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4. 기말 시즌-44- >
***
"둘이··· 했구나?"
불쑥 말을 놓는 걸 봐선 빈정이 팍 상한 것 같았다.
여자의 직감은 때론 논리를 초월하는 순간이 있다.
정란은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했네, 했어. ···씨발."
정란이 말미에 욕설을 지껄였다.
바로 전에 가슴팍에 안겨 울먹여 놓고선, 순식간에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마냥 싸늘한 표정.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그녀의 죽 끓는 변덕은 좀처럼 적응이 쉽지 않았다. 아무리 여자의 마음이 갈대라지만, 너무도 빠른 태세전환이었다.
"이 나쁜 새끼! 순진한 우리 언니를!"
정란이 팔을 들어 나에게 휘둘렀다.
저것은 번식 경쟁에서 탈락한 암컷의 자존심 문제일까, 아니면 혈연의 순결을 더럽힌 것에 분노하는 가족애의 발로일까?
무엇이든 나는 맞아 줄 생각 따윈 없었다.
팔목을 낚아채 틀어쥐자 정란이 분에 찬 표정으로 소리쳤다. 물리력으론 안 된다는 걸 절실히 통감했을 것이다.
"놔! 이 새끼야! 감히 너 따위가 우리 언니를!"
"···순진하다고?"
"뭐?"
나는 일부러 가소롭게 웃었다.
턱을 쳐들고 한 손으로 미간을 짚는 중이병같은 포즈였다.
"너희 언니, 정희가 정말 순진한 여자라고 믿는 거야?"
"그, 그게 무슨 개소리야?"
정란의 분노가 의문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그녀도 진실이 궁금했을 것이다.
내가 정말로 순진한 처녀를 꼬드겨 홀랑 따먹은 것인지, 아니면 정희가 생각보다 음탕한 여자여서 먼저 나를 유혹한 것인지.
전자라면 분노의 화살이 모조리 나에게 쏟아지겠지만, 후자라면 그녀의 질투심에 불이 붙을 것이다.
내가 노린 건 당연히 후자였다.
"쌍둥이라고 모두 아는 건 아니구나. 하긴, 어쩌면 가족끼리 털어놓는 게 더 쑥스럽긴 하겠다만."
"또, 똑바로 말해!"
"근데 왜 아까부터 반말이야? 내가 니 친구야."
"아, 아니···. 죄송해요."
나는 정란의 손을 놓으며 담배를 꺼내물었다.
둘 사이의 우위를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정란은 빈틈만 보이면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는 특성이 있다. 감히 그녀가 기어오르지도 못하게 싹을 밟아 놓아야 한다.
"근데 계속 서 있으니까 다리 아프네. 좀 앉자."
나는 일부러 벤치에 가서 앉았다. 정란이 쪼르르 따라왔다.
"말해봐요. 우리 언니가 뭘 어떻게 했다는 거죠?"
나는 일부로 뜸을 들이며 정란의 얼굴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후-."
"콜록콜록!"
"진실을 감당할 자신은 있고?"
정란이 주춤하더니 손을 내밀었다.
"나도 한 대 줘요, 담배."
"너도 담배 펴?"
"흥, 오빠보다 먼저 배웠을걸?"
"자."
담배와 라이터를 함께 건네자 정란이 능숙하게 불을 붙였다.
손가락 사이에 끼운 포즈만 봐도 연륜(?)이 느껴졌다. 하긴 뭐 일진에게 담배는 필수템이었겠지만.
"후-. 오랜만에 피니까 머리가 다 띵하네. 말해줘요. 들을 준비 됐으니까."
"너도 앉아."
정란이 벤치 옆에 앉았다.
재를 털어내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긴장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희가 보기보다 적극적이더라고."
"······."
"나도 별로 순진한 타입은 아니거든."
"태영이한테 다 들었어요. 오빠 무슨 여자 꼬시는 선수라면서?"
‘이 새끼 진짜 어디까지 불어 버린 거야?’
"선수라니? 과장이 심하네. 아무튼 근데 나도 정희를 되게 순진하게 봤었어."
"실제로 순진해요."
"진짜 그렇게 생각해?"
"으, 음. 어쨌든 이제껏 한 번도 남자 사귄 적 없어요. 그건 장담할 수 있어요."
"암튼 네 생각만큼 순진하진 않더라. 둘이서 모텔 가자니까 군말 없이 따라오던걸?"
"우리 언니가 모, 모텔을요? 진짜로요?"
"그래. 그럼 우리가 모텔에 조모임하러 갔겠어?"
"세, 세상에···. 어떻게 언니가!"
"그뿐만이 아니야. 난 먼저 덮치지도 않았어."
"그럼요?"
"정희가 스스로 샤워를 하더라고. 그리고는 노팬티로 가운만 걸치고 나왔고. 누가 먼저 유혹했다고 생각해?"
"거, 거짓말!"
"믿기 어려우면 직접 물어보던가? 내가 없는 말을 왜 지어내겠어? 바로 들킬 거짓말을."
"······."
"게다가 마지막엔 피도 안 나왔어."
"뭐라고요?"
"하는 데 피도 안 나왔다고. 처녀는 맞는지 몰라."
"그건 진짜 말도 안 되는데···. 그럴 리가 없어요! 언니는 한 번도 남자를···. 제가 본 적도 없는데···."
"정희 주말마다 봉사활동 다니지?"
"네."
"그때 따라간 적 있어?"
"···아니요."
"그럼 주말마다 정희가 누굴 만나 뭘 하는지 아무것도 모른 다는 거잖아. 맞지?"
"······."
정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사실 이것은 교묘한 말장난이었다. 있었던 사실을 의도적으로 편집해 정란이 오해하도록 유도했다.
이제 결정타를 날릴 차례다.
"아직도 너희 언니가 순진하다고 생각해?"
"······."
"내가 여자 꼬시는 선수라 네 언니랑 잤다고? 허참,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네."
"···담배 한 대만 더 필게요."
정란이 담배를 한 대 더 꺼내 입에 물었다.
그녀의 표정에서 많은 것이 읽혔다.
배신감, 분노, 불신.
믿었던 언니가 자기 못지않게 밝히는 여자였다는 착각.
그것은 이제껏 도덕적 우월성을 권위로 내세우던 정희라는 존재가 정란의 마음속에서 삭제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숫처녀인 것처럼 속여왔다는 데 대한 분노. 신뢰 관계가 깨지면서 생겨난 불신.
다른 사람도 아닌 가족에게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기분일 것이다. 자신이 수녀라고 놀리던 언니에게.
"근데 넌 전혀 모르고 있었어?"
"전혀요. 언니가 그런 사람일 거라곤···."
"왜, 난 딱 느낌 오던데?"
"무슨 느낌요?"
"엄청 밝히는 여자구나 하는."
"그게 무슨 뜻이에요?"
"···거기가 말도 못 하게 젖어 있더라고. 시작도 하기전에."
"으으!"
정란이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집어 던지더니 거칠 게 발로 비볐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것 같았다.
"언니한테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요."
정란이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잠깐."
"왜요?"
"갑자기 정희가 해준 말이 떠올랐거든."
"무슨 말이요?"
이제부터 이간질의 시간이다.
"아니 그냥. 하는데 그러더라고. 내 귀를 잘근잘근 깨물면서."
"뭐라고 했냐고요!"
"너무 이상한 말이라 또렷하게 기억에 남았어."
"그러니까 그 말이 뭐냐니까요!"
정란이 대들 것처럼 덤볐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박또박 대답했다.
"···자기가 너보다 훨씬 맛있지 않느냐고."
"뭐, 뭐라고요?"
"그러니까 정확한 대사가 이거였어."
-내가 정란이보다 훨씬 맛있죠?
정란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진짜 그런 소릴 지껄였다고요? 우리 언니가?"
"그래. 사실 난 왜 정희가 그런 소릴 했는지 그땐 이해를 못 했어."
"······."
"근데 이제야 알 것 같아. 정희는 네가 날 좋아했다는 걸 눈치채고 있던 모양이야. 은근히 널 의식하고 있었던 거지."
"이, 이!!!!"
"아마 그래서 바로 자빠진 게 아닐까 싶어. 실은 나도 오늘 하게 될 줄은 예상은 못 했거든. 좀 다급한 느낌이었달까?"
"이 썅년이 진짜!"
"워워. 진정해. 괜히 내가 싸움 붙인 거 같잖아. 의좋은 자매사이에."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요? 하- 나 씨발, 진짜로 어이가 없네? 뭐? 그래놓고 나보고 남자친구 좀 적당히 만나라고? 자긴 주말마다 봉사 활동가는 핑계로 헤프게 다녀놓고?"
"그건 확실치 않아. 나는 그냥 처녀가 아닌 것 같다고 한 것이지."
"뻔하죠! 언니가 그럼 뭐 운동하다가 찢어졌겠어요? 맨날 공부만 하던 범생인데? 아니지. 범생이도 아니었네. 참나, 그러면서 나보고 맨날 잔소리 했던 거야?"
"정란아. 내가 괜한 말을 했나 보다. 그냥 말하지 말 것을 그랬어."
"아니에요. 말 잘했어요. 이제 우리 언니가 위선자라는 걸 알았으니까."
"흠···. 나랑 한 번 잤다고 위선자라고 매도하기엔."
"내가 진짜 충격적인 거 말해줄까요?"
흥분한 정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내 앞에 섰다.
"뭘?"
"언니가 왜 오늘 오빠랑 잤는지."
"무슨 소리야?"
"하-. 씨발. 기도 안 차네 진짜. 언니 년이 어제 술 마실 때 나한테 그러더라고요. 누가 먼저 오빠를 차지하는지 두고 보자고."
"그런 얘기를 했어?"
"그러고 나서 오빠한테 자빠진 거라고요. 나 엿 먹이려고. 일부러!"
"아니 그럼···."
"언니가 그럼 오빠 좋아서 잔줄 알았어요? 아니 좋았겠지. 좋았으니까 잤겠지. 좋았으니까 대줬겠지. 그치만 나한테 이기고 싶어서 그런 것도 분명 있어요."
"그게 사실이면 좀 기분이 그렇네. 내가 무슨 전리품도 아니고."
"언니는 내가 오빠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진즉 알고 있었어요. 그래놓고 홀랑 빼앗아 간 것이라고요."
"흠···."
"나쁜 년. 진짜 5분 먼저 태어났다고 더럽게 유세 떠네."
"정란아. 오늘 내가 한 얘기는 그냥 못 들은 거로 하자. 괜히 말했나 보다."
"왜요? 그렇다고 있었던 일이 없어져요?"
"아니 그게 아니고···."
나는 난처해하며 말했다. 내가 봐도 가증스러운 연기였다.
"어쨌든 우린 앞으로 계속 봐야 할 사이잖아. 정희랑 나···. 그리고 너도."
"이제 와서 그런 얘기 해봐야 아무 소용없어요. 다 끝났어. 절대로 용서 안 할 거야, 내가."
"정란아···."
"좋았어요? 우리 언니가 대주니까 좋았어?"
"아니 무슨 그런 걸 물어봐?"
"좋았겠지. 흥. 물도 많았다면서. 하긴 나랑 몸이 같으니까."
"음···."
"진짜로 배신감 느껴요. 나는 우리 언니가 그런 사람인 줄 꿈에도 몰랐어요."
"너무 그러지 마. 둘 사이를 갈라놓은 것 같아서 내가 마음이 불편하다."
"왜요? 내가 좋아한 사람 홀랑 뺏어갔는데, 언니라고 그냥 봐줘요? 나는 뭐 벨도 없는 병신인 줄 알았어요?"
"그럼 어쩌자는 건데? 앞으로 정희랑 사귀게 되면 자꾸 보게 될 텐데 그때마다 불편해서 어떻게 해?"
"···그래서 모른 척해달라고요? 누구 좋으라고?"
"모두를 위해."
"나는 아니잖아! 둘만 좋지, 나는 괴롭단 말이에요!"
"미안. 내가 실수한 것 같다. 그냥 말하지 말 것을."
"난 그냥은 못 넘어가요."
"이번 한 번만 눈감아줘.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나는 일부러 정란의 손을 붙잡았다.
정란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서였다.
"응? 서로 좋은 사이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 셋이 같이 데이트도 하고. 그렇게 편하게 지낼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서 내가 양보하라고요?"
"그래 주면 안 돼?"
"······."
"너도 나한테 잘못한 거 있잖아. 나도 그냥 넘어가 줄게."
"······."
"서로 한 번씩 실수했다고 치자."
"···우리 언니가 그렇게 좋아요?"
"뭐?"
"그래서 저한테 이러시는 거예요?"
"아니 뭐···."
"좋았나 보네. 좋으니까 이렇겠지. 대체 어떻게 구워삶았길래···."
"어차피 일은 벌어졌어. 정희가 어떤 마음으로 나랑 잤건 간에 이미 벌어진 일이라고."
"아하, 언니랑 먼저 잤으니 나보고 얌전히 물러나 달라?"
"아니 말을 꼭 그렇게까지···."
"내가 오빠랑 자면요?"
"무슨 소리야 갑자기?"
정란이 넘어오고 있었다.
질투심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은 것이다.
"나는 아직 오빠 포기 안 했어요."
"정신 차려. 난 벌써 네 언니랑 잔 사이야. 앞으로 남자친구가 될지도 모른다고."
"그게 뭐요?"
"뭐?"
"오빠가 설사 사귀는 사이라도 상관없어요. 내가 갖고 싶은 남자, 뺏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저, 정란아 아무리 그래 이건 좀···."
"왜요? 내가 언니 동생이라서?"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아."
"언니가 먼저 배신했어요. 나만 바보같이 의리 지킬 것 같아요? 내가 왜?"
"정란아···."
"오빠가 판단해줘요."
"뭘?"
"나랑 잔 다음에 누가 더 괜찮은지. 그래도 언니가 더 좋다면 오빠 말대로 순순히 물러설게요."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해? 후회할 거야."
"상관없어요. 언니가 먼저 시작한 싸움이니까."
정란이 갑자기 덤볐다.
다짜고짜 입술을 부딪쳐오는 정란을 피할 길이 없었다.
아니, 피할 수 있었더라도 피할 생각도 없었다.
"웁-!"
질투에 눈먼 정란은 격렬했다.
처음부터 혀를 밀어 넣더니 잡아먹을 것처럼 달려들었다.
나는 거부하다가 못 이긴 척 받아주었다. 혀와 혀가 얽히고 타액과 타액이 섞였다. 순식간에 열기가 피어오르며 나와 정란의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한참 만에 입술을 뗀 정란이 나를 보고 입을 열었다.
"봐요. 오빠도 싫진 않잖아. 네 말 맞죠?"
"아, 아니야. 이건 네가 강제로."
"강제로?"
정란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더니 이번엔 가랑이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다. 키스를 하면서 꼴려있던 대물이 그녀의 손에 붙들렸다.
"이것도 제가 강제로 세운 거예요?"
"아, 아니··· 이건 키스 하다 보니···."
"오빠도 나랑 하고 싶죠?"
"아니야."
"진짜로 아니야?"
꽈악-
이번엔 정란이 대물을 세게 쥐었다.
힘이 바짝 들어가며 잦이가 바지를 뚫고 나올 것처럼 부풀었다. 그녀는 대물의 사이즈에 만족하는 듯 얇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오빠도 솔직히 궁금하지 않아요? 언니가 맛있을지, 내가 더 맛있을지."
"저, 정란아 이러면 우린 정말 돌이킬 수 없어."
"후회해도 상관없어요.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할 거면 그냥 하고나서 후회할래."
"그래도 이건···."
"에이씨, 진짜. 이렇게 꼴려 놓고 계속 발뺌할 거에요?"
정란이 갑자기 지퍼를 내리더니 팬티 속에서 성난 불기둥을 끄집어냈다. 아무리 으슥한 놀이터라지만 야외에서 말이다.
< 844. 기말 시즌-44- > 끝
ⓒ 성난불기둥