧은 식견으로는 그렇게 보입니다."
"실은 보살님을 찾아온 건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뭔가요?"
"보살님도 신내림을 받으셨겠죠?"
"네. 9년 전에요."
"혹시 어떤 신인지 알 수 있습니까?"
"외람되지만 그런 내용은 밝히지 않습니다. 강신하신 분이 여자분이라는 것 밖에는요."
"아아, 다른 게 아니고 그날 꿈에서 산신령에게 머리를 맞고 부터 저에게 희한한 능력이 하나 생겼습니다."
"능력이요? 어떤?"
"일단 제 능력을 밝히기 전에 보살님의 능력을 조금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도훈의 제안에 장군이 살짝 주춤하며 물러섰다.
경계하는 태도에 도훈이 좀 더 밀어붙였다.
"저도 제 비밀을 모두 털어놓는 셈입니다. 보살님을 신뢰하려면 보살님의 능력을 봐야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살님 이전에 다른 무속인들을 몇명 찾아갔지만, 형편없는 사기꾼들을 하도 많이 만나서요."
"저는 그런 사기꾼이 아닙니다."
"방금 제 손금도 틀리셨잖아요."
"뭐라고요?"
"제가 이미 죽었어야 할 사주라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살아 있는데 그럼 틀린 거지요."
"아니 그건···. 크흠. 알겠습니다."
도훈의 말이 설득력이 있었는지 장군이 자신의 능력을 밝혔다.
"저희 아버님은 유명한 박수무당이세요."
"남자 무당이요?"
"네. 그래서 어려서부터 주역이니 음양팔괘니 이런 저런 역술을 어깨너머로 배웠습니다."
"오호. 집안 내력인가 보군요."
"실은 아버님은 제가 남자로 태어나길 바랬습니다."
"왜요?"
"여자애가 태어나면 필시 무당이 될 팔자였던 걸 알고 계셨던 계죠. 그래서 이름도···."
"이름이요? 보살님 성함이."
"장군입니다."
"아···."
"태명으로 지었던 이름인데 제가 태어나고 실망한 나머지 그냥 그대로 호적에 올려버렸습니다. 당신께서요."
"그렇군요."
"아무튼 아버님의 점궤대로 저는 15살이 되던에서 신병을 앓았습니다."
"신병이 뭔가요?"
"무당들이 신내림을 받기 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과 두통으로 앓아눕는 것입니다. 신이 강림하기 위해 시험을 들게 하는 것이지요."
"그렇군요. 사실 이런 분야는 잘 모릅니다."
"신병을 치료하기 위해선 신내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거부했다만 저도 명훈씨처럼 죽을 운명이었으니까요."
"아."
"제가 빙의된 신은 처녀 귀신의 일종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귀신을 믿으시나요?"
"귀신요?"
도훈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염라대왕에게 잡혀 가기 전 구천을 떠돌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전생에 죽었을 때 실제로 귀신이 되어봤고, 저승에도 발을 디뎌본 이상 김장군의 말을 못 믿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너무 쉽게 수긍하면 오히려 의심할까봐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 대답했다.
"그게···. 저도 지리산에서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전혀 그런 것에 대해 믿음이 없던 터라."
"맞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도 없지요. 저에게 능력이 무엇이냐고 물었죠? 저는 사주와 손금을 통해 대략적인 운명을 읽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영험한 기운이 필요할 땐 처녀 귀신님께서 알려 주시지요."
"지금도 그분이 있습니까?"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곳에도 없습니다."
장군이 뜬구름 잡는 소릴 했다. 도훈이 고개를 갸웃하자 장군이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평소에 늘 오시는 건 아닙니다. 저 역시 심력의 소모가 크기 때문에 복잡한 내담자가 아니면 부르지도 않고요."
"저는 제법 복잡한 것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어째서 아까부터 신께서 반응이 없으시군요. 어쩌면 명훈씨의 기운 때문에 그럴수도 있습니다."
"제 기운요?"
"네. 관상에 대해선 조예가 깊은 편은 아니지만, 명훈씨는 타고난 태양인입니다."
"혹시 사상체질 말씀인가요?"
"그것은 한의학적인 구분이고 명리학에서는 타고난 기운을 의미합니다. 명훈씨의 양기가 워낙에 쌘 편이라 저희 신께서 가까이 오길 꺼려하는 것 같습니다."
"양기가 세다라."
‘진짜로 신기하네? 내가 정력왕인건 어찌 알고.’
"아무래도 처녀 귀신님은 음기가 강한 편이라 명훈씨와는 상극의 기운입니다. 상극과 상극이 만나면 보통 죽지 못할 정도로 궁합이 좋은 천생연분이 되거나, 아니면 서로가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철천지원수가 됩니다. 그 부분을 염려하시는 게 아닌가 싶
습니다."
"그렇군요."
"자, 이제 제 능력을 다 밝혔습니다. 명훈씨가 받았다는 능력은 무엇인가요?"
"그러니까 제 능력은···."
도훈이 잠시 머리를 굴렸다.
‘아직 내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건 귀신이 들러붙지 않아서였군.’
[그렇게 해석되는 군요.]
‘일단 처녀 보살을 공략하려면 지금 어떻게든 호감도를 올리는 수밖에 없겠어. 호감도를 올리고 나면 나중에 처녀귀신이 들러붙더라도 정체를 계속 속일 수 있겠지.’
"실은 바로 말하기가 조금 부끄럽습니다."
"괜찮습니다. 다 이해합니다. 저희같은 사람들끼리라도 서로를 이해해야죠."
"일단 제 능력은 상대방의 몸에 닿아야 합니다."
"몸에요?"
"네. 손 좀 내밀어 보시겠습니까?"
처녀 보살 김장군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아까 손금을 본다면 훽 낚아챌때의 과감함은 없고, 얼굴을 살짝 붉히며 민망해하는 모습이었다.
"이건 손금과도 비슷한 건데, 상대의 손을 이렇게 만지면···."
도훈은 일부러 끈적하게 장군의 손을 조물락 거렸다.
뜨거운 기운이 전달되자 장군이 더욱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혔다.
"너무 만지작 거리시면···."
"보살님은 이름대로군요."
"네?"
"진짜로 숫처녀시군요."
< 860. 처녀 보살-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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